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17)화 (217/456)

217. Butterfly(3)

평소 언래블 일상 촬영 때랑은 또 다른 생경한 느낌의 인터뷰였다.

“그래, 우리 세빈이 마음은 잘 알겠다….”

“칭찬인데!”

“그래, 형들이 너한테 도움이 되면 그걸로 다행이지 뭐.”

적당히 잘 포장해서 흘려버리고 다음 먹잇감, 아니 대상을 고르기 위해 눈동자를 굴리자 슬그머니 경환 형이 나를 외면했다.

“C.I 형, 대답해주세요.”

“으음….”

바로 말을 하지 못하고 눈동자만 도로록 굴리는 게 커다란 멍멍이 같아서 웃음을 꾹 참으며 핸디 캠을 단단히 잡았다.

“아, 왜 웃냐.”

“그냥요.”

“C.I, 몰라서 묻는 거 아니지?”

“아뇨, 그냥 모를게요.”

준이 형이 은근한 목소리로 놀리듯 말하자, 경환 형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구부정했던 허리를 펴고 단정한 자세로 앉았다.

“내가 생각했을 때 환이는 랜덤 박스야.”

“네?”

“왜 게임에서 확률로 아이템 주는 그거.’

“캐시로 지르는 그거 말하는 거예요?”

“어, 근데 환이는 그 안에 든 게 너무 많아서 알기 힘든 거야.”

뜬금없이 게임 아이템이 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웬일인지 찬이는 이해한듯한 얼굴이 됐다.

“쟤가 좀 그런 면이 있긴 하죠.”

“이건 조금 설명이 필요한 것 같은데, 형?”

턱을 긁적거리던 경환 형은 곰곰이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더니 말문을 열었다.

“보통 어떤 일이 생기면 얘는 대체로 어떤 반응을 하겠다, 하는 게 있잖아.”

“예를 들면 다음 앨범 컨셉 회의라고 해보자고요. 근데 컨셉이 영 아닌 것 같아. 그러면 대충 우리 서로 무슨 반응 나올지 알잖아요.”

경환 형과 찬이가 쿵짝이 맞아서 주섬주섬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 말을 얌전히 듣고 있는 세빈이 눈에 호기심이 잔뜩 배어 있었다.

영빈 형이 그런 세빈이를 바라보며 조금 더 신경을 쓰는 눈치였고.

혹시 모를 돌발 행동에 대비하려는 것 같았다.

“준이 형은 일단 회사의 설명을 들어보고, 그래도 영 아니면 최대한 돌려서 방향을 틀려고 하잖아요. 영빈 형은 우리 의견을 물어볼 거고.”

“그렇지. 난 일단 멤버들이 이야기를 다 할 때까지 그냥 두는 쪽이고, 찬이 쟤는 지환이를 쳐다보겠지. 세빈이도 그렇고.”

둘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에 다들 곰곰이 생각해보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런 상황이라면 멤버들이 그렇게 행동할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환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어….”

그 순간 다들 말문이 막힌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여러분… 왜죠? 왜 정적이야.”

“너무 생각나는 게 많아서?”

“에?”

준이 형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얼빠진 목소리를 내자 영빈 형이 거들었다.

“환이 너는 일단 지켜보거나 그 자리에서 바로 이건 아니라고 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긴 한데, 확답은 못 하겠다.”

“응. 환이는 극단적인 둘 중 한 가지 반응이 나오긴 할 텐데… 확률이 반반인 것 같아.”

“신기하지. 똑같은 상황이 생겨도 그때마다 네가 어떻게 나올지 가늠하기 어려우니까.”

다들 경환 형의 말을 이해한 듯한 얼굴이 됐고, 나도 모르게 다른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한 건, 환이는 다른 어떤 것보다 멤버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선택하리란 거지. 가끔은 그게 과해서 문제고.”

“아하하하….”

데뷔 초반 사건들을 떠올린 건지 은연중 나를 꼬집는 내용에 그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뭐, 둘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언래블의 걱정 인형에 이로운 버프 효과를 지닌 랜덤 박스 정도인 건가요?”

“뭐지, 뭔가 끔찍한 혼종인데.”

“허, 자기들이 말해놓고 너무하네?”

촬영이라는 걸 알면서도 꽤 진지하게 답해주는 멤버들의 모습이 이상하게 낯간지러웠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럼 찬이가 보기엔 어때? 동갑 친구잖아.”

“아, 난 이런 거 말 잘 못 하는데.”

“뭐 어때. 그냥 편하게 말해봐.”

준이 형이 찬이 머리를 헝클어주며 말해보라고 했더니, 이런 분위기에 제일 약한 찬이는 부끄러운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으! 난 다른 건 모르겠고, 그냥 베프죠. 쟤는 이제 나 없음 안 된다니까요?”

“뭐? 야, 내가 너 없으면 안 되는 게 아니라 네가 나 없음 안 되는 거지.”

“아니거든?”

머리를 잔뜩 쥐어뜯다 간신히 꺼낸 말이 부끄러웠는지 찬이가 옆에 있던 경환 형의 등짝을 툭툭 치고 있었다.

괜히 맞고 있는 경환 형은 세상만사 포기한 듯 한숨만 푹 내쉬었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멤버들을 통해 듣는 건 생각보다 즐거웠다.

멤버들이 부끄러워하는 게 재밌기도 하고 왠지 기분이 좋아져 촬영이라는 걸 잠시 잊고 실컷 웃었다.

“야, 왜 웃어!”

“아, 우리 멤버들이 너무 재밌어서?”

“생뚱맞긴.”

“그냥 편하게 말해도 될 걸 엄청 고민하면서 말하니까 이상하잖아.”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답하며 멤버들을 찍고 있던 카메라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일단 멤버들은 저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네요. 신기하고 재밌는 기분이었습니다!”

나중에 영상을 확인하는 분들이 편집 점을 잡기 좋게 마무리 멘트를 넣고 카메라를 껐다.

찬이가 카메라가 꺼졌냐고 눈짓하기에 고개를 끄덕여주자, 다들 그대로 연습실 바닥에 평소처럼 축 늘어졌다.

“이렇게 카메라 앞에서 들으니까 또 색다르네요.”

“뭐, 우리끼리는 굳이 이러니저러니 말하지 않으니까.”

세빈이가 익숙한 동작으로 찬이 등 위에 주저앉았고, 나와 형들은 뻐근한 팔다리를 쭉쭉 뻗으며 몸을 풀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엄청 기대돼요. 이거 은근히 재밌네.”

“걱정되는 게 아니라 기대된다고 해서 다행인 건가.”

간단한 촬영임에도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시간이 제법 흘러있었다.

“우리 너무 사담이 많았다. 저거 다 잘라내려면 꽤 고생하시겠는데.”

“뭐… 그분들은 전문가니까 예쁘게 잘해주시겠죠.”

“그래, 고양이 쥐 생각하지 말고 우리는 연습이나 하자.”

“화이팅!

경환 형이나 찬이, 세빈이가 자꾸만 시선을 피하는 걸 보면 아직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이럴 때는 눈치껏 먼저 빠져줘야지.

생각보다 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멤버들 모습에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와 이대로 있는 것도 곤란했다.

여기서 더 웃으면 저 셋이 덤벼들 것 같았거든.

어쩌다 한 번이라면, 이런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 * *

포잉은 잠든 계약자를 바라보며 심란한 얼굴이 되었다.

무방비한 얼굴, 고르게 들려오는 숨소리가 지환이 깊은 잠에 빠졌다는 걸 알려주었다.

지환은 최근 들어 이전 생과 현생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았다. 무언가 말을 하거나 선택을 할 때면 이게 맞는 건가 하는 눈으로 포잉을 찾을 때가 많았다.

이 세계의 공지환을 온전히 아는 건 어쩌면 포잉 뿐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계약자는 생각보다 자기 자신을 잘 몰랐다.

지환을 담당하게 되면서 그의 생애를 살펴보았던 포잉이었다. 지환의 유년기 기억부터 살펴보다가, 문득 자신의 계약자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했었다.

부모님은 늦둥이인 지환을 귀애했지만, 그 마음을 온전히 쏟아주기엔 너무나 바빴다.

원래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타입의 사람들이었다.

거기에 늦둥이가 태어나면서 아이의 미래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지나치게 컸던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부모와 애착 관계를 만들어 가며 굳건히 마음의 뿌리를 내려야 했던 시기에 지환은 제 양껏 애정을 받지 못했다.

아마 연로한 나이에서 오는 체력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

그 자리를 어느 정도 채워준 것이 지환의 누이였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의 삶이 있었다.

더불어 딸이 동생을 애틋하게 여기는 것은 부모 입장에서 매우 기꺼운 일이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책임을 첫 아이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아 했다.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그들에게는 똑같이 소중한 아이였기에.

그렇게 부모의 다짐과 무관하게 어린 지환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부모님의 나이로 유치원에서 들은 선생님들의 수군거림,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겪은 같은 반 친구들의 놀림.

그것들이 하나같이 가슴에 깊이 박혀 들었지만, 늘 애쓰고 바쁜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바빴던 누나에게 어린 지환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어린 지환의 눈에도 고단한 부모님의 삶이 퍽 힘겨워 보였던 것 같았다.

그저 담을 쌓고 혼자만의 세계로 침잠해가는 게 그 당시 지환의 최선이었다.

결국 지환의 선택은 외부와의 단절을 야기했다. 그러나 원래도 홀로 책을 읽거나 블록을 만지는 걸 좋아했던 지환이기에 부모님은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아이가 낯을 많이 가리는구나, 밖에서 노는 것보다 집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해버렸다.

지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 지환의 사춘기가 극심했던 시기였고, 그때는 이미 그가 너무 단단하게 자신을 가둬버린 뒤였다.

다행히 가족들은 지환을 닦달하지 않았고,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가도록 도왔다.

다행히 대학교, 군대를 거치는 동안, 지환은 낯은 좀 가려도 자기 앞가림은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다만, 누군가를 친구라고 집에 데려온 적이 없는 아들이었다. 무척이나 걱정되었지만, 부모님들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그러던 중 부모님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지환의 성격이 바뀌었다. 그래도 외부와 교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가족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 교통사고가 생기기 전까지는.

포잉은 자꾸 곤두서는 수염을 살살 쓰다듬으며 가족들도 알지 못했던 지환의 속내를 되새겼다.

지환은 지나치게 생각이 많았고, 고집이 셌다.

이런 성격 때문인지 빚지는 것은 극도로 싫어했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일의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면 언래블의 성공적인 데뷔를 위해 노력하면서, 정작 자신 역시 언래블의 멤버라는 건 인식하지 못했던 초기의 행동들처럼.

사람 사이에서 처신은 잘했지만, 깊은 관계를 맺는 걸 두려워하고 경계심이 강했다.

그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에게 잘해주면 ‘왜?’라는 의문만 강해져서 더 상대방을 경계하는 악순환.

그나마 지금은 이전 생에서 배우지 못한 인간 사이의 관계를 언래블 멤버들을 통해 배우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계약자는 살아온 삶에 비해 정신연령이 어렸고, 차라리 지금 몸의 나이에 더 맞는다는 게 포잉의 생각이었다.

인간은 나이를 먹고 여러 관계에 부딪히면서 다치기도 하고 더 배워가기도 하며 성숙해진다.

하지만 지환은 적당히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자신을 숨기는 것만 배웠다.

두드러지지 않게, 모나지 않게, 그저 보통 사람처럼 보이도록.

아마 전생에는 스스로가 자랄 생각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포잉이 괜히 새끼 고양이보다 허약하다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몹쓸 계약자 놈은 이런 포잉의 깊은 생각은 모르고 그저 웃기만 했다.

‘하아….’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나이에 비해 순진한 구석이 제법 있었다.

태연하게 현재 나이보다 훨씬 어른이 할법한 말을 주변에 내뱉으면서도 정작 그 알맹이 안에는 어린애 같은 이상한 계약자.

덕분에 주변에서는 지환이가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것 같다는 평을 하곤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지환은 이제야 제대로 관계를 배워가고 있는 셈이니까.

이를테면 이제야 우화하고 있는 한 마리의 나비.

포잉은 앞으로도 태산같이 쌓여있을 일들을 떠올리면 암담했지만, 지환의 보호자 역할이 싫지 않았다.

인간의 아이가 자라는 걸 지켜보는 생소한 경험과 이 애틋한 마음들은 아마 처음이기에 더 소중한 것이겠지.

이런 경험들이 쌓여 중급 요정이 되고 훗날 어엿한 상급 요정이 되는 거라고, 포잉은 그렇게 이해하며 잠든 계약자의 이마를 쓸어주었다.

툭하면 ‘포잉 테라피’라며 마음대로 앞발을 가져가 조물딱거리는 철딱서니 없는 계약자였지만, 그래도 포잉에게는 소중한 아이였다.

‘제발 말 좀 잘 들어라, 지환아.’

피곤이 가득했던 포잉의 두 눈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애정이 뚝뚝 흘러넘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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