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97)화 (197/456)

197. Guilty(5)

은은한 조명 아래 6명의 아이들이 서 있었다.

나무 재질이 느껴지는 무대에 선 아이들은 평소보다 조금 더 힘줘 마이크를 붙잡았다.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그건 아이들의 마음을 나타내는 행동이었다.

평범한 또래 아이들 같은 복장에 메이크업한 티가 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얼굴이 평소보다 더 어리게 보였다.

영빈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시작을 알리자 세빈이 또렷한 눈으로 카메라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모습을 보면 방금까지 긴장해서 지환을 붙들고 칭얼거리던 사람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내겐 이름이 없었어. 그래, 그저 작은 별이었지.

어둡고 깊은 하늘에 녹아들 것 같은 작은 별, 그게 나였어.]

시작은 단조로웠다.

기교가 들어간 것도 아니고, 연주가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듯, 편안한 얼굴로 자신을 고백했다.

[네가 이름을 붙여줬고, 나는 빛을 찾았지.

I'm just here

난 여기에 있었을 뿐인데.

I just stayed still.

그래, 난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영빈이 세빈의 고백을 받아 기뻤다고,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이름을 받아서 너무 기뻤다고 듣는 사람들에게 노래했다.

그때를 떠올리듯 천천히 감았다 뜬 눈 안에는 또 다른 별이 있었다.

언래블의 이름이 정해지고, 솜뭉치라는 이름을 주었을 때의 기쁨을 떠올렸던 걸까?

상기된 뺨은 은은하게 붉은빛이 돌았고, 멜로디는 조금 빨라졌다.

[내 이름을 불러줘, 더 많이, 더 크게.]

모든 멤버가 함께 말했다.

자신들의 이름을 불러 달라고.

그것만으로도 벅찬 걸까?

나란히 서 있던 아이들은 함께 노래 하던 순간들을 떠올리듯 행복해 보였다.

처음보다 빨라진 멜로디였지만, 하준의 낮은 속삭임은 이상하게 느린 것처럼 들렸다.

그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다가와 가슴을 두드렸다.

[사람들이 이름을 불러줬고, 사랑이 가득했어.

그건 어떤 경험보다 황홀한 느낌이야.

꿀을 너무 사랑해서 빠져 죽은 꿀벌 이야기 알아?

나는 꼭 그렇게 될 것 같았어.

너무 달콤해서 숨이 막혀도 괜찮았거든.]

다시 영빈이 마이크를 잡았지만 그 얼굴은 아까와 달라졌다.

고통이 남긴 흉터처럼, 흐려진 안색이 처연해 보이기까지 해서 가슴이 아팠다.

[그런 네가 갑자기 등을 돌렸어.

내가 별이 아니라고, 날카롭게 외치던 말이 생생해.]

이해할 수 없다고, 내가 어떤 걸 잘못했냐고 되묻는 영빈의 모습에 그동안 언래블이 고민해왔던 것들이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게 아닐까 하는 그런 고민까지, 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I'm just here

난 여기에 있었을 뿐인데.

I just stayed still.

그래, 난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처음 행복한 얼굴로 불렀던 가사가 전혀 다른 감정을 가지고 다가왔다.

언래블은 자신들에게 날을 세우는 사람들에게 묻고 있었다.

처음과 지금의 자신은 같은데 왜 당신은 변했는지, 그게 정말로 자신들의 문제인지.

영빈의 슬픔을 이어받은 지환은 되레 담담한 얼굴을 하고 양손으로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Why do you hate me?

알려줘, 다시 나를 사랑해줘.

Did I do something wrong?

말해줘, 우리가 함께 빛날 수 있게.]

표정 때문에 오해를 많이 샀었다고, 그래서 되도록 웃는다고 말했던 소년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졌다.

저 얼굴에 사라진 미소는 누구 탓일까?

[어둑해진 밤 우린 잠시 멈춰서 등 뒤를 돌아봤어.

흐린 달빛마저 감춰버린 길이 아파 참기 힘들었거든.

고작 이만큼이지만 견디기 힘들었어.

겁에 질려 너에게 말도 못 할 만큼 겁 많은 우리야.]

경환은 화를 내고 있었다.

겁이 많고 상처가 많은 언래블에게 상처를 내고 웃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만큼 오기조차 쉽지 않았다고, 아팠다고.

노래는 세련되지 않았고, 녹음된 연주도 유려하지 않았다.

투박해 보였고, 대중가요라기보다 그들이 적은 것처럼 믹스테잎에 어울리는 노래였다.

그저 말하고 싶던 것들을 자신들의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노력으로 보였다.

회사에서 고하는 공지도, 이들이 직접 적어 내린 의견도 아니었다. 가수이기 때문에 노래로 답하고자 했던 모습이 보였다.

수익을 창출할 목적의 음원이라면 이렇게 투박한 상태로 내보이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다듬어지지 않은 곡을 올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언래블의 이 고백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공감과 지지를 불러일으켰다.

* * *

노래가 끝나고 평소랑 다르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꾹 누른 나는 멤버들을 살폈다.

노래의 시작부터 끝까지 멤버들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그만큼 지나치게 감정이 들어가기 쉬워서 혹시 그동안의 일이 떠올라 힘들면 어떡하지 싶었다.

다행히 얼굴색이나 표정들이 나쁘지 않았다.

그사이 스태프들이 스탠딩 마이크를 치우고 의자와 무선 마이크를 가져다 두었다.

노래 후 짧게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다고 팀장님이 준비해주셨다.

“래블이들, 앉자. 빈아, 쟤 좀 잡아줘.”

그 와중에도 하준 형은 멤버들을 챙기느라 바빴다.

세빈이가 종종걸음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다 휘청거리는 걸 보고, 준이 형이 영빈 형을 급히 불렀다.

‘빈아’하고 부르는 순간 영빈 형과 세빈이 둘 다 준이 형을 똑같은 표정으로 쳐다본 건 조금 웃겼다.

웬일로 찬이는 얌전하네 하고 고개를 돌렸더니 별로 얌전하지 않았다.

운동화 끈이 풀렸다고 갑자기 쪼그려 앉아 끈을 묶는 찬이나, 그러다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한 찬이를 붙잡은 경환 형은 너무 평소 모습이었다.

“음, 죄송해요. 저희 애들이 조금 부산스럽죠?”

“형, 조금 아니잖아요.”

“환아, 쉿.”

별일 없이 무사히 의자에 앉은 건 나랑 준이 형뿐인 것 같았다.

“이제 겨우 카메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찬이가 돌발행동할 때마다 심장이 콩닥거린다니까요.”

“끈이 풀리면 위험하잖아. 그러니까 얼른 묶어야 해요.”

“그래….”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찬이 모습에 준이 형의 얼굴에는 해탈한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찬이는 준이 형 대답을 다르게 이해한 건지 ‘봐, 내가 맞다니까?’하는 표정으로 경환 형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팀장님과 우진 형의 얼굴에도 준이 형의 미소와 비슷한 게 떠올랐다.

안 돼요, 그렇게 포기하지 마세요….

우여곡절 끝에 멤버들이 모두 자리에 잘 앉은 걸 확인한 준이 형이 입을 열었다.

“평소처럼 GIVE 앱을 켤까 했는데 오늘은 위캠 생방송으로 진행하게 됐네요. 어때요? 괜찮았나요?”

“좀 더 큰 화면으로 편하게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거든요. 노래는 음, 여러분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저희가 이번에 겪은 고민을 담았어요.

“제목은 우리 찹쌀떡 세빈이가 지었습니다.”

“내가 왜 찹쌀떡이에요!”

준이 형이 한마디 했더니, 언래블이 열 마디 하는 상황.

한숨을 푹 내쉬던 나는 결국 이마를 부여잡았고, 어떻게 되든 좋다는 건지 포기한 건지 팀장님은 웃고만 있었다.

멤버들이 얼마나 긴장했는지를 알기에 이게 우리가 긴장을 푸는 방법이라고 말을 하는 것도 좀 웃긴 것 같아서 준이 형만 바라보고 있었다.

난 이 상황은 모르겠다, 아니 그냥 모르는 거다. 하하.

“멤버들이 긴장을 좀 한 것 같아요. 저희가 처음 시작부터 가사까지 모두 직접 만들다 보니까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역시 같은 말이어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준이 형이 입 밖으로 꺼내는 게 훨씬 부드럽고 듣기 좋았다. 덤으로 준이 형의 말 한마디에 얌전해지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

우리 형이 기강은 참 잘 잡았지.

긴장했는지 발을 얌전히 두지 못하고 꼼지락거리던 찬이도 준이 형이 입을 열면 행동을 멈추고 형을 바라봤다.

“여러분들이 많이 걱정하셨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더 많이 고민했어요.”

우리는 오늘 하루를 평소보다 더 바쁘게 보내야 했다.

공개할 영상을 찍고, 연습하고, Pluto를 녹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한 건 회의였다.

인터뷰 요청에 대한 회사의 입장과 질문의 내용도 점검해야 했고, 이 노래를 공개하는 과정에 최대한 큰 효과를 보고 싶다는 회사의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가 몰랐던 여러 이야기와 방송국, 기자들의 모습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악플러들과 싸우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알리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만약 우리가 회사에 모든 것을 맡겼다면, 정윤 실장님이나 소현 팀장님은 자기들 선에서 정리하고 결과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했을 것이라고 했다.

너무 많은 상처를 받은 배우분들 중에는 그렇게 진행하는 분들도 계신다고.

“솔직히 자다가 날벼락 맞은 기분일 거예요. 난 그대로인데 상대가 갑자기 달라지거나 모르는 사람이 날 비난한다면요.”

“저희뿐만 아니라 저희와 비슷한 고통을 겪은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이 노래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이 노래를 오늘 라이브로 공개한 이유에요.”

세빈이와 찬이가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가 열심히 고민했던 내용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찬이는 우리가 빛날 수 있는 건 팬이 있기 때문이니까 그 팬들이 마음을 다쳤다면 위로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난 찬이가 제법 기특한 생각을 한다고 생각했고, 이야기를 들은 팀장님은 그런 부분은 직접 말을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렇게 몇 가지 이야기가 오갔고, 무사히 라이브 방송을 종료한 우리는 늘 그렇듯 우진 형의 보호 아래 숙소에 도착했다.

사람인 이상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궁금한 마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늘 잠자리에 들기 전 핸드폰을 쥐고 우리 이름을 검색해볼까 하는 생각을 억지로 꾹꾹 눌러 담고 잠드는 게 우리 애들이었으니까.

그저 그게 우리에게 좋을 게 없다는 걸 배웠기에 그동안 꾸준히 참아 눌러오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러다 말로만 듣던 악플을 직접 겪게 되니 다들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다.

씻고 러그에 모인 멀끔한 멤버들과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각자 편한 자세로 누워 오늘 하루를 되새겼다.

무겁게 느껴지는 감정들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너무 힘들어서 멍하니 고양이 쿠션을 꾹꾹 누르고 있었더니, 찬이가 발로 툭 밀었다.

“왜.”

“그냥.”

씩 웃던 찬이는 유독 피곤해 보이는 경환 형의 발바닥도 쿡 찌르고 추욱 늘어져 있던 세빈이 무릎도 툭툭 건드렸다.

“명왕성 좋았지?”

“좋았지. 조금만 다듬으면 진짜 더 좋을 것 같은데 아쉬워.”

“근데 난 팀장님이 왜 그냥 하라고 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아.”

찬이가 건드리는 게 귀찮다고 손을 휘적대던 세빈이가 결국 내 뒤로 숨었다. 그 모습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던 두 맏형은 그저 웃고만 있었다. 우리가 조금 더 마음껏 편하게 이야기하라는 것 같았다.

“곡이 잘 나오면 좋은데, 음…. 너무 잘빠진 곡은 사람들이 안 믿었을 거 같아.”

“왜?”

“막 손 많이 댄 곡은 티가 나잖아.”

“아.”

찬이 말에 경환 형이 멍하니 있다 소리를 냈다. 경환 형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찬이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팀장님은 매우 많은 노력과 기획, 그리고 약간의 운이 따라준 경우라고 했었다. 여론이라는 게 그렇다고.

우리가 여태까지 출연했던 방송의 결이 한결같이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은 보기 편한 프로그램이었던 것들도 긍정적인 여론에 보탬이 됐다고.

거기에 꿈이 도움을 주긴 했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곡은 정말 타이밍이 좋았던 거랬다.

“솔직히 이걸로 악플이 없어지진 않을 거 아는데 그래도 같이 욕을 해줄 수는 없으니까.”

“욕은 안된다.”

“나도 그 정도는 알거든?”

최대한 골라서 회사에서 보여줬던 악플의 내용으로도 크게 속상해했던 멤버들이었다. 아마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솜뭉치들의 마음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그저 우리가 욕 좀 먹고 참으면 끝이 아니라는 것도 오늘 여러 이야기를 듣고 배우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제보해주는 과정에서 그 이야기를 다 보는 것도 속상했는데, 악플러들은 심지어 우리 팬들에게도 직접적으로 심각한 수준의 비하 발언과 욕설을 퍼붓는다는 게 충격이었다.

자신들이 욕먹는다는 얘기보다 팬들이 욕먹는다는 말에 더 충격받던 멤버들의 모습에 이세계의 1호 솜뭉치로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리는 안보기라도 했지, 그거 다 본 솜뭉치들은 어떡하냐….”

“선처 같은 거 없이 그냥 다 혼나라고 두자.”

“당연하지. 진짜 솜뭉치들 건드린 건 용서할 수가 없다.”

자기들끼리 전투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을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나에게 어김없이 포잉의 잔소리가 날라왔다.

‘이 팔불출 놈.’

‘칭찬 감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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