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50)화 (250/456)

250. live(5)

젖은 옷을 갈아입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갈무리하며 상태창을 정돈했다.

촬영하는 동안 활성화했던 스킬을 끄고, 촬영 감독님과 몇 명의 주요 스태프들의 친밀도를 확인하고.

연기는 그동안 꾸준히 스탯을 투자한 덕분에 21에서 58이 되었다.

연기 공부를 하면서 촬영장을 자주 들락거린 건 ‘내적 친분’ 스킬 때문이기도 했다.

최대한 자주 보고 말을 나눠야 효과가 좋아지는 스킬이었으니까.

다른 배우들에게는 사용하지 않았다.

인원수의 제한도 제한이지만, ‘너의 목소리가 들려’처럼 ‘내적 친분’도 사용하면서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강제로 누군가에게 호감을 심어준다는 게 좋은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다른 배우분들과 대화를 섞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무슨 시선들이 그렇게 날카로운지….

하지만 스킬 덕은 톡톡히 보긴 했다.

그간 내가 들인 공에 비해 더 많은 호감을 현장 스태프들에게 받고 있었다.

스킬을 사용한 상대방과 사용하지 않은 상대방의 차이를 직접적으로 느끼고 나니 입이 썼다.

꿀 빨고 살 수 있다고, 사서 고생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멈칫하는 내가 바보 같기도 하고.

최대한 가진 패를 활용하자고 마음먹어놓고도,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스킬을 쓸 때면 늘 이런 식이었다.

독종 스킬을 끄면서 느껴지는 탈력감에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숨을 고르자 시선이 느껴졌다.

‘계약자야, 너 괜찮은 거 맞음?’

‘음, 사실 잘 모르겠어.’

‘이제 곧 숙소로 돌아가지?’

‘응. 가면서 이야기하자.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걱정하고 있다는 게 생생하게 느껴지는 포잉의 시선이 유난히 달았다.

적어도 현장에서 요정과 사람 한 명은 내 편이었으니까.

“지환아, 너 괜찮아?”

“네?”

“얼굴이 왜 이렇게 질렸어.”

“첫 촬영이라 엄청 긴장해서 그런가 봐요. 괜찮아요, 형.”

“어이구.”

우진 형의 걱정 가득한 시선이 다가오자 무거웠던 몸에 조금 더 힘이 돌았다.

다음 촬영을 준비하느라 현장이 어수선했기에 주변의 몇 분에게만 인사를 건넸다.

“너무 긴장한 거 아냐? 아주 그냥 얼굴이 하얗게 죽었네.”

“에이, 이정도야 조금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요!”

진성 배우님의 목소리에도 희미한 염려가 묻어나서 조금 더 씩씩하게 웃을 수 있었다.

이번 드라마 촬영을 통해 좋은 사람을 한 명 알게 됐으니,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좋은 일이었다.

드라마가 잘 돼서 우리도 더 잘되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우진 형에게 조금만 잔다고 말을 하고 좌석에 웅크리고 누웠다.

늘 멤버들과 함께 타던 차 안에 홀로 있자니 더 휑한 느낌이었다.

‘아까… 촬영 때, 기분이 조금 이상했어.’

‘어떻게 이상했는데.’

품 안의 포잉이 평소보다 부드러운 말투로 내 말에 답해주었다.

‘실수하기 싫고 잘하고 싶어서 최대한 내가 임지웅이라고, 그렇게 생각했거든?’

‘그런데?’

‘사실 연기 중에는 이상하다는 것도 못 느꼈는데… ‘컷!’하는 감독님 목소리가 들렸을 때였어.’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포잉의 몸짓과 손등에 부비는 보드라운 감촉.

격렬하게 두근거리던 심장도 안정을 찾아갔고, 이유 모를 두려움도 가라앉았다.

‘갑자기 현실로 멱살 잡혀서 끌려온 기분? 이상하게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서 무섭더라고.’

흐음, 하는 앓는 소리와 함께 포잉의 꼬리가 부드럽게 춤을 췄다.

당시 느꼈던 기묘한 느낌을 최대한 자세하게 포잉에게 설명하자 포잉이 생각에 빠졌다.

얼마간 고민하던 포잉은 조금 더 알아보겠다는 말을 하며 내 뺨에 솜털 같은 앞발을 툭 얹었다.

‘계약자야, 네가 매우 약하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셈.’

‘응?’

‘이 몸이 다 알아서 해결할 거니까 너는 그냥 몸 건강이나 잘 챙기면 됨.’

이 유치한 초딩 말투도, 틱틱거리는 목소리도 이미 너무 소중해져서 결국 웃어버렸다.

늘 걱정하면서도 언제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요망한 요정 같으니라고.

‘응. 난 우리 포잉 님만 믿을게.’

‘당연하지. 내가 너 하나 감당 못 하겠음?’

내게 문제가 생기더라도 포잉이라면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믿음.

그동안 함께하는 시간 동안 깜짝 놀랄 만큼 유능했던 우리 포잉을 믿기로 했다.

포잉이 내 요정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 * *

깜빡 잠든 사이 숙소에 도착한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퀭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무슨 일 있었어? 왜 얼굴이 이 모양이야.”

“봐줄 만한 게 얼굴뿐인 우리 화니가 왜 이렇게 됐어!”

“뭐? 이 찐빵 같은 게?”

러그에서 뒹굴거리던 멤버들이 하나같이 내 얼굴색을 보고 멈칫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준이 형이 현관문으로 다가와 내 얼굴을 살폈고, 찬이도 옆에 들러붙었다.

“날도 찬데 물맞고 긴장하고 그래서 그런가 영 피곤하더라고요.”

“일찍 자야겠네. 몸은 괜찮아? 내일 촬영 괜찮겠어?”

“네. 좀 피곤한 거 빼면 멀쩡해요.”

“혹시 모르니까 자기 전에 몸살약 하나 먹고 자자.”

영빈 형은 혹여라도 내가 탈이 날까 걱정하면서 약통을 찾으러 몸을 일으켰다.

세빈이도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이었지만, 평소처럼 옆에 오지는 않았다.

자기가 귀찮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눈에 훤히 보여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커다란 두 눈동자 가득 담긴 이토록 선명한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면, 솜뭉치 때려쳐야지, 암.

씻고 나온 뒤에도 멤버들이 평소처럼 옆에 들러붙지 못하고 기웃거리는 게 느껴졌다.

‘네 얼굴이 오죽 처참하면 쟤들이 저럴까.’

‘난 괜찮은데….’

‘넌 괜찮다는 말 쓰지 마셈.’

“좀 피곤한 것 빼면 나 괜찮으니까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요.”

“걱정 안 했거든?”

“그래, 그렇다고 치자.”

툴툴거리는 찬이 배 위에 다리를 얹고 드러눕자, 평소라면 무겁다고 뭐라 했을 찬이조차 조용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오늘 현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둘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편이 멤버들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오늘 촬영할 때, 처음에는 엄청 긴장했거든요? NG 내면 혼날 것 같고, 눈치 보이니까.”

“그치, 그럴 수 있지.”

“나 같아도 연기하라고 하면 얼어붙을 것 같아.”

“저는 진짜 엄두도 안 나요…. 회사에서 저한테는 연기 안 시켰으면 좋겠어요.”

형들도 세빈이도 천천히 내가 꺼내는 이야기에 맞장구치면서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잘하고 싶은데 자신은 없고. 거기다 멤버들 없으니까 너무 허전하기도 하고요.”

“아, 그건 그렇더라. 이번에 나도 혼자 출연해보니까 멤버들 없는 게 너무 허전했어.”

영빈 형이 최근 촬영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늘 함께 모여서 생활하고 함께 움직이는 게 일상이 된 우리.

장시간 서로 떨어져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앞으로는 이런 시간에도 적응해 나가겠지만, 아직은 두려움이 더 컸고.

“근데 진성 배우님이 와서 막 응원해주시는 거예요.”

“진성 배우님 무섭다고 하지 않았어?”

“나도 처음에 좀 무서운 선배님인가 했는데 아니더라고. 겪어보니까 그게 잘못된 소문이라는 걸 알겠더라.”

“진성 배우님 실물로 보면 엄청 멋있다던데!”

“응. 진짜 특유의 카리스마가…. 어휴, 같은 남자가 봐도 멋있어. 나도 그렇게 멋있었으면 좋겠더라.”

힘을 빼고 조곤조곤하게 오늘 현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는 연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고, 낯선 것들은 언제나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나도 그랬고, 그런 나를 지켜보는 멤버들도 그랬을 테고.

내가 겪은 혼란과는 별도로 멤버들을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그렇게 때로는 과장해서, 때로는 얼버무리면서 촬영장 이야기를 해주었다.

촬영장에는 자주 갔지만 실제로 촬영을 한 건 오늘이 처음이라 다들 궁금했던 것 같았다.

배우들의 실제 모습과 작은 해프닝을 이야기하는 동안 멤버들의 두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 반짝였다.

다만, 오늘 직접 느꼈던 이질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괜히 걱정만 더 커질 테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멤버들의 표정도 편안해졌고, 내 표정도 비슷해졌다.

포잉의 시선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굳이 알지 않아도 될 것들은 묻어두기로 했다.

다행히 평소 같은 분위기로 오늘 하루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 * *

“언래블 여러분, 그동안 잘 지냈나요?”

“네! 괴롭히던 사람이 없어서 엄청요!”

“이거, 누가 들으면 제가 여러분을 엄청 못살게 군 것 같잖아요.”

“와, 감독님 어떻게 아셨지?”

언래블 스토리 미션 파트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우리는 실내 세트장에 모였다.

뽀송뽀송한 느낌의 노란색 맨투맨을 입은 찬이는 오늘도 활기찼고, 멘트가 아주 싱싱했다.

너무 날 것이라 저러다 우리 미션 난이도가 수직상승 할까 봐 두려웠달까.

물론 그동안 꽤 많은 시간을 서로 부대끼며 지낸 탓에 이런 장난도 서로 낄낄거리며 넘어갈 수 있었다.

다만, 감독님이 심술을 부리기 시작하면 모두가 피곤해지는 터라 준이 형이 경환 형에게 눈짓했다.

“으악! 형! 아파!”

“저희 찬이는 아직 교육이 덜된 것 같으니 C.I에게 맡겨둘게요.”

“크, 역시 직접 조련은 C.I 몫인가요?”

“아무래도 저는 체력이 좀 달려서요.”

경환 형이 찬이를 응징하는 사이 감독님과 준이 형, 나는 사이좋게 하하 호호 웃고 있었다.

감독님과 준이 형이 눈빛으로 많은 대화를 나눈 듯했지만 모른척하기로 했다.

“자, 가을 특집으로 맛있는 걸 먹으면서 가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 예정인데요.”

“간식!”

“맛있는 거!”

이미 맛있는 음식이라는 말에서 세빈이와 찬이의 눈빛이 변했다.

방금까지 경환 형에게 안마를 빙자한 교정을 받느라 바닥을 기던 애가 언제 여기 왔나 싶을 만큼 빨랐다.

“언래블은 가을 하면 생각나는 음식 어떤 게 있죠?”

“대하구이요!”

“가을 하면 전어?”

“전 밤이랑 감이요.”

너도나도 좋아하는 것들을 외치는 사이, 내가 살짝 손을 들었다.

“네, 환 군.”

“초치는 건 아닌데…. 지금 11월 말인데 이미 겨울 아닌가요?”

“하하, 그럼 환 군은 안 먹는 거로 할까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현실적인 오류를 지적하려던 나는 빠르게 입을 다물기로 했다.

혼자만 굶을 수는 없잖아!

“저도 여러분에게 그냥 편하게 음식 드실 수 있도록 드리고 싶지만.”

“싶지만…?”

“그러면 너무 심심하잖아요. 솜뭉치들이 실망하면 안 되니까요.”

“아….”

저 말을 꺼내는 건 아마도 오늘도 순순히 우리 입에 먹을 걸 넣지 못할 거라는 예고나 다름없었다.

감독님이 싱그럽게 웃는 걸 보니 확실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팀을 정하겠습니다. 매니저님!”

“어? 저거 우리 핸드폰?”

감독님은 우진 형을 통해 우리 핸드폰이 담긴 바구니를 건네받았다.

왠지 모를 불길한 마음에 침을 삼키며 바라보자, 감독님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언래블은 평소에도 팀웍이 좋기로 유명하죠. 서로를 굉장히 아낀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 다른 팀들도 다 비슷할걸요? 저희만 그런 것도 아니고….”

불안감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준이 형이 은근한 목소리로 방어를 시도했다.

“서로 떨어져 있을 때조차 단체 채팅방에서 대화를 나눈다고 들었는데요. 그래서 간단한 텔레파시 게임을 준비했습니다. 과연 멤버들은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감독님의 목소리가 생기 넘치는 만큼 멤버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내려앉았다.

과연 저 감독님이 오늘은 무슨 게임을 만들어 왔을까.

어떤 무서운 일을 벌이려는 걸까 하는 그런 근심들.

감독님 옆에는 우리를 향해 하나의 판넬이 세워졌다.

더불어 우리 앞에는 어느새 정답을 적을 스케치북과 매직이 놓여있었고.

“오늘도 3명씩 두 팀으로 나눌 겁니다. 텔레파시 게임을 통해 점수가 가장 높은 두 사람이 팀장이 될 거고, 점수에 따라 차례로 팀원이 배정될 거예요.”

게임을 설명하던 감독님은 우리 핸드폰이 들어 있는 바구니를 들어 올리며 웃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지금부터 앞에 놓인 종이에 각 멤버들이 나를 어떻게 저장했을지 적어주세요.”

아, 망했다.

어쩐지 감독님 미소가 불길하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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