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45)화 (245/456)

245. REVEAL(6)

새로운 종류의 방송이기에 나도, 멤버들도 긴장한 상태였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녹아들 수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찬이가 무언가 물어뜯지 않았고, 세빈이는 달달 떠는 대신 내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처음에 비하면 정말 괄목할만한 성장이었다.

워낙 스트리머인 백수 형님이 말을 재밌게 한 것도 있었고, 사전에 우리끼리 합을 맞추면서 연습을 해본 것도 도움이 됐다.

짬이 날 때마다 백수 형님의 방송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고.

신변잡기와 자잘한 농담들로 어느 정도 분위기가 달궈지자 백수 형님이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을 꺼냈다.

“우리 버둥이들은 다 알 거야, 소송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

“생각보다 스트리머들은 별소리 다 듣고 살거든요. 그중에서도 좀 심한 사람 몇 명을 고소했는데 정말 오래 걸렸어요.”

- 우리 형이 백수지만 진짜 백수는 아니라고

- ㅇㅈ 진짜 분탕 종자 많았지. 기특하다 백수야!

대화하는 도중에도 여러 후원 메시지가 날아왔다.

함께 그 모든 시간을 보낸 그들만의 위로가 담겨있었다.

그 모습이 우리 솜뭉치들 같아서 나도 모르게 입술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처음 미팅 때, 백수형 측에서는 방송하는 동안 후원 기능을 모두 꺼놓아야 하는지 물어왔었다.

영상 후원은 막는 게 좋지만, 메시지까지 모두 막으면 시청자들이 답답해할 거라는 이유였다.

그 말과 설명을 듣고 우리도 이해했다.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긴 하지만 평소에는 영상이나 후원 메시지로 스트리머에게 미션도 걸고 이야기도 하다가 모두 막히면 답답할 것.

거기에 더해 그런 금액들도 스트리머에게는 좋은 수입원인데 모두 막는 건 아무래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대신 스트리머 측에서 최대한 관리하겠다 말했고, 회사 분들도 섭외 전 각 스트리머의 실제 라이브 방송을 점검했기에 수긍했다.

평소 방송 분위기라는 게 있다 보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갑자기 차단하면 더 반발할 수도 있어 좋지 않을 거라고 우진 형도 이야기해 주었다.

“한참 힘들고 좀 지쳐서 방송도 자주 못 했거든요. 근데 우연히 언래블이 플루토 불렀던 첫 무대를 봤어요. 그것도 우리 버둥이들이 보내줘서 봤었지?”

채팅창에는 수긍하는 메시지들이 올라왔고 추억을 회상하듯 각자가 본 그때의 모습을 말하기 시작했다.

- 그때 형 진짜 폐인 같긴 했어

- 좀비 백수 시절이네

“방송을 하고 싶은데 무섭고, 막 그냥 여러모로 지쳤거든요. 제가 ‘백수형’이라는 이름을 쓴 게 어릴 때 추억? 그런 것도 있어요. 저 꼬맹이일 때 옆집 살던 백수 형이 엄청 놀아줬거든요. 같이 게임도 해주고 이야기도 해주고.”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자신과 가장 가깝고 친근했던 어른이었기에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고 싶었다고 했다.

백수 형님의 방송은 하나의 분야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크게 나눈다면 소통, 상담, 게임.

이름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핑계였는지 모르겠지만 시청자가 늘어갈수록 비방의 메시지들도 수위가 높아졌다고.

분탕 종자는 늘 있었고, 게임 실력에 대해서도 욕설은 끊이지 않았다.

백수가 돈 쉽게 벌려고 방송한다는 이야기는 하도 들어서 지겨울 정도였다고 했다.

실제로 그 방송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이 드는지는 그들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이름을 바꾸기에는 이미 시청자들과 이 이름에 굉장히 정이 많이 들었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해서 바꾸고 싶지 않았다며 웃었다.

이미 사전 미팅 때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었지만, 오늘은 조금 더 속 깊은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연예인과 스트리머는 닮은 점만큼이나 차이점도 분명했다.

팬들과의 거리감, 친밀도, 커가는 과정 모두가.

그런 면에서 우리와 방송까지 함께 하게 된 시작이 시청자가 보내준 짧은 영상 후원 덕분이라는 게 스트리머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솜뭉치들과 진행하는, GIVE 앱이나 팬카페, 방송을 통한 소통은 보통 일방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GIVE 앱 정도가 스트리머들의 방송과 조금은 비슷할까?

우리는 마냥 서로가 귀엽다 예쁘다 하기 바빴고, 그 외에는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할건지 어떤 걸 하고 싶은 건지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모든 소통이 쌍방이라 보기엔 아쉽고, 일방이라고 보기엔 팬들의 이야기를 우리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애매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거리는 필요하다는 게 회사의 입장이었고 우리 생각에도 그랬다.

서로에게 지켜져야 할 거리는 어떤 관계든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방송만 하다가 시청자와 친구처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니 멤버들은 모두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평소 호기심을 잘 드러내지 않던 경환 형까지 눈을 빛내고 있는 걸 보면 지금 분위기가 꽤 즐거운 것 같아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졌다.

“지금 플루토 챌린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전부 자의로 참여하는 거잖아요. 언래블이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한 건 없고. 맞죠?”

“네. 애당초 저희가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순수하게 노래를 듣고 공감해준 많은 분이 자발적으로 시작해주셨거든요.”

- 회사에서 시킨 일이 아니다?

- 치킨은 튀겼지만 먹진 않았다?

“어허, 민감한 말은 서로 조심하기로 했잖아, 버둥이들아.”

“아니에요.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있을 테니까 말씀드릴게요.”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날아온 후원 메시지에 하준 형이 웃으며 백수 형님을 말렸다.

부들부들해 보이는 외모로 또 이렇게 사람을 홀리는구나, 우리 형….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회사에서 주도한 게 아니었어요. 사실 챌린지도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거든요. 저희는 처음 노래를 만들게 된 것 자체가 다분히 충동적이었어요. 그렇지, 환아?”

아니, 형이 다 설명할 것처럼 해놓고 왜 날….

우리 형님은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며 어서 답을 내놓으라는 상반되는 분위기를 풍겼다.

덩달아 다른 멤버들까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보기 시작했고, 영빈 형은 그나마 미안한 듯 웃고 있었다.

“…화살이 또 이렇게 날아오네요. 네, 충동적으로 만든 곡이긴 해요. 처음 시작 자체가 꿈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었거든요. 새벽 형들이 커버 곡 올린 것도 나중에 알았어요. 워낙 형님들이 저희한테 장난을 많이 쳐서….”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눈만 꿈벅거리다 말을 이어가자, 채팅창에는 무수한 ‘ㅋㅋㅋ’이 올라오다 ‘?’가 함께 올라왔다.

새벽 형들을 언급하자 똘가영이라는 이름도 언 듯 보였다.

내가 아는 글자의 조합들인 것 같았지만 못 본 척하기로 했다.

“농담 같지만, 음. 진짜예요. 꿈에서 들었던 멜로디에서부터 시작했거든요.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만지다 멤버들이랑 같이 작업했어요.”

“쟤가 작업할 때 얼마나 지독한지, 같이 일하면 몇 시간은 잡혀있어야 해요.”

“환이가 작업할 때 좀 집요하긴 해.”

“아니, 여러분 이렇게 또 나를 몰아간다고요? 그, 버둥이 님들? 어떻게 불러야 하지? 아무튼 저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니에요!”

- 조상님이 꿈에서 점지해준 노래는 인정이지

“아니, 조상님은 아니고요….”

졸지에 에단 쌤이 조상님이 돼버렸다.

- 우리 꿈에 노래 나왔으면 개꿈 취급했을 텐데 아이돌은 다르네

“각자 할 수 있는 분야가 다른 거니까요.”

“저희는 이게 일인걸요! 못하면 밥 못 먹어요~”

“저도 노래는 못 만들어요! 대신 춤을 춥니당.”

- 난 슬플 땐 힙합을 춰

“네? 왜요?”

얌전한 얼굴을 하던 멤버들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적응했는지 평소처럼 서로의 말에 장난을 치기도 하고 시청자들의 메시지를 읽기도 했다.

물론 드립을 드립으로 이해하지 못한 세빈이가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했고, 나이대를 추측할 수 있는 드립도 있었다.

인터넷을 자주 사용하지 않았던 탓에 드립을 이해 못 하는 우리와 그걸 지켜보던 백수 형님의 불안한 눈빛.

그 사이에서 웃느라 신난 시청자들의 메시지 등 대체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다만, 나를 몰아가던 찬이를 차마 평소처럼 응징할 수는 없었던 터라, 마음속 응징 노트에만 잘 적어두었다.

“백수 형님처럼 저희도 조금 힘든 시기였어서, 그때 저희 마음을 많이 담았어요. 존재를 부정당하는 게 그렇게까지 힘든 일인 줄 몰랐거든요.”

“명확한 이유 없는 증오가 그렇게까지 무서울 거라는 것도 몰랐고요.”

- 악플은 정신병이지. 병원에 가야 함

- 우리 백수는 착한 백수라고!

- 얘네 뭐야. 뭔데 귀여워

- 버둥이들아 정신 차려. 쟤네는 백수형이 아냐, 다른 종이라고!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는 무겁고 지루한, 재미없는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늘어지지 않게 잘 정리해 주는 백수 형님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엉뚱한 매력과 적절한 장난으로 분위기를 띄워준 멤버들 덕분에 잘 넘어갈 수 있었고.

이런 긍정적인 분위기 덕분에 재밌게 말하는 재주가 없던 내 말들도 예쁘게 잘 포장될 수 있었다.

‘Pluto’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됐는지, 챌린지에 대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앞으로 원하는 방향성은 무엇인지 등.

“우리는 너무 내 이름, 내 정체성을 주변에 맞추면서 사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나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잖아요.”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나는 나인걸 적어도 스스로는 이해하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는 많은 분이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이 챌린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또 긍정적인 영향, 선한 영향력이 생기길 바라고요.”

멤버들은 각자가 고민해온 이 분위기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더 힘을 얻었던 것처럼, 그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말하고 자신을 아끼기 바란다고.

남이 뭐라고 한들 각자의 본질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타인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니까.

평소 오디오 지분이 거의 없는 영빈 형과 경환 형까지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도 해서 우진 형이 굉장히 흐뭇한 얼굴을 하기도 했고.

“자, 플루토 챌린지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할까요?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주신 언래블 분들 감사합니다.”

“네, 저희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처음에는 걱정 많이 했는데 다들 너무 친절하게 받아주셔서 좋았어요!”

- 김백수, 봤어? 우리가 이 정도라고

- 형,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 입금은 약속한 대로 000 계좌로….

“쳇, 이래서 눈치 빠른 버둥이들은…“.

아무래도 생방송은 위험부담이 크다며 반대했던 우진 형도 오늘 방송만큼은 안심한 듯 보였다.

우려했던 것보다 시청자들도 우리에게 호의적이었고, 분탕 치려는 사람들은 방송 매니저들이 빛보다 빠르게 컷해나갔다.

그 후로 조금 더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우리는 언젠가 또 함께하자는 말을 끝으로 무사히 방송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덕분에 좋은 경험 해볼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방송이 끝난 후 서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눈 우리는 영상 편집 등 추후 남은 업무에 대해서는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실무자들의 의견도 필요하니 오늘 일정 중에 모든 이야기를 나누는 건 무리였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회사로 돌아가려던 우리는 결국 숙소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이돌에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막내 라인은 조금 들떠있었다.

“재밌었어. 그치?”

“맞아. 되게 신기한 말 많이 쓰더라.”

어디서 조금 위험한 듯한 발언이 들려 준이 형을 바라봤더니 역시나 형은 시청자들의 말에 호기심을 가진 찬이를 인자한 눈으로 바라봤다.

허튼 소리하면 형과 함께 시간과 정신의 방에 끌려갈 거라는 눈빛이었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역시 다양하게 경험해보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그 다양한 경험과 지금 네 꼴이 무슨 상관관계인지 설명해봐.”

“이건 관계없는데?”

최근 곡 작업이 막히는지 힘들어 보였던 경환 형은 새로운 타입의 방송이 나름의 자극이 됐는지 한결 가벼워 보였다.

영빈 형을 깔고 앉아있어서 더 가벼워 보인 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뭔가 재밌어 보여 나도 따라 했다.

“무거워!”

“응, 알아.”

“넌 너무 내 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알고 있어?”

“그 멘트도 이제 질린다.”

“야, 인마!”

경환 형을 따라 찬이를 깔고 앉은 나, 그리고 발버둥 치는 찬이.

세빈이는 무언가 부러운 듯 우리와 준이 형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지만 차마 시도하진 못했다.

세빈아, 준이 형은 안돼. 큰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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