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BOOMERANG(1)
애당초 내가 우진 형과 이야기하고 팀장님에게 허락받은 건 팬들의 광고 사진을 찍고 GIVE 앱을 통해 내 작업실을 보여주고 약간의 소통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멤버들에게 말하지 않아서 생긴 이 상황은 내 예상에는 없던 그림이었다.
내가 올렸던 광고 감사 글에는 이런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Unravel_ltt 님에게 보내는 답글
사랑하는 친구야 왜 작업실에 있니?
이거 왜 ‘좋아요’ 수가 벌써 천이 넘었지?
“솜뭉치들, 음. 혹시 지금 전부 LTT 보고 있어요…?”
그리고 그 바로 아래에는 몇 개 더 있었다.
@Unravel_ltt 님에게 보내는 답글
친구야 냥톡 좀 볼래?
@Unravel_ltt 님에게 보내는 답글
형… 왜 작업실….
@Unravel_ltt 님에게 보내는 답글
환아 우리 좀 볼까? 준이 형이야
@Unravel_ltt 님에게 보내는 답글
환아 메시지 확인해
그래서 나는 핸드폰 화면이 카메라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단톡방을 열었다.
우리 준이 형 [환아 우리가 작업실로 가면 되니]
열자마자 보인 메시지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작업실 출입문을 확인했다.
멤버들은 비밀번호를 알고 있지만, 방금 그 메시지는 너무 소름 돋았어!
“아, 여러분. 아무것도 아니에요. 진짜예요. 그냥 멤버들이 장난쳐ㅅ…?!”
애써 카메라로 다시 시선을 돌려 지금 상황을 모르는 솜뭉치들에게 설명을 하려 했다.
다만 문밖에서 나는 소리에 내가 너무 놀라 움찔했을 뿐.
“잠깐만요, 여러분.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불안함에 출입문이 잘 잠겼는지 확인한 나는 재빨리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모지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지리 [쫄았냐?ㅋㅋㅋㅋㅋㅋ]
[조금 있다가 톡 할게. 이제 그만해요ㅠㅠㅠㅠㅠ]
우리 경환이 형 [ㅇㅋ]
후….
한숨을 내쉬며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포잉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준 나는 다시 방송에 집중했다.
“여러분 미안해요. 멤버들이 장난이 좀 심해서 제가 가끔 놀라요.”
문밖에서 났던 소리에 너무 놀랐던 나는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독종 스킬까지 발동시켰다.
정신이 단단해지는 효과가 지금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스킬을 활성화하자마자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면서 간신히 평소처럼 웃을 수 있었다.
이 정도 일로 회사에서 뭐라고 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가뜩이나 새가슴인 나에게는 괜히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
스킬빨로 정신을 차리고 GIVE 앱의 메시지 창을 확인했더니, 솜뭉치들은 이 상황이 마냥 재밌었는지 웃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사실 오늘 여러분들 선물을 보러 가고 작업실 오고 한 걸 멤버들한테 말을 안 했거든요. 가족들이랑 시간 보내라고 회사에서 시간을 빼주신 거니까.”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하자 궁금한 게 많은 우리 솜뭉치들은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아, 저는 누나랑 맛있는 것도 먹고 같이 쇼핑도 하고 재밌게 놀았어요. 잘 쉬었는데 갑자기 생각난 것도 있고 해서 회사 온 건데….”
멤버들의 훼방에 얼굴이 흐려지자 메시지 창에는 또 수많은 웃는 이모티콘과 ‘ㅋㅋㅋ’이 난무했다.
왜죠, 왜 내가 곤란한데 행복해해요, 솜뭉치들….
과거 언래블의 멤버들이 놀라거나 당황하면 낄낄대고 웃었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게 바로 인과응보구나….
“오늘 방송을 켠 건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분들이 보고 싶기도 하고, 작업실을 구경시켜 주고 싶은 것도 있고 그래서였어요.”
간혹 우리끼리 작업하는 모습을 찍은 내용이 위캠의 공식 계정에 업로드되긴 했지만, 그게 누구 작업실인지 제대로 밝힌 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작업할 수 있는 기계들만 들어차 있어서 삭막한 느낌이었던 작업실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조금씩 아늑한 공간으로 변했다.
다진 형님이 주신 다육이도 있었고, 세비 형은 공기 청정기를 선물해주셨다.
가영 형은 계속 앉아 있으면 다리에 피가 안 통한다며 발 받침대랑 소파를 보내주기도 하셨고.
한쪽에는 선반을 달아 우리 앨범을 놓고, 좋아하는 가수 선배님들을 만날 때마다 받았던 사인 앨범도 전시해두었다.
그리고 모니터 바로 옆에는 누나와 찍었던 사진과 멤버들과 찍었던 사진을 두었다.
그 두 사진은 나에게 일종의 토템 같은 것들이었다.
앞으로도 다 잘될 거야 하고 볼 때마다 나를 위로해주는.
아마 포잉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었다면, 포잉의 사진이 가장 크게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직 많이 모자란 사람이지만 회사에서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개인 작업실을 갖게 되었어요. 여기만 오면 기분이 좀 달라져요. 내 공간? 일하는 곳? 딱 그런 느낌이어서.”
고정해두었던 카메라를 들어 알차게 채워둔 내 공간을 하나씩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멤버들 사진이 아닌 누나와의 사진은 잠깐 엎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누나 얼굴이 사람들에게 알려져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저쪽의 다육이는 다진 형님이 휴가 나오셨을 때 선물해주신 거예요. 다진 형님이요? 진짜 재밌는 분이세요. 말도 엄청 재밌게 하시고요. ”
스킬 덕분인지 처음에 놀랐던 마음은 이미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었고, 덕분에 순조롭게 작업실을 설명할 수 있었다.
“피규어요? 이건 저희 매니저 형이 저 닮았다고 선물해주셨어요. 제가 보기엔 별로 안 닮은 것 같은데….”
“아, 저 앨범이 저번 새벽 앨범이에요. 뭐라고 쓰여 있냐고요? 키스 형이 이렇게 써줬어요.”
다행히 안 죽고 포동포동한 잎이 예쁜 다육이도 소개했고, 우진 형이 선물해준 사나운 눈매를 가진 포동포동한 고양이 피규어도 소개했다.
앨범을 본 솜뭉치들이 코멘트에 뭐라고 적어줬냐고 묻길래 그 답을 해주다, 멤버들의 훼방은 머릿속에서 점점 사라졌다.
간단한 작업실 소개가 끝난 후 다시 카메라를 고정하자, 솜뭉치들은 다양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작업은 그냥, 음… 아직은 많이 배우는 중이라 여러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는 일이 많아요.”
작업할 때가 궁금하다던가.
“준이 형이나 경환 형한테도 많이 물어보고 있어요. 형들이 곡 만드는 거 보면 진짜 신기하기도 하고, 배울 게 너무 많아요.”
다른 멤버들의 작업실을 궁금해하기도 했다.
“아, 가영 형 작업실은 몇 번 가봤어요. 거기는 일단 음… 네. 형은 제가 참 좋아하는데 그 작업실은…. 제가 겁이 많다고요? 에이, 아니에요. 전 보통이죠!”
새벽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았는지 가영 형의 작업실에 가봤냐는 질문도 있었다. 형은 작업실 영상을 자주 올리는 편이라 그 지옥의 한복판 같은 모습을 다들 아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겁이 많다는 건 어디서 퍼진 소문이지?
그렇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방송을 켠 지 어느새 30분이 조금 안 된 시점이었다.
슬슬 방송을 마무리하고 일을 조금 해볼까 하는 마음을 먹은 순간, 똑똑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 지금 이 소리 저만 들은 거 아니죠?”
갑자기 오싹하고 소름이 돋아 문 쪽을 바라보자 조금 전 소리가 환청이라도 된 것처럼 조용했다.
그저 심장이 내 귓가에서 뛰고 있는 것처럼 쿵쿵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아, 회사 분일 수도 있어서 저 잠깐만요….”
소리를 들었다는 의견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는 의견이 우르르 올라가는 메시지 창을 확인한 나는 찝찝한 마음에 슬쩍 핸드폰을 바라봤지만 조용했다.
회사 안이라 낯선 사람이 올 수 없다는 게 떠오르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렇게 카메라 각도를 조정해 의자가 보이도록 해둔 나는 문을 열지 않고 물었다.
“누구세요?”
문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느껴지지 않아 그대로 자리로 돌아가려는 순간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찬이야?”
설마 정말 멤버들이 와서 장난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이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방송 중인 걸 아는 멤버들이 크게 장난칠 것 같지는 않아 그냥 문을 열어 확인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문을 살짝 열었다.
그리고….
“짠! 서프라이즈!”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환이 작업실 습격이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얼굴에 다시 문을 닫아버리기 위해 문을 붙들었지만, 쓸데없이 눈치 빠른 키스 형이 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왜 형들이 여기서 나와!!
한껏 신난 목소리로 외치는 새벽형들과 멤버들 모습에 스킬의 효과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솜뭉치들 안녀엉! 잘 있었어요?”
“환이 형이 우리 배신하고 혼자 솜뭉치들이랑 놀고 있어서 찾아왔어요!”
내가 잠시 멍해진 틈을 타 핸드폰을 들어 올린 찬이와 세빈이가 솜뭉치들에게 인사하기 시작했고, 가영 형이 그사이에 쑥 끼어들었다.
“팬분들 이름이 솜뭉치 맞나? 안녕하세요, 가영입니다.”
“키스입니다. 여러분, 반가워요.”
키스 형까지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에 머리를 움켜쥔 나는 오늘 방송이 망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솜뭉치들과 알콩달콩 오손도손한 이야기 시간을 가지려던 내 계획이….”
“솜뭉치들, 환이가 우리를 따돌린 이유를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오늘 방송은 이만해야 할 것 같아요.”
“맞아요! 우리는 한 팀인데 말도 없이 혼자 방송을 켜다니!”
“약간의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죠.”
그리고 그때 문 안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진우 입니다.”
“형은 또 왜 여기서 나와요?”
“내가 온 게 싫어?”
“아니, 그게 아니잖아요….”
최근 흥행한 작품의 주연 배우가 갑자기 나타나자 솜뭉치들은 흥분했는지 메시지 창이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었다.
“저희는 잠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가 밥을 먹으러 가려고 해요. 솜뭉치들도 맛있는 거 먹고 나중에 또 봐요.”
내 작업실은 어느새 사람들이 드글드글한 난장판이 돼버렸고, 하준 형은 그런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평소처럼 다정하게 웃으며 마무리 멘트를 하고 있었다.
“솜뭉치들 안녕~!”
“다음에 또 봐요~.”
당황한 건 나 혼자뿐인지 진우 형도, 새벽형들도, 하다못해 우리 멤버들도 환한 얼굴로 솜뭉치들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다음에 정말 오붓하게 대화해요, 솜뭉치들….”
예상치 못한 난장판에 속으로 눈물을 삼킨 나는 겨우 인사를 나누고 방송을 껐다.
* * *
- 작은환 GIVE 앱 켰어! 다들 ㄱㄱㄱㄱ
ㄴ 헐? 나 왜 알림 안 옴? ㅁㅊ
ㄴ 작은 환 혼자야??
ㄴ 엘티티에 사진 올렸다ㅠㅠㅠㅠㅠㅠ 졸귀탱...
ㄴ따숩다 따수워ㅠㅠㅠㅠ 얘는 뭘 먹고 이렇게 귀엽지??
지환이 홀로 GIVE 앱을 켰다는 말에 팬들은 빠르게 집결했고, 동시에 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에 입을 틀어막고 한숨 같은 탄식을 뱉었다.
사진에는 품이 넉넉한 베이지색 후드티에 모자를 눌러쓴 지환이 언래블의 광고판 앞에서 손가락으로 작은 하트를 그리고 있었다.
살짝 내린 마스크 사이로 보인 도톰한 입술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고 있어 굉장히 기분 좋아 보였다.
사진만으로도 심장이 아파진 솜뭉치들은 방송에서 들려오는 지환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이 업로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진 밑에는 같은 멤버들이 지환을 찾는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했고, 그걸 확인한 지환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 어떡햌ㅋㅋㅋㅋㅋ멤버들도 몰랐나 봐 얘넼ㅋㅋㅋㅋㅋ
ㄴ 오늘도 평화로운 언래블★
ㄴ 작업실에 곧 쫓아오겠다 ㅋㅋㅋㅋㅋㅋ
ㄴ 얘네 다 각자 집에 있는 거 아니야?ㅋㅋㅋㅋ아니 왴ㅋㅋㅋㅋㅋ 좀 각자의 시간을 가지라곸ㅋㅋㅋㅋ
진심으로 당황한 듯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리던 지환이 고개를 휙 돌려 출입문을 확인한 순간 GIVE 앱의 메시지 창과 커뮤니티 게시판은 웃음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 아 쫄보 작은 환 너무 좋닼ㅋㅋㅋㅋ우리애가 이렇게 작고 소중하다..
ㄴ지환이 작다고 하면 안됔ㅋㅋㅋㅋ키에 민감하다구!
ㄴ아직 성장기야! 아직 다 안컸다!ㅋㅋㅋㅋㅋㅋ
그 후로도 혼자 무언가에 놀란 듯 흠칫거려놓고 문을 확인하는 둥 걱정하는 것 같더니 금세 평소처럼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평소에는 표정 변화가 극적이지 않았던 멤버가 짧은 시간 동안 온갖 표정으로 변하는 모습에 즐거워하던 솜뭉치들.
놀리는 것을 그만둔 건지 그 후로는 차분하게 자신의 작업실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꼭 자기같이 생긴 고양이 피규어를 본 팬들이 닮았다는 메시지를 보내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도 했고, 최근 작업에 대해서도 질문이 오갔다.
본인의 성격을 보여주듯 잘 정리된 작업실은 다른 곳보다 조금 어두운 듯한 조명이었지만 따뜻한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그렇게 평화롭게 흘러가던 시간은 갑자기 들려온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끝나버렸다.
- 오늘 자 GIVE 앱 작은환 환장 모먼트
1. 멤버들 엘티티 댓글
2. 작고 소중하지만 겁 많은 쫄보
3. 늘 그 멤버 작업실 습격 사건
ㄴ 그 멤버 습격 뭔뎈ㅋㅋㅋㅋㅋㅋ
ㄴ 새벽 형님들이랑 여진우 배우님 언래블 짱친 인정이지!
ㄴ 지환아, 우냐? 울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아 누가 후기 올려줬음 좋겠다ㅠㅠㅠㅠ
ㄴㅇㅈ 다 같이 뭐 했는지 작은환 얼마나 달달 볶았는지 공유해줘라..ㅜ
ㄴ222 우리도 같이 웃게 알려줘라 ㅠㅠㅠㅠ
한편, 팬들은 멤버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활기찬 모습을 보여줘 안도하기도 했다.
온갖 기사들이 나돌아서인지 평소 자주 소통하던 언래블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멤버들이 괜찮을지 애타던 팬들은 오늘 GIVE 앱을 통해 펼쳐진 이 광경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전의를 다질 수 있었다.
지환의 평화롭고 아늑한 GIVE 앱 방송은 그렇게 당사자에게만 쓸쓸한 상처를 남기고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