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healing(3)
“팀장님, 이거 이상한데요?”
“이상하면 나 찾지 마…. 집에 가고 싶다, 진짜.”
소현은 퀭해진 얼굴로 자신을 쫓아온 부하직원의 시선을 피했다.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해야 할 일이 많았던 탓에 야근에 찌들어 집에 제대로 들어간 날이 드물 정도였다.
멤버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니 서포트해야 하는 회사도 덩달아 바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대표님의 요구대로 팬클럽 창단을 같이 밀어붙이느라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다 때려치울까 하고 품 안의 사표를 만지작거린 게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아니, 초동 집계 나왔는데 숫자가 이상하다니까요!”
“?!”
건네받은 종이에 적힌 숫자가 이해가 안 돼서, 소현은 눈을 몇 번이고 비볐다.
처음에는 예판 물량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서 속이 상했었다.
곡의 분위기상 호불호가 갈릴 거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었다.
언래블은 신인이지만, 첫 앨범도 회사의 기대보다 준수한 성적을 거뒀었다.
차트 인 해서 괜찮은 성적을 찍기도 했고, 금방 물살에 떠밀리듯 사라졌지만 상당한 기간 차트 진입을 반복했다.
하지만 자꾸 이상하게 마가 낀 것처럼 활동 내내 방해받는 기분이었다.
회사 내부의 문제가 난잡해서 정리하느라 힘들었고, 수습된 후 조금 좋아진다 싶으면 악재가 덮쳤다.
대세라고 불리던 아이돌과의 악연은 신인 아이돌 입장에서는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그놈들이 자기들이 뿌린 죄악으로 나락에 떨어질 때는 또 어땠는가.
가뜩이나 이리저리 맘고생 한 애들에게 흉기를 들이밀었고, 그 때문에 멤버 전체가 상담을 받는 상태였다.
아직도 데미갓의 악질 팬들이 팬레터를 가장해서 회사로 욕설 가득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처음부터 안전 문제로 팬레터를 팀에서 1차 점검 후 애들에게 나눠주고 있었기에 멤버들은 모르는 일이었다.
이번 앨범은 유난히 처음부터 뭔가 느낌이 좋았다.
소현 자신만 그런가 싶어 은근슬쩍 주변에 물어도, 취향은 타는 곡이겠지만 화려해서 보고 듣기 좋은 곡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도 첫 앨범보다 예약 판매 수량이 꽤 늘었고, 열심히 영업을 뛴 덕인지 아니면 한번 털어먹고 싶었던 건지 애들을 찾는 곳도 늘었다.
금방 냉정을 되찾은 소현이 눈앞의 직원에게 물었다.
“갑자기 이렇게 튄 이유 파악됐어?”
“팬들 사이에서 팬 사인회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구매를 조금 미룬 게 아닐까 하는 분석이 있습니다.”
팬 사인회 공지가 조금 늦게 올라가긴 했다.
다만 활동 기간 동안 서울에서 3회 지방에서 3회의 팬 사인회를 개최하려던 초기 기획이, 너무 적다는 의견을 받아 조정되느라 공지 자체가 늦었다.
거기에 더해 인터넷 판매처와 딜을 진행했던 개별 사인회도 판매처의 다른 일정 때문에 밀려서 예판 기간이 포함되지 않은 상태로 뒤늦게 공개되었다.
“첫 팬 사인회 때 임팩트가 컸던 모양이에요. 그때 수준의 팬 사인회로는 준비할 수 없는데 어떡하죠?”
“팬들도 알 거야. 그건 솔직히 팬 사인회라기보다 미니 팬 미팅에 가까웠지.”
겨우 팬클럽 창단 준비가 정리되었다 했더니 이렇게 깜찍한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나 실장님한테 간다! 특별한 일 아니면 올 때까지 딜레이 시켜줘요!”
“네네!”
방금까지 힘들어서 때려치울까 고민했던 소현은 보고서에 찍힌 최근 일주일 초동 판매 물량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 * *
팬클럽 창단을 위한 기프트 박스 샘플이 도착했다.
슬로건과 포토 카드, 사진 앨범과 제작 후기가 담긴 DVD, 언래블의 이름이 새겨진 얇은 보조배터리가 들어있었다.
“생각보다 더 괜찮은 것 같은데요?”
“단가 맞춘다고 고생했다, 진짜.”
우진 형이 퀭한 눈가를 꾹꾹 누르며 신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하준 형에게 대꾸했다.
아직 공식 색이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우리는 여태까지 앨범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검푸른 바다를 닮은 미드나잇블루 색을 기본으로 사용했다.
여기에 펄이 들어간 로지브라운 색으로 이름을 새겨 넣어 반짝거리는 느낌도 놓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실용성을 생각해서 에코백이 낫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한번 판매한 적이 있었기에 다른 상품을 넣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더 많았고 결국 보조배터리로 변경되었다.
이전 ON 엔터가 판매한 굿즈는 실용성 제로라 그저 덕질 때문에 샀던 걸 생각하면, 지금 손안의 기프트 박스는 다른 회사 작품인가 싶을 정도였다.
이전 생의 ON 엔터는 언래블의 공식 색으로 핑크색(이름이 길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을, 그것도 애들 앨범이나 분위기랑 하나도 안 어울리는 색을 가져왔었다.
충격받은 팬들의 격렬한 항의 끝에 몇 가지를 놓고 공식 카페에서 투표를 통해 색이 바뀌긴 했는데, 그 과정에서도 무수히 많은 싸움이 있었다고 들었다.
최소한 연관성이라도 있어야 스스로를 납득시킬 텐데 개연성 하나도 없는 색이라 더 항의가 심했다고.
그에 비하면 지금 회사에서는 적극적으로 언래블이라는 그룹과 팬층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 것 같아 무척이나 기뻤다.
“저희도 이거 주는 거예요?”
멤버십 카드를 손에 들고 우진 형을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쏘고 있는 세빈이 모습이 마치 도토리를 쥔 다람쥐 같았다.
“그럼. 이건 샘플이라 안되고, 최종 나오면 너희도 하나씩 줄 거야.”
“우와!”
“괜히 설레긴 하네요.”
“그러니까 일해라, 얘들아.”
“우리 우진 형이 달라졌어….”
이전까지만 해도 그저 허허 웃으며 잔소리하는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우리를 조금 더 단속하는 분위기였다.
무언가 경계하는 것 같아서 괜히 걱정스럽기도 했고.
포토 카드 뒷면에 들어갈 짧은 편지를 끝낸 우리는 우리 품에 저 기프트 박스가 주어질 날을 고대하며 꾸물꾸물 움직였다.
언래블 스토리에 업로드할 영상을 찍기 위해서였다.
문득문득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의 감정이나 피로 따위에 잠식되는 시간들이 있었다.
제대로 잠드는 시간도 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혹시라도 잠결에 헛소리할까 봐 깊게 잠드는 게 두렵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포잉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늘 잔소리를 했지만 이성과 본능이 늘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건 아니니까.
팔다리가 무겁다는 느낌이 들고, 머릿속의 생각이 엉키는 그런 타이밍이 올 때면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천천히 떠올렸다.
이십 년 넘게 보아온 싸구려 형광별이 천장에 붙어있는 내 방이었던가, 낯선 시선들이 날아오는 카메라 앞이었던가.
그럴 때면 어김없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약자야, 뭐 함?’
“환아, 뭐해?”
현실에 돌아온 나는 눈을 몇 번 깜박이다 웃는다.
“졸려서 좀 멍했어.”
근심걱정이 가득한 포잉의 투명한 우주 같은 눈동자와, 친애의 감정이 서린, 동경하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또 다친다. 너는 은근히 애가 허당이라니까.”
“내가 졸면서 움직여도 너보다 사고 덜 칠걸?”
“준이 형! 환이 형이 찬이 형 팩트로 뼈 부순다!”
“강세빈, 네가 제일 나쁜 놈이야!”
금세 왁자지껄해지고 웃음소리와 함께 팔랑거리며 뛰어다니는 멤버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모두 적응한 줄 알았는데 잠깐 피곤하다고 정신을 놓았더니 금방 이전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정신머리에 고개를 휙휙 흔들었다.
“또 두통이야? 약줄까?”
“괜찮아요. 그냥 조금 졸려서 그런 것 같아요.”
한 번씩 감정이 요동칠 때면 어김없이 두통이 몰려와서 우진 형은 늘 타이레놀을 가지고 다녔다.
잘 넘어지고 여기저기 잘 긁히는 찬이를 위한 밴드도 물론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 혹시라도 약 필요하면 말해. 알았지?”
“예압.”
눈썹을 들썩거리며 걱정스럽다는 얼굴을 어떻게 감추지 못하는 우진 형의 얼굴이 현실로 뚜렷하게 다가온다.
처음 대면했던 병실에서의 모습과 응급실에서 나를 타이르던 모습이 함께 떠오르면서 이것들이 온전한 내 기억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아, 이거 어떡해! 지환아!!”
“야 이 화상아!”
멍청하게 눈만 깜박이고 있었더니 정신 차리라고 그러는 건지 그새를 못 참고 우리 찬이가 사고를 치고 애타게 나를 부르고 있었다.
촬영을 위해 샘플로 준비되어 있던 퍼즐을 바닥에 엎어버리는 건 소품 준비해 준 스태프들이랑 싸우고 싶다는 걸까.
고의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힘찬이 손이 보존이나 생산보다 파괴 쪽에 더 큰 재능이 있다는 걸 알기에 누누이 소품은 되도록 손대지 말라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항상 호기심을 참지 못해 기어코 이렇게 한 번씩 사고를 쳤다.
“이 웬수야!”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
“다행히 500피스니까 빨리 맞춰요, 우리.”
“킁… 난 여기 얌전히 있는 게 좋겠지?”
찬이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우리가 재빠르게 움직이자, 세상 무너진 표정을 하고 우리를 바라보던 소품 담당자들이 달려와 손을 보탰다.
어떻게든 빨리 수습하고 촬영을 끝내야 그들도 퇴근할 테니까.
그렇게 중간중간 터져 나온 자잘한 사건 사고를 잘 마무리해서 언래블 스토리의 촬영도 무사히 끝냈다.
오늘 촬영을 돕기 위해 중간쯤 방문한 새벽 형님들의 과도한 애정 공세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했지만, 그것도 이제는 조금씩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하준 형이 조용히 나를 불러낸 건 모든 일정을 마친 우리가 숙소에서 널브러져 있기 직전의 일이었다.
“지환아,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네?”
“너 오늘 종일 좀 이상했어.”
다시 그 진실의 공원에 갈 수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숙소 바로 근처에는 늦게까지 열려있는 카페들도 제법 있었고 놀이터도 있었다.
날이 더워서 잠시 고민하던 하준 형은 결국 날 카페로 끌고 갔다.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창가에 자리 잡은 준이 형이 복숭아 아이스티와 자신의 카페 라떼를 사 왔다.
“…난 왜 아이스티?”
“너무 어릴 때부터 커피 마셔버릇하면 안 좋아.”
“그러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요.”
“어허.”
입을 삐죽거리는 내 불만을 깨끗하게 무시한 준이 형이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평소에도 가끔씩 네가 넋이 나간 것 같을 때가 있긴 했는데, 오늘은 유독 조금 이상해서.”
“그랬어요? 졸려서 그런 건지 종일 조금 멍하긴 했죠….”
이유를 입에 올릴 수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육체의 피로로 이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혹시 형한테는 말할 수 없는 어떤 고민 같은 게 있으면, 다른 사람이나 회사 분들한테라도 꼭 말을 했으면 좋겠다.”
“에이, 형한테 말 못 할 일이면 누구한테도 말 못 할걸요.”
“그렇게 말해주니까 고맙고.”
반듯한 이마가 잠시 찡그려지며 조심스럽게 나를 살피듯 말했고, 내 대답은 언제나와 같았다.
잠깐의 침묵 사이로 음료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소리, 매장 내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내려앉았다.
그사이 할 말과 마음을 정리한 듯한 준이 형이 조심스럽게 단어 하나하나를 고심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 상담 있잖아.”
“네. 찬영 선생님이셨던가, 그분이랑 하는 거 말하는 거죠?”
“응. 맞아. 혹시 그게 널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
음료가 담긴 유리컵의 표면을 톡톡 두드리던 하준 형이 나를 바라봤다.
“네가 간혹 굉장히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거든. 정신이 다른데 팔려 있는 건지, 아니면 어디가 아픈 건지 싶을 만큼.”
“아….”
“혹시 상담을 받은 직후에 그런 거라면 그 상담이 되려 너한테 악영향을 주는 건 아닌가 싶어서. 아, 물론 형이 그쪽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그냥, 어, 그러니까….”
말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말이 꼬인 건지, 평소의 달변은 온데간데없이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였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근데 상담 때문은 아니고 그냥 머리에 과부하 걸릴 때가 가끔 있어서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내 대답에 머쓱했던지 작은 헛기침과 함께 나에게 꽂혀 있던 시선이 창밖으로 돌아갔다.
갑자기 이런 하준의 모습도 지금 이 광경도 조금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형님, 내가 걱정돼가지고, 응? 일케 따로 얘기하려고 자리도 만들고 말이에요.”
“아니, 난 리던데 당연히 챙겨야지. 혹시나 억지로 하고 있는 거면 회사랑 담판 짓는 한이 있어도 상담 선생님을 바꾸던 어떻게든 해야 하니까.”
옆구리 쿡쿡 찌르며 은근슬쩍 농을 걸었더니, 더 버벅거리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휴, 아무 일도 아니면 됐어. 이놈아.”
아마 하준 형은 모를 거다.
늘 이렇게 누구보다 빨리 내 상태를 알아채서 도와주려는 그의 모든 말과 행동들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