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hurt(3)
서울로 올라오는 우리 품에는 대전에서 유명한 그 빵집의 커다란 쇼핑백이 하나씩 안겨 있었다.
유명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늦은 밤 도착해서 호텔, 연습실, 쇼 현장에 있다가 그대로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라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더군다나 계속 활동 중이라 달콤한 것들을 사자고 하기엔 양심이 무척이나 콕콕 찔렸다.
다만, 평소에도 먹는 것에는 진심인 멤버들을 생각하니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아쉬움을 안고 차 문을 연 우리 앞에 뜻밖에도 쇼핑백이 하나씩 놓여있었다.
“이거 진짜 인당 하나씩 먹어도 돼요?”
“그렇다니까.”
“다 먹고 나서 칼로리만큼 뛰라고 하면 안 돼요?”
“이것들아, 쫌!”
빵이 든 쇼핑백을 품에 소중히 안아 든 멤버들은 팀장님의 말에도 쉽게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몇 번이나 다시 묻고 대답을 들은 후에야 찬이는 헤벌쭉 한 얼굴이 되었고, 영빈 형은 빵 봉투를 소중히 만지작거렸다.
평소에 먹는 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준이 형까지 신기한 듯 쇼핑백을 만지작거렸다.
룸미러로 이런 우리 모습을 확인한 우진 형이 푸근한 얼굴로 말했다.
“새벽 애들한테 고맙다고 얘기해. 원래 회사 경비로 사려던걸 걔네가 자기들이 사겠다고 우겼거든.”
“진짜요? 헐, 뭐야… 감동이잖아.”
“그 형들은 또 언제 그걸 챙겼대요. 어휴….”
우리랑 내내 붙어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이렇게 짬을 내서 챙긴 건지, 괜히 형들이 아니구나 싶어서 조금 멋있어 보였다.
“세빈이 벌써 잠들었네.”
방금까지 빨리 숙소 가서 빵 먹고 싶다던 우리 막내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목베개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세빈이는 차에서 잘 때는 참 귀여운데.
뽀얗고 분이 묻어날 것 같은 얼굴에 젖살 때문인지 볼만 살짝 통통해서 아직 얼굴이 귀염상이었다.
도롱도롱 숨소리를 내며 잠든 세빈이를 힐끔거리며 보던 찬이는 기어코 세빈이 볼을 쿡 찔렀다.
“야, 자는 애한테 뭐해.”
“평소엔 못 만지게 하니까 지금이라도 만져보려고 그러지.”
“그러다 깨면 너 욕 먹는다?”
유난히 볼이 통통해서 나뿐만 아니라 모든 멤버들이 틈만 나면 세빈이 볼을 가지고 조물딱거렸다.
우리는 귀여워서 잡아당기고 만졌다고는 하지만 당사자는 너무 애 같다고 싫어해서 최근에는 다들 자제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는 애를 건드리는 건 좀.
“안전 벨트 제대로 안 매냐, 인마. 똑바로 앉아.”
“칫.”
“제발 차 안에서는 좀 얌전히 있어.”
뒷좌석에 앉은 세빈이를 괴롭히던 찬이는 결국 우진 형과 준이 형에게 혼나고 말았다.
그러게 하지 말라니까. 으휴.
그렇게 찬이랑 투닥거리던 것도 잠시, 어느 순간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니 숙소 앞이었다.
“세빈이 내가 업을게. 짐 챙겨.”
“어어. 애가 영 잠을 못 깨네.”
피곤했는지 맥을 못 추는 세빈이를 영빈 형이 업도록 도와준 후, 준이 형이 아직 잠에 취한 우리를 하나씩 끄집어냈다.
겨우 정신을 차리니 우진 형과 팀장님까지 우리 짐을 들고 있어서 받으려 했지만, 결국 그대로 숙소로 떠밀렸다.
“잘 쉬고 내일 보자, 병아리들.”
“넹. 조심히 가세요….”
“낼 봬요!”
찬이는 잠에 취해 흐느적대면서도 우진 형과 팀장님을 향해 손을 팔랑이며 인사를 건넸고, 경환 형은 잠이 깼는지 대충 쌓인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니, 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
이것으로 경환 형에겐 자기 옷보다 저 빵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충 각자 짐을 챙기기 시작한 우리는 다음 주에 이어질 부산 쇼를 떠올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도시별로 모델이 겹치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오르는 경우도 많아서 현장에서 직접 못 보게 된 건 아쉬웠다.
“부산 쇼에는 못 가서 아쉽다….”
“부산 쇼에 그 창원 소방서 대원분들 오시는 거였지?”
“맞아. 민수 형님이 초청했다고 하더라.”
특히나 부산 쇼에는 ‘무사이’에서 민수 형님과 같이 무대를 한 창원 소방서의 대원분들이 자리를 빛내주신다고 해서 더 아쉬웠다.
영빈 형이 세빈이를 침대에 눕혀놓고는 ‘에고’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털썩 앉았다.
그 소리에 정신이 슬슬 돌아온 나는 슬금슬금 러그에 누우려던 경환 형의 어깨를 붙잡았다.
“형.”
“…안 되냐?”
“네. 안 돼요.”
“이 집요한 놈.”
“그래도 안 돼요.”
침대야 개인이 쓰는 거고 커버 벗겨서 빨면 되니까 그렇다 쳐도 다 같이 뒹구는 러그는 용납할 수 없었다.
심지어 세탁하는 것도 옷에 비하면 쉽지 않아서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아무 생각 없이 러그에 오르려던 힘찬이도 날카로운 내 눈빛에 멈칫하더니 러그가 깔리지 않은 영빈 형의 옆자리에 앉았다.
“땀을 그렇게 흘렸는데 당연히 안 되죠. 씻고 누워요.”
“얘는 어떻게 이렇게 칼 같냐.”
한탄하듯 중얼거리는 준이 형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하죠.”
“콜.”
안락한 뒹굴거림을 위한 샤워 순서는 여느 때와 같이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해졌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평화롭고 아늑한 저녁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 * *
언래블 스토리는 크게 두 종류의 영상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멤버들의 숙소, 회사 생활과 미션이라고 불리는 개별 주제를 가진 영상.
초반 숙소 생활을 촬영한 영상이 차곡차곡 쌓여있지만, 제논 엔터와 최태성의 대환장 파티 때문에 해당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공개된 내용은 회사에서 멤버들이 연습하는 영상과 팬 사인회, 프로그램 준비 영상들뿐이었다.
보통 5분에서 10분 남짓의 영상들이 위캠의 공식 계정을 통해 공개되곤 했고, 팬들의 좋은 덕질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소현 팀장은 슬슬 숙소 생활 영상을 공개하고자 정윤 실장과 논의하고 있었고, 정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차곡차곡 다져온 인지도가 이번 패션쇼를 통해 개화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게 이번 애들 패션쇼 사진인 거죠?”
“네. 저희 예상보다 훨씬 징후가 좋아요.”
소현 팀장이 내민 종이에는 2집 공개 후 음원 사이트의 순위 변동 추이가 그래프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 아래는 각 시기마다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1집 때 몇 가지 이슈로 잠시 높은 순위를 치고 올랐다가 빠르게 사라졌던 것과는 달리, 이번 미니 앨범의 타이틀은 묘한 그래프를 그렸다.
“‘폭풍전야’가 차트인 하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다 89위에서 조금씩 올라갔었지만, ‘Confusion’은 처음 며칠을 제외하면 아예 차트에 못 들어갔었지.”
“네. 팬들이 스밍 리스트에는 넣었지만, 아무래도 노출이 훨씬 적었으니까요. 라디오에서도 거의 나오지 않았죠.”
하지만 지금은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폭풍전야는 차트 아웃되는 날이 더 많아졌다면, 컨퓨전은 갑자기 차트인 하더니 순위가 오르고 있었다.
“새벽과의 연습 영상이 이슈가 된 것도 있지만, 무겁고 무서운 느낌의 ‘폭풍전야’보다 밝은 분위기의 ‘Confusion’이 대중이 듣기에는 거부감이 덜한 것으로 보입니다.”
차트인도 못했을 때는 팬이 아닌 사람들은 아예 들어볼 기회조차 없었다.
음원 사이트에서 1위부터 100위까지의 곡을 보통 플레이리스트로 지정해두는 탓에, 굳이 팬이 아니더라도 차트 인한 음악을 듣는 사람은 제법 있었다. 그러나 차트에 없는 곡을 팬 아닌 사람이 찾아 듣는 데에는 어떠한 계기가 필요했다.
팀원들과 A&R팀까지 달라붙어서 분석한 결과를 받았을 때 소현 팀장은 재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큰 계기는 역시 그거죠.”
“무인도랑 쇼가 제일 컸다는 거지?”
“네. 커버송 때도 그렇고, 지환이가 팬 몰이에 특화된 건가 싶어요.”
방금까지는 상사에게 보고하는 상황이라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차분하게 보고서에 대해 브리핑했었다. 하지만 지환이에 관해 얘기하며 소현 팀장은 자기도 모르게 조금 웃어버렸다.
숙소에 데려다주는 동안 잠에 취해서 휘적거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은 기존 팬들의 이탈을 방지하고자 꾸준히 영상을 올려 푸시를 하면서, 작은 프로라도 괜찮다 싶으면 멤버들을 출연시키려 영업에 열중했다.
그러던 중, 추석특집으로 방영될 예정인 힐링캠프의 홍보 영상이 올라오면서 의도치 않게 허니비 사의 7초 광고 영상과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 것이었다.
두 영상 모두 회사의 지속적인 물밑작업 덕분에 ‘Confusion’이 삽입되어 있었다.
통통 튀는 듯한 유쾌한 느낌의 멜로디 덕에 광고주도 PD도 나쁘지 않은 곡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거기에 아이콘택트의 모습이 더해지면서 지환이와 찬이, 하준이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
- 힐링캠프에 ‘혼자 가고 싶어요.’ 얘 누구야?
- 이 찐빵 닮은 애 이름 아는 사람???
- 아이콘택트 교회 오빠 이름 아는 분!! 급해요!
이런 이야기들이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왔고, 그걸 팬덤 솜뭉치들이 열심히 다른 커뮤니티로 퍼가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1집 당시 회사에서 분석했던 팬덤의 성향은 보호자에 가깝다고 했었다.
워낙 처음부터 사건이 많았던 탓인지 멤버들의 보호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그들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팬들은 멤버들 성향을 닮아간다는 말처럼, 그전까지는 보호에는 적극적이나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모양인지 홍보에 적극적이진 않았다.
일부 팬들은 회사에서 못 챙긴 영상에 직접 외국어 자막을 달아 영업에 열을 올리기도 했지만, 집결력에 비해 홍보는 약했다.
하지만 이번 미니 앨범부터는 그 성향이 조금 바뀐 듯싶었다.
분석하는 입장에서는 제법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서울 쇼에서 건진 한 장의 사진이 기름을 활활 부어줬다.
그동안 본적 없었던 신인 기자의 사진 한 컷이었다.
“오늘 쇼 영상 풀리면 ‘Confusion’ 순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발렌느 화보 촬영 요청도 수락했다고 했죠? 뭐든 적극적으로 해보세요.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죠. 대표님과 이사진에는 제가 말할게요.”
정윤 실장의 손에 서울 쇼 당시 멤버들의 사진이 들려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정윤을 바라보던 소현의 얼굴에도 어느샌가 그와 비슷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 * *
“요리조리 쑥쑥!”
“그만해!”
“크아앙!”
“그만하라고!”
“우리 형아 일케 일케 컸어요?”
처음 촬영했던 허니비 사의 청소년용 영양제 광고가 공개되면서, 찬이는 멤버들의 놀림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이게 다 힘찬이가 평소 부지런히 쌓아둔 업보 스텍 덕분이었다.
세빈이는 광고 영상에서 찬이가 했던 모션을 흉내 내고 있었고, 경환 형은 찬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었다.
둘 다 어찌나 즐거워 보이던지 준이 형이 차마 말리지 못할 정도였다.
공개된 영상에서 찬이 멘트가 너무… 그래, 좋게 말해서 귀여웠고, 솔직히 말하면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없어질 것 같았다.
7초 영상에서는 교묘하게 잘려서 스토리를 알 수 없었던 광고가 풀로 공개된 영상에서는 한편의 애니메이션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지금 세빈이가 찬이를 쫓아다니며 외치는 저 ‘요리조리 쑥쑥’이 그 영양제의 이름이었다. 광고 영상 속 찬이는 그 이름을 기운차게 외치고 있었다.
“빈이 형, 지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제발 조용히 해….”
광고에서 와이어 줄에 몸을 맡긴 채 찬이에게 영양제를 건네는 역할을 했던 영빈 형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저 화살이 언제든지 영빈 형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그림, 소위 천지창조라고 불리는 그 장면처럼 손끝으로 영양제 통을 내밀던 그 모습이 머릿속에 콕 박혀버렸다.
영상에서 찬이는 작은 몸집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다 하늘을 향해 도와달라고 외친다.
그때, 때마침 떨어지던 경환 형의 얼굴을 한 별똥별이 허공에 춤을 추듯 ‘ㅇㅇ’라는 글자를 만들어낸다.
처음 대본 받았을 때는 듬직한 저 얼굴이 별똥별이 될 거라고 아무도 예상 못 했지….
그 순간 멤버들의 슬픈 표정을 애써 털어내며 화면에 집중했다.
잠시 후, 하늘의 글자가 흩어지면서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허공에서 영빈 형이 등장한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찬이를 힐끔 바라본 영빈 형이 명화의 한 장면처럼 옷자락을 휘날리며 영양제 통을 우아하게 내미는데….
그때 찬이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영양제의 이름을 힘차게 외친다.
“요리조리 쑥쑥!”
지금 세빈이가 찬이를 향해 외치는 저 이름을.
“다음 영상이 너무 걱정된다.”
“저도요….”
연습실을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동생들을 바라보며 준이 형이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진심으로 그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우리 틈에서 광고를 본 포잉조차 질색하는 얼굴로 우리를 훑어보고 연습실을 나가버렸으니까.
광고주님, 감독님,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