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46)화 (246/456)

246. live(1)

- 언래블, 소년들의 비상은 어디를 향하는가

- 언래블, ‘이름의 소중함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신개념 개념돌 등극?

- 진심을 나누는 새로운 콜라보, 대세 스트리머와 아이돌의 만남

소현은 이번 생방송 후 회사에서 푼 기사와 자체적으로 업로드 된 기사들을 면밀히 살폈다.

연일 고소 행진을 벌이며 하나씩 유의미한 결과를 보고 있는 지금이라 어설픈 비방 기사는 없었다.

황색언론은 언제나 있지만, 그들만큼 시류에 민감한 치들도 없었기에 한시름 놓았다.

지환의 드라마 출연에 대한 홍보는 회사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기로 방송국과 미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미 있는 캐릭터였지만, 회사에서 대놓고 홍보하자니 너무 티가 나서 되레 반감을 살 수 있었다.

다만, 방송국 차원에서 홍보 기사를 뿌릴 때는 출연을 언급하겠다고 했고 기꺼이 승낙했다. 이미지를 해치지 않는 내용으로는.

음악방송 쪽은 ON 엔터가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었다.

발라드 가수 몇 명이 있고 대표적으로 하연수가 있었지만, 배우층에 비하면 너무 미미했다.

수틀리면 출연을 아예 다 빼버리고 몇 년이고 정규 방송 쪽에선 얼굴도 내밀지 못 하게 하는 게 그들이니까.

방송국은 여전히 연예인들에게는 절대 갑이었다.

그나마 여기저기 끈이 있고, 언래블이 자기 몫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어 좋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중이지만, 이것조차 믿을 수 없었다.

“곧 지환이 순서네.”

모니터 옆에 놓인 캘린더에는 언래블의 일정과 소현의 미팅 일정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지환이가 출연하는 분량은 중반의 시작 즈음이었다.

주인공의 각성을 위해서 필요한 캐릭터였으니까.

그동안 언래블은 연습과 다양한 출연으로 바쁜 일상을 보냈다. 멤버들도 스케줄이 많다는 것 자체에 무척이나 기뻐 보였다.

그사이 다른 음악방송 무대에서 두 번 더 1위를 거머쥐었으니, 아마 지금쯤 1위 공약 영상을 찍고 있을 것.

가서 한 번쯤 구경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현의 얼굴에는 짓궂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 *

앞에 세팅된 GIVE 앱 용 핸드폰, 불안하게 흔들리는 멤버들의 눈동자, 그리고 히죽거리며 나를 지켜보는 포잉.

“이거 공약으로 내걸자고 한 사람, 누구야.”

“고개 돌려서 옆에 보면 되겠네.”

“옆에 거울밖에 없는데?”

“그래, 너라고. 이 똥멍청이야!”

카메라가 돌아가기 직전 멤버들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투닥거리고 있었다.

“가사는 다 외운 거지?”

“가사만 외워서 큰일 났어요.”

“어떡하냐, 진짜….”

하준 형이 멤버들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내 상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Pluto’의 첫 1위는 너무 경황이 없었던 터라 다른 공약 없이 흘러갔다.

그저 무대 후 감사의 라이브 방송을 했을 뿐. 그러나 이후 많은 솜뭉치가 다음 1위 공약에 은근한 기대감을 비춰왔다.

- 처음은 우리도 놀랐으니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은 안 된다.

모두가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팍팍 풍겨왔기에 우리 모두 모를 수가 없었다.

그 기대가 기쁘기도 했고.

우리가 또다시 1위를 할 거라고, 그렇게 만들 거라고 솜뭉치들이 힘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기쁜 마음에 찬이가 생방송 중에 어떤 공약을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고, 솜뭉치들이 불타올랐다.

아차 하는 눈으로 이마를 쥐는 준이 형을 대신해 팬 카페에 글을 올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수습했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다들 똑같겠지만, 만약을 대비해 우리와 회사가 적당한 선을 놓고 미리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팬들에게 뭐가 좋겠냐고 물었으니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그 후 우리는 회사 분들과 공식 카페에 올라오는 1위 공약 글들을 모두 검토했고, 솜뭉치들의 창의력에 감탄하면서 대다수를 목록에서 제거했다.

최대한 무난하면서도 솜뭉치들이 재밌어할 만한 내용을 고르다 보니 결국 우리가 선택한 건 이것이었다.

‘파트 바꿔 부르기.’

솜뭉치들은 ‘Pluto’는 너무 무난해서 재미없을 것 같다며 ‘Confusion’ 원곡 무대를 요청했다.

다른 멤버의 파트를 대신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해당 파트의 안무까지 소화해야 하는 미션이었다.

다만, 힘찬이나 세빈이만 할 수 있는 안무는 변경 없이 그대로 가기로 했다.

따로 연습할 시간은 없었기에 몇 번 맞춰본 게 다였다.

물론 솜뭉치들은 우리가 엉망진창으로 망가지는 그림을 바랄 테니 그런 면에서는 탁월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얘들아, 시작한다?”

“네엥….”

어딘지 모르게 신난 듯한 우진 형의 목소리, 그리고 지하를 뚫고 들어갈 것 같은 힘찬이 목소리가 번갈아 가며 들렸다.

방송 시작을 알리는 불이 들어오자 방금까지 시무룩한 얼굴을 했던 멤버들은 모두 생기 넘치는 얼굴로 변해있었다.

제발 넘어지지만 말자, 얘들아….

* * *

퇴근 시간은 언제나 피곤하고 지친다.

회사 근처는 죄다 무슨 집값이 그렇게 비싼지, 아직 사회 초년생인 진아의 지갑 사정으로는 도저히 그 근처에 터를 잡을 수 없었다.

다달이 오십여만 원씩을 월세로 주고 살기에 진아의 월급은 너무 작고 귀여워서, 눈물을 머금고 힘들게 자신과 타협했다.

그런데도 혼자 살려니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들고 할 일은 왜 이리 많은지, 지금이라도 엄마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치솟았다.

처음 홀로 서울살이를 생각할 때는 나름의 포부도 있었고, 예쁘게 꾸며진 인테리어들을 구경하며 행복한 상상도 했었다.

그러나 전세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결국 반전세로 세를 조금이라도 깎는 게 진아와 부모님이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힘들게 취직한 회사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있는 평범한 회사였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자기 회사 얘기 같다고 할 만큼 흔한 그런 회사.

하지만 흔하고 평범하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가끔은 제대로 일을 알려주지도 않고 빈정거리는 상사의 이마를 키보드로 갈겨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자꾸 술자리를 권하는 선배도 싫었다.

진아는 자기 몫의 일만 잘 해내고 빨리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어제는 너무 늦어서 세탁기도 돌리지 못했으니 오늘은 꼭 돌려야 했다.

회사 일은 힘들고 집안일은 귀찮았다.

처음 생각했던 독립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왜 친구들이 독립을 말렸는지 이제는 진아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런 진아의 지친 일상을 달래주는 게 덕질이었다.

출퇴근길에 좋아하는 아이돌의 노래를 듣고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기운이 났다.

퇴근 후 아무 생각 없이 예능을 틀어놓는 것보다 우리 애들 영상을 보는 게 훨씬 즐거웠다.

언제 이렇게 푹 빠져든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일상처럼 스펀지가 물기를 빨아들이듯 어느샌가 그렇게 젖어 들어버렸다.

‘오늘 7시에 시작한다고 했는데….’

영상을 보기 위해 오늘 퇴근은 버스가 아닌 지하철을 택했다.

버스보다 지하철이 흔들림도 덜 하고 서서 영상을 보기에도 훨씬 나았으니까.

대신 집까지는 평소보다 십분 더 걸어야 했다.

진아는 커뮤니티의 글을 둘러보며 GIVE 앱 알림을 기다렸다.

지친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조금 후 핸드폰 화면 상단에 알림 표시가 떠올랐다. 진아는 거침없이 그 알림을 눌렀다.

잠깐의 로딩 후 카메라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자신의 본진, 언래블 모습이 떠오르자 진아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귀에 꽂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따라 멤버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렸다.

- 둘, 셋! 안녕하세요! 함께 풀어나가는 미래, 언래블 입니다!

- 1위 해본 언래블이에요! 솜뭉치들 반가워요!

- 창피하게 그러지 말라고!

- 인사라도 제대로 해, 제발!!

“풉.”

잠깐 방심하고 있었던 터라 입 밖으로 웃음이 터져 나와 황급히 입을 가렸다.

그래도 밖에서 이러는 건 조금 부끄러웠으니까.

막내 라인은 그새를 못 참고 인사하자마자 또 자기들끼리 왁자지껄했다.

진아는 이런 언래블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 좋았다.

진아가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언래블은 연습을 하고 다른 스케줄을 소화한다. 아직 학생인 멤버들도 있으니 학업도 해야 할 거고.

진아가 나름대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언래블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작은 핸드폰 화면 너머의 소년들은 활기찼고, 행복한 듯 보였다.

팬들과 마주하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듯 언제나 활짝 웃어주었다.

진아는 특히나 힘찬과 세빈이 좋았다.

가장 활달한 멤버들이어서일까? 아니면 얼굴 취향이 그쪽인 걸까.

진아도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좋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속마음을 가감 없이 말한 덕분에 작은 환에게 구박받는 찬이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싱글벙글한 C.I, 세빈이.

히스는 해탈한 얼굴이었고 하준은 찬이를 붙들고 짤짤 흔들고 있는 지환을 눈빛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 자, 저 바보는 잠깐 우리 환이한테 맡길게요. 솜뭉치들은 저랑 이야기해요. 오늘은 약속했던 대로 ‘Confusion’ 원곡 파트 바꿔 부르기를 할 거예요.

리더 하준이 햇살 같은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화면을 향해 말을 이어가자 채팅창의 메시지가 빠르게 올라갔다.

하준의 뒤에선 힘찬이 지환에게 혼나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멤버들도 솜뭉치들도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미 일상처럼 익숙해진 모습이었으니까.

그 후로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언래블은 이내 곧 결심한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시작할 모양이었다.

- 저희가 연습하면 너무 재미없을 거라고 팀장님이랑 매니저 형이 연습도 못 하게 했어요…. 너무 못해도 저희 싫어하면 안 돼요!

막내인 세빈이가 조그만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시무룩한 얼굴이 돼서는 카메라 너머의 팬들에게 말했다.

보여준 모습대로라면 팬들이 언래블이나 세빈이를 싫어할 리 없지만, 아직 아가인 세빈이는 걱정인 모양이었다.

속으로 백 번쯤 귀엽다고 외쳤을까? 진아는 공공장소에서 소리 지르지 않기 위해 들숨 날숨을 고르며 화면에 집중했다.

- 우리 막내가 고민이 많네요. 그럼 더 부끄러워지기 전에 시작할게요.

어느샌가 힘찬의 교육이 끝난 건지 지환이 산뜻한 얼굴로 돌아와 말했고, 힘찬은 그런 지환 뒤에서 경환과 영빈을 붙들고 툴툴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무대에서 대형을 맞추듯, 연습실 가운데 자리를 잡은 멤버들.

곧이어 흘러나오는 익숙한 전주에 괜히 발끝을 까딱거리고 싶어졌다.

아마 집이었다면 분명히 신나서 어깨를 들썩였을 것.

화면 속, 진지한 얼굴로 전주가 끝나길 기다리던 멤버들이 얼마 못 가 당황한 얼굴로 변했다.

서로의 파트를 바꿔 부르는 만큼, 안무나 대형도 거기에 맞춰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위치로의 이동 때문에 서로 걸음이 꼬이기도 했고, 정신 차리면 다음 파트인 멤버가 슥 하고 나타나 비켜야 했다.

발이 꼬일 때마다 당황한 얼굴을 하던 멤버들이 점차 적응한 건지 표정을 유지하면서 몸을 움직였다.

‘와, 이게 진짜 된다고?’

단체 군무는 이해 가능한 영역이었다.

위치만 바뀌는 거고, 결국은 같은 동작이니까.

하지만 다른 멤버의 개인 파트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 모습에서 평소 언래블이 얼마나 연습에 몰두하는지 알 수 있어서, 진아는 괜스레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멋진 무대를 위해 자신을 갈아 넣는 내 새끼들이 예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다만, 안무와 별개로 파트를 바꿔서 부르는 건 웃음벨이었다.

원래는 꽤 멋진 구간이었다.

가장 뒤에 있던 랩 라인 둘이 앞으로 치고 나오며 앞에 있는 방해물들을 치우듯, 손짓에 따라 댄서분들이 무너져내리는.

랩을 하는 지환이는 매우 진지한 얼굴이었지만, 랩 특유의 라임을 소화하지 못해 구연 동화 같았다.

영빈의 랩은 국어책이었으니 지환 쪽이 조금 더 나았지만, 이놈이나 저놈이나 였다.

그 모습에 필사적으로 웃지 않으려는 막내 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건 덤이었다.

노래가 절정으로 달하면서 입장은 반대가 되었다.

하준과 경환은 초반은 어떻게 넘기나 싶었지만, 영빈이 지르고 지환이 코러스를 넣는 부분에서는 울고 싶어 보였다.

둘은 특히나 평소 목소리도 낮은 편이라 더 힘겨워 보였다.

그 모습에 힘찬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춤을 추다 결국 바닥을 굴렀고, 세빈이 얼굴은 터질 것 같이 빵빵해졌다.

다만, 그 둘의 슬픔을 먼저 겪은 영빈과 지환은 랩 라인을 안쓰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앞서 형들을 비웃었던 막내 둘은 자신의 차례가 오자 의외로 훌륭하게 랩을 해내서 방송을 지켜보던 솜뭉치들은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겨우 노래가 끝나자 몸보다 정신이 지친 건지 멤버들이 핼쑥해진 얼굴로 모여앉았다.

아직 막내들은 팔팔했지만, 다른 멤버들 앞에서 촐랑거리던 찬이가 응징당하면서 상황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 솜뭉치들, 우리 앞으로 이거 하지 않기로 해요….

한껏 지친 듯한 지환의 목소리는 흡사 애원 같았다.

- 아니면 연습 시간을 좀 주면, 우리가 어떻게든….

하준은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보겠다며 안쓰럽게 웃었고, 영빈은 진즉에 경환의 등 뒤에 숨었다. 몹시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때, 진아의 귀에 익숙한 안내음이 들렸다.

내려야 할 역이었다.

평소라면 이미 지칠 대로 지쳤을 퇴근길이지만, 언래블 덕분에 어느 때보다 즐거운 퇴근길이 되었다.

‘역시 덕질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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