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93)화 (193/456)

193. Guilty(1)

방송 직후 커뮤니티가 불타는 모습을 지켜본 정윤 실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기획은 소현이 했지만, 세부 조율과 실행의 가장 큰 역할은 정윤의 몫이었다.

정윤도 소현도 단순 고소만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이슈가 되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릴 수만 있다면 노이즈 마케팅도 서슴지 않는 세상이었다.

그렇다면 멤버들이 받은 상처에 대해서는 톡톡히 값을 받아내야 했다.

겁이 많고 순한 애들이라 작정하고 댓글들을 찾아보지는 않았을 테지만, 우연히든 어떤 경로든 접하게 된다.

그러기 전에 그 실체를 알고 그들이 동정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실장님, 지금 되게 흑막처럼 웃고 계세요. 아시죠?”

“흑막이라니. 나처럼 법 없이도 살 사람한테 너무하네.”

냉한 얼굴의 정윤은 지환이처럼 조금만 웃어도 인상이 달라졌다.

다만, 지환이와 다른 점이라면 대부분 의도된 미소라는 걸까.

소현은 슬며시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최로운 기자님이 잘 해줬으면 좋겠네.”

회사에서 악플러들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기사를 단독으로 주었다.

처음에는 언래블의 이름값에 애매한 표정을 지었지만, 힐링캠프의 파급력과 지금 인터넷 상황을 봤다면 입이 귀에 걸렸으리라.

그때, 소현의 휴대폰이 소현을 다그치듯 울기 시작했다. 소현이 정윤을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네. 출처는요? 영상은 제대로 된 거죠? 네. 일단 두고 보세요.”

통화가 끝난 소현의 얼굴이 미묘했다.

“실장님, 지금 커뮤니티에 영상이 하나 떴는데 보시겠어요?”

“뭐길래 그래요?”

호기심이 동한 눈으로 바라보는 정윤에게 소현은 노트북을 돌려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에서는 모자이크가 되어 있지만, 알만한 사람은 알 수 있는 목소리의 한 명과 매니저로 보이는 이가 떠들고 있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동영상은 하나가 아니었다.

중간중간 음성에 삐- 처리가 된 부분들은 누가 봐도 다른 연예인에 대한 음담패설이었다.

“이런 걸 하늘이 돕는다고 하던가?”

“다행히 동남풍이 아주 시원하게 부네요.”

“공명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겠네.”

정윤에게 흑막처럼 웃는다던 소현의 얼굴에도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걸 어떻게 잘 써먹을 수 있을지 생각하느라, 둘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누가 올렸는지 모르겠지만 둘의 대화에는 언래블이 언급된 저질스러운 표현도 적나라하게 들어있었다.

비록 삐-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기사를 봤던 이들이라면, 그 소문에 대해 아는 이들이라면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런 둘의 마음처럼 포털사이트의 연예란에 다시 한번 기사들이 미친 듯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이돌의 인성 문제, 실상에 대해 논한다]

[큰 불화의 그 엔터社, 예정된 일이었다!]

[아이돌 U그룹의 불행은 우연이 아니라 작업 세력이 있었다?]

[선 넘는 아이돌 간의 경쟁, 배후는 소속사?]

[갑질의 끝을 보여준다, 이게 아이돌인가? 아이돌의 인성 교육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만 없을 뿐 활활 불타는 건 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영상이 뜬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기사가 올라오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가뜩이나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힐링캠프 덕분에 언래블의 이름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언급되었다.

멤버들의 일상적인 모습이 호감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고, 서로를 아끼는 모습이 굉장히 보기 좋다는 말도 많았다.

이런 상황을 누구는 여진우의 영화가 흥행해서 그에게 버스 타는 거라 욕하기도 했고, 또 다른 누구는 새벽의 이름값에 언래블이 빌붙는 거라 손가락질했다.

아무렴 어떤가.

그렇다 해도 사람들은 비극의 주인공에게 더 많은 눈을 주고 동정이라도 손을 내밀어준다.

소현과 정윤은 언래블에게 필요한 건 긍정적인 이슈를 탈 수 있는 바람이라고 생각했고, 차근차근 계획을 준비했을 뿐이다.

여진우의 인터뷰를 가장 처음 넣도록 방송국에 제작비를 보태고, 언래블에 대한 긍정적인 기사를 뿌리기 위해 기자들을 이용했다.

그래서 그게 뭐?

불법적인 일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정윤은 당당했다.

때마침 동영상까지 터져줘서 더 커다란 이슈가 생겼고 이제는 결과를 잘 수확하기만 하면 되게 생겼다.

그때 정윤에게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건욱 실장이었다.

“진짜 우리 애들이 복덩이는 복덩인가 봐.”

“네?”

“꽤 괜찮은 곡을 또 뽑아낸 것 같아. 주영 팀장님이 재밌는 걸 발견했다고 하는데?”

“아니, 얘들은 왜 곡을 만들어도 우리한테 말을 안 해주는 거야!”

정윤은 괜히 숙소에서 퍼져있을 멤버들을 떠올리며 투덜거렸다.

내일 회사에서 또 한 번 탈탈 털어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 * *

- “신인 아이돌 그룹의 불행은 철저한 기획과 악의의 산물이었다”

뷰어들아, 지금 아래 링크 가서 이 기사? 논평? 읽고 좋아요 눌러줘. 이슈타임 최로운 기자님이래. 진짜 나 이거 읽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서…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혹시 링크 안 눌릴까 봐 본문 첨부해…

기사가 좀 긴데 꼭 다 읽고 널리 널리 퍼트려줘…. 진짜 이건 아닌 것 같아.

https://wwww.issuetime.co.kr/news/20210121

[아이돌 간의 갑질 논란은 이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다만, 이번 사건이 기존의 일들과 다른 궤를 보인 것이 있다면 아이들 간의 충동적인 감정 발현이 아니라는 점.

A그룹의 리더인 M 군과 와 메인 보컬 Y 군은 데뷔 전 기획사에서부터 회사의 정치질에 희생당했다.

그때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이 최근 커다란 논란을 일으킨 D그룹의 J 군. J 군은 회사의 주요자리에 있는 가족을 내세워 연습생 생활에서도 다양한 갑질을 일삼았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그들의 데뷔를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막았다.

물론 데뷔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회사 내부의 문제이니 그 부분에 대해 본 기자가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악연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본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연예계의 추악한 일면을 마주하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음악방송에서 다른 대기실을 사용하는 D그룹의 J 군과 C 군이 일부러 A그룹을 찾아간 것.

당시 J 군과 C 군은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었으나 M 군은 굉장히 의연한 대처를 했다고.

그들의 악행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모 프로그램에서 마주하게 된 그들은 사고라고 주장하나 A그룹의 한 멤버를 다치게 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멤버는 이로 인해 한동안 제대로 무대에 설 수 없었고, 당시 상황이 자칫 커다란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더군다나 J 군은 그 외에도 그간 쌓아온 악행이 세간에 드러나는 일이 발생하자 A그룹의 숙소까지 흉기를 들고 찾아가 현재는 재판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로 인해 아직 어린 나이의 A그룹 멤버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고 한동안 활동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D그룹의 소속사에 있던 J 군의 가족이 이 일로 앙심을 품고 일부 팬들을 충동질했다. 그들은 A그룹의 소속사 앞에 찾아가 난동까지 부렸고 이 과정에서 일부 기자들을 이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후에도 D그룹의 일부 팬들은 A그룹을 음해하며 입에 담기 힘든 수준의 악플과 모욕적인 글들을 생산해냈다.

A그룹의 소속사가 강경 대응을 예고하며 사과와 글의 삭제를 요구했으나 더욱 거세게 반발하며 각종 루머를 생산해내는 상황. 소속사는 더 이상 상황을 좌시하지 않을 것을 예고했고 본격적인 고소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편 A그룹은 여러 악의에 지지 않고 최근 힘든 아이들을 돕고자 다양한 활동을 했던 것으로 밝혀져 팬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자선 패션쇼에 참여하는 한편, 최근 촬영한 광고의 회사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모델료 일부를 돈 대신 약품으로 아이들을 위해 기부해달라는 뜻을 전달했던 것.

본 기자는 일련의 상황을 취재하며 고작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아이들을 이렇게까지 악랄하게 괴롭혀야 했나 하는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선의의 경쟁만으로 살아남기 힘든 연예계의 병폐는 과연 아이들의 잘못인가를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이를 바로 잡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며 더는 불행한 피해자가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ㄴ 아, 진짜 미친…. 힐링캠프 보고 너무 우리 애들 병아리들이라 기뻤는데 나새끼 진짜 생각 없다.. 우리 애들 얼마나 힘들었을까ㅠㅠㅠㅠㅠ

ㄴ 우리 애들 진짜 천사 아니냐..? 나였으면 이미 그 새끼들 다 죽였을 거 같다 아 어떡해.. 우리 애들 ㅠㅠㅠㅠ

ㄴ 기사에 좋아요 누르고 왔어. 어떡해 나 지금 너무 눈물 나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진짜 설마설마했는데 하...

ㄴ 그때 작은 환 다리 다친 것도 그 새끼들 때문이고 기사 났던 그 숙소가 우리 애들인 거 맞지..?

커뮤니티에 올라온 하나의 기사는 최근 악플러들과의 전쟁으로 날카로워졌던 솜뭉치들의 마지막 한계선을 부수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솜뭉치들은 회사의 입장에 불만을 느끼며 항의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하기도 하는 서로 다른 마음에 괴로워했었다.

덕질을 이전에 해봤던 이들은 대부분 제논 엔터와의 싸움을 크게 키우지 않으려는 회사의 뜻을 이해했다. 감정적으로 화가 나는 것과 별개로 멤버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것.

이제 시작하는 언래블에게 안 좋은 꼬리표를 달아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멤버가 직접적으로 다치는 상황과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생긴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충격적인 기사가 언래블의 팬 사이트뿐만 아니라 온갖 커뮤니티로 미친 듯이 옮겨지고 있었다.

여태까지 타인의 불행에 무감각했던 이들이지만, 그들 중 많은 이들은 방금 힐링캠프에서 언래블을 보았다.

아이돌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아직 어린 태가 고스란히 남은 아이들이었다.

뭐든 자기들끼리 열심히 하려 전전긍긍하는 게 썩 나쁘지 않았다. 호감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불행에 대한 기사를 접하자 다들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었다.

“아니, 미친것들 아냐?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냐.”

“얘네 그 아이컨택트 나왔던 걔네 맞지? 애들 엄청 순하던데. 허, 쓰레기네.”

“무사이에도 나왔던 애들이잖아. 그렇게 사고 나고 다쳤었는데도 내색 하나도 안 하고 무대 한거네. 아이고.”

다양한 방면으로 얼굴을 빼꼼 비추고 다녔던 언래블이었다.

마침 시청자의 분포가 상당히 고른 프로그램에 출연한 데다가, 라디오를 통해 멤버들의 목소리를 들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때,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인터넷에 데미갓의 동영상이 터졌다.

술렁이던 분위기에 기름이 퍼부어진 셈.

그와 동시에 언래블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몇몇 지인들은 자신의 SNS를 통해 언래블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첫 포문은 역시나 세상 자기 마음대로 사는 새벽의 가영이었다.

언젠가는 죗값 치를 거라고 생각했다.

내 동생들 이제 꽃길만 걷자!

#나도_솜뭉치 #Unravel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여진우와 골든아워의 하겸, 나민수, 세진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로 인연을 맺은 이효정, 최다겸, 김지현이 언래블이 얼마나 착한 후배인지 메시지를 남겼다.

직접적으로 데미갓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저 언래블은 착한 후배들이었고, 함께 촬영하는 내내 즐거웠으며 앞으로 행보를 기대 중이라고 적었을 뿐.

그러자 그들을 지지하는 팬들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언래블이 여태까지 쌓아온 인연들을 중심으로 소소하게 흐르던 흐름은 하나의 커다란 여론이 되었다.

언래블을 잘 모르는 사람도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배우가 그들을 칭찬하니까 함께 칭찬하기도 했다.

여태껏 몇 가지 프로그램에서 본 언래블의 모습에 미약한 호감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그들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고 노래를 들었다.

그렇게 한번 분위기를 타기 시작하자 휘몰아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게 정윤과 소현이 기다렸던 동남풍이었고, 순식간에 언래블은 아는 사람만 아는 그룹에서 누구라도 이름은 들어본 그룹이 되었다.

그리고 그 밤과 새벽 뜨겁게 불타오르는 인터넷과는 별개로 언래블은 숙소에서 자신들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 * *

“니가 인간이냐!!”

“응, 다음.”

“사람이 말을 하면 듣는 척이라도 좀 해!”

“그렇게 소리 지를 시간에 빨리 한 줄이라도 가사 적어요!”

“세빈이 말이 맞지. 찬아, 앉아.”

“이 괴물 딱지들….”

“그러게 내가 그때 우리끼리 먼저 가자고 했잖아.”

내가 꿈꿨던 멜로디 하나로 시작된 일은 생각보다 덩치가 커졌다.

혼자서는 절대 완성할 수 없다는 직감. 그 후 경환 형과 준이 형은 노래를 듣고 셋이서도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다 작업실로 찾아온 나머지 세 명의 멤버들까지 합세해서 밤새 하나의 곡에 매달렸다.

찬이나 세빈이는 아직 작곡의 기반 지식이 부족했지만, 누구보다 날카로운 감으로 자신들의 느낌을 전했다.

그걸 들은 내가 기본 멜로디를 재빨리 만들어 이런 느낌? 하고 물으면 경환 형과 준이 형이 더할 건 더하고 뺄 건 빼면서 다듬었다.

그 과정에서 영빈 형은 건반으로 여러 소리를 만들어서 곡에 부족한 느낌을 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곡에, 처음 세빈이가 말했던 이름을 붙였다.

‘Pluto’

모두가 달려들어서 만든 곡이라 가사도 함께 만들기로 했다.

그 덕분에 다음날은 반쯤 좀비처럼 하루를 보내야 했지만 우리는 그 후로 눈을 마주칠 때마다 서로를 향해 씩 웃었다.

우리끼리 무언가를 해냈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서, 그게 너무 간지러워서 자꾸만 헤프게 웃었다.

가사까지 붙이면 그때는 팀장님에게 말할 예정이었다.

물론 곡은 다시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야 더 세련되고 멋들어진 노래가 될 테지만 일단은 우리 손으로 완성하고 싶었다.

“일단 그냥 생각나는 대로 다 적고 한꺼번에 더하고 빼고 해보자.”

“그냥 형들이 잘 쓰니까 형들이 써보고 다 같이 보는 게 낫지 않아요?”

“그것보다 한 줄이라도 네 마음이 들어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세빈이는 자신 없다는 눈으로 하얀 종이를 바라보았다.

팬송을 만들 때나 가끔 형들 작업할 때, 구경하거나 의견을 조금 말하는 건 해본 적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곡 작업에 참여해본 적 없었기에 자기 때문에 곡이 망가지면 어쩌냐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런 우리 막내가 기특해서 말랑한 볼을 양손으로 붙들고 조몰락거렸다.

“세빈아, 네가 이 곡에 이름을 줬잖아. 그러니까 분명 좋은 가사를 뽑아낼 수 있을 거야.”

“혀, 형. 이건 좀 노코….”

포잉의 분홍 젤리만큼이나 마음의 평화를 주는 촉감이었다.

슬며시 찬이도 손을 뻗어 세빈이 볼을 잡길래 한 손을 놔줬다. 그랬더니 이번엔 영빈 형이 세빈이 머리를 쓰다듬었고, 경환 형이 아쉽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형들의 지극한 사랑이 버거웠던지 세빈이는 결국 형들을 모두 떨쳐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쫌!”

“막내가 화낸다!”

“세빈이 폭주?”

“난 방에 가서 쓸 거야!”

세빈이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 같아진 건 형들이 주물러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우리는 즐거웠다.

그런 우리를 포잉이 참으로 하찮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뭐.’

‘아니다, 계약자 놈아.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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