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41)화 (241/456)

241. REVEAL(2)

- 얘가 여기 애 맞아??

쓰고 나니까 말이 좀 이상한데 나 방금 여진우랑 새벽 멤들이랑 누구 한 명 더 같이 뮤지컬 보는 거 봤거든 ㅇㅇ

근데 그 멤버랑 친한 게 언래블이라고 들어서 왔엉.

(프로그램 북 꼭 쥐고 있는 지환 옆모습 사진)

(새벽 멤버들과 여진우에게 둘러싸인 지환 뒤통수 사진)

이 애가 너희 애가 맞니?ㅋㅋㅋㅋㅋ

아니면 말구….

*어떤 뮤지컬인지는 말하기 쫌 그래서 안 적었어 ㅠ

ㄴ ??? 우리 애는 맞는데 아니 왜 혼자 저기 잡혀 있는 거야?

ㄴ ㅋㅋㅋㅋㅋㅋㅋㅋ잡혀있댘ㅋㅋㅋㅋㅋ근데 잡혀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함….

ㄴ 우리 작은환 왜 형들한테…. 아니 다른 애들은 어디 가고 ㅋㅋㅋ

ㄴ 물구나무서서 봐도 우리 애가 맞는데 뮤지컬 보러 갔다고??

ㄴ 저 프로그램 북이 뭐라고 저렇게 꼭 쥐고 있냐ㅠ 내가 종이 쪼가리를 질투하게 되다니ㅜㅜ

ㄴ원뷰어야 상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ㅠㅠ

ㄴ222….

ㄴ3 꼭 좀 부탁드립니다(굽신굽신)

언래블 게시판에 갑자기 등장한 한 명의 뮤지컬 덕후의 게시글에 솜뭉치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애가 뮤지컬을 보러 갔다고?‘, ‘다른 멤버들 없이 형들이랑만 갔다고?’ 등 온갖 댓글들이 순식간에 올라왔다.

흥분한 팬들은 거기에 멈추지 않고 당시 상황의 상세한 이야기를 해달라며 애타게 처음 글을 올린 사람을 부르며 울고 있었다.

도대체 멤버들은 회사와 집, 일정 외에는 아무 데도 안 가는지 외부에서의 목격담이 전무한 상황.

언래블 전체 집돌이 썰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요즘, 멤버의 출현 소식은 솜뭉치들을 설레게 했다.

게다가 가장 숙소 껌딱지인 지환의 출몰 소식은 빠르게 여러 SNS를 타고 퍼져나갔다.

안 그래도 잡지 인터뷰에서 쉬는 날 작업실에서 놀거나 잠을 잔다고 말해 언래블 공식 집돌이로 낙인찍힌 지환이었다.

때문에 이 와중에 솜뭉치들이 가장 궁금한 건 왜 다른 멤버들 없이 지환이만 형들과 함께 외출한 것일까였다.

- 여기 애 글쓴이야

내가 원래 뒷줄에 앉는 걸 좋아해서 뒷줄이었는데 공연 시작 거의 직전에 우르르 누가 들어와서 걍 그런갑다 했었거든.

슬쩍 봤는데도 느낌이 아 얘네는 걍 일반인이 아니다 싶은 거야 ㅇㅇ

근데 바로 뮤지컬 시작해서 그쪽에 신경을 못 썼어.

그러다 끝나고 나서야 아차 싶어서 다시 보니까 여진우랑 새벽 애들이더라고! 진짜 세비 얼굴 내 취향 ㅜㅜ 오늘 개안했다 진짜 ㅠㅠ

아무튼 제일 작은 애를 둘러싸고 자기들끼리 막 툭툭 치면서 장난치는데 엄청 친해 보였어 ㅋㅋ 화니라는 언래블 멤은 형들 사이에서 좀 치이는? 그런 얼굴ㅋㅋㅋ이엇는뎈ㅋㅋㅋ

오죽하면 키스가 한가영 걷어차더라 ㅋㅋㅋㅋ

애기 표정이 너무 적나라한데 한가영 진짴ㅋㅋㅋ애 그만 괴롭혀라 ㅋㅋㅋ하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어! ㅋㅋㅋ

애기 표정이 막 누가 봐도 아 귀찮아! 이거였거든 ㅋㅋㅋ

꿋꿋하게 한가영은 계속 장난 걸고 그러다 여진우가 그 쪼마난 애 손목 잡아서 스태프 대기실 있는 쪽으로 데려가더라고.

그래서 처음에는 ??? 싶었는데 인사시켜주려는 것 같더라.

쫌 멀리서 지켜보다 나와서 무슨 얘기 했는지는 거의 못 들었어.

그냥 너무 자기들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게 귀여워서 사진만 두 장 찍어옴.

문제시 삭제할게 ㅠ

아, 공연 끝나고 막 나갈 때였나, 그때 그 쪼마난 애가 뮤지컬 처음 본다고? 하면서 엄청 좋아하더라 ㅎㅎ 흥분했는지 말도 좀 빠르고 여진우 붙잡고 막 열심히 얘기했음.

이 애기 팀에서 애교 담당이야? 되게 신나 보이고 형들은 그 쪼마난 애기 보고 계속 엄빠미소 짓는데 훈훈하니 보기 좋더라 ㅋㅋ

ㄴ ㅠㅠㅠㅠㅠ후기 고마워. 우리 애 쪼마니…ㅋㅋㅋㅋㅋㅋ 아직 자라는 중이야ㅋㅋㅋㅋ

ㄴ ㅋㅋ애교 담당은 아니고 형아 담당이야. 우리 작은환한테 누가 꿀 발라놨는지 자꾸 형아들이 들러붙어 ㅋㅋㅋㅋ

ㄴ 나는 왜 뮤지컬 보는 취미를 갖지 않은 거야 ㅠㅠㅠㅠ (오열)

ㄴ 공유해줘서 고마워! 우리 애 뮤지컬 첨보는 거구나 ㅠㅠㅠ

ㄴ 누나가 너 보고 싶은 뮤지컬 다 예매해 줄 수 있어 우리 자근화니 ㅠㅠㅠㅠ말만 해!ㅠㅠㅠ

자세한 후기 글을 접한 솜뭉치들은 온갖 궁예를 시작했다.

뮤지컬을 보러 간 건 앞으로 지환이 뮤지컬에 도전하려는 준비 과정인 걸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솜뭉치들이 있었다.

또 어떤 솜뭉치들은 오늘 출몰한 그 멤버들끼리 무언가 다른 촬영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ON 엔터가 외부의 프로그램보다 자체 제작 영상에 조금 더 공을 쏟는 게 팬들 눈에도 보였던 탓이었다.

그런 궁예와 함께, 어느 솜뭉치는 지환이 이번 앨범의 홍보 영상의 중심에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영상에 나왔던 온갖 소품들과 숨겨진 그림들, 유명 소설들의 문장을 인용한 메시지 등.

그런 것과 연결되는 뮤지컬이나 프로그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팬들의 의견이 분분한 와중, 그 모든 상황이 ON 엔터 직원들의 레이더망에 그대로 포착되었다.

ON 엔터의 직원들은 팬들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며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시적인 들썩임이라도 이슈로 확인되는 내용은 모두 소현에게 보고해야 했다.

“애들이 연기라도 한다고 하면 난리 나겠다.”

가끔은 관련자들도 놀랄 만큼 날카로운 추리와 풍부한 지식을 자랑하는 솜뭉치들이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꼭 헛다리를 짚었다.

“팬덤은 자기 아이돌 따라간다더니, 딱 얘들이네. 귀엽다, 귀여워.”

정리된 보고서를 전자결제로 올리던 시한은 팬덤의 반응을 확인하면서 잠시지만 웃을 수 있었다.

언래블도 솜뭉치도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 * *

새로운 날로 넘어가는 그 순간, 언래블의 공식 계정에는 하나의 링크가 올라왔다.

링크는 위캠의 언래블 채널로 곧장 이어졌고, 많은 팬이 수없이 요청했던 미니미들의 얼굴이 화면에 떠올랐다.

귀여운 동물 쿠션이 여기저기 흩어진 방 안에 조그만 캐릭터들이 폭신한 러그 위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연한 갈색 머리의 미니미가 늑대 인형을 벽 삼아 기대있다가, 옆에 있는 백금발의 미니미에게 무어라 이야기하며 한숨 폭 내쉬었다.

백금발의 미니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다 러그 한복판에 누워있는 미니미를 가리켰다.

그러자 고양이 인형의 꼬리 위에 엎어져 있던 검은 색 머리칼을 가진 미니미가 잠시간 갸웃거리다 고개를 휙 돌렸다.

짙은 체리 색 머리칼을 한 미니미가 자신 쪽으로 굴러오는 걸 확인한 검은색 머리의 미니미가 몸을 휙 피해버렸고, 굴러오던 미니미는 다른 인형 쿠션에 부딪혀서 해롱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몽실몽실한 머리의 애쉬 핑크색 미니미가 활짝 웃으며 손뼉을 치고 기뻐했다.

그때, 혼자 어슬렁거리던 밝은 갈색 머리칼의 미니미가 자기들끼리 바쁜 다른 미니미에게 무어라 이야기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미니미들보다 훨씬 큰 크기의 노트북이 켜져 있었고, 미니미들은 호기심이 동했는지 뽈뽈거리며 그쪽으로 이동했다.

아직도 해롱거리던 체리 색 머리의 미니미를 바라보던 검은색 머리 미니미는 어깨를 크게 들썩일 정도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주저앉아있는 미니미의 한쪽 다리를 붙들고 노트북 쪽으로 질질 끌고 갔는데, 그게 재밌는지 끌려가는 미니미는 신난 표정이었다.

화면에서는 미니미들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노트북 앞에 모인 미니미들은 힘을 합쳐 노트북을 열었고, 폴짝거리며 키패드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노트북이 켜지고 신난 미니미들이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기쁨을 표출하는 사이 노트북의 바탕화면이 나타났다.

바탕화면에는 동영상으로 보이는 한 파일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자기들끼리 무어라 쑥덕거리던 미니미들은 낑낑거리며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였다.

그렇게 파일이 실행되고 노트북 화면 가득 까만 화면이 나타나더니, 화면에는 ‘Pluto challenge’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쪼르륵 앉은 미니미들은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화면을 가리키며 떠들고 있었다.

곧이어 화면에는 ‘Pluto’의 첫 무대, 많은 사람이 올렸던 챌린지 영상 등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화면을 바라보던 미니미들은 뿌듯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몇 개의 영상이 지나간 후 화면 위로 날짜가 하나 떠올랐다.

그걸 본 미니미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노트북 화면이 아닌 카메라를 향해 몸을 돌려 씩 웃었다.

그렇게 영상은 끝났다.

* * *

점점 멤버들도 나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프로그램 촬영보다 연습에 몰두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면, 이번 앨범부터는 조금씩 방송국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주로 예능 프로그램에 짧게 출연해 인터뷰와 자잘한 게임을 진행했었고, 라디오에도 꽤 많이 출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멤버들 없이 홀로 출연하는 건 적응이 어려웠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늘 긴장해야 했고, 흥미 위주의 질문들에 낚이지 않으려면 말조심은 필수였다.

포잉이 투덜거리면서도 늘 함께 있어 줬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진작에 우진 형을 붙들고 우울해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드라마 촬영장은 조금씩 적응되고 있다는 것.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회사의 영업력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다행히 나와 팀장님이 점찍었던 역에 출연할 수 있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는 틈날 때마다 촬영 현장에 찾아가 열심히 인사하고 다녔다.

내가 나오는 장면은 두 번, 그것도 극의 중반부와 후반부 사이 즈음이라 초반부터 현장에 계속 올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왕 하는 거,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잘 그려내고 싶었다.

미리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싶다 회사에 이야기하자, 회사에서 제작진에 양해를 구해 현장에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촬영 현장을 지켜보는 내내 생각했다.

아마도 나는 뮤지컬에서 봤던 선배님들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켜쥐는 연기 같은 건 무리일 터.

그렇다면 내가 평소 하던 방식대로 무작정 외우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아서 제작진이 그리려고 한 ‘임지웅’이 어떤 모습인지를 그려야 했다.

내가 그린 ‘임지웅’과 작가님이 그리려고 했던, 혹은 함께 마주할 배우들이 그리고자 했던 ‘임지웅’이라는 캐릭터를 모두 알고 싶었다.

차마 작가님을 붙들고 알려달라고 할 수 없었기에 최대한 반복해서 대본을 읽었고, 틈날 때마다 현장에 와서 다른 배우분들이 연기하는 걸 지켜봤다.

다 같은 대본을 가졌지만, 결국 모든 배역은 최종적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캐릭터여도 누가 연기하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이 될 수 있다.

김미연 선생님이 강조하던 이야기였다.

그래서 상대 배우와의 합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무턱대고 다가가 도와달라고 하기에는 괜히 밉보일까 싶어, 간식을 사 들고 와 인사를 다니며 현장에 남아있었다.

방해되지 않도록 구석에서 얌전히 있었던 덕분에 처음에는 좋지 않았던 시선들이 이제는 제법 호감이 깃들기도 했고.

덕분에 꽤 많은 돈이 깨져야 했지만, 그것 이상으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많았다.

처음에는 소현 팀장님이 회사 경비 처리하는 게 어떻냐고 이야기해 주셨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사비로 충당했다.

현장에서 열심히 공부하느라 빳빳했던 대본이 꾸깃꾸깃해졌고 각 페이지는 내가 남긴 무수한 메모들로 지저분해졌다.

학교 다닐 때 이 정성으로 공부했으면 서울대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별이 잠든 도시’라는 제목의 이 드라마는 청소년기의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을 파헤치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어느 날 불쑥 과거에서부터 튀어나와 주인공을 괴롭히기 시작하며, 드라마는 시작된다.

주인공은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마주친 동창과 대화를 나누다 자신의 기억이 생각보다 더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다.

자신의 기억을 믿을 수 없어진 주인공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 둘 과거의 관련자들을 만나고 진실을 캐 나가는 그런 이야기.

여기서 임지웅은 학창 시절 주인공과 제법 친하게 지냈던 인물이었다.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의 ‘임지웅’이지만, 활달한 주인공과 우연히 공통된 아픔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급속도로 친해진다.

하지만 결국엔 주인공의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커다란 빅엿을 선물해주고 퇴장한다.

이 내용을 읽은 포잉이 이 임지웅이라는 캐릭터는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이냐고 투덜거릴 정도였다.

극의 흐름에서 ‘임지웅’은 딱 두 번 카메라에 잡힌다.

그 외에는 다른 출연자들의 대화에서 ‘임지웅’에 대한 조각난 정보가 흘러나오는 것뿐.

이렇게 한 명의 캐릭터를 이해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체감하던 나는 꼬깃꼬깃해진 대본을 만지작거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