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49)화 (149/456)

149. 사랑하게 될 거야(2)

언래블은 담당하는 내담자들 중에서도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가진, 그중에서도 신변의 위협까지 받은 특수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이었다.

보통 이 정도로 직접적인 경험은 금전 손실 등을 이유로 성립되는 원한 관계에서나, 혹은 관계의 상실을 현실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견디지 못하는 경우에나 나타나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신문 기사로 접하게 되는 사건들. 전 연인을 감금,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경우, 금전적 손해로 악의를 품고 복수를 감행하는 경우들이 보통이었다.

원활한 상담을 위해 관련 기사를 확인하고 대략적인 상황을 관계자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하준이라는 팀의 리더와 영빈이라는 청년이었다.

첫 상담 당시에서도 상당히 건조하지만 뚜렷한 본인의 의지를 관철한 사람들이었다.

반면, 최태성이라는 인물이 일으킨 일련의 사건들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되는 지환은 그들과 사실상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컴백 준비로 잠시 상담을 미루게 된 노찬영은 회사에 부탁해 외부 유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아이들의 일상을 찍은 영상을 확인했다.

카메라가 자신들을 찍는 상황이 익숙한 아이들이니, 평소의 모습을 찍은 영상에서 무언가 심리 상태를 유추할 만한 정황을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실 이 아이들이 연예인이기 때문에 더 우려스러웠다.

낯선 인물이든 익숙한 인물이든, 누군가 가장 안정된 심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집(숙소)에 흉기를 들고 침입했다는 건 굉장히 큰 두려움을 안겨준다.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극도로 높아지고 세상에 안전한 장소가 없어지니,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 힘들어진다.

대인기피, 정서불안, 불면, 신경과민, 소화불량 등이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었다.

심각한 자책에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나 이 그룹의 멤버들은 서로에 대한 강한 유대관계를 상담 내내 보인 만큼, 서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에 빠질 수 있었다.

이들의 자책이 ‘나로 인해 이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잠금장치로 인해 최태성이 숙소에 침입하지 못하고 미수에 그친 상태이지만, 그런 것은 당사자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내담자들은 업무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를 쉴 새 없이 만나야 하고 쉽게 집을 옮길 수 없었다.

친밀하지 않은, 타인의 악의에 의한 우발적 범죄였기에 낯선 인물들에 대한 경계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편집되지 않은 영상 안에서 아이들은 절대 홀로 있지 않았다.

둘, 혹은 셋이 무리를 이뤄 항상 같이 움직였고, 개개인으로 흩어지는 것은 개별 스케줄을 소화하는 상황에만 이루어졌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상황에서도 늘 서로 붙어있는 모습을 보였다.

따로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수시로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보내 확인하는 것 같았다.

특히 힘찬이라는 내담자와 세빈이라는 내담자가 유달리 남들과 붙어있었다.

유난히 상담 내내 냉담한 반응을 보인 세빈과 시종일관 웃으면서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하려 했던 힘찬이었다.

그리고, 그 둘을 다른 멤버가 지켜보는 상황이 유난히 많았다.

반면, 경환은 상담 때의 무기력한 모습과 달리 생기가 넘쳐 보였다.

다른 멤버들과 스스럼없이 말하고 장난을 치고 있었지만, 종종 카메라 쪽으로 시선이 가면 행동을 멈추기도 했다.

타인에 대한 불안감이 짙게 남아있는 것으로 보였다.

반면 지환은 늘 멤버들의 한 발자국 뒤에 있었다.

멤버들을 관찰하는 듯한 포지션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멤버들이 지환을 둘러싸고 지키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홀로 있는 지환의 얼굴은 차가웠다.

서늘한 냉기가 흘러나올 것 같은 눈동자에 온기가 담기고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가 허물어질 때면, 어김없이 그 시선 끝에는 같은 팀의 멤버들이 있었다.

매니저와 팀장 등 회사 사람들과 있을 때의 모습과도 확연히 달랐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건 힘찬과 지환을 제외한 세 명과는 어느 정도 상담의 흐름에 진전이 있었다.

마지막 상담에서 세빈은, 평소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지만 누군가 당시 상황을 언급하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데 고칠 수 없냐고 묻기도 했다.

다만, 상담사의 입장에서 우려스러운 것은 이 언래블이라는 그룹의 모든 멤버들이 한 명 한 명의 개인이 아닌 팀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고방식에 매여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경우 전체 인원이 모두 나아지는 게 아닌 이상 심리적 혹은 육체적 증상이 완전히 없어지기 힘들었다.

찬영은 최근 전해 받은 영상의 마지막 부분을 떠올렸다.

홀로 서서 멤버들을 지켜보는 지환에게 세빈이 다가와 활짝 웃는 장면이었다.

뒤따라오던 힘찬은 뾰로통 얼굴을 하고 있었고, 옆에 있던 경환은 무어라 타박하는 것 같았다.

그 뒤에서 천천히 걷고 있던 영빈과 하준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들이 떠올랐다 가라앉았지만, 다행히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찬영은 익숙지 않은 손길로 라디오 앱을 찾아 다운로드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평범하지 않은 내담자들에 대한 호기심, 동정 등 다양한 감정이 일었지만, 인간적인 호감이 더 컸다.

해서 주어진 자료 이상의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직접 음악을 만드는 이들이니 생체적 신호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그들의 곡 안에 녹아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새 앨범이 나왔으니 조만간 다시 상담을 진행할 수 있으리라.

마침, 라디오에서는 ‘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찬찬히 방송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앨범의 주제가 분노라고 했는데… 한 곡은 상당히 거칠고 무거운데, 다른 한 곡은 꽤 발랄한 분위기예요. 곡 분위기 말고 또 다른 차이가 있나요?”

“사람마다 화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잖아요. 거기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그리고 분노가 어디에서 시작되는 건지에 따라서도 반응이 천차만별이잖아요. 그런 차이인 것 같아요.”

“그러면 하준 씨의 분노 해결은 원인을 부순다는 거군요?”

“에? 얘기가 그렇게 돼버리나요?”

하겸 형의 질문에 멤버들이 한마디씩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잘 정리해서 대답해나갔다.

‘Confusion’을 작곡한 하준 형은 이렇게 파괴왕이 되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적당히 농담 섞인 대화, 온전히 앨범과 멤버들에게 집중된 질문 덕에 다들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는 우리의 편이 있다는 것도 심적으로 커다란 안정이 되어 주었다.

“이어서 팬분들이 올려주신 질문이 몇 개 있는데요, 한 명씩 대답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언래블은 화가 나면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하다고 소금별인형 님이 질문해 주셨네요.”

작가 누님이 건네준 종이를 살핀 하겸 형은 하나의 질문을 꺼내왔고, 영빈 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화가 나면 잠을 자요. 이성적으로 생각이 안 되니까 차라리 자고 한 꺼풀 화를 잠재우면 내가 화를 낼 만한 일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더라고요.”

“잠을 잘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요?”

“되도록 잠깐이라도 혼자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죠.”

“히스는 이성적인 편이네요, C.I는요?”

“저는 어지간한 상황에는 화가 잘 안 나요. 그런 면에서는 조금 무뎌서. 화내는 에너지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담담히 말을 이어가는 경환 형의 입술에는 옅은 미소가 머물러 있었지만, 체념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더 크게 다가왔다.

“저런. 자기감정에 너무 무뎌지면 안 돼요. 정 안되면 저기 하준 씨라도 괴롭혀요.”

“갑자기 저를요?”

“그럼 내가 여기서 다른 동생들 괴롭히라고 하겠어요? 하루라도 많이 본 하준 씨가 제일 만만하지, 뭐.”

어리둥절해 하는 준이 형의 얼굴에 다들 웃어버렸고, 밖에서 희미하게 솜뭉치들의 소리치는 게 웅웅거리는 소리로 들려왔다.

준이 형은 화날 때 혼자 소리를 지르거나 기타를 친다고 했다. 회사에 방음 시설이 참 잘 돼 있어서 자주 이용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모습에 우리는 앞으로 말 잘 듣겠다고 열심히 재롱을 부렸고, 하겸 형도, 준이 형도 결국 웃었다.

찬이는 먹는 걸로 푼다고 해서 많은 솜뭉치들이 공감의 메시지를 보내왔고, 세빈이는 사탕을 깨물어 먹는다고 해서 영빈 형이 잔소리를 했다.

이 상하니까 차라리 다른 방법을 찾자고.

“얼음 깨물어 먹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비록 준이 형의 한마디에 어깨가 다시 축 내려앉았지만.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자 하겸 형은 호의가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면 우리 환이는 어떻게 화를 풀어요?”

“잠깐! 왜 지환이만 우리 환이에요?”

“개인적인 애정?”

“형님, 저희한테는 너무 매정한데요!”

‘우리’라는 단어에 찬이와 경환 형, 준이 형이 항의하자 하겸 형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억울하면 그만큼 잘하라고 했다.

“그러게 평소에 자주 연락도 드리고 그래야죠.”

“맞아, 우리 컴백 때 우리 환이만 스밍하고 캡처해서 나한테 보냈다고.”

“저도 노래 들었는데!”

준이 형은 정말 억울해 보였지만 나는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겸 형이 핸드폰을 꺼내 지난 컴백 때 내가 보냈던 메시지를 멤버들에게 보여줬다.

그걸 또 스태프분이 카메라로 클로즈업까지 했으니 방송을 보던 사람들은 전부 보게 생겼다.

“자자, 지방방송 끕시다. 지금은 우리 환이 대답 들어야 하니까요.”

장난기가 뚝뚝 묻어나는 하겸 형의 발언에 나는 카메라를 향해 작게 브이를 그렸다.

“저는 화가 나면 좀 걷는 편이에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히스처럼 혼자 상황을 조금 정리하는 편인가 보네요?”

“네, 맞아요. 적당히 화가 나면 대체로 그 상황에서 바로 해결하긴 하는데. ”

“예를 들면?”

“제가 빨래를 널려고 꺼내놨는데 찬이가 밟고 지나간 적이 있었어요.”

“와, 방금 해놓은걸요?”

“네. 그래서 당장 쫓아가서 등짝 스매싱을 날려서 응징했죠.”

“그건 맞을 만했다네요, 찬이가 잘못했네.”

채팅창을 빠르게 확인한 하겸 형이 솜뭉치들의 반응을 말해주자 움찔한 찬이는 손가락을 꼼질 거리며 실수라고 항변했다.

그날 나한테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멍이 드는 줄 알았다며 불쌍한 척을 했지만, 샐쭉해지는 내 표정에 입을 합하고 다물었다.

그렇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앨범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 근황을 적절히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모두 끝나버렸다.

“아, 아쉽지만 이만 언래블을 보내줘야 할 시간이 다가왔네요.”

“와,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어요? 진짜 잠깐 이야기한 것 같은데.”

“그렇죠? 저도 PD님이 밖에서 자꾸 끊으라고 손짓하지 않았으면 모를 뻔했어요.”

능청스러운 하겸 형의 발언에 우리도 모르게 시선이 PD님에게 돌아갔고, 시선이 갑자기 꽂히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PD님은 손으로 엑스자를 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PD님은 아니라고 하시는데요?”

“어허, 지금 제가 거짓말했다는 거예요? C.I 그렇게 안 봤는데.”

“네? 어휴, 제가 어떻게 하늘 같은 선배님한테….”

마지막까지 웃음 섞인 대화를 나눈 우리는 찾아와준 솜뭉치들을 바라보며 ‘Confusion’을 부르고 방송을 마무리 지었다.

방송이 끝난 우리는 하겸 형과 사진을 찍었고, 다음에 사석에서 골든 아워 선배님들과 다 같이 밥 먹기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후에야 나올 수 있었다.

떠나는 우리 모습에 아쉬워하는 솜뭉치들에게 짧게 인사를 건네며, 앞으로 자주 볼 거라고 달래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우진 형이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얘들아, 오늘 GIVE 앱 켜는 거 어때?”

“저희야 좋죠. 마침 의상이랑 메이크업도 한 상태니까.”

“응, 예판 추이가 괜찮더니 뷰도 꽤 빠르게 올라가고 있나 봐. 팀장님이 오늘 짧게 팬들한테 인사하고 감사 인사 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하시네.”

“좋아요! 해요!”

오늘 미룬 회식을 하기로 했었지만, 회식은 조금 더 늦어져도 큰 상관 없다며 만장일치로 솜뭉치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세팅된 장소에 모인 우리는 활짝 웃으며 방송을 켰다.

사전 예고 없이 시작된 방송이었지만, 접속자는 빠르게 늘어갔다.

“짠! 솜뭉치들 놀랐죠?”

“깜짝 GIVE 앱이에요! 자주 볼 거라고 했죠?”

“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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