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25)화 (125/456)

125. Sherlock(2)

포잉은 회사 근처에 도착했을 때부터 익숙하지만 불쾌한 냄새를 맡았다.

낯설지 않은 그 냄새가 무엇인지 처음에는 구분이 어려웠지만, 기억해내는 건 금방이었다.

계약자의 부탁으로 그 덜떨어진 놈들의 뒤를 쫓았을 때 맡았던 냄새였다.

피곤해하는 계약자를 잠시 힐끔 바라보았지만, 일단은 눈앞의 미심쩍은 일부터 해결하는 게 먼저라는 판단을 내린 포잉은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허구한 날 이상한 일에 휘말리는 계약자를 혼자 두기 찝찝했던 탓에 빠르게 확인 후 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게 자신의 계약자일 줄은 몰랐지.

적합한 육체를 얻어도 여러 높으신 분들의 안배를 벗어날 경우 계약자의 주변에 사건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했었다.

인과율의 저울이 맞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들이고, 그런 상황들이 수습되면 육체와 영혼이 제대로 맞물리면서 정상 궤도로 진입하게 된다고.

그런데 하필이면 중요한 중급 요정으로서의 첫 계약자가 그 꼴이 날 줄은 포잉도 몰랐다.

이미 상부에 보고를 했고 조만간 정상화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지만 실제 적용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

최대한 변수를 제한해서 계약자를 지켜야 했다.

‘하아….’

정말 손이 많이 가는 계약자였다.

빠르게 냄새를 쫓아 움직였더니 그 해산물 파티 놈들을 데리고 다니던 매니저라는 놈과 개미핥기가 있었다.

‘역시.’

가장 커다란 놈이 끌려가고 나니 남은 놈들이 이렇게 난리였다.

“진웅아, 쟤들 확실한 애들 맞아?”

“형, 나 못 믿어?”

“넌 믿는데 쟤네가 돈 받아먹고 나르면 우리 망하니까 하는 말이지.”

“쟤네 정이 악개야. 정이가 따로 만나서 놀던 애들이라 입은 무거워.”

회사 건물과 제법 떨어진 곳에서 차를 세워놓고 하는 소리가 참으로 가관이었다.

이제는 포잉도 연예계라는 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은 알고 있었다.

계약자를 서포트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틈날 때마다 인터넷이라는 좋은 도구를 들고 정보를 수집하고 기사까지 꼼꼼하게 체크하며 지냈다.

모든 요정이 이렇게 일하나 하는 회의감도 들었지만, 간간이 찾을 수 있는 기사와 댓글에서 계약자와 계약자가 속한 그룹을 칭찬하는 글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아, 한다! 형!”

“어, 연락 돌렸어. 곧 온다.”

차에 있는 놈들이 그놈들이라는 걸 확인한 순간부터 이것들을 어떻게 하면 빠르게 모두 치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포잉은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원래 벌레는 모조리 잡아 없애고 약도 꼼꼼히 처야 다시는 꼬이지 않는 법이거늘, 계약자와 그 회사는 무르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인간은 인간의 사정이 있겠지만, 포잉은 요정이니 그 사정과는 상관이 없지 않은가.

“아, 쟤는 저기서 저걸 못하네.”

“형, 진짜 변호사 붙여줄 거야?”

“대표님이 어떻게든 엮어서 일 키우라고 하셨어.”

“그럼 돈이나 더 쓰시지.”

“정이가 사고 친 거 수습하느라 깨진 돈이 얼만지 알아?”

“아, 왜 화를 내고 그래! 내가 사고 쳤어?”

가만히 놔둬도 자기들끼리 물어뜯고 난장판이 될 것 같았지만, 함부로 인간에게 손을 댈 수 없는 포잉은 고민에 빠졌다.

이 상황을 녹음해두고는 있지만 전해줄 핑계가 궁색하다.

차 안에 숨어서 자기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무슨 수로 녹음했다고 하고 계약자가 회사 사람들에게 정보를 넘겨줄까 싶었다.

자기들끼리 뭐라 욕하고 떠드는 동안 차 안을 살피던 포잉의 눈에 들어온 건 반짝이는 불빛을 내고 있는 블랙박스였다.

불이 켜져 있다는 건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지 않을까?

저런 카메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잘만 쓰면 계약자나 계약자네 회사가 번거로울 일 없이 잘 처리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와, 저 독한 새끼. 저기서 손 한 번을 안대네.”

“안 되겠다. 쟤네는 됐고, 그냥 알바나 몇 명 써야겠어.”

그 후로 주고받는 대화도 다 고만고만했다.

대표이사가 어쩌고저쩌고. 그 망둥이 놈이 풀려나기엔 글렀다느니부터 시작해서 개미핥기 놈이 자기는 죄가 없네 어쩌네 하는 얘기들뿐이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인 피로가 쌓이는 것 같아서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잠시 동안은 붙어있어야 할 것 같았다.

포잉이 그렇게 그 둘의 차에 타서 최대한 놈들을 모두 처리할 방법을 고민하던 그 시간, 정윤 실장은 오랜만에 정말 화가 치밀었다.

회사 입장과 애들의 미래를 생각해서 되도록 언래블 멤버들에게까지 똥물이 튀지 않도록 선을 긋기까지 했다.

멤버들이 억울해하는 것도, 그로 인해서 회사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것도 알지만 소현 팀장이 이야기한 방법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적어도 머리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 이상 언래블을 자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머리가 없는 모양이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공갈 협박으로 애들 발목을 잡아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갈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어림없는 소리.

“네, 최 기자님. 저번에 말했던 소스 하나 드리려고요.”

ON 엔터라고 해서 제논 엔터가 예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환이를 고의로 다치게 한 순간부터 정윤 실장은 그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이 일을 하면서 언제나 가장 중요했던 것들은 인맥과 정보였고, 정윤 실장은 그것들을 적재적소에 제법 잘 쓰는 편이었다.

데미갓의 최태성과 최진웅에 대해서는 그 일이 터지기 전부터 냄새를 맡고 뒤를 캐던 기자들이 제법 많았다.

그 뒤를 타고 올라가다 보니 최태성의 아버지인 현 대표이사로 바뀐 시점부터 제논 엔터의 불법 자금 횡령에 대해 캐고 있는 기자와도 연이 닿았다.

물론 그 기자는 제논 엔터의 또 다른 핵심 인물들과 여러 관계로 얽혀있는 사람이었다.

언뜻 들은 바로는 대표가 상당한 금액을 회사 담보로 대출받았지만 금액의 상당수를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확실하게 증거가 모인 건 아니라고 했지만, 말을 꺼냈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캘 만큼 캤다는 얘기.

정윤 실장은 자기가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이런 사실들을 알아만 두고 있었다.

언젠가 제논 엔터가 들이박았을 때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남겨놓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최태성이 구속되고 이렇게 사건이 일단락돼서 멤버들이 안전해지고 정상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면 꺼낼 일도 아마 없었을 것.

하지만 하필 보호해 줄 매니저가 없는 타이밍에 갑자기 수상한 사람들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들이닥친다?

누가 들어도 수긍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멤버들의 일정을 알고 있다는 걸로 보아 내부에서 정보를 준 사람이 있거나 그동안 미행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쩌면, 제논 엔터에서 직접적으로 벌인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니라면 언래블을 공격할 사람도 없었다.

마음을 굳힌 정윤 실장은 연달아 주변에 정보를 흘려주었다. 조만간 물고 뜯고 맛보기 좋은 커다란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정보를.

* * *

‘포잉, 나 왔어.’

‘너는 어째 모든 게 굼뜨냐, 계약자야.’

최대한 빨리 씻고 작업실로 온 건데도 이 요정님은 만족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의자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무릎 위에 올라오는 포잉의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래?’

혹시라도 누가 들어올 상황을 대비해서 저장해놨던 작업 파일을 화면에 띄워놓고 포잉의 머리를 쓰다듬자 가늘게 떠진 눈이 감기면서 손에 머리를 비벼왔다.

간혹 정말 고양이처럼 행동하는 포잉의 모습에 본질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싶어서 새삼스럽게 이 작은 요정이 귀여워 보이곤 했다.

‘네가 이상한 인간들한테 협박받는 동안 나는 그 협박을 사주한 놈들을 찾았다, 계약자야.’

“뭐? 정말?”

‘쉿!’

‘아, 미안.’

포잉이 던진 폭탄에 깜짝 놀란 나는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소리쳤고, 포잉은 내 손 등을 솜방망이로 팡팡 내리쳤다.

‘내가 스킬로 읽어보려고 해도 너무 단편적이어서 못 찾았거든. 어떻게 찾은 거야?’

‘익숙한 불쾌한 냄새가 주변에 아른거려서 쫓아갔더니 개미핥기랑 그 매니저라는 놈이 있었음.’

우쭐한 얼굴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는 포잉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그걸 걔네가 시킨 거라고? 당장 출동한 경찰도 안 믿을 법한 그런 일을? 제정신인가?

내가 수사물을 너무 많이 본 건지 모르겠지만, 보통 배후에서 일을 꾸밀 때는 그래도 좀 그럴듯하게 만들지 않나?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걔네도 네 대처 보고 바로 다른 일 꾸미려고 하더라.’

‘와, 근데 그걸 걔네가 했다고 어떻게 사람들한테 얘기해? 증거가 없잖아.’

‘걔네가 하려고 했던 그대로 돌려주면 됨.’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말해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멤버들과 있는 그룹 채팅방이었다.

우리 준이 형 [지환아, 너 작업실이야?]

[응. 작업실 간다고 했잖아요. 왜요?]

우리 준이형 [인터넷 창 아무거나 빨리 들어가 봐]

평소랑 다른 말투에 당황스러웠지만, 무슨 일이길래 바늘로 찔려도 웃고 있을 것 같은 준이 형이 이렇게까지 말하는지 궁금해졌다.

급히 검색 엔진을 하나 켜자 제논 엔터의 대표이사 중 한 명이 공금 횡령을 고발하여 고소장이 수사기관으로 접수되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무슨….”

그리고 또 다른 기사에는 개미핥기로 불렀던 다른 멤버의 추문에 대한 기사가, 그리고 이미 구속되었다던 망둥이에 대한 기사도 올라와 있었다.

어디에는 독점이니, 단독이니 하는 단어들이 붙어 있었지만 기사들은 금방 자가복제라도 하듯 페이지가 새로 고침 될 때마다 늘어나고 있었다.

‘뭐야, 얘네 원래 그렇게 적이 많아?’

‘포잉, 네가 한 게 아니야?’

‘나 아님.’

뭔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지푸린 포잉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듯 꼬리를 휙휙 움직였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서 뺏긴 것처럼 심통이 난 것 같았다.

컴퓨터 책상에 놓인 핸드폰이 전화라도 온 것처럼 계속 진동을 토해냈다.

핸드폰 화면으로 떠오르는 말풍선들을 보아하니 그룹 채팅방에 멤버들이 보내는 메시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실로 모이라는 팀장님의 메시지가 도착했지만, 나는 보고 있던 인터넷 창을 바로 닫을 수 없었다.

실시간 검색어에는 제논 엔터를 비롯해서 최태성의 이름과 데미갓, 그리고 대표이사라던 최태성의 부친 이름과 제논 소속의 연예인들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얘네 진짜 망하나 봐.”

갑자기 폭풍처럼 쏟아지는 일들에 정신이 없어진 나는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님, 회의실로 오라고 하지 않았음?’

“아, 맞다.”

포잉의 잔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처음 최태성이 음주 폭행으로 기사가 났을 때보다 더 활활 불타오르는 인터넷 기사에 약간의 두려움까지 느꼈다.

기사 한 줄 한 줄. 그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여론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전보다 조금 더 선명하게 피부에 느껴졌기 때문일까?

회의실 문을 열자마자 찬이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세빈이를 향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와, 이게 바로 권선징악!”

알게 모르게 제논 엔터에 대한 악감정이 많이 쌓여있었던 듯 신나 보이는 힘찬이 모습에 하준 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리고 있었다.

“입 조심해, 이 녀석아.”

“그래, 정말 입 조심해야 해. 이렇게 좀 큰 건 터질 때는 원래 그쪽으로 시선도 안 줘야 하는 법이야.”

“찌라시는 돌긴 했는데 정말 터질 줄은 몰랐네요.”

내 등 뒤에서 그사이 지친 듯한 소현 팀장님과 우진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괜찮아요?”

“응. 나야 멀쩡하지.”

“지환아, 아까 그 건은 더 이상 신경 안 써도 되겠다.”

덤덤하게 아까의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팀장님의 말투가 묘하게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여태까지 긴 시간 질척거리며 얽혀있던 악연이 드디어 끝나는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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