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00)화 (200/456)

200. 네가 남겨둔 말(3)

“얘네가 왜 여기서 나와?”

미정은 최근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아이돌이 매주 챙겨보는 시사 프로그램에 나오자 신기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힐링캠프라고 쓰고 무인도 캠프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언래블이라는 그룹을 보았다.

이전 다른 예능에서처럼 무인도에서 허덕이는 모습 찍었나 하는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더 재밌었다.

신기한 건 분명 힐링이 되는 점도 있다는 것.

첫 화에선 깔끔하고 산뜻하게 차려입었던 배우와 아이돌들이 점점 세상만사 포기한 얼굴이 되는 것도 꽤 즐거웠다.

쟤들도 사람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졌다.

캠핑 장비라고는 텐트 정도밖에 몰랐던 미정처럼 그들도 캠핑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우왕좌왕하며 물건을 들고 자기들끼리 이게 어디에 쓰는 건지 고민하기도 했고, 가스가 없어서 라면을 못 먹는다고 나라 잃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번 주 방영분에서는 험난한 불피우기 끝에 라면을 끓이는 모습과 몇 명이 제작진과의 딜을 통해 가스를 얻어내는 모습이 나왔다.

“아, 미쳤나 봐. 진짜.”

미정은 숫자송을 부르는 세 명의 아이돌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고 있었다.

밥, 그래. 밥은 인정이지 하면서 중얼거리기도 했고, 쪼그려 앉아서 바람을 막겠다고 둥글게 막고 선 어설픈 모습에 귀엽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고생을 하고 먹은 밥이어서인지 자기들이 아이돌이고 배우라는 것도 잊은 듯 세상을 다 가진 얼굴로 밥을 퍼먹는 모습도 재밌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세 명의 멤버는 자꾸 부처님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 멤버들을 바라보고 있어서 피식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배를 채우더니 하나같이 뽈뽈거리며 여기저기로 흩어졌고, 사방에서 이름이 불리던 지환이라는 멤버와 여진우 배우가 남았다.

지환이라는 멤버는 사람을 챙기는 게 익숙해 보였다.

시종일관 자기 또래인 같은 그룹 멤버들을 쫓아다니며 챙기더니 이제는 여진우를 챙기고 있었다.

그런 여진우를 보던 미정은 자꾸 무언가 떠오를 듯 말 듯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 닮았는데….”

그리고 그때 왕! 하는 소리와 함께 반려견인 하늘이가 미정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아… 우리 하늘이 닮았네.”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지환을 바라보는 여진우의 순하고 초롱초롱한 눈이 자신의 반려견을 닮았다는 사실에 미정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코카스파니엘인 하늘이는 산책이 하고 싶거나 간식이 먹고 싶을 때면 꼭 저렇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곤 했다.

하늘이가 떠올라서일까? 미정은 힐링캠프가 점점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물론 스쳐 지나가듯 씻으려는 출연자들의 탄탄한 복근이 슬쩍 보여서 더 좋아진 점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분명 처음에는 냉한 얼굴이 별로 취향이 아니었던 지환도 생긴 거랑 달리 숨 쉬듯 사람들 챙기는 게 보기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환경에 적응하고 즐기는 모습은 꾸밈없어 보였고, 어우러지는 주변 풍경은 정말 근사했다.

한 번도 캠핑에 도전해보지 못한 미정의 마음에도 ‘한 번 해봐?’하는 작은 싹이 틀 정도로 영상 속 모든 것이 빛나 보였다.

그래서 꽤 괜찮은 애들인가보다 하며 마음속 호감으로 점찍었는데, 바로 다음 날 ‘알못’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뭐지, 얘네 뭐 문제 있나?”

보통 여기에 나오는 연예인은 둘 중 하나였다.

범죄자거나 범죄의 피해자 이거나.

겨우 마음에 드는 아이돌들이 생겼다 싶었는데 또 속은 건가 싶어 조금 불퉁해졌던 미정은 방송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악플에 대해서는 늘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그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연예인들도 심심치 않게 방송이나 기사로 접했고, 고소 관련 기사도 제법 많아졌다.

“아….”

방송 초반에는 과거 악플 사건들과 처벌에 대해 다루었고, 후반부에는 비교적 최근 있었던 사건에 대해 다루었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심각해지는 비방과 욕설의 수위, 그로 인해 대두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짚어주었다.

언래블이 나온 건 그때였다.

그들이 데뷔하고 겪은 일련의 사건들과 현재 커뮤니티에 떠도는 루머, 비방뿐만 아니라 고도의 돌려 까기까지.

그 내용만 놓고 보면 언래블은 천하에 둘도 없는 쓰레기였다.

선배에 대한 존중이 없는 안하무인이고, 정치질로 무고한 그룹을 망쳐놨으며, 어릴 때 주먹을 휘두르고 다닌 인성 쓰레기에 자체 제작돌이라고 컨셉질하는 사기꾼이었다.

바로 어제 힐링캠프에서의 언래블을 떠올린 미정은 말도 안 된다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툭 뱉었다.

그리고 이 방송을 보고 있던 많은 사람에게서 비슷한 반응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연예인들이 왕왕 앞뒤가 다르다지만, 여러 프로그램에서 본 언래블의 모습이 떠올라 대부분 자신도 모르게 부정했다.

게다가 데미갓의 사건이 워낙 컸다.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그룹이 와해 직전까지 가더니, 최근에는 막말 음성 파일까지 공개됐다. 언래블 역시 이들에게 호되게 당했음을 알만한 이들은 알고 있었다.

그때,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기라도 한 듯 MC도 말도 안 되는 소문이지 않냐고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툭 던졌다.

동시에 소속사에서 준 고소 관련 자료와 ‘알못’ 제작진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내용이 TV 화면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 많은 루머 중 어느 것 하나 진실인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런 루머가 하나둘 나올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비난과 조롱, 욕설로 가득 찬 댓글이 우르르 달렸다.

“사람들이 어쩜 저렇게 못됐어. 저게 다 조작이고 그렇단 거지?”

“응. 그렇대. 진짜 소름.”

“천벌 받을 것들, 인두겁을 쓰고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너도 혹시라도 저런 짓 하고 다니면 호적에서 파버릴 줄 알아!”

“엄마는! 내가 저런 짓 하고 다닐 사람으로 보여?”

“그냥 알아두라는 거야, 사람이면 저러고 살면 못쓴다.”

어떤 가정에서는 ‘알못’의 애청자 가족이 악플러들을 욕했고, 또 어떤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단단히 경고하기도 했다.

“그럼 그렇지. 쟤네는 그럴 애들이 아니라니까.”

“언제부터 아이돌을 그렇게 잘 알았다고 편드냐?”

“딱 봐도 애들이 엄청 순하잖아.”

“언제는 싸가지없이 생겼다며?”

“내가 언제?”

같이 TV를 보고 있던 어떤 친구들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서로 디스하며 투닥거리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TV에서는 언래블과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멤버들의 은사라고 밝힌 현직 교사의 증언과 염려도 이어졌다.

참고 영상이 끝나자 MC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 그들은 인터뷰 내내 악플러를 향해 원망을 드러내지 않았고, 나이답지 않은 침착함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이미 자신들을 향한 악의를 감내하는 게 익숙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모습일까요? 우리는 무슨 근거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상처 주는 걸까요.

차분한 목소리가 오늘의 주제였던 악플에 관해 묻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고.

어둑한 세트장의 한 가운데에서 진중한 표정을 한 MC가 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악플로 인해 유명을 달리한 이들과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사진이 칠판에 무수히 많이 붙어있었다.

MC는 언래블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대처를 짧게 설명하며 그들이 직접 만들고 가사를 썼다는 어떤 곡을 언급했다.

- 언래블은 자신들의 곡인 ‘Pluto’를 통해 악플러들에게 되묻습니다. 여기에 그저 가만히 있었던 자신이 무얼 잘못했느냐고.

저도 묻고 싶습니다. 악플러들은 그런 일련의 행동들로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증오가 단순히 장난이었는지 말입니다.

MC의 말이 끝나고 화면은 언래블의 얼마 전 라이브 방송을 보여주었다.

어린 티를 숨길 수 없는 멤버들이 마이크를 움켜쥐고 노래하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서 여러 얼굴이 카메라를 향해 직접 만들었다는 멜로디와 가사로 시청자들에게 호소했다.

싫어하지 말아 달라고, 사랑만 해주면 안 되냐고.

방송이 끝나고 다음 주 예고 방송이 흘러나왔지만, TV 앞의 사람들은 이상한 여운에 잠겨 선뜻 입을 열 수 없었다.

이유 모를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었고, 금방 시큰둥한 얼굴이 돼서 리모컨을 두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꽤 많은 수의 사람은 검색창에 언래블이라는 이름을 검색하기도 했고,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이 각자가 사용하는 음악 앱을 켰다.

그들은 검색창에 언래블이라는 이름을 검색했고, 스크롤을 움직여 마침내 하나의 곡을 찾아냈다.

‘Pluto’가 기존 팬덤이 아닌 대중을 향해 처음 이름을 각인시킨 날이었다.

* * *

“이게 진짜예요?”

“그럼 이게 가짜겠니?”

“아니, 그래도….”

‘알못’의 방송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우리 손에 들린 밤사이 ‘Pluto’와 ‘졸업식’, ‘Confusion’의 순위 변동은 두 눈으로 보고도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Pluto’의 최종 순위가 11위라고 적혀있는 종이를 쥔 영빈 형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방송빨이라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굉장히 호의적인 태도라고 보는 게 맞지.”

우리는 ‘알려지지 못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인터뷰와 조사 자료를 보며 싱숭생숭한 기분에 사로잡혀 전날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안 그래도 요 며칠 내내 악플러와의 전쟁이라는 소재에 맛 들인 기자들 인터뷰로 지쳐있던 상황이었다.

인터뷰를 반복하며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말할 때마다 머릿속에 새겨지는 것 같아 더 피곤했다.

심지어 이마저도 대부분의 인터뷰를 거절하고 최소한으로 줄인 거였지만, 부담스러웠다.

그런 상황에서 방송을 통해 우리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걸 봤더니 멤버들 모두 머릿속이 복잡한 것 같았다.

아침에 겨우 눈을 뜬 나는 피로곰이 다섯 마리쯤 어깨에 올라탄 것 같은 하준 형의 모습에 ‘이 인간이 날밤 샜구나’하고 알 수 있었다.

다른 멤버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건지 평소에 잘 일어나던 영빈 형까지 도통 일어나지 못했다.

준이 형과 같이 멤버들을 깨우다 지친 내가 다시 누울 뻔했달까.

하나같이 잠 못 잔 티가 가득 나는 얼굴로 팀장님 앞에 모였는데, 팀장님은 꿀잠을 잔 건지 얼굴에 윤기가 돌았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알못’도 ‘Pluto’도 대박이 났다고.

머리를 싸매고 인터넷 창을 열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우리와 달리 어제 방송 시작부터 회사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고 했다.

대중들에게 확고하게 언래블을 각인시킬 기회라고 판단한 회사는 언래블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다고 했다.

“너희를 불쌍한 애들로 만들지 않으려고 다들 고생했어.”

가볍게 웃으며 말하는 팀장님의 발언은 그 미소처럼 가볍지 않았다.

처음 트러블이 있을 때도 회사는 방송가에서 약간의 동정은 받을지언정, 불쌍한 아이돌 취급을 받지 않게 하고자 주의했었다.

값싼 동정만큼 쉽게 소모되고 벗어나기 힘든 이미지도 없다며, 절대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지 않게 하려고 인터뷰도 대부분 잘라냈었다.

이번에 프로그램 출연을 회사에서 적극 밀어붙였던 이유도 언래블을 ‘불운한 사건에 휘말린 악플의 피해자’가 아닌, ‘힘든 상황에서도 활짝 피어난 아이돌’로 만들려는 시도였다.

인터뷰를 허락한 것도 우리를 힘없는 피해자로 그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제작진에게 받았기 때문이라는 팀장님의 설명이 있었다.

“고맙습니다….”

“저희가 더 잘할게요.”

“감사합니다, 팀장님!”

“고마우면 나중에 다른 직원분들 마주치면 고맙다고 해.”

아직도 얼떨떨해하는 멤버들의 멍한 얼굴과 떨리는 감사 인사에 소현 팀장님은 손을 휘휘 저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태 데미갓과의 트러블을 회사에서 크게 대응하지 않았던 덕분에 이번 악플 사건과 엮어서 잘 썼다며 화사하게 웃는 팀장님의 얼굴은 조금 무서웠다.

오죽하면 찬이가 자기도 모르게 내 손을 붙잡았고, 세빈이는 경환 형 뒤로 슬며시 숨어버릴 정도였다.

“속이 다 시원해. 그동안 쌓인 걸 빵 터트린 기분?”

싱글벙글한 소현 팀장님과 달리 우리 못지않게 피곤해 보이는 우진 형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몇 마디 덧붙였다.

“앞으로가 진짜 중요해. 이 기세 몰아서 1위까지 가봐야지, 얘들아.”

“저희가요?”

“그럼 내가?”

1위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우리 대답에 우진 형도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힐링캠프 반응이 좋았던 게 정말 컸다. 힐링캠프 다음 날에 알못이 방송돼서 사람들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아.”

그 후로도 몇 가지 이야기와 당부가 이어졌고, 기운찬 소현 팀장님은 연습하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연습실 밖으로 나가셨다.

우리만 남게 되자 다들 연습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멤버들의 얼굴은 아직도 혼이 나간 것 같았다.

“형, 나 좀 꼬집어봐.”

“미쳤어?”

“꿈인가 싶어서. 우리 노래가 11위래. 이게 꿈이 아니라고?”

멍한 얼굴로 경환 형에게 속삭이는 찬이 목소리는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 옆에 쪼그려 앉아 있던 세빈이가 냉큼 찬이 옆에 쫓아가 뺨을 쭉 잡아 늘이자 아파 죽는다며 바닥을 굴렀다.

“아파, 인마!”

“꼬집어 달라면서요. 다행이네, 아파서.”

“아, 쪼그만 게 왜 이렇게 손이 맵냐!”

아프다는 찬이 외침에 겨우 정신을 차린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허공으로 치솟으려는 입꼬리를 누르느라 이상한 표정이 돼버렸다.

그리고 서로 시선이 마주친 순간,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너무, 정말 너무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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