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Guilty(3)
회사에 도착한 우리는 약간 지쳐있었다.
맛있게 밥 잘 먹고 우진 형의 도움으로 출근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회사에 도착하자 사방에서 쏟아지는 회사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탓.
전날 너무 늦게까지 가사를 쓴다고 못 자서 피곤한 것도 있었지만, 여러 감정이 뒤섞인 시선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부정적인 감정은 아닌 것 같았지만, 유난히 같은 회사 사람들의 시선은 견디기 어려웠다. 이전에 스킬을 사용해서 사람들의 속마음을 확인해본 후부터는.
우리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밤사이에 유성이라도 떨어졌어요?”
“오늘 회사 분위기 이상해요….”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기민하게 눈치챈 세빈이는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팀장님이 다 말해주실 거야.”
우진 형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우리 어깨를 두드렸고, 우리는 괜히 그런 우진 형의 등 툭툭 때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병아리들, 왔어?”
“팀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밝은 어투로 말하는 것치고는 팀장님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팀장님 야근하셨어요? 제대로 못 주무신 것 같은데….”
“아아, 괜찮아. 오늘은 일찍 가서 잘 거야.”
“건강 잘 챙기세요. 아프면 안 돼요!”
“우리 애들이 이렇게 착하네.”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올 것 같은 팀장님 얼굴에 준이 형이 걱정의 마음을 내비치자 착한 우리 애들은 한마디씩 더 보탰다.
야근이 익숙한 팀장님이 저렇게까지 피곤한 얼굴이 되다니 그만큼 큰일이 있는 건가 싶어 내 머릿속이 바빠졌다.
혹시 이 시기의 ON 엔터에 내가 모르는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싶어 되짚어봤지만 걸리는 게 없었다.
“소현 팀은 피로보다 술병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얘들아.”
“…술병이요?”
“실장님! 얘들 앞에서 진짜!’
약간의 배신감을 담아 팀장님을 바라보는 사이 양손에 음료가 가득 든 캐리어를 들고 실장님이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평소에는 되도록 단 음료를 마시지 않는 터라 달콤한 향이 나는 음료들 앞에서 찬이 얼굴이 흐물흐물해졌다.
이렇게 쉽고 뻔한 내 새끼 같으니라고….
내 몫의 딸기 쉐이크를 받아들고 팀장님의 안색을 다시 한번 살피다 팀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피곤해 보였던 팀장님이 부스스한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난 괜찮아, 얘들아. 설명은 제가 할까요? 아니면 실장님이?”
“소현 팀은 꿀물이나 먹고 있어요. 제가 애들한테 설명할 테니까.”
전날 두 분이 같이 술자리를 가진 건지, 툴툴거리면서도 소현 팀장님은 따뜻한 음료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너희 어제 힐링캠프 반응은 들었니?”
“아뇨? 무슨 일 있었어요?”
“혹시 저희 뭐 잘못했어요?”
“어제 다 같이 뭐 좀 하느라 아예 방송도 못 봤어요, 실장님.”
실장님 말에 불쑥 튀어나오는 동생들의 입을 막기 위해 준이 형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세빈이와 찬이의 옆에 있는 나와 경환 형이 테이블 밑에서 둘의 한쪽 팔을 잡았다. 주로 불쑥 튀어나오는 말은 이 둘이라 익숙했다.
“아, 차라리 잘됐네. 그럼 아예 처음부터 설명할게.”
“넵.”
그렇게 정윤 실장님의 설명이 시작되었고, 중간중간 소현 팀장님이 설명을 덧붙였다.
방송 반응과 회사에서 추측했던 악플러들의 반응, 그리고 그 타이밍에 회사에서 손을 쓴 기자들의 기사.
여론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그리고 어떤 긍정적인 반응이 기대되는지와 앞으로 회사에서 어떤 대처를 보일지까지도.
“…힐링캠프가 저희 생각보다 훨씬 많이 사랑받았네요.”
일련의 사건들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들은 멤버들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래서 준이 형만 겨우 입을 열어 힐링캠프 반응이 신기하다고 했다.
소현 팀장님과 정윤 실장님이 옆에서 어떻게 여론을 부채질하고 방향을 틀기 위해 애썼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는 이 두 분이 더 신기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준비를 한 걸까.
“그리고 동영상이 터진 게 정말 큰 도움이 됐지.”
“동영상이요?”
“응. 데미갓 멤버들 음성 파일이랑 블랙박스 영상인 것 같은 게 인터넷에 올라와서 한바탕 난리가 났거든.”
“너희 정말 밤새 기사를 하나도 안 봤구나?”
소현 팀장님은 새삼스럽다는 듯 멤버들을 둘러봤고, 우리는 머쓱해져서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어쩐지 묘한 예감이 들어 포잉을 찾았지만, 같이 회의실에 들어왔던 포잉이 보이지 않았다.
‘포잉, 어딨어?’
분명히 같이 회사에 들어왔는데 어느 순간 사라진 건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이지만 포잉이 저 파일들이 공개되는 데 한몫했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나중에 따로 포잉을 붙잡고 물어봐야지 하고 생각을 머리 한구석으로 밀어버렸다. 지금 급한 일은 파일의 출처가 아니니까.
곡 작업 얘기를 꺼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결국 총대를 메기로 했다.
자기가 출연했던 프로그램의 모니터링은 중요했다.
노느라 모니터링을 빼먹은 게 아니라 우리는 또 다른 작업을 하느라 시간을 잊었다고 두 분에게 말을 해두고 싶었다.
“사실 멤버들이랑 곡 하나를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 어제는 다 같이 가사 쓰느라 다른 데 정신을 쏟을 수가 없었거든요.”
“노래 지금 들어볼 수 있어?”
“엇, 네.”
내 입에서 곡 얘기가 나오자, 반갑다는 듯 대꾸하는 두 분의 목소리가 들떠 보였다.
왜지?
흥미롭다는 눈으로 멤버들을 한명 한명 바라보는 실장님에게, 우리가 지난밤 수십, 수백 번은 더 들었던 파일을 틀어주었다.
나를 괴롭게 했던 단조로운 리듬이 든든한 기둥이 되어 밑에서 받쳐줬고, 거기에 하나씩 새로운 색의 음이 더해져 물결을 만들었다.
퉁하고 튕기듯 흘러가던 물결은 여기저기 새로운 음과 부딪혀 점점 화려하게 변했다.
덕분에 누구나 쉽게 따라부를 수 있을 만큼 쉽고 편하지만 뻔하지 않은 곡이 되었다.
곡이 끝나자 진지하게 듣고 난 두 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셨다.
“가사는 완성했고?”
“네. 덕분에 애들이 좀 늦잠을 자긴 했지만요.”
두 분의 반응이 긍정적이자 멤버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파트 분배는 했니?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대충은요.”
방금까지는 악플러와의 전쟁이 어떻게 잘 진행되고 있는지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두 분이 곡에 큰 관심을 보이자 멤버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눈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나? 우리는 의문을 잠시 넣어두고 핸드폰을 꺼내 멤버들과의 그룹채팅방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쪽으로 가사를 보내두길 잘한 것 같았다.
노래는 찬이 목소리로 시작했다.
꾸미지 않은 편한 목소리가 타박타박 걸어가며 옆에 있는 친구한테 툭 하고 말을 건네는 것처럼 노래했다.
그렇게 편하게 시작한 노래는 끝날 때까지 격렬해지지 않는다.
그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면 질문하듯 음의 높낮이는 변할지언정.
“음, 경환이가 불렀던 부분 가사 좀 다시 볼 수 있을까?”
“아, 가사 채팅방으로 먼저 보내드릴게요.”
소현 팀장님에게 가사를 전달한 나는 경환 형이 불렀던 파트 중 어느 부분인가 싶어 다시 가사를 살폈다.
“얘들아, 너희 데미갓이랑 악플러들에게 하고 싶은 말, 담은 거 맞지?”
“….”
“혼내는 거 아냐, 기특해서 그래.”
뜨끔해진 우리가 눈치만 살피자 소현 팀장님이 나섰다.
“이거 작업씬 몇 개 따고 노래 풀버전으로 찍어서 올리면 좋을 것 같아.”
“네? 아직 손봐야 할 게 많은데….”
“가끔은 전문가 냄새 뺀 투박한 느낌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야.”
“잘했어, 한 대 맞았으면 두 대는 때려줘야지. 대놓고 디스하는 게 아니라 그냥 너희 마음만 적은 것도 좋았고.”
두 분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우리가 서로만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두 분은 점점 빠르게 무언가를 계속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우리가 있다는 것도 잠시 잊은 것 같았다.
“이 부분 되게 마음에 든다. 경환이가 불렀던 여기.”
소현 팀장님이 짚어준 부분의 가사를 확인한 우리는 세빈이를 보며 씩 웃었다.
[어둑해진 밤 우린 잠시 멈춰서 등 뒤를 돌아봤어.
흐린 달빛마저 감춰버린 길이 아파 참기 힘들었거든.
고작 이만큼이지만 견디기 힘들었어.
겁에 질려 너에게 말도 못 할 만큼 겁 많은 우리야.]
“뭐야, 이거 세빈이가 쓴 거니?”
“아니, 그게….”
“얘는! 이렇게 잘하면서 그동안 꼭꼭 숨긴 거야?”
“형들이 도와줘서 그래요!”
맨날 형들한테 짐이 된다고 시무룩해 하던 세빈이었다. 그런 세빈을 항상 걱정하던 소현 팀장님은 펑 터질 것처럼 새빨개진 얼굴을 곱게 흘겨보았다.
“어휴, 정말.”
“자자,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정윤 실장님의 두 눈이 위험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 * *
예나는 지난 밤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양파도 아닌 것이 까도 까도 계속 새로운 기사와 소식이 터져 나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동안 카더라로 소문처럼 돌던 일들이 사실로 밝혀졌고, 회사의 공식 입장에 자세한 언급은 없었지만, 악플러 일도 사실인 듯했다.
ON 엔터는 지금까지와 같이 악플러들에게는 선처 없이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단호한 어조의 입장문을 올렸다.
평소의 공지나 입장문과는 조금 결이 다른, 분노를 꾹꾹 한 글자씩 눌러 담은 듯한 내용이었다.
오죽하면 팬들끼리 솜뭉치가 가서 대신 쓴 거냐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래도 그동안 열심히 PDF 파일을 만들어 회사로 넘긴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예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위캠에 들어가 언래블의 오피셜 계정을 찾았다.
피곤하고 지친 하루의 마무리를 언래블 영상과 함께하고 싶었던 것.
언래블 스토리 카테고리에는 이제 제법 많은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숙소에서 꼼지락대던 멤버들 영상은 너무 사랑스러웠고, 각자 작업실이나 연습실에서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자랑스러웠다.
이미 몇 번씩 다 본 영상이었지만 하나씩 다시 보는 사이, 화면 상단 종 모양의 아이콘에 빨간 점이 생겼다.
새로 공개된 영상이 있다는 알림이었다.
알림창을 누르자 익숙한 프로필 사진이 보였다.
언래블에서 올린 동영상이었다.
[Unravel Mixtape - Pluto(C.I ver)]
믹테라니, 예나는 방금까지의 피로는 잊은 듯 급히 영상을 눌렀다.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한 작은 녹음실 모습이었다.
“우리 경환이 믹테라니.”
헤드폰을 쓴 경환이 눈을 깜박이다 ‘후우’하고 깊게 숨을 내뱉었다.
감정을 잡는 걸까? 마이크 앞에서 눈을 내리감은 경환의 진지한 모습에 예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꾹 눌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단단해 보였던 얼굴의 얇은 눈꺼풀이 움찔거렸다.
그렇게 재생된 노래는 평소 경환의 개인 작업물과는 조금 달랐다.
담담한, 아니 정확히는 담담한 척하는 분노가 느껴졌다.
성대를 긁어 평소보다 낮고 거친 목소리였지만, 빠르지도 강한 느낌을 주지도 않았다.
짧은 이 영상에서는 그저 분노와 고통이 느껴졌다.
“우리 애들… 너무 힘들었구나.”
예나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언래블은 너무나 아티스트다운 방법으로 자신들이 겪은 일을 말하고 있었다.
화도 났고 아팠다고, 우리는 무서웠고 그만큼 아팠다고 노래로 말했다.
휴지로 눈가를 꾹꾹 눌러 닦은 예나는 울렁이는 감정을 겨우 억눌렀다. 그리고 그제야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C.I 버전? 그럼 다른 애들 버전도 있나?”
ltt에 들어가 팔로우해둔 다른 팬들의 반응을 살폈지만, 그들도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짧은 노래에 대한 감상글도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 다른 멤버들 버전은 언제 올라올까 하는 궁금증이 월등히 많았다.
그때, 언래블의 공식 ltt에서 하나의 사진과 글이 올라왔다.
헤드폰을 쓰고 쑥스럽다는 듯 웃고 있는 뽀얀 찹쌀떡 같은 막내 세빈이었다.
‘조금 이따가 봐요, 솜뭉치!’라는 문구와 함께 해시태그에는 ‘Pluto’가 적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