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47)화 (147/456)

147. 청춘이 아파(5)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열심히~ 일을 하네!”

“왜 마지막엔 뚠뚠 안 해?”

컴백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연습에 무지막지한 시간을 갈아 넣다 보니 멤버들끼리의 의견 교환이라고 해봤자 숙소에서 최대한 자는 시간을 줄여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이 돼서야 최종 정리를 위한 시간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전에 숙소가 너무 더러웠다.

일주일에서 이주에 한 번 집안일을 봐주시는 분이 오셨지만, 우리는 6명이었고 치우는 사람은 없었다.

정확히는 치우는데 쓸 시간이 없었다.

결국 먼지만 없을 뿐 난장판인 숙소를 먼저 정리하고 회의를 하자는 내 말에 모두 수긍했고, 지금 이 꼴이 벌어졌다.

“도대체 저 노래는 뭐고, 앞치마는 왜 한 건데?”

“청소하는 기분을 내려고?”

“짱구 몰라? 짱구에서 나오는 노랜데.”

넋이 나간듯한 내 중얼거림에 상큼하게 대답하는 찬이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 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빈이는 슬프다는 듯 앞치마를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고.

“저 앞치마는 앞으로 요리할 때 두 번 다시 못 입겠네.”

“자, 대충 정리됐으니까 빨리 회의하자.”

“넵!”

대충 정리된 거실에 상이 펴지고 각자 노트를 든 멤버들이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이번 컨셉에 맞춘다고 머리에 손을 대지 않은 탓에 펌이 풀리고 까만 머리가 삐죽 자라난 찬이 뒤통수가 유난히 복슬복슬해 보였다. 그걸 마구 헝클어줬더니, 뾰족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뭐, 왜.”

“왜 맨날 내 머리만 가지고 난리야.”

“형 머리는 좀 만지고 싶게 생기긴 했어.”

“두상이 예쁜 건가? 동글동글한 게 약간 그 예쁜 돌멩이 같기도 하고?”

이때다 싶었는지 멤버들이 한마디씩 보태자 연필을 쥔 찬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왜 맨날 나만 가지고 그래!”

“예뻐하는 거야.”

“그럼. 귀여워서 그러지.”

“그렇대요.”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멤버들 모습에 연필 끝을 입에 물려던 찬이가 기어코 준이 형한테 등짝을 얻어맞았다.

“지방방송 끄고. 오늘 회의 주제는 다들 알지?”

컴백 무대 때 사용할 멘트들과 표현을 1차적으로 회사에 컨펌을 받았으니, 세부 내용을 이야기해보자는 취지의 자리였다.

“그럼요.”

“에이, 설마 모르는 사람이 있겠어요?”

스프링 노트를 예쁘게 편 세빈이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좋아, 그러면 일단 팀 내 의견이 어떻게 갈리는지 파악해야 하니까…. 자기가 부먹이다, 손들어봐.”

응?

뜬금없는 부먹 타령에 연필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렸다.

그런 내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한 얼굴의 멤버들이 손을 들었고, 나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 잠깐만. 오늘 회의 주제가 뭐라고?”

“뭐야, 환이 졸았어? 탕수육 부먹이냐 찍먹이냐로 싸우다 여기까지 왔잖아.”

“네? 미치셨어요?”

나도 모르게 미쳤냐는 말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쟤 왜 그러냐는 멤버들의 눈초리에 순간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 무슨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갑자기 왜 그래, 컴백 무대 체크하자고 모였잖아.”

“컴백? 무슨 컴백?”

“쟤 또 눈 뜨고 잔다.”

멤버들의 수군거림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아니, 뭔데. 몰카야? 갑자기 이게 무슨….

어안이 벙벙해 있는 사이 경환 형과 내가 쓰는 방의 문이 열리고 포잉이 걸어 나왔다.

아니, 걸어 나와? 포잉이?

포잉은 문을 열고 다니지 않았다. 그저 통과해서 오갈 뿐.

사람도 없는데 문이 열리면 그건 공포영화지.

‘포잉?’

‘지환아, 왜 그래.’

‘…? 너야말로 왜 그래?’

포잉이 제대로 내 이름을 부르고 저렇게 다정하게 말한다고? 이게 무슨 일이야.

이제는 포잉까지 날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총총 걸어온 포잉이 펼쳐놓은 상 가운데 폴짝 뛰어 올라와 앉더니 꼬리로 상을 두 번 탁탁 내리쳤다.

갑자기 이상한 세상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뻣뻣하게 굳어서 사방을 둘러보자, 세빈이와 준이 형이 다가와 어깨를 잡았다.

“지환아, 정신 차려.”

“형, 왜 그래요, 어디 아파?”

“아, 아냐. 괜찮….”

괜찮다고 말하려 했는데 갑자기 둘이 어깨를 잡고 나를 마구 흔들었다.

“이거 좀, 놓고!”

둘에게서 팔을 빼려고 버둥거렸지만 돌덩어리라도 되는 듯 꿈쩍도 하지 않았고, 덜컥 겁이 나서 발버둥을 쳤다.

“ㄴ, 놔줘!”

“지환아? 야, 왜 그래.”

한참을 허우적거리던 나는 힘겹게 눈을 떴다.

어? 눈을 떠?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준이 형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제야 정신을 수습한 나는 멍청한 얼굴로 방안을 둘러봤다.

아, 꿈이었구나.

“악몽 꿨어? 갑자기 끙끙대서 깨우긴 했는데.”

“하, 하하…. 형, 오늘이 며칠이죠?”

“8월 26일. 어제 컴백 무대 했잖아.”

“다행이다….”

컴백 무대도 제대로 했고, 이상한 걸로 싸우지도 않았다.

현실은 다행히 내가 알고 있던 그대로였다.

퀭한 내 얼굴을 바라보던 준이 형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상한 꿈을 꿨다고 대충 둘러대고 정신을 차렸다.

꿈이 너무 뜬금없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정신 차렸으면 씻고 준비하자.”

“넵….”

다행히 컴백 무대는 무사히 끝냈고, 오늘은 아침부터 할 일이 많다고 전날 팀장님이 신신당부했던 것도 기억났다.

멤버들을 하나둘 깨워서 바쁘게 준비하고 우리를 마중 온 우진 형과 함께 회사에 도착했을 즈음, 나는 아직도 멤버들에 대해 다 알려면 멀었구나 하는 한탄을 내뱉었다.

“와, 대박이다. 아니 무슨 꿈을 꿔도 그런 걸 꾸냐?”

“우리 지화니, 탕슉 먹고 싶었어요?”

“아니, 모르겠고. 그냥 꿈을 꿨다고!”

너무 엉뚱한 꿈을 꿨던 탓에 오는 내내 정신이 없었고, 세빈이가 그런 내 얼굴을 살피며 어디 안 좋냐고 물은 게 시작이었다.

준이 형까지 힐끔 돌아보며 걱정하는 듯해서 별일 아니라고, 그저 이상한 꿈을 꿔서 정신이 조금 없다고 했을 뿐이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무슨 꿈인지를 찬이에게 이야기를 한 게 화근이었다.

우리가 진지한 얼굴로 부먹, 찍먹 거수투표까지 하는 꿈을 꿨다는 한마디에 차 안이 초토화가 됐다.

어느 정도였냐면, 평소에는 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우진 형이 사레들려서 기침하다 클랙슨을 잘못 누를 정도였다.

“지환아, 오늘 점심에 탕수육 시켜달라고 팀장님한테 형이 말해볼게.”

“됐다고요…. 탕수육 싫어, 안 먹어…. 찌밤.”

“얘들아, 좋은 아침!”

“팀장님! 지환이 가요!”

“하지 말라고!!”

회의실 가는 내내 시달린 부먹, 찍먹 논란은 팀장님까지 한바탕 신나게 웃고 나서야 마무리되었다.

빌어먹을.

사뿐사뿐 뒤따라오던 포잉도 기어코 한마디 보탰다.

‘꿈은 무의식의 산물이라던데, 계약자야.’

‘제발 너라도 조용히 해줘….’

울고 싶어졌다.

“자자, 그만 놀리고 일하자.”

“팀장님, 너무 함박웃음 짓고 계신데.”

“크흠, 지환이 덕분에 다 같이 즐거운 아침을 맞이했네. 점심은 중국집?”

“팀장님!”

낄낄거리는 멤버들 모습에 치를 떨던 나는 오늘 인터뷰를 위해 준비한 의상을 점검해 주던 서포트 팀 누님들에게 2차 공격까지 당했다.

겨우 너덜너덜해진 정신을 수습하니 인터뷰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얼굴 좀 펴, 잘생긴 얼굴이 아주 엉망이네.”

“누구 때문인지 알면 그런 말 안 할 텐데. 그쵸?”

늘 나에게 변치 않는 지지와 신뢰를 보여주었던 준이 형조차 어젯밤 조금 괴롭혔던 탓인지 다른 멤버들과 함께 신나게 웃어댔다.

“인과응보라고 해둘까.”

상큼한 얼굴로 답하는 저 사람이 내 최애라니, 이럴 리 없다.

인터뷰 장소로 섭외된 곳은 이태원에 있는 한 루프 탑 카페였다.

현대적인 외관과 달리, 안내받은 제일 위층은 나무와 화분들로 잘 꾸며져서 아늑한 숲속에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회사와 꽤 거리가 있었던 탓에 시간에 맞추기 위해 바삐 움직인 만큼 시간에 늦지는 않았지만, 기자님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Baleine의 이서랑입니다.”

“안녕하세요, ON 엔터의 정우진입니다. 언래블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째서인지 정윤 실장님이 생각나는 단정한 분이 차분한 웃음을 머금고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진 형이 나서서 악수를 받았고, 우리는 뒤에서 허리 숙여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언래블입니다!”

인사 연습 그렇게 했더니, 이제는 하준 형 눈빛만 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루프 탑에 다른 손님들은 없었다.

하지만 실례가 될까 싶어 목소리도 조절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방금 전까지 놀림으로 치밀던 짜증은 녹아 없어지고, 금세 또 기특해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먼저 좋아하면 지는 거라고 하나 보다.

내가 앓느니 죽지, 하.

“하나같이 전부 잘생겼네요, ON 엔터에서 자랑할만해요.”

“감사합니다.”

이서랑이라고 본인을 소개해 주신 분은 분위기를 편하게 풀어주려는 듯 칭찬을 섞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셨다.

함께 온 듯한 포토그래퍼 분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우리는 화기애애하게 질문과 답변을 나누고…. 마치 평온한 오늘 날씨 같았다.

“컴백 앨범에 대해서 벌써부터 여러 이야기가 돌고 있는데, 혹시 알고 있나요?”

“네? 무슨 이야기요?”

“언래블의 자체 제작 능력이 어디까지냐에 대해 의견들이 분분해요.”

“아….”

적의가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사람 속이라는 건 겉에 드러난 표정만으로 알 수 없는 법.

다행히 나는 요정님이 함께했고, 다른 건 몰라도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내용 정도는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소개 때 이름을 말해준 덕분에 스킬 사용 조건은 모두 맞춰져 있었다.

[하준은 원래도 입소문이 있긴 했는데, 공지환은 잘 모르겠네. 졸업식 때도 말이 좀 있었는데.]

첫 앨범 때도 우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었다고 했는데 아마 그 일의 연장선이었던 것 같았다.

미리 건네받았던 질문지에는 없던 내용이지만 대답을 미루는 것도 이상한 모양새가 되기에 준이 형에게 눈짓을 보냈다.

“다행히 준이 형이나 경환 형, 아니 C.I형이 많이 챙겨주고, 에단 선생님이나 회사에 다른 분들이 많이 챙겨주셔서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다들 너무 잘 가르쳐주신 덕분에 과분하지만 제가 쓴 곡들이 앨범에 들어가게 됐어요.”

“이번 앨범에 ‘마지막 이야기’, ‘바다’ 두 곡이 지환 군이 작곡한 곡이라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네. ‘마지막 이야기’는 사실 조금 더 전에 만들어진 곡이에요. 첫 공개는 저희 첫 팬 사인회 때 했었으니까요.”

다행히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건네는 질문과 떠오르는 말풍선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다 직설적이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시간제한이 있는 스킬이다 보니 처음부터 쓰지 않고 두었던 건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대부분의 인터뷰들은 처음에는 사전에 주고받은 질문지로 진행하다, 중간부터 협의되지 않은 질문을 한두 개씩 던져오는 식이었다.

오늘도 그런 패턴이지 않을까 싶어서 써보고 싶은 걸 꾹 눌러놨었는데 그 덕에 이 에디터의 생각이 말풍선이 되어 주변을 채우고 있었다.

[그럼 하준, 경환, 지환이 센턴가?]

센터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눈을 깜박이는 사이 찬이에게 질문이 주어졌다.

“힘찬 군은 이번에 타이틀 안무에도 참여했다고 들었어요. 이전에는 꽤 여러 대회에서 수상했던 이력도 있던데요? 영상 봤어요.”

“감사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해서 매일매일 제영 선생님한테 배우고 있어요. 저보다는 세빈이가 새 안무 구상에는 더 뛰어나요. 이번에 함께 준비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세빈 군도 함께 아이디어를 제공한 건가요?”

이미 기사도 나갔던 일을 이 사람이 모를 리 없었다.

일부러 떠보기 위해서 하는 질문인 게 뻔했지만, 다행히 찬이는 우리랑 있을 때와 달리 차분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해나갔다.

“아이디어만 제공한 게 아니라 주요 동작들을 만들어내고 제가 만든 안무랑 엮기도 해서 저희 트레이너 선생님이 엄청 칭찬하시더라고요.”

“언래블은 멤버들끼리 사이가 정말 좋네요.”

멤버들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아니면 인터뷰가 만족스러웠던 건지 안경 너머로 서늘하게까지 보였던 눈동자가 반달을 그렸다.

“다행히 저희 애들이 순하고 정이 많아서 서로 많이 의지하면서 힘내고 있습니다.”

“여러 일들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조금 걱정했는데 기운차고 씩씩해 보여서 다행이에요.”

여러 일들이라는 말에 테이블 아래 있는 세빈이의 손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옆에 있던 찬이가 조심스럽게 그런 세빈이 팔을 꾹 잡아주는 것도 확인했다.

그 후로도 테이블 위의 분위기는 처음처럼 화기애애했고, 멤버들은 더 많이 웃었다.

다행히 인터뷰와 촬영은 그렇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까까진 청량한 하늘에 제법 시원한 바람까지 불더니, 그새 하늘에 짙은 회색빛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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