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23)화 (223/456)

223. 이름에게(4)

“애들이 뭐 사다 달라고 했지?”

“냥톡으로 보내 달라고 했으니까 다시 봐봐.”

별것 아닌 평소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익숙한 브랜드명을 볼 수 있었고, 카운터에서 메뉴를 하나둘 읊고 있었다.

꽤 많은 양의 주문에 앞에 서서 주문을 받던 직원분은 몇 번의 확인을 거쳤고, 그때마다 준이 형이 천천히 다시 주문을 확인해주었다.

준이 형한테 맡기고 한걸음 뒤로 빠진 나와 경환 형은 그런 형의 뒷모습을 보며 수군거렸다.

“저 형은 다른 사람들한테만 저렇게 웃더라.”

“맞아. 우리한테만 사납다니까.”

“저런 게 얼굴로 홀린다는 거지?”

우리 모두 모자를 눌러쓴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히 별다른 말 없이 친절하게 응수해주시는 직원분 태도에 긴장했던 마음이 진정되었지만, 묘하게 아쉽기도 했다.

언제쯤 우리도 사람들이 얼굴 알아볼 만큼 유명해질 수 있을까?

“뭘 그렇게 둘이 수군거려.”

“그냥 이거저거?”

“형 욕?”

“쓰읍. 이것들이?”

툴툴거리며 우리 어깨를 툭 건드리는 준이 형의 표정엔 희미한 기대가 서려 있었다.

“형도 사실 좋지?”

“응?”

“햄버거 먹어서 형도 좋잖아.”

“뭐….”

히죽거리는 경환 형의 얼굴이 못마땅한 듯 입꼬리 한쪽이 비죽 올라갔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우리끼리만 쉐이크 먹을까요?”

“우리만?”

“네. 우리가 사러 왔으니까 그 정도는 괜찮지 않나?”

못된 장난을 치는 것처럼 음흉한 내 미소에 포잉은 질색한 듯 얼굴을 휙 돌려 외면했지만, 두 형의 얼굴엔 내 미소와 비슷한 것이 걸렸다.

원래 남몰래 먹는 게 가장 맛있는 거 아니겠어?

얼마 후 가게를 나오는 우리 손에는 쉐이크가 하나씩 들려있었고, 다른 손에는 햄버거와 콜라, 감자튀김 등이 든 봉투가 걸려있었다.

당연히 숙소는 쉐이크를 다 먹은 후 들어갔고.

그날 저녁 오랜만에 햄버거 파티를 한 멤버들은 하나같이 배부른 강아지 같은 얼굴로 러그 위에 늘어졌다.

“너무 오랜만이라 순삭해버렸다….”

“또 언제 먹을지 모르니까 이 순간을 즐겨.”

“아…. 그 말만 안 들었어도 잠드는 순간까지 행복했을 텐데.”

우리는 배부른 만큼 너그러워졌다.

오랜만에 맛본 자극적인 불고기 소스와 마요네즈의 꿀 조합이 엔돌핀이 뿜뿜 터져 나오게 했다.

바삭하고 짭조름한 감자튀김과 막힌 속을 팡하고 터트려 줄 것 같은 콜라는 또 어떻고.

마지막 양심으로 제로 콜라를 시켰지만, 탄산음료라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서로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낄낄거리며 러그 위를 굴렀고, 피곤했던 하루의 모든 것을 흘려보내고 나니 평화만 남았다.

그래, 맛있는 음식이라는 건 이렇게 위대했다.

“아, 언제쯤 맛있는 거 마음껏 먹을 수 있을까.”

“글쎄. 그래도 이제는 식단도 좀 널널해졌잖아.”

처음 몸을 만들 때보다는 조금이지만 유연해졌다.

회사가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지 않아도 우리끼리 알아서 조심했으니까.

회사가 우리에게 어느 정도 자유를 보장하는 만큼, 우리는 그만큼의 책임을 진다.

그게 회사와 우리 관계를 정의하는 여러 문장 중 하나였다.

오늘 이렇게 일탈을 했으니 내일은 다들 더 빡시게 안무를 연습할 것이고, 트레이닝에 더 힘을 쓸 것.

우리 애들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이미 멋진 사람들이었다.

“자, 뻘짓거리 그만하고 이제 자라.”

“먹고 바로 자면 안 된댔는데.”

“한 시간쯤 지났어. 자도 된다.”

“더 놀다 자고 싶은데요!”

“내일 죽겠다고 갤갤거릴 게 뻔하니 누워라, 이놈들아.”

낄낄거리며 러그 위를 구르던 여러 덩어리를 준이 형이 챙기기 시작했다.

우리야 놀 때는 노는 게 마냥 좋았다.

하지만 리더는 그다음을, 미래를 걱정하는 자리였던 걸까.

늘 다음 날의 컨디션을 걱정했고, 우리가 너무 풀어지지 않도록 조여주기도 했다.

그런 준이 형의 노고를 알기에 우리는 싫은 척 징징거리면서도 밍기적밍기적 자리에서 일어났다.

못 말린다는 듯 웃던 준이 형은 그런 동생들의 등을 떠밀어 방으로 밀어 넣었다.

“아,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

“그랬냐.”

“그럼요. 그러니 이제 자야죠. 경환 형, 잘 자요.”

“오냐, 너도 잘 자라.”

같은 방을 쓰는, 테디베어보다는 곰돌이 푸가 더 어울리는 것 같은 경환 형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포잉, 자자!’

‘쯧. 언제쯤 철이 들꼬.’

비록 내 요정님은 씩씩한 내 인사를 가볍게 앞발로 쳐냈지만, 그런 것치고는 얌전히 내 품 안에 자리를 잡았다.

‘좋은 꿈 꿔, 포잉.’

‘푹 자라. 계약자 놈아.’

평소처럼 안락한 밤이었다.

* * *

- 이번 앨범 궁예글임(스포 有有有有有有有)

1. 처음 작은환이 카펫 위에 등장하기 전에 흘러나오는 곡이 ‘Danse des Esprits’ 요정의 춤이라는 곡임. 뷰어들 오르페우스 이야기는 들어봤지? 죽은 아내를 데려오려고 저승 갔던 이야기.

자세한 건 검색해보면 나오니까 모르면 검색 ㄱㄱ

여튼 그중에서도 이 곡은 천국에서 죽은 영혼들이 춤추는 장면을 묘사하는 음악이란 말이야. 그래서 난 두 가지 가정을 세움.

ⅰ. 멤버들은 이미 죽은 상태다

ⅱ. 멤버들은 천국에 있는 것 같은 행복한 상태다

ⅰ의 근거.

수많은 휘장이 둘러쳐진 외부랑 단절된 공간 앞에서 작은환이 머뭇거리다가 찬이 손으로 추정되는 손이 안으로 잡아끌잖아? 그래서 이것도 두 가지 가설을 세우는데 기초가 됐음.

- 잡아끄는 손 > 예기치 못한 불가항력의 상황(혹은 그로 인한 죽음)

* 이때 작은환이 휘장 안의 웃음소리에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앞에 진행된 스토리로 미루어보아 죽음을 고민한 것은 아닌가 싶음ㅠ..

현실이 너무 괴로운 사람들이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 새하얀 잠옷 > 수의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었어. 맨발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하얀색이었고, 하다못해 애들이 올라앉은 침대까지 온통 하얀색.

작은환이 입고 있던 옷이 들어오면서 순식간에 바뀐 거 봤지? 그래서 난 더 수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함.

- 침대 > 죽음을 영원한 잠이라고 묘사하는 도구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함.

굉장히 푹신해 보이고 포근해 보였음. 멤버들이 전부 누웠을 때도 굉장히 다들 얼굴이 행복해 보였는데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결국 다들 잠들잖아.

그래서 이전 스토리와 연계해서 생각하면 현실에서 핍박받던 래블이들이 도피했지만 결국 거기서도 행복을 찾지 못했다.

그 결과 모든 것의 끝에 도달해서야 행복해진 게 아닐까ㅠ...하는 슬픈 이야기를 떠올림.

ⅱ의 근거

- 작은환이 머뭇거림 > 이건 언래블이라는 그룹의 역사(?)와 연결 지어서 생각해야 했는데 처음에 작은환에 대한 여론 안좋았자나..(물론 지금은 아닌 거 잘 암!!)

그래서 작은환이 너무 자기 파트나 방송까지 다 다른 멤한테 밀어주는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했고. 말 그대로 행복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모습을 표현한 것 같기도 했어.

- 작은환을 안으로 잡아끈 손 > 망설임을 없애주려는 듯 단호하게 확 잡아끌었잖아? 그건 이미 넌 우리 일원이야! 하는 느낌으로 보였음!

실제로 작은환이 오자마자 멤들이 자기 하던 거 다 멈추고 환하게 웃으면서 반겼음!

- 실내를 가득 채운 소품들 > 여로 쇼케 방송본 뷰어들은 이때 어디서 본 거다 싶었을 거야. 쇼케 때 있었던 쿠션들도 여기 다 나옴! 그리고 멤들 앞에 텀블러 봤지? 평소 애들 쓰던 그거 ㅇㅇ.

여기서 조금 더 내 망상 회로를 돌린 게 방송에서도 현실에서도 쓰던 소품들을 한자리에 모아둔 건 그 모든 게 언래블이라는 모습을 알려주려던 게 아닐까 함.

* 제보받은 건데 멤들이 껴안고 있었던 인형들도 예전 팬싸 동물 스티커 사건 후에 팬들이 선물해준 인형이래ㅠㅠㅠ울애들 넘 따숩..

- 침대 위에서 편하게 있던 모습들 > 언래블 스토리 일상편 보면 애들이 거실에 러그 깔아놓고 그 위에서 뒹굴뒹굴하는 모습 나왔던 거 기억할 거야.

난 침대 위에 모습이 꼭 그 시간을 옮겨놓은 것 같았어. 잠들기 전에 그날 일을 서로에게 이야기하면서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했으니까.

- 막판에 작은환이 잘 자라고 인사한 것! > 이게 생존에 무게를 두게 된 가장 큰 포인트였음!!

작은환이 예쁜 꿈 꾸고 잘 자라고 웃었고 조금 후에 괜찮아요 라고 문장이 떠올랐잖아? 우리들은 평화롭고 행복하니 너희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위로의 메시지 같았음.

처음 봤을 때는 ‘ⅰ. 멤버들은 이미 죽은 상태다’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 근데 두세 번 다시 보다 보니까 지금은 ‘ⅱ. 멤버들은 천국에 있는 것 같은 행복한 상태다’가 더 맞는 거 같아.

아니 사실 이거 전부 그냥 내 궁예지만ㅠㅠㅠㅠㅠ뭐냐고ㅠㅠㅠ영상 미쳤잖아ㅠㅠㅠㅠ 우리 세빈이 애쉬 핑크...ㅇ.../죽음

ㄴ 와씨 소름.. 난 그냥 애들 예쁘다 요정인 것인가? 하고 보고 있었는데 너 쫌 쩐다!

ㄴ 나 원뷰어가 쓴 궁예 읽고 영상 다시 보는데 너무 ㅅ소름 돋았어..ㄷㄷㄷㄷㄷ... 1이랑 2랑 둘 다 그럴싸해..

ㄴ 난 개인적으로 2였으면 좋겠다ㅠㅠㅠ왠지 1이 더 맞는 거 같은데 2가 더 울 애들 행복하니까…☆

ㄴ 나 윗글 읽고 영상 다시 보다 방금 소름돋았어. 화면에 영빈이가 기댄 벽면에 드리워진 천에 비친 거 아르놀트 뵈클린이 그린 ‘죽음의 섬’이라는 작품임.. 근데 세빈이가 들고 있던 책, 펼쳐진 부분 그림은 같은 작가가 그린 ‘생명의 섬’이라는 그림이야..

ㄴ 헐? 그 그림은 어떻게 찾은 거야…?

소현 팀장은 공개된 영상의 궁예글 중 가장 인기 있는 글을 확인하며 가볍게 웃었다.

이렇게 팬들이 고민하고 즐길 거리가 된다는 건 좋은 징조니까.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영상을 기획하고 만든 회사나 아티스트는 이 영상의 모든 것을 그들의 상상에 맡겨야 한다는 점이었다.

정해진 내용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상상하고 더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대놓고 떠먹여주는 이야기보다 이렇게 흥미를 유발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더 오래 기억될 테니까.

“팬들도 점점 더 똑똑해져서 정말 어렵다니까….”

은근하게 그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이야기를 삽입하는 건 어려웠다.

너무 과하면 하나의 이야기로만 귀결돼버리고, 또 너무 숨기면 흥미를 끌기 어려웠으니.

그동안 여러 명의 담당자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며 만든 영상이었고, 사진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멤버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했고, 그것들을 이야기에 녹여내기도 했다.

가끔은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이야기의 핵심을 찌르거나 허점을 잡아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멤버들을 아티스트로 생각하지 않았던 직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곡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팀의 방향에 대해 회의하고 나면 대부분 수긍했다.

그만큼 언래블은 무섭게 자신들의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었고, 소현은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기껍고 즐거웠다.

조그만 꼬꼬마였던 멤버들이 하루가 다르게 잘 크고 있었다.

소현은 마우스를 움직여 몇 개의 보고서를 더 확인했다.

그중에는 ‘김우빈 동향’, ‘최태성 동향’ 같은, 적출해 낸 독극물 같은 놈들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불순한 움직임이 있을 때, 사전에 그것들을 감지하고 차단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

그것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체크했고, 다행히 아직까지는 조용했다.

얼마 전 지환의 가족이라는 사람이 회사에 찾아오기도 했지만, 이미 지환의 친누나와 이야기를 나눴던 터라 적당히 돌려보내기도 했고.

언래블이 점점 더 자라고 인지도가 높아짐에 따라 떡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는 이들이 가끔 이렇게 나타나기도 했다.

그것들을 적정선에서 정리하는 것도 회사가 해야 할 일이었다.

다행히 멤버들이 보호자로 지정한 가족들은 회사의 움직임에 적극 협조하고 있었다.

“하아…. 진짜 휴가 가고 싶다.”

공개된 영상의 반응이 좋아서 기분 좋았던 것도, 멤버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서 뿌듯했던 것도 잠시.

소현 팀장은 오늘도 산더미 같은 일을 피해 퇴사하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누르며 휴가를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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