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12)화 (212/456)

212. 예쁘다(2)

“어? 시작하나 보다!”

“오오! 드디어!”

피 튀기는 경쟁을 뚫고 이 자리에 온 솜뭉치들은 뮤직비디오가 끝나면서 어두워지는 실내 분위기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런 마음을 달래듯 중앙에 있던 커다란 스크린에 빛이 들어오면서 화면에 귀여운 폰트로 ‘솜뭉치 체험하기’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 저희가 자리 잡아버리면 솜뭉치들이 못 오잖아요.

- 김칫국 마시지 말고 잡고 나서 고민해.

- 환이 말이 맞지. 난 자신 없다···.

- 전 자리 잡아서 솜뭉치한테 선물할래요!

- 일단 한 자리라도 잡고 얘기하자.

- 진짜 꼭 성공하고 싶다···.

평소 복장을 한 언래블 멤버들이 PC 앞에서 분홍색 접힌 종이를 받고 미션을 확인하는 장면부터 나왔다.

“후후···. 쉽지 않을 텐데.”

“애들 다 실패했을 것 같죠?”

“얘들아, 이게 보통 일이 아냐.”

솜뭉치들은 자신만만해 하는 언래블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비관적인 말들을 흘렸다.

많은 일을 겪으면서 팬덤이 급격히 커졌다더니 이번 창단식 티켓팅 때 그 여파를 확실히 느꼈다.

티켓팅은 물론 취소 표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래도 창단식은 단 하루로 끝나는 행사다 보니 그 열기가 더 뜨거웠다.

이 자리에 온 솜뭉치들은 그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한 용사들인 셈.

그리고 솜뭉치들의 예상대로, 화면 속 멤버들은 ‘어?’ 하는 사이 사라지는 포도알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나마 빠르게 접속한 사람은 포도알이라도 봤지만, 경환이나 영빈이는 새로 고침을 잘못하는 바람에 대기인원이 뜨는 화면을 보고 말았다.

“아···.”

“저런.”

그동안 다른 아이돌의 덕질을 해본 경험이 있는 솜뭉치들은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라는 문구와 결제 오류 화면에 가슴이 아파졌다.

- 아니, 저희 총인원 수가 몇 명이에요? 네? 대기수가 3천인데요?

- 이거 오류 난 거 아니에요? 빨리 눌렀는데 왜?

- 카드 결제 안 돼요? 화면이 안 넘어가는데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영빈이 총 수용인원보다 많은 대기 인원수에 당황하며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힘찬이는 그나마 게임으로 단련된 빠른 반응 속도를 보였지만 반복된 ‘이선좌’에 에러를 의심했다.

비교적 빠르게 결제 화면까지 넘어갔던 하준은 카드 결제를 눌렀다가 오류 메시지가 노출되자 심란한 얼굴이 되었고.

그 모습에 깊이 공감한 솜뭉치들은 과거를 떠올리며 아픈 가슴을 움켜쥐기도 했고, 화면을 뚫고 느껴지는 멤버들의 당황에 즐거워하기도 했다.

“어? 작은 환 예전에 누구 덕질했다는 소문 있었어요?”

“새벽 좋아한다는 건 알겠는데 저렇게 익숙하다고···?”

앞에 다른 멤버들이 어설픈 모습을 보인 것과는 반대로 지환은 숙련된 덕후의 모습을 보였다.

서버 시간을 체크할 창을 띄우고 시크릿 창을 비롯한 다수의 창을 열어 예매 페이지를 띄워놓질 않나 핸드폰으로도 창을 띄워놓고 있었다.

왜 우리 애 모습에서 숙련된 조교의 향이 느껴지는지 솜뭉치들은 알 수 없었지만, 이어지는 화면을 본 팬들 사이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지환은 빠르게 손을 놀려 좌석 선택 창을 띄우더니 앞줄이 아닌 중간 사이드를 공략하는 모습을 보였다.

- 인증샷만 찍고 이건 바로 취소할게요. 우리 솜뭉치들 자리를 뺏을 순 없죠.

무통장 예매까지 끝내고 승리자의 미소를 머금고 카메라를 향해 씩 웃어 보이는 모습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아니, 작은 환은 도대체 못 하는 게 뭐야!”

“왜 나보다 더 잘하는 거 같지?”

그 얄미운 미소에 솜뭉치들은 허탈한 마음으로 자기 손을 바라보기도 했다. 자기 본진보다 못한 손이라니.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다.

* * *

긴장된 마음을 심호흡으로 달랜 우리는 VCR이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무대 위에 올랐다.

- 와아!

- 언래블! 언래블!

- 얘들아, 사랑해!

환한 조명 아래서 그보다 더 빛나는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는 팬들 모습에 조금 전까지 긴장했던 멤버들은 모두 언제 긴장했냐는 듯 웃고 있었다.

“여러분, 많이 기다렸죠?”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보고 싶었어요~!”

행복하다는 듯 웃던 멤버들은 이 자리까지 와준 솜뭉치들에게 손을 흔들며 각기 인사하느라 바빴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준이 형이 마이크를 들었고, 이어진 목소리에 팬들도 우리도 모두가 집중했다.

“인사드리고 시작할게요. 둘, 셋! 함께 풀어가는 미래, 언래블입니다!”

“함께 풀어가는 미래, 언래블입니다!”

“언래블의 팬클럽 창단식에 와주신 모든 솜뭉치들을 환영합니다!”

딱 떨어지는 인사에 맞춰 큰 환호성으로 반겨주는 솜뭉치들.

그 모습에 멤버들도 한껏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많이 기다렸어요?”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우리 솜뭉치들 오늘 왜 이렇게 예쁘지?”

마이크를 들고 무대 아래 팬들을 향해 외치는 목소리는 생기가 넘쳐서 무대 뒤에서 덜덜 떨던 쫄보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 반가운 건 잘 알았으니까 우리 잠시 자리를 정돈할까요?”

준이 형의 지휘 아래 스태프분들이 옮겨준 의자에 앉은 우리는 얌전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다시 한번 이 자리에 와주신 모든 솜뭉치들에게 감사드려요. 그리고 비록 이 자리에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함께하고 있을 모든 솜뭉치들에게 감사드리고요.”

“저희가 오늘 여러분들이랑 신나게 놀려고 정말 많이 준비했어요. 기대해주세요!”

준이 형이 차분하게 감사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인사를 끝내자, 찬이가 기다렸다는 듯 기대해달라는 말을 전하며 자기 볼을 콕 찌르며 귀여운 척을 했고.

“아, 진짜 솜뭉치들 앞이라 참는데 쟤 저럴 때마다 볼 잡아당기고 싶어요.”

“욕할 거야?”

“어허, 욕이라니. 솜뭉치들이 오해한다.”

찬이 애교에 멤버들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나는 최대한 순화한 말로 지금 심경을 전했다.

잡아당기는 거 말고 궁디를 발로 차고 싶은데 그걸 대놓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찬이가 욕할 거냐고 되묻는 모습이 어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같았다.

‘때릴 거야?’하고 물어보는 그 분홍 다람쥐.

우리 최찐빵이는 얄미운 행동은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지.

찬이와 내 대화를 잠시 지켜보던 경환 형이 결국 한마디 했다.

“찬이가 솜뭉치들한테 하는 것 반만 우리한테 해도 우리가 쟤를 업고 다닐 텐데 말이죠.”

“맞아. 찬이 형은 솜뭉치들한테만 잘하고!”

세빈이까지 맞장구치자 영빈 형이 준이 형에게 제발 얘네 좀 말리라는 눈빛을 보냈다.

“애들이 팬분들 보더니, 평소보다 기분이 너무 올라갔네요. 언래블, 저 진행해야 하니까 얌전히 좀 있어요.”

“난 언제나 얌전한걸?”

“양심을 숙소에 두고 왔어?”

“아냐, 찬이 형 양심은 숙소에도 없어. 있으면 사람이 그럴 리 없어.”

준이 형의 말에도 투닥거리기 시작한 멤버들은 한마디씩 하기 바빴고, 그런 우리 모습에 솜뭉치들은 웃느라 바빴다.

“감독님, 저 말고 멤버들 마이크 좀 꺼주세요. 진행이 안 되네요.”

준이 형의 말에 음향 감독님이 엄지를 척 세우더니 정말로 우리 마이크를 꺼버렸다!

“어휴, 이렇게 평화로운걸.”

“감독님! 안 돼요! 켜주세요!”

옆에서 찬이가 외쳤지만 안타깝게도 그 소리는 멀리 퍼지지 못했고, 준이 형은 그제야 평화로운 얼굴로 옆에 있던 이젤을 앞으로 끌고 왔다.

“첫 순서는 ‘솜뭉치가 묻고 언래블이 답해요’입니다.

솜뭉치들이 공식 카페를 통해 올려준 질문에 멤버들이 답을 하는 코너에요.”

“우리 마이크 꺼져서 답 못하잖아요!”

찬이가 항의하든 말든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던 준이 형이 감독님께 다시 마이크를 부탁하자 원상 복귀되었다.

“또 방해하면 아예 마이크 압수할 거야. 알았지?”

“독재자···.”

힘없이 중얼거린 찬이의 소심한 반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준이 형은 정말 한다고 하면 하니까···.

“첫 번째 질문입니다. 평소 숙소에서 모습이 궁금해요 라는 질문을 ‘세빈아누나야’라는 솜뭉치가 올려주셨어요.”

“세빈아누나야 님은 과연 오늘 오셨을까요?”

“세빈이보다 누나가 아닌 솜뭉치들은 적을 것 같은데.”

“쉿. 우리 솜뭉치들 나이는 묻지 않기로 해요.”

준이 형의 멘트 후, 마이크가 돌아오자마자 멤버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기 시작했고, 한숨을 폭 내쉰 준이 형이 세빈이를 불렀다.

“이 질문은 세빈이가 답해볼까요?”

“넵! 어···. 숙소에 돌아오면 시간이 늦어서 보통 씻고 다 같이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해요. 가끔 각자 하고 싶은 걸 하기도 하고요. 영빈 형은 노래 듣기도 하고 환이 형은 책을 읽어요! 찬이 형은 게임하고요.”

“지난번 언래블 스토리에 올려줬던 것처럼 말이죠?”

“네, 맞아요. 그때보다 좀 더 편하게 있기는 하지만요.”

촬영할 때는 그래도 다들 최후의 양심 선이 있는지라 평소보다 조금 더 정돈된 자세로 있었다.

처음 내가 숙소에 뻗은 멤버들을 보고 괜히 푹 익은 파김치 같다고 한 게 아니라니까.

그 외에도 몇 가지 질문이 더 이어졌고, 그때마다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답을 했다.

대화가 이어지는 내내 다른 멤버들의 간섭이 있었지만 준이 형은 꿋꿋한 자세로 코너를 이어갔고, 솜뭉치들은 웃고 환호하느라 내내 즐거워 보였다.

“휴, 겨우 첫 번째 코너가 끝났네요. 그러면 분위기도 조금 달굴 겸 무대를 즐겨야겠죠?”

“저희 금방 준비하고 올게요!”

“기다려줘요!”

무대 뒤로 들어가는 우리를 향해 쏟아지는 함성에 온몸이 울리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뒤돌아 팬 석으로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 커다란 울림을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는지 멤버들의 상기된 얼굴이 화장을 뚫고 보이는 것 같았다.

“틀리면 알지?”

“잘하자, 진짜.”

첫 무대 의상을 입고 나갔던 터라 액세서리를 착용하며 준비를 끝낸 우리는 서로를 향해 웃었다.

지금 이 신나는 마음은 같이 무대에 올랐던 멤버들밖에는 모를 감정이었다.

우리는 다행히 6명이었고, 나를 제외하더라도 그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 다섯 명이나 된다는 건 꽤 든든한 기분이었다.

준이 형이 손을 내밀었고, 웃고 있던 모든 멤버들이 손을 겹쳤다.

“We're ‘Unravel’!”

무대에 오르기 전 마음을 다잡는 우리만의 구호를 외친 후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무대로 향했다.

첫 번째 곡은 첫 팬 사인회 때 편곡했던 인트로와 아웃트로까지 합쳐진 타이틀 ‘I'm OK’ 였다.

그때보다 더 능숙하고 여유로운 무대를 펼치는 멤버들과 내 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기분을 들뜨게 했다.

부상 때문에 멤버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그 무대를 오늘 함께 하고 있어서 그런 걸까?

가면을 벗어 던지는 타이밍도, 서로를 잡아끄는 안무도, 모든 파트가 조금의 실수도 없이 매끄럽게 이어졌다.

파트를 이어갈 때마다 스치듯 마주한 멤버들의 얼굴에는 격렬한 안무 때문에 땀이 흐르고 있었지만, 눈 가득 빛이 흘러내렸다.

곡에 맞는 표정 연기 때문에 웃을 수 없었지만, 그 눈동자 안에 담긴 건 누가 봐도 선명한 기쁨이었다.

응원법에 맞춰 큰 목소리로 호응해 주는 우리 팬들.

곡의 중간중간, 응원구를 통해 팬과 우리가 주고받는 모든 감정.

인이어와 외부 스피커를 통해 몸을 울리는 음악 소리.

모든 게 우리가 연습하며 수없이 상상했던 행복,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잦아드는 ‘I'm OK’의 연주와 함께 무대는 다시 한번 암전되었고, 그사이 우리는 달려 나온 댄서분들이 건네준 새로운 의상을 기존 의상 위에 걸쳤다.

‘I'm OK’ 의상은 검은 슬랙스에 각기 다른 포인트를 준 셔츠였기에 그 위에 깃을 세운 기다란 재킷을 걸치는 것만으로도 물씬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뮤직비디오에서 여러 번 나왔던 로브와 컨셉 포토 당시 각자 의상에 있었던 포인트를 합쳐 만든 덕분에 멤버마다 조금씩 다르기도 했고.

의상을 입는 연습을 해둔 덕에 다행히 늦지 않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사이 희미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며 다음 곡을 예고했다.

우리 팬들에게는 익숙할 ‘폭풍전야(暴風前夜)’.

무대 위에 한바탕 폭풍을 몰아쳐 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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