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hurt(7)
왜 그 사람들은 우리를 아프게 하려고 해요? 우리는 그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 않았는데.
회의실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의 찬이가 회사 사람들에게 했던 말이다.
그리고 그 말에 어른들은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너희가 당연히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시기와 질투니, 무시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미안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익숙한 사람들의 얼굴은 대답을 듣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
차라리 이전에 제논 엔터와의 싸움에서처럼 무어라 말을 해줬으면 답답함이라도 덜할 텐데.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수많은 말이 그들의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걸, 적어도 나는 보았다.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소현 팀장님, 홍보실의 대리님, 우진 형, 그 외에도 늘 우리를 위해 고생하고 있는 직원분들은 우리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대응을 위해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내용이 익숙한 말풍선 모습으로 허공에 둥둥 떠다녔다.
그 모습에 나는 적어도 우리 애들이 맨몸뚱이로 세상에 내쳐질 일은 없겠구나 하고 조금 안심했던 것 같다.
* * *
언래블 체육 대회 촬영을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은 날의 일이었다.
체육대회의 여파로 온몸이 쑤신다며 흐느적대다 이제야 간신히 평소의 컨디션을 되찾은 직후였다.
온갖 흑역사를 아낌없이 생성한 덕분에 우리는 숙소에서도 러그 위를 구르며 괴로워했고, 최대한 멀쩡하게 편집해달라고 감독님을 붙들고 우는 시늉도 했었다.
물론 감독님은 자신만 믿으라며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셨지만, 그 말은 최대한 우리를 망가트리는 편집을 하겠다는 다짐 같았다.
찍찍이 달리기의 여파가 컸던지 가벼운 몸살까지 앓았던 우리는 내일 화보 촬영에 대비해 몸을 최대한 아끼고 조심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뜬금없이 우리 인성에 대한 논란이 기사로 떴다는 말을 우진 형에게 전해 들었을 때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따로 불화가 생겼던 건 데미갓 뿐이었고 그 후에는 언제나 좋은 이미지를 남기기 위해 기꺼이 허리를 접어가며 인사하고 다녔다.
뒤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는 여태까지 인연을 맺어온 모든 분과 꽤 잘 지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락처를 주고받은 분들에게는 늘 먼저 잘 지내시냐는 안부 연락을 남겼고, 같은 가요계 선배님들에게는 더없이 깍듯이 대했다.
오죽하면 이영진 형님은 준이 형에게 우리가 너무 얌전해서 놀리는 맛이 없다고 투덜댈 정도였다.
기사 내용에 대해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고 그저 조심하라는 말만 하던 우진 형은 우리가 기사 찾아볼 거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패션쇼에서 이재영 씨랑 트러블 있었다며. 윤혁이한테 들었어.”
우리는 이재영이 누군지 이름은 가물가물했지만, 키스 형의 이름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우리한테 시끄럽다고 했던 사람이지?”
“맞는 거 같은데? 근데 이제 와서 갑자기?”
순식간에 억울한 얼굴이 된 찬이가 우진 형을 바라보자 형은 한숨을 내쉬며 찬이 어깨를 토닥였다.
“쇼 관련해서 이런저런 인터뷰가 꽤 많이 나왔는데 하필이면 좀 질이 안 좋은 데랑 했더라고. 거기서 몇 마디 한 것 같은데 별거 아냐.”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우진 형의 얼굴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행동을 더 조심하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노래를 만들고 춤을 연습하면서 팬들에게 보일 영상을 찍고.
더군다나 곧 있을 팬클럽 창단식에 맞춰 새로운 무대를 선보일 준비를 하느라 하루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팬클럽 창단식은 단순히 우리 팬클럽 생겼어요! 하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보통 팬들과 아이돌이 모여 무대를 보여주고 질의응답도 하면서 서로가 함께하게 된 기념비적인 날이라며 축하해주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매년 그 날짜가 되면 새로운 생일이라며 팬들을 축하해주기도 하고 팬미팅을 열어 다 함께 즐기는 무대를 뽐내기도 했다.
콘서트와는 또 다른 하나의 축제였다.
망둥이의 난입 이후 회사 대응에 불만을 품었던 애들도 지금은 그때 그 선택을 이해하고 회사에 대한 신뢰가 조금 더 높아진 상황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기사가 떴다고 일일이 그 상황에 관해 설명하고 부인하는 건 또 다른 논란을 만들 빌미를 줄 수도 있었고.
잠시 이리저리 생각에 빠졌던 나는 누가 툭툭 건드리는 느낌에 고개를 홱 돌렸고, 무시무시한 눈을 한 제영 쌤과 시선이 마주쳤다.
“히끅!”
“연습 중에 딴생각을 해? 우리 지환이가 삐약거리기 시작하더니 빠져가지고?”
안 그래도 귀신같은 제영 쌤 앞에서 내가 너무 넋을 놓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딸꾹질이 나올 만큼 제영 쌤의 시선이 무서웠지만, 열심히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녹여 제영 쌤을 납득시켰다.
이상한 기사가 떴다고 해서 제논 엔터 때 생각이 나서 너무 걱정됐다고.
멤버들에게 말하기엔 또 어떻게 튈지 몰라서 혼자 고민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반성하는 얼굴로 시무룩하게 속삭이자 크게 한숨을 쉬며 넘어가 주셨다.
크게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일이 우리뿐만 아니라 회사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흔적을 남겼는데, 그걸 악용한 것 같아서 아주 조금 양심에 찔렸다.
그렇게 우리는 약간의 걱정은 있었지만 그대로 잊힐 문제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세상엔 우리 생각보다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았다.
화보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우리는 평소처럼 연습실에 있었다.
그러다 편의점이라도 다녀올까 하고 작업실을 나서던 경환 형이 집요하게 따라붙는 시선을 느꼈고, 낯선 사람들이 회사 근처에 있다고 우진 형에게 전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개별 외출이 제한되고 회사 사람들에게는 별도의 지침이 내려진 것 같았다.
미묘하고 어색한 공기에 답답해하던 찰나, 팀장님이 우리를 소집했다.
평소의 소회의실이 아닌 대회의실에 익숙한 얼굴들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소현 팀장님의 설명.
처음에는 그 인터뷰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 걸렸다 금방 사라질 것처럼 보여서 대응하지 않는 것으로 넘어가려 했다 하셨다. 크게 말이 나올만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흔한 인터뷰 하나였다.
하지만 그 내용이 SNS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커뮤니티에서 우리에 대한 말이 나왔다고 했다.
언래블이라는 아이돌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공간에서 우리에 관해 이야기가 오고 간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
그 후 회사에서 파악한 바에 따르면 악의적인 내용의 글이 반복적으로 올라오며, 회사에서 확인되지 않은 멤버들의 사생활이 돌고 있다고 했다.
멤버들의 과거 사진과 노출한 적 없는 가정사 또한 사실 확인도 없이 나돌고 있다고.
“회사랑 숙소 말고는 어디 나가지도 않는데….”
“그 몇 달 전에? 저희 다 같이 영화 보고 온 거 말고는 안 나갔어요.”
“나도 들어서 알지. 너희 일인데 모르겠니.”
소현 팀장님은 그사이 진이 빠진 건지 얼굴이 핼쑥해졌다.
팀장님이 무어라 말을 하려던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정윤 실장님과 대표님, 그리고 배우실의 실장님이 함께 들어왔다.
“다들 고생이 많아요.”
모두가 일어나 인사하려는 걸 말린 대표님은 평소의 인자한 미소는 어디갔는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두 실장님과 제가 함께 온 건 회사 차원에서 엄중히 대처할 예정이라는 걸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회사 이메일에는 우리 팬들이 수집한 자료뿐만 아니라 회사 단위에서 움직여 수집한 자료들이 한가득 쌓여있다고 했다.
그리고 대표님뿐만 아니라 실장님과 팀장님, 우진 형은 그 모든 내용을 직접 다 확인했다고.
“이 자리에 언래블을 직접 부른 건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걸 말해주기 위해서예요.”
“….”
그때까지도 우리는 실감이 나지 않았었다.
외부 접촉이 없었던 탓일까.
학교에서도 별다를 게 없었고, 학교가 아니면 회사, 숙소가 전부라 직접 인터넷에서 찾아보지 않으면 와닿지 않는 것도 있었다.
“우리가 강경 대응으로 노선을 틀면 저쪽에서도 더 높은 수위의 비난을 쏟겠죠. 그 과정에서 여러분들이 차마 눈 뜨고 못 볼 이야기가 튀어나올 수도 있어요. 그래도 회사를 믿고 따라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때 줄곧 조용히 있었던 준이 형이 입을 열었다.
“저희는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저희 애들이 그럴 애들이 아니라는 건 대표님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준 형의 말이었다.
회사를 믿고 따르겠다는 간접적인 표현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과 달리 우리를 모두 불러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대처할 예정인지를 함께 말해주는데 이 정도까지 해주는 회사를 안 믿기가 되려 더 힘들었다.
회사에서 솔직하게 말을 해주는데 우리가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서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주고받은 후, 대표님은 실장님들과 함께 회의실을 먼저 나섰다.
그리고 그때, 찬이가 힘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우리를 미워하는지 모르겠다고.
* * *
좋은 일만 가득 있어서 씩씩하던 멤버들이 한 꺼풀 기가 꺾여 축 늘어지는 걸 알아챈 팀장님은 우진 형과 석환 형에게 부탁해 우리를 일찍 숙소에 보내주셨다.
터덜터덜한 몸짓으로 씻고 러그 위에 모인 우리는 별다른 말 없이 한동안 어색한 침묵으로 시간을 보냈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꼼지락대던 세빈이가 불안한 듯 눈을 굴렸다.
“얘들아, 앉아봐.”
“네엥….”
하준 형이 멤버들을 부르자마자 기다렸다는 자리에서 발딱 일어난 멤버들이 형의 주변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그 모습이 간식을 기다리는 반려견 같아서 나도 모르게 픽 웃어버렸다.
“어쭈, 웃어? 왜 웃냐.”
“어, 음. 경환 형이랑 찬이가 커다란 개 같아서?”
“어감이 이상하잖아, 멍멍이라든가 댕댕이라든가 좀 표현 좀….”
“아, 그러네. 강아지라고 할 걸 그랬나?”
며칠간을 긴장 상태로 보낸 탓에 어색해졌던 숙소의 공기가 짧은 대화로 다시 따뜻하게 바뀌었다.
굳은 얼굴이었던 준이 형도 결국 웃어버리더니, 손을 뻗어 경환 형과 찬이를 끌어안았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이야기하자고 하고 싶었어. 그래서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는데….”
지금 누군가 작정하고 벌이는 이 악의 가득한 일들은 회사에서 정리한다고 해도, 우리가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른다면 또 다른 억측을 불러올 수 있다.
하준 형은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 같았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 나.
어머님과 함께 자란 경환 형.
지금의 아버지가 양부인 찬이.
무슨 일에서인지 가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세빈이.
멤버들의 개인사를 대략 아는 건 회사와 준이 형뿐이었다.
그래서 그것들에 대해 우리가 직접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입에 담지 않으려 했던 하준 형이었다.
앞으로 우리는 함께할 많은 시간이 있으니 언젠가 때가 되면 서로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자꾸 갑자기 이런 일들이 생기니 우리끼리 대화는 조금 나눠야 하지 않을까 했다고.
“그런데 그냥… 이야기 안 해도 어떤가 싶기도 하네, 너희들 보니까.”
“뭐야, 왜 준이 형까지 스님처럼 굴어요. 화니도 가끔 보면 도인 같은데.”
“내가 왜 스님이야? 도인이랑 스님은 다르거든?”
“가끔 혼자 해탈한 것처럼 굴잖아. 키스 형이 뭐라더라… 너보고 등산? 뭐였지? 여튼 뭐 할 거 같다고 했는데.”
찬이의 엉뚱한 발언에 영빈 형이 중얼거렸다.
“등산은 산에 오르는 거고…. 등선이겠지, 찬아.”
“어쨌든 뭐 뜻만 통하면 됐죠.”
“우리 애가 이렇게 씩씩하게만 컸네.”
그 며칠 동안 말은 어떻게 참은 건지 말이 한번 나오기 시작하니까 말문이 트인 애들처럼 온갖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말만 터진 게 아니라 긴장감도 함께 터졌는지 준이 형이 부를 때까지만 해도 곧게 앉아있던 애들의 자세가 다 흐트러졌다.
그러니까 평소처럼 드러누워 버렸다는 뜻이었다.
경환 형 밑에 깔려서 짜부라져 있던 세빈이가 다시 집중하라는 듯 경환 형을 밀어내고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외쳤다.
“아니아니, 이럴 게 아니라! 준이 형은 우리가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아야 하지 않냐는 거잖아!”
“뭐, 그랬는데 그게 굳이 중요한가 싶기도 하고.”
“형까지 그렇게 해탈하면 안 되지!”
우리 막내도 씩씩하게 크는 건 좋지만 찬이 닮으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