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예쁘다(1)
멤버들이 비교적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는 그 시간에도 회사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법무팀을 통해 악플러들을 특정하고 준비한 자료를 모아 정식으로 고소장을 검찰에 접수했다.
경찰을 통해 접수하는 쪽이 조금 더 일 처리가 빠르겠지만, 사이버수사대에서 이 사건을 회사의 생각만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수사해주진 않을 터였다.
이미 몇 번의 경험을 거친 ON 엔터는 법정 대응을 시작할 때 꼭 검찰에 직접 접수하고는 했다.
그편이 조금 더 철저한 응징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못해도 반년 정도의 시간은 걸릴 터.
그전까지는 그저 묵묵히 할 일을 하면서 소속 아티스트의 서포트에 전념하는 게 소속사가 해야 할 일이었다.
“왜 일이 해도 해도 안 줄어드냐···.”
“퇴사하면 편해져···.”
“주머니는 가난해지고?”
“그렇지. 먹고 살려면 해야지.”
도연과 시한은 제일 피곤한 오후 세 시에 탕비실에서 달달한 믹스 커피를 즐기며 시답잖은 이야기로 졸음을 쫓았다.
플루토의 발매 후 언래블에 대한 인지도가 급격하게 상승했고, 아직 SNS상에서는 Pluto 챌린지가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널 응원해’, ‘네 잘못이 아냐’라는 해시태그를 달고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플루토를 커버하거나 노래를 틀어놓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괴롭힘이나 부당한 처우에 관한 이야기가 호응을 얻은 것도 있지만, 챌린지가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유명인들의 참여 덕분이었다.
노래 가사와 언래블이 처한 상황에 공감한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연예인, 스트리머, 인플루언서 등 수많은 팬덤을 지닌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중에게 더 많이 노출되는 만큼 악성 댓글과 루머에 상처를 받아온 그들이기에 악플러와의 싸움에 함께하겠다는 뜻을 내보였다.
“잘됐지, 뭐. 악플 싸지르는 애들 진짜 인간말종이야. 그걸 계속 냅두면 안된다니까.”
“그거 봤어?”
“뭐?”
“왜, 그 고소 취하 안 해주면 자살할 거라고 협박하던 사람.”
“아아···.”
연차가 제법 되는 아이돌 그룹의 인기 멤버 한 명이 합의금을 전액 변호사들에게 지불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악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때 고소장을 받은 건지 어떤 악플러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되려 댓글로 협박성 글을 남겼다.
‘넌 유명하고 돈도 잘 벌지 않냐. 공인이니 너만 참으면 될 걸 왜 유난이냐. 벌금 낼 돈도 없고 무직이라 먹고 살기도 힘드니 취하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무식하고 몰상식한 인간이 있나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 글이었다.
자신이 타인을 욕하고 비하하고 하는 건 괜찮지만 그로 인해 상처받아 일상생활까지 힘들어진 사람은 참으라니. 이게 말이야, 뭐야.
“죽긴 왜 죽어. 자기 죗값 다 치를 때까지 꾸역꾸역 꼭 살았으면 좋겠네.”
“내 말이. 그에 비하면 우리 애들은 그런 거 안 봐서 다행이지.”
도연과 시한이 믹스 커피 특유의 달달함에 겨우 졸음을 몰아내고 정신을 차리는 사이 소현 팀장이 사무실에 돌아왔다.
“앗, 팀장님 오셨어요?”
“커피 향 좋다. 어휴, 역시 피곤할 땐 믹스가 최고지.”
“그렇죠? 전 믹스 커피가 제일 좋더라고요. 한잔 타드릴게요.”
“아냐, 됐어. 내가 하면 되지. 가서 일 봐.”
소현 팀장은 둘에게 손을 휘휘 저어 내보낸 후 커피를 타며 조금 전 정윤 실장과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번 주말에 진행되는 팬클럽 창단식 때 판매할 굿즈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 진짜 내가 곧 때려치우고 만다.”
올해는 유독 힘든 것 같다고 생각하며 뻑뻑한 눈가를 꾹꾹 눌렀다. 최근에 잠이 모자랐는지 자꾸 눈이 아프다는 생각에 온열 안대라도 사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호의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었고, 많은 사람이 악플러와의 전쟁에 합류하면서 플루토에 대한 반응도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이런 시류에 합류하려는 건지 꽤 많은 변호사가 회사 법무팀을 통해 접촉을 시도해 와서, 평이 괜찮다는 곳들을 추려놓기도 했다.
오랜 시간 싸움을 이어온 ON 엔터로 자문하고 싶다고 연락 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가끔은 변호사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원래 업무보다 훨씬 일이 잡다해져서 정윤 실장에게 하소연했더니 조금만 버티라며 곧 정리해주겠다고 답했다. 소현은 그 말만 믿고 있었다.
“아주 죄다 뿌리 뽑아 버릴라니까.”
소현은 피곤한 만큼 적에 대한 분노를 불태웠다.
죄다 머리털을 뽑아주고 인생은 실전이라는 걸 보여줄 테다.
* * *
“어떡하지? 나 지금 괜찮아? 얼굴 안 이상해?”
“괜찮다고 백번 말했잖아! 그만해!”
“긴장되는데 어떡해!!”
“흐어엉···. 나 이상해요, 어떡해. 솜뭉치들도 짱 많아.”
“울지 마! 라이너 지워지잖아!”
“얘네 갑자기 왜 이렇게 정신 나갔어?”
여태까지 무대 위에 올라본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솜뭉치들과 대면했던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유달리 멤버들은 긴장 상태였다.
경환 형은 안 그런 척하면서 세빈이 의상을 들고 가서 이상하게 의상이 작다고 하다 희주 누나한테 정신 차리란 말을 들었다.
찬이는 메이크업 중에 자꾸 덜덜 떨어서 가희 누나가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고.
세빈이는 영빈 형한테 매달려서 어쩌면 좋냐는 말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고, 영빈 형은 혼나 나간 얼굴로 그런 세빈이를 토닥이고 있었다.
“얘들 왜 이렇게 상태가 메롱이야?”
“아까 화장실 가다가 솜뭉치들을 봤나 봐요.”
“아아···.”
안 그래도 정식으로 팬클럽 창단식을 한다는 것으로 많이 들떠 있던 멤버들이었다. 우리가 이름을 붙이고 솜뭉치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정식 행사를 하는 건 그 느낌이 또 다른 법.
이런 쪽으로 면역이 부족한 멤버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입장을 기다리며 들뜬 마음을 나누고 있을 팬들 모습에 긴장이 몰려온 모양이었다.
“엄청 많았어요. 후, 우리 실수하면 어떡해요?”
“틀리면 안 되는데. 어떡하지? 나 가사 헷갈려···.”
나도 준비하는 동안은 긴장돼서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었는데, 정신 나간 것 같은 멤버들을 보고 있자니 긴장은 사라지고 한숨이 흘러나왔다.
너무 풀어져서 해이해지는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과도하게 긴장하는 것도 문제라 준이 형을 슬쩍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다.
괜찮다는 듯 웃던 준이 형이 안절부절못하는 멤버들을 불러모았다.
당장 이 대기실 밖에는 스태프들이 준비하느라 바쁘게 오가고 있을 테지만, 지금은 우리들 뿐이었다.
서포트 팀 사람들도 잠시 밖에 나갔고, 우리 옆에는 늘 함께 있는 우진 형만 평소 같은 사람 좋은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래블 모여봐.”
“넵.”
“모였어요.”
이럴 때는 누구보다 말을 잘 듣는 내 새끼들 모습에 피식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오늘 굉장히 중요한 날이야. 알지?”
“네. 알아요···.”
평소보다 조금 더 진중한 준이 형 목소리에 다들 바짝 기합이 들어간 얼굴로 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식으로 솜뭉치들과 우리가 앞으로 함께 지낼 거라고 공표하는 날이기도 하고, 그런 만큼 모두가 즐겁게 지냈으면 해.”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는 준이 형 목소리에 멤버들의 숨소리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방금까지 안절부절못했던 힘찬이도 진지한 눈을 하고 준이 형을 보고 있었다.
“재밌게 놀려면 일단 우리 마음가짐부터가 제일 중요한데 이렇게 잔뜩 긴장하고 있으면 제대로 놀 수 있겠어? 우리가 즐거운 모습을 보여줘야 우리 팬들도 같이 즐길 수 있는 거야.”
“실수하면 어떡해요? 솜뭉치들이 실망하지 않을까요?”
“실수 안 해야지. 그러려고 그동안 연습한 거잖아.”
‘그래도···.’라는 말을 삼키며 심란한 얼굴을 한 세빈이 머리 위에 영빈 형의 손이 얹어졌다.
희고 커다란 손이 단정하게 정리된 막내의 머리를 헝클어주자 그제야 세빈이는 긴장한 모습이 아닌 뚱한 얼굴이 되었다.
“괜찮아. 너희는 잘할 거야.”
“열심히 했고, 여태까지도 잘했으니까 이번에도 잘할 거야.”
두 맏형이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단단한 목소리로 잘할 거라고 이야기하자 멤버들의 얼굴에도 조금씩 미소가 어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안무 틀리는 놈은 제영 쌤이랑 특별 수업하기. 어때?”
“와, 악마가 울고 갈 딜이다···.”
“그럼 가사 틀리는 사람은 가사 쓴 사람이랑 작업같이 하기?”
“헐. 그건 좀···.”
여태까지 대부분의 가사는 새벽 형들이나 언래블이 직접 써왔고, 가끔은 에단 쌤이 써주는 일도 있었다.
다만, 이 사람들 모두가 일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몇 시간은 훌쩍 넘기는 일 중독들이라 내가 말한 조건에 모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얘들아, 인터뷰 가자.”
“넵.”
“알았어요, 잠깐만요!”
우리 대화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우진 형이 인터뷰 시간임을 알렸고, 흐트러졌던 의상과 머리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준이 형이 괜히 리더가 아니었던지, 이야기가 끝나자 멤버들은 긴장이 한결 가라앉은 듯 평소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역시 내 최애님은 닮고 싶을 수밖에 없는 멋진 사람이었다.
* * *
인터뷰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평소처럼 하준 형과 내가 주로 대답을 했고, 팬클럽 이름의 뜻처럼 특정 멤버의 의견으로 결정된 일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대답했다.
우리 세빈이도 이제는 제법 카메라에 적응했는지 기자분들의 질문에도 떨지 않고 똑 부러지게 대답을 해냈다.
그런 막내의 성장이 기특했는지, 나뿐만 아니라 모든 멤버들이 세빈이가 답하는 내내 세빈이를 주시하며 흐뭇한 얼굴을 했다.
평소에는 세빈이랑 치고받던 힘찬이까지 똑같이 흐뭇한 얼굴이 된 건 조금 웃겼다.
저놈이 형인지 동생인지도 모를 만큼 유치하게 싸울 땐 언제고.
‘오늘은 다 괜찮은 것 같음.’
‘역시 우리 포잉이 짱이네.’
‘흥. 당연한 소릴.’
오늘도 포잉은 기자들 사이를 돌며 그들이 작성하고 있는 기사를 확인하기도 했고, 나쁜 꿍꿍이를 가진 사람은 없는지 체크하고 다녔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꼬리와 귀를 쫑긋 세운 채 으쓱거리는 포잉의 모습에 자꾸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포잉을 살짝 쓰다듬었다.
손끝에 비벼오는 보드라운 털의 감촉에 쿵쿵거리던 심장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덕분에 오늘도 한결같은 내 요정님의 곧은 눈빛을 마주하며 웃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풍기는 향이 다르다는 걸 포잉을 통해 알게 된 뒤로, 나는 종종 포잉에게 이렇게 도움을 요청했다.
참석한 모든 기자의 이름을 확인하는 건 어려웠고, 이 많은 수의 사람들 속마음을 확인하는 건 무리였다.
말풍선으로 떠오르는 터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좁은 공간에서는 되려 어느 사람의 속마음인지 알기 힘들어지니까.
“아, 이제 시작하겠다.”
“VCR 뭐부터 나가지?”
“그거, 티켓팅 영상이요.”
인터뷰가 끝나고 무대에 오르기 전 액세서리와 메이크업을 점검하던 우리는 오늘 행사 순서를 되새기며 처음 보일 VCR을 떠올렸다.
“난 진짜 지환이가 자리 잡았을 때 깜짝 놀랐잖아.”
“훗. 내가 좀.”
“그걸 어떻게 한 거야, 도대체.”
“피나는 연습을 하면 돼요.”
“너 혼자 우리 몰래 연습한 거야?”
“몰래라니. 뭐든 연습은 당연한 거 아냐?”
창단식 시작 전 뮤직비디오로 현장의 분위기가 달궈졌고, 우리가 오르기 직전 짧은 VCR을 나올 예정이었다.
다른 선배님들도 종종 올린다는 자기 공연의 티켓팅 영상이었다.
결과를 알고 있는 나는 여유로운 승자의 미소를 머금고 패배자들을 바라봤다.
영상을 촬영하던 당일,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멤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컴퓨터가 이상하다는 둥, 이게 왜 이렇게 나오냐는 둥.
홀로 승리한 나를 음해하려던 찬이의 모습을 코끝으로 비웃어준 나는 멤버들은 절대 알 수 없을 과거의 일들을 떠올렸다.
팬미팅, 콘서트, 각종 시상식 티켓을 거머쥐기 위해 PC방에서 보내야 했던 그 수많은 눈물의 시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를 일이었다.
내가 너희 티켓팅에 갈아 넣은 시간을 알면 그렇게 말 못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