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Sherlock(1)
처음 출동했던 경찰들이 와서 몇 가지 상황을 물었고, 어쩐 일인지 팀장님이 아닌 실장님이 옆에서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설마 정말 그 상황에 신고하겠어? 했는데 이걸 또 해내는 그들은 대체….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을 한 나는 실장님을 바라봤다.
“이후부터는 저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
명함을 내밀면서 경찰분들과 함께 자리를 떠난 실장님.
왠지 실장님의 등 뒤에서부터 시꺼먼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았다.
“실장님 엄청 화나신 것 같은데….”
“어, 분위기 완전. 넌 괜찮냐?”
“네. 멀쩡해요. 그냥 조금 긁힌 거?”
어차피 일상생활하다가도 까지고 멍들고 하는 거, 크게 다치지도 않았고 병원에서도 의사 선생님이 나와 팀장님을 번갈아 가면서 볼 만큼 별거 아닌 상처였다.
워낙 팀장님이 강경했고, 흉 지면 안 된다는 주장이 있어서 간 거긴 한데.
“근육통 안 생기게 자기 전에 잘 풀어주고.”
“우리 준이 형밖에 없네.”
학교 다녀오자마자 별 희한한 일에 휩쓸린다 싶어서 정신이 조금 없는 것만 빼면 나는 매우 멀쩡했다.
예정대로 다음 앨범의 타이틀곡 선정을 위해 마중 나온 준이 형을 따라 회의실에 들어서자 자기들끼리 세상 진지한 찬이랑 세빈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거 되게 냄새가 나. 안 그래, 세빈아?”
“형이 말하는 냄새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수상하긴 하죠.”
“조직적인 듯 보이는 데 되게 허술하고 애들 장난 수준인데 악질적이야.”
“제가 보기엔 이건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지능 떨어지는 사람이 꾸민 일 같아요.”
“그러니까 그게 누굴까.”
그런 둘을 흥미롭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영빈 형과 턱을 괴고 막둥이 둘이서 뭘 하는지 바라보는 경환 형.
다행이라면 다행인 건, 회사에서 바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인지 멤버들이 많이 불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게 누군지 찾는 건 팀장님이나 실장님이 해주시지 않을까.”
“형! 괜찮아요?”
“응. 멀쩡해. 팀장님은?”
내 목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세빈이가 나를 스캔할 듯이 여기저기 살폈다.
기특한 우리 막내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세빈이 옆에 앉자 이번엔 경환 형이 입을 열었다.
“뭐 짐작 가는 거 있어?”
“전혀요. 매일 회사 학교 숙소만 다니는데. 심지어 그 학생들 처음 봐요.”
“확실한 건 우리 솜뭉치들은 아니라는 거죠.”
그날 이후 서로 아무렇지 않은 듯 대하고 부대끼며 지냈지만, 지칠 만큼 연습과 곡 작업을 한 후 숙소에 도착하면 이전처럼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대화를 나눌 만큼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아서였지만, 회사에서 함께 합을 맞춰볼 때도 이전처럼 부산스럽게 대화를 나누지 않았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내려고 했지만 그날의 충돌이 멤버들 사이에 서리처럼 내려앉아 우리의 관계를 서걱거리게 만들어버렸다.
오늘 있었던 일 덕분이라고 하면 이상할까?
괴상한 일로 정신이 없어지니까 의견 충돌 따위는 모두 잊은 것처럼 이전보다 더 서로 붙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면 웃음을 머금은 채 피하지 않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얘들아, 회의 시작해도 될까?”
“넵.”
“저희는 준비됐어요!”
실장님이 갔으니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며 지금은 눈앞에 타이틀곡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후 팀장님과 함께 AR 팀의 팀장님과 팀원분들이 들어왔고, 이제는 서로 익숙해진 우리는 씩씩하게 인사를 건네며 환영해드렸다.
“병아리들, 이번에 제법 괜찮은 곡을 보냈더라?”
“아니, 왜 팀장님까지 병아리래요!”
“너희한테 딱이잖아. 뺙뺙대는 아가 병아리들.”
김주영 팀장님이 씩씩하게 외치며 건네는 인사에 찬이가 반박했지만, 마땅히 대꾸할 답을 찾지 못한 힘찬이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우리 애들 놀리지 말라니까요? 아무튼 지금부터 총 6곡을 틀 거야. 각자 들으면서 메모할 거 메모하고, 나눠주는 종이에 각 곡마다 10점 만점으로 점수 적어서 주면 돼.”
“지금 회의에서 결정되는 게 최종이에요?”
“대표님, 각 실 실장님들한테는 이미 투표 받았어. 지금 인원들 것까지 합산해서 최종 점수로 나눌 거야.”
직접 곡을 제출한 나와 경환 형, 하준 형은 아무래도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꾹 말아 쥔 손바닥 사이로 땀이 나는 것 같았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은 나는 손에 쥔 연필을 만지작거렸다.
“그럼 시작할게요.”
그렇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다.
모든 곡을 공평하게 평가하기 위해 모든 곡의 가이드 녹음을 영빈 형이 진행했다고 했다.
첫 곡은 속삭이듯 담담하게, 마치 고해 성사라도 하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영빈 형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오는 가사는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누더기가 된 듯 너덜너덜해진 마음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내용이 전반부의 내용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곡이 진행될수록 점점 격해져 결국 커다란 폭풍처럼 사방으로 감정을 토해내며 할퀴기 시작했다.
가사는 마음에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분노를 주제로 하고 싶었던 건 맞지만 타이틀곡이 되었을 때 듣는 사람이 너무 피곤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곡은 마치 파티라도 하듯 통통 튀는 멜로디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파티는 할로윈 때 벌어지는 크리스마스의 악몽 같은 느낌을 주었다.
사고뭉치들이 사방에서 사건 사고를 빵빵 터트리면서 즐겁게 웃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중간에 섞여 있던 내 곡이 나올 때는 왠지 모르게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티 내지 않으려 종이만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영빈 형의 목소리로 재해석 된 곡에 집중했더니 아쉬운 부분들이 보였다.
너무 성급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었고, 후렴 파트는 템포가 너무 늦어서 흥을 돋우기보다는 처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중에 손을 본다면 어떤 방향이 좋을지도 함께 적어두었다.
아무래도 이 중에서 내 곡에 제일 별로인 건 같은 건 내가 만든 곡이기 때문일까?
나름 힘줘서 만든 곡이었는데 다른 곡에 비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조금 우울해졌다.
그렇게 한 곡, 한 곡 귀를 쫑긋 세우고 최대한 집중해서 들으면서 느껴지는 감정과 궁금한 점들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슬쩍 훑어본 멤버들도 모두가 진지한 얼굴로 각자 편한 펜을 들고 열심히 써 내려가고 있었다.
“다들 적었나요? 각 곡별로 점수를 적은 종이는 저한테 주고 잠깐 대기해 주세요.”
점수가 보일세라 잘 접은 종이를 팀장님에게 주고 나니 왠지 학교 다닐 때 반장 투표를 할 때가 떠올랐다.
“꼭 반장 선거 같지 않아요?”
“아, 나도 그 생각 했는데.”
종이를 거둬간 팀장님이 나간 후 힘찬이가 경환 형에게 말을 걸자, 다른 멤버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웃었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는 이전 삶에서의 나이가 생각의 기준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행동이나 말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머릿속 생각은 전생의 지환이지만,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건 18살 지환이의 언행이랄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의 흐름 상 반년도 안된 일인데 벌써 아주 오래전의 일인 것 같아졌다.
이게 자연스러운 건지,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포잉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메시지를 보내둔 핸드폰을 살짝 확인했다.
아까 어디 갔냐고 메시지를 보내두었는데, 무슨 일인지 아직도 확인이 안 되어 있어서 슬슬 걱정이 되었다.
요정이니 포잉이 위험한 일은 없을 거라고, 당장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며 스스로를 다독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AR 팀분들을 바라봤다.
처음 한참 신세를 지고, 최근까지도 꾸준히 쫓아가서 많은 질문을 했던 안시영 대리님과 눈이 마주쳤다.
“쪼그만 게 이제 곡도 만들고. 우리 지환이가 많이 컸어?”
“이게 다 안 대리님이 가르쳐주신 덕분이죠, 뭐.”
“어쭈, 이제 입바른 소리도 하네?”
“에이, 입바른 소리라뇨. 전 언제나 진심이에요?”
그사이 어떻게 시달린 건지 볼에 살이 더 빠진 대리님과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팀장님이 돌아왔다.
“최종 점수가 나왔어요. 사람 귀가 다 비슷한 걸까? 관리자 투표랑 결과가 비슷하게 나왔네요.”
한결 부드러워진 팀장님의 얼굴에 결과가 몹시 궁금해졌다.
“이전 회의에서 나온 것처럼 더블 타이틀로 갈 예정인데, 이게 참 신기해요. 딱 최고 점수를 받은 두 곡이 동점이라니.”
“오오…. 대박 날 건가 보다!”
“이 정도면 하늘이 점지해 준 거 아닙니까?”
팀장님 발언에 힘찬이와 AR 팀 팀장님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리고 서로 통했느니 어쨌느니 하면서 희희낙락하는데, 그 모습이 참….
김주영 팀장님과 힘찬이가 비슷한 성격이라는 걸 잘 알 수 있는 분위기였다.
“2번째 곡 Confusion, 6번째 폭풍전야(暴風前夜) 이 두 곡이 다음 앨범 타이틀로 가장 좋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조금 아쉬웠지만 내가 듣기에도 저 두 곡이 서로 다른 분위기면서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실제로 내가 가장 높은 점수를 적은 곡도 2번째와 6번째 곡이었다.
“그럼 이제 2번째랑 6번째 곡 누구 건지 알려주세요, 팀장님.”
“궁금해요?”
“그럼요. 특히 2번째 곡에 느낌 왔어요!”
“두 번째 곡이 꽤 괜찮았지?”
김주영 팀장님에게 곡을 보내놓았으면서 정작 그 팀인 AR 팀분들에게도 누구 곡인지 말을 안 한 모양이었다.
안시영 대리님의 질문에 싱글거리던 팀장님은 하준 형을 슬쩍 바라봤다.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던 사람들은 두 번째 곡에 대해 한마디씩 칭찬을 보태기 시작했고, 하준 형의 목덜미가 점점 더 붉게 물들어 갔다.
칭찬에 약한 우리 리더님은 그렇게 자기가 만든 곡이 무엇인지 몸으로 대답을 해주었고, 이윽고 그런 하준 형의 모습을 포착한 힘찬이가 씩 웃었다.
“준이 형 아주 푹 익었네, 익었어.”
“사람이 저렇게까지 빨개질 수 있구나….”
“칭찬에 약한 건 알았지만, 저 정도였어?”
오랜만에 리더 몰이할 건수를 잡은 멤버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신나게 하준 형을 놀리기 시작했고, 참다못한 준이 형이 경환 형의 뒷덜미를 낚아채는 순간 조용해졌다.
이렇게 치고 빠지는 게 완벽한 팀워크라니.
“그래, 너희가 사이좋은 건 잘 알았다, 이것들아.”
“하하!”
“최종 곡 리스트는 일단 우리가 먼저 뽑아볼 테니까 나중에 한 번 더 확인하자.”
“넵!”
그렇게 AR 팀분들이 모두 나간 회의실에는 팀장님과 우리만 남았고, 우리는 팀장님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소현 팀장님은 인자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말해주었고, 우리 입에서는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타이틀곡이 두 개니까 연습도 두 배로 해야겠지? 그러기엔 너희들 체력이 걱정되니 모두 트레이닝 룸으로 가면 될 것 같구나.”
“헐! 살려주세요!”
“아,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리질 않는 거야….”
그렇게 마른오징어가 될 때까지 땀을 흘리다 혼이 나갈 것 같은 상태가 되었을 때, 포잉이 다가왔다.
‘쯧. 계약자야, 너는 왜 눈만 떼면 늘 몰골이 엉망이 되냐.’
‘어디 갔다가 이제 왔어….’
바닥과 한 몸이 되어 간신히 숨만 쉬고 있던 나는 애꿎은 포잉에게 투덜거려보았지만, 평소처럼 통하지 않았다. 제길.
‘당연히 중요한 일을 하고 왔지. 넌 정말 나 없었으면 어쩔뻔했음?’
‘응? 뭔데 이렇게 의기양양해?’
한껏 콧대가 높아진 포잉의 모습에 무언가 있다는 걸 느낀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체력 단련은 이쯤하고, 곡 작업을 핑계로 내 작업실에 가도 될 것 같았다.
‘포잉, 내 작업실 알지? 샤워하고 갈게. 가 있어.’
‘빨리 오셈.’
이 깜찍한 요정님이 이번엔 뭘 물어왔는지 심히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