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이름에게(2)
최근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늘었다.
한 번의 호흡에 이만큼 많이 달려왔으니, 이제는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 주어진 것 같았다.
다른 것들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이것이었다.
이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겉모습은 다르게 바뀌었어도 속에 든 알맹이는 동일한 사람인데, 이상하게 최근에는 전생의 나와 지금의 내가 별개의 사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는 그런 기분.
사람을 싫어하고 관계 맺는 걸 무서워했던 나.
무겁고 진득한 관계가 되기까지 소모되는 감정이 너무 커서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고 했던 나.
약 30년의 삶을 살았으면서도 그 삶이 끝나버린 후 그리운 것은 가족들뿐이었다.
생각나는 친구 한 명 없다는 게 유난히 씁쓸했다.
그저 같이 덕질했던 몇 명의 이름이 떠올랐지만, 그마저도 애틋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쉬움이 담긴 마음뿐이었다.
이건 그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의 마음에 온전히 답하지 않았던 내가 문제였다.
그랬던 내게 친구가, 동료가, 지인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다가오는 사람은 두렵지만, 이전처럼 무작정 피하지는 않고 있었다.
최대한 좋게 좋게만 골랐던 내가 회사에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생각이 돌고 돌아 결국 언래블이 내 안에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만 남았다.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 무수히 쏟아지는 악의 가득한 감정들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한결같은 굳건함.
쉬이 호의를 주지 않는 사람들을 기어코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던 진솔함.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게 없을 정도로 찬란했던 사람들.
부러워하고 동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때 내가 가지고 싶었던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니까.
곁에서 서로를 위하며 함께 자라날 기회가 생긴 것 자체가 내게는 행운이었다.
처음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
어떤 배후의 무언가 때문에 내가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죽어야 했던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던 투정으로 가슴앓이하던 날이 있었다.
나에게 죽음은 너무 갑작스러웠고, 가장 설레하던 순간에 찾아왔다.
다만, 마냥 투정만 하고 있기에는 당장 내 앞에 닥친 일들이 너무 많았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렇게 커다란 폭풍이 한번 지나간 지금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조금씩 돌아볼 시간이 생겼다.
내가 무엇으로 살고 싶은지는 끊임없이 생각해왔던 주제였기에, 적어도 이번 생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은 찾았다.
언래블이 탑급 아이돌이 되어 누구도 함부로 공격할 수 없게 하는 것.
지금 목표가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득히 멀리 있는 목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없었던 이전 생에도 자신의 힘으로 그 위치에 올랐던 언래블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 빛나는 자리에 언래블의 멤버로서 서고 싶은 욕심이 꿈틀거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서 한없이 빛나던 나의 별들.
그리고 지금은 내 앞에서 까불거리는 최힘찬.
하….
“환아, 뭐해?”
“그냥, 목표를 생각하고 있었어.”
한참을 생각에 빠져 멍하니 있었더니, 찬이가 은근슬쩍 옆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았다.
“무슨 목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런 거.”
“오, 웬일로 생산적인 고민을 하는데?”
“난 언제나 너보다 생산적인 것 같은데.”
외부의 시선 없이 우리끼리만 있을 수 있는 숙소에서나 회사에서 개인 연습을 하는 도중이 아니면, 우리는 절대로 서로를 홀로 두지 않았다.
의식하지 않았지만 늘 그래왔다.
덕분에 서로 간에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늘 투닥거리긴 해도 어느 정도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둘이 또 싸워?”
“안 싸워! 누가 보면 내가 쌈닭인 줄 알겠네.”
“그럼 아냐? 아니, 쌈닭이라고 보기엔 찬이가 좀 많이 약한가.”
“안 약하거든요?”
나한테 와서 껄렁껄렁하게 굴던 찬이는 경환 형이 등장하자 형과 시시덕거리며 서로를 툭툭 치고 있었다.
한번 준이 형이 서로 선을 지키라고 엄하게 말을 한 이후부터는 서로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편이어서 걱정은 없었다.
뭐, 애들은 싸우면서 크기도 하고.
“형, 우리 차례에요.”
“아, 응. 갈게.”
예쁘게 꽃단장을 한 세빈이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불렀다.
우리는 11월 발매할 앨범을 위해 컨셉 포토를 촬영하러 온 상황이었다.
우리의 이야기 중간에 특별 부록처럼 끼워 넣게 된 별개의 앨범이어서 그동안의 앨범의 스토리상 유지했던 머리도 새롭게 단장했다.
“우리 막둥이, 역시 다시 봐도 이번 머리 예쁘다.”
“진짜요? 어색할까 봐 걱정했는데.”
“아냐, 잘 어울려. 전에는 모범생 같았지만, 지금은 음, 아이돌 같은?”
“그게 뭐예요!”
정말 아이돌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세빈이에게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없었지만, 듣는 쪽은 또 달랐는지 웃으며 내 어깨를 때렸다.
아, 세빈아… 아프다….
찬이 따라 운동 열심히 하더니 애가 힘이 좋아졌는지 신나서 장난치다 때릴 때마다 점점 더 아픈 것 같았다.
내가 운동을 더 해야 하나….
그런 내 속마음과는 별개로 뽀얀 분이 묻어날 것 같은 몽글몽글한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는 세빈이는 평소보다 한 단계 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동안 진한 갈색의 단정한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던 세빈이는 오늘 촬영을 위해 애쉬핑크로 머리색을 바꿨다.
비록 염색물이 금방 빠져 오래 가지 못하겠지만, 자신이 직접 고른 색이라 그런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우리 애는 두개골도 예쁜지 차분했던 머리에 볼륨을 넣은 뒤통수가 동글동글해서 마구 헝클고 싶었다.
“형도 엄청 잘 어울려요! 다른 사람 같아….”
“그래?”
“전에 그 패션쇼? 그때 느낌도 좀 나요.”
몇 달간 부스스하고 복슬복슬한 머리를 유지했던 나는 반대로 단정해져 있었다.
내 머리를 본 준이 형과 영빈 형, 세빈이는 무척 잘 어울린다고 좋아했고, 경환 형과 찬이는 더 무서워졌다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지환 군은 펌보다 스트레이트가 인물이 훨씬 사네요. 검은색도 아주 잘 어울려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 부탁드려요.”
최대한 공손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웃었다.
오늘 촬영해주시는 작가님은 이전 앨범 ‘여로’ 때 멋진 컷을 잔뜩 뽑아주셨던 포토그래퍼 제이였다.
당시 사진이 회사 분들의 마음에 들었던지 이번 앨범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정윤 실장님이 작가님을 추천했고 다들 수긍했다고.
처음 만났을 때의 날카로움이 많이 사그라들어서 지금은 무섭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전보다 멤버들에게도 더 많이 말을 걸어주셨고, 박연우 작가님보다는 덜하지만 가끔 칭찬도 해주셨다.
첫 촬영 당시에는 마음을 듣는 ‘너목아’ 스킬을 사용했지만, 오늘은 처음 인사할 땐 ‘내적 친분’ 스킬을 먼저 활성화해두었다.
여태까지 스킬을 사용해본 결과, ‘내적 친분’ 스킬을 사용하면 나뿐만 아니라 언래블 멤버들 모두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 같았다.
이 부분을 포잉과 이야기 나누다 내린 결론은, 내가 속한 그룹이 언래블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가 되는 것 같다고.
친근하게 느낀다는 게 너무 주관적이라 아리송했지만, 적어도 적대적인 것보단 낫지 싶어 최근에는 외부 인원과 일을 하는 경우에 빠짐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어차피 자주 대화하고 만나지 않으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 편이라 마음의 부담도 덜했다.
우리가 생각한 이번 앨범의 주제는 ‘위로’.
안락하고 따뜻한 느낌을 위해 준비된 스튜디오에서 단체 씬을 찍었고, 지금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촬영을 이어가고 있었다.
단체 컷을 촬영한 장소는 커다란 매트리스와 보드라운 쿠션들, 은은한 파스텔 색상의 베일이 늘어져 하나의 방처럼 꾸며져 있었다.
언뜻 ‘여로’ 컴백 때 사용했던 쇼케이스 장소와 닮은 느낌도 있었다.
뭐, 거실과 침실의 차이라고 봐야 할까?
그 장소를 본 포잉은 푹신할 것 같다고 한숨 자고 싶다고 하기도 했고.
그 후 준이 형은 경환 형과, 영빈 형은 찬이와 짝을 이뤘고 나는 세빈이와 짝이었다.
준이 형과 경환 형은 커다란 욕조가 있는 곳에서 촬영하느라 홀딱 젖어서 다시 메이크업을 손보고 옷을 갈아입느라 시간을 제법 잡아먹었다.
이어서 진행된 영빈 형과 찬이의 촬영분도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수많은 천이 어지럽게 걸린 공간에서 적절한 자세를 잡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인 것 같았다.
영빈 형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찬이가 웃음을 참지 못한 덕분에 NG도 몇 번 있었고.
영빈 형과 찬이 촬영이 끝난 후 식사 시간을 가졌고 드디어 마지막으로 남은 나와 세빈이.
우리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가구들 사이에서 작가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 되는 상황이었다.
“네, 거기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 좋아요. 지금 분위기 유지해주세요.”
커다란 책장 앞에선 세빈이가 발돋움을 해서 위쪽의 책을 꺼내 펼쳐보는 사이, 동그랗고 알이 큰 안경을 쓴 내가 다가가 한 손으로 어깨를 쥐었다.
어깨를 붙들자, 고개를 돌려 햇살보다 환하게 나에게 웃어주는 우리 막내.
그 얼굴 마주하자 자연스럽게 마주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막내가 쥐고 있는 책에 시선을 주었다.
우리 솜뭉치들이 알아차릴까?
사진이 공개된 후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 * *
- 내가 심심해서 쪄본 작은환 웃음의 차이
1. 형아 최고♡
(하준이 머리를 마구 헝크는데도 세상 다 가진 미소 짓는 작은환)
(가영에게 먹을 거 챙겨주면서 은근히 웃는 작은환)
(히스랑 귓속말하면서 웃는 작은환)
(키스가 부르자 부스스 웃으며 손 흔드는 작은환)
(멍하니 있다가 하준이 부르자 귀 쫑긋하는 것 같은 작은환)
위에 짤들 보면 너무 적나라하게 나오는뎈ㅋㅋ 형들에게 엄청 약함.
(가영은... 쪼끔 애매함. 형으로 대할 때가 더 많긴 한데 가끔 찬이 보듯 볼 때가 있음ㅋㅋㅋ)
게임할 때나 촬영장 영상 같은 거 보면 멤들이 툭하면 작은환한테 치대는데 형아들한테는 작은환이 먼저 치댐ㅋㅋㅋㅋ.
(다 알겠지만 씨아이는 형아 취급 ㄴㄴ.. 왠지 알지?ㅎㅎ...울 경환이는 막라자나..)
형들이 칭찬해주면 좋아서 광대 승천할 거 같은데 숨기려고 입꼬리 실룩거리는 거 자주 보임ㅋㅋㅋ
2. 에휴 내새끼들
(최찐빵이랑 세빈이가 양쪽에서 작은환 붙들고 흔드는 장면)
(씨아이가 등에 달라붙어서 뭐라 뭐라 하는데 귀찮아하는 작은환)
(최찐빵이 작은환 다리 베고 누워서 뭐라 하는 장면)
(세빈이 머리 쓰다듬어주면서 아빠 미소 짓는 작은환)
위에 참고 짤들 보면 알 수 있다시피ㅋㅋㅋㅋㅋㅋㅋ보모임.
애들은 한시도 작은환을 가만두지 않음ㅋㅋㅋㅋㅋ...
한쪽이랑만 놀면 그조차도 허락하지 않음.
독점)))))언래블 공용(((((금지
이런 느낌이랄깤ㅋㅋㅋ자기들끼리 독점 금지법, 뭐 이런 거라도 있는 게 아닌가 나뷰어는 의심해본다.
형아들 앞에서는 세상 유순한 작은환이 막라랑 있을 때면 다른 인격체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음.
평소 언래블 스토리에서 일상 영상 본 솜뭉치들은 내 말 뭔지 알 거야..ㅜㅜㅜ
형아들 대할 때랑 막라 대할 때 온도차가 저세상 수준이라 글찌다 내가 숨짐ㅠㅠㅠ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짤 적절한 거 보소
ㄴ 밐ㅋㅋㅋ친ㅋㅋㅋㅋㅋ
ㄴ 막판에 저 세빈이랑 작은환 짤 어디서 나온 거야?ㅠㅠㅠ나 지금 매우 급해ㅠㅠㅠ알려쥬ㅠㅠ
ㄴ 언래블 스토리 일상 카테에 5환가 그럴 거야!
ㄴ 천사뷰어다ㅠㅠㅠㅠ고마어!
ㄴ ㅋㅋ역시 나만 일케 생각한 게 아니엇꾸나!
ㄴ 진짜 격공… 작은환ㅋㅋㅋ너무 투명하닼ㅋㅋㅋ
ㄴ 최찐빵ㅋㅋ우리 찬이 동네북앙니닼ㅋㅋㅋㅋㅋㅋㅋ
한편, 지환이 솜뭉치를 떠올리며 온화한 웃음을 짓고 있던 그 순간, 솜뭉치들도 지환을 떠올리며 웃고 있었다.
비록 웃음의 의미를 조금 달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