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방백(5)
소현 팀장님 [얘들아, 어디쯤 왔니?]
[거의 다 왔어요. 현관 눈에 보여요]
소현 팀장님 [우진이 못 만났어? 너희 데리러 학교로 갔었는데]
[엇…. 형한테 따로 연락 없어서 안 오나 보다 하고 셋이 택시 탔어요.]
소현 팀장님 [그래? 알았어. 일단 앞에 사람은 없다고 하는데 누가 말 시키면 대답하지 말고 바로 들어와]
[넵.]
혹시라도 기자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며 그동안의 등교는 택시로 하교는 우진 형이 데리러 오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자 가끔 보이던 수상한 사람들도 모두 사라졌고, 오늘은 우진 형이 보이지 않아 우리끼리 택시를 잡아서 근처에서 내린 상황이었다.
“우진 형이 우리 데리러 나갔대.”
“아, 어긋났나? 일단 얼른 들어가자.”
“별일 없겠지?”
“괜찮을 거야.”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는 우진 형에 대한 걱정이 앞섰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다행히 회사 앞에는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없었고, 주 내내 무리하느라 잠이 부족했던 우리는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언래블 맞죠?”
“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대꾸한 것은 조건 반사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한 교복 차림의 네 명이 회사로 향하고 있으니 연습생 내지는 아이돌로 추측하기 충분한 근거가 되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름을 물어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이 학생의 눈빛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절대 호의는 아니었다.
“언래블 맞냐고요.”
“실례하겠습니다.”
“죄송해요, 들어오시면 안 돼요.”
왠지 더 이상 대꾸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불안한 눈을 하는 세빈이와 찬이 등을 떠밀었고, 그사이 경환 형의 손이 핸드폰이 있는 주머니로 들어갔다.
“사람이 말하잖아요.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어?”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나를 잡으려던 상대방의 손을 피하며 불안감을 느낀 나는 포잉을 찾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근처에 있던 포잉이 보이질 않았다.
밖에서 실랑이를 회사 안의 누군가 본 건지, 로비에서 경비 아저씨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거기, 학생!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자꾸 옷을 움켜잡으려는 상대방을 잘못 떼어냈다가는 구설수에 휘말릴 것 같아서, 어떻게 하지 못했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달려 나온 경비 아저씨가 학생을 떼어내려 실랑이하는 사이, 다른 멤버들은 다가오지 말라는 내 고갯짓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괜찮아, 옆에 오지 말고 거기 있어. 약속 기억하지?”
멤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약속을 상기시킨 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스킬을 이용하기 위해 교복 위에 적힌 상대방의 이름을 확인했다.
상대방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느낄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어서 쓰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뭐 하나 쉬운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다 손대는 거야! 저리 가!”
“학생, 돌아가세요. 경찰 부릅니다?”
“예지야!”
“뭐야!”
어디서 지켜보기라도 한 듯 두 명의 학생이 더 달려와서 이 난장판에 합류하더니 사방에서 뻗어 나오는 손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찬아, 팀장님 좀!”
“어? 어!”
갑자기 벌어진 이 상황에 당황스러운 건 모두가 마찬가지라 경환 형에게 찬이가 무어라 말하더니 세빈이를 끌고 회사 안으로 뛰어갔다.
상황 파악을 위해서 상대방의 이름과 사용을 속으로 중얼거리자 학생의 주변으로 말풍선 같은 텍스트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시간을 끌어야 하는 거야]
응?
[이렇게 하면…!]
최대한 상대방의 몸에 손이 닿지 않게 양손을 들고 있던 나와, 그런 내 교복을 움켜쥐고 팔을 잡으려는 학생들, 그리고 그들을 떼어내려던 경비 아저씨.
무언가 기다리는 듯 초조해 보이던 학생은 경비 아저씨와 나에게 끊임없이 거친 말을 내뱉으며 내 쪽으로 점점 더 가까이 붙으려 들었다.
[왔다!]
“어? 어!”
그때, 갑자기 떠오른 말풍선과 함께 학생들 셋이 나를 밀어 넘어트리면서 자신들도 내 쪽으로 쓰러지려 했다.
당황한 경비 아저씨가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고, 적어도 우리가 상처 입혔다는 모습으로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라리 바닥과 뽀뽀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넘어지면서 몸을 돌리는 데 성공했고, 바닥에 처박히기 직전 얼굴을 가렸다.
곧 새 앨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몸도 몸이지만 얼굴을 다치면 정말 큰일 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던 것 같았다.
“경찰 아저씨! 이 사람이 내 몸 만졌어요!”
온몸이 욱신대는 와중에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어이없다는 생각은 둘째치고, 이번에도 제논 엔터가 꾸민 일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사람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형, 나 좀 일으켜줘….”
타이밍 좋게 뛰어나온 팀장님과 경찰들, 그리고 언제 불러들인 건지 기자들까지 아주 회사 앞이 난장판이 되었다.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바닥에 처박힌 내 꼴은 누가 봐도 좋은 몰골은 아니었기에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아, 기자들 기다린 거였구나.
이번엔 또 어디야, 진짜.
“수고 많으십니다. 신고하신 분이 누구시죠.”
“회사 앞에서 소란 피우는 학생들이 있어서 도움을 요청드렸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려고 하더라고요.”
경환 형의 손을 잡고 겨우 일어난 나는 여기저기 긁히고 까져서 엉망이 된 나에 비해 비교적 멀쩡한 3명을 바라보았다.
그런 주제에 뭐가 그리 억울한지 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저 사람이 제 가슴을 만졌어요!”
가장 처음부터 달려들었던 예지라는 학생이 나를 가리키며 경찰에게 소리 질렀고, 그들 3명을 제외한 모두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심지어 경찰들까지도 그런 주장을 내뱉는 학생들을 좋지 못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제가요?”
“저희가 도착했을 때 현장은 저쪽 학생은 얼굴이 바닥을 향하고 있었고, 여기 3명이 그 학생 등 위로 넘어진 것 같던데요.”
“넘어질 때 제 가슴을 움켜잡았단 말이에요!”
“경찰이 한쪽 편만 들어도 되는 거예요? 신문고에 올릴 거야!”
“예지야, 울지 마.”
“이봐요, 학생들. 지금 현장 방향을 보면 세 명이 한 명을 밀어서 넘어트린 모습이에요. 함부로 그런 주장하다 거짓말인 게 들키면 큰일 납니다.”
모두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피해자라고 우기던 학생은 주저앉아 울기까지 하고 있었다. 경찰은 학생들에게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어이없는 이야기인지 말해주었고, 그 모든 상황은 고스란히 기자들이 찍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 기꺼웠는지 그 머리통 위에는 속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말풍선이 떠올랐다.
[대충 편집하고 영상 뿌리면 이제 너네는 끝이야]
진짜, 가지가지 한다.
타박상으로 아픈 것보다 저런 짓거리까지 하고 싶을까 싶어서 머리가 더 아파졌다.
그리고 그 후로는 사방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경찰들과 이야기를 끝낸 팀장님은 그 학생들에게 시달렸는지 지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걔네 진짜 이상해. 말도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더라. 그냥 돈을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어.”
“네? 도대체 뭐 하는 애들이지.”
세 명이 대본이라도 외운 듯 똑같은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사이 빛보다 빠르게 당시 사진을 찍었던 기자들이 올린 것 같은 기사들이 우후죽순 인터넷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이돌과 팬의 관계, 이대로 괜찮은가]
[신인 아이돌 A 군의 성추행 사건 현장!]
[예의 바르다던 아이돌의 실체]
우리 측에서는 팀장님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고, 이 소란을 벌써 인터넷에 뿌린 기자들을 상대로 회사에서는 강하게 항의했다.
“미친 거 아냐? 이거 누가 만든 거야?”
“알쏭달쏭 연예 이건 뭐야, 별 거지 같은 게 진짜!”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되는 대로 휘갈긴 기사들을 다 모아서 해당 신문사로 항의하느라 양손과 입이 바빴다.
그중엔 정말로 들어보지도 못한 희한한 곳도 있었다.
이 모든 상황과 별개로 회의실에 모여앉은 멤버들과 실장님, 팀장님의 얼굴은 심각해져 있었다.
“우진이가 지연된 건 접촉사고 때문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갑자기 회사 앞에 기자도 아니고 학생이 저러는 게 말이 되니?”
“누가 시킨 게 틀림없어요. 대뜸 여기 와서 저러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죠. 거기다 기자들 등장 타이밍도 너무 짜고 친 티가 나고.”
“기자들은 걱정하지 마, 바로 싹 내리게 했어. 공식 입장도 바로 올렸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다 고소 들어갈 거야.”
사실 그 학생들이 무슨 주장을 하든 우리는 상황에 대한 증거가 우리 손에 있었다.
일전에 망둥이가 무사이 촬영 당시 저지른 일이 우리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남았기 때문에, 멤버들끼리 약속한 내용이 있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무조건 녹음이나 녹화하기로.
그래서 팀장님을 모시러 둘이 가고 경환 형은 남아있었고, 약속했던 대로 경환 형은 거의 처음부터 핸드폰으로 녹음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망둥이 팬이 항의하러 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고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3명이 되면서부터는 경환 형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녹음본을 저장하고 바로 촬영 모드로 바꿔서 상황을 찍었다.
경환 형이 녹음본과 영상을 팀장님에게 넘겼고, 실장님과 함께 살펴본 팀장님도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제논 엔터에서 만든 판이라기에는 제대로 연기할 줄도 모르는 애고, 상황도 어설픈데.”
“그치만 제논 엔터 말고는 이런 짓을 할 만큼 저희한테 원한 있는 사람도 없잖아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요? 하필 우진 형이 사고 나서 저희 데리러 못 온 날에 이런 일이 생긴 게.”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은 이거였다.
도대체 누가? 왜?
“일단 지환이 병원부터 좀 가자. 얘는 왜 몸이 성할 날이 없냐!”
“그래도 환이니까 그 상황에서 사람들 몸에 손 안 대고 잘 버틴 거지.”
“그래, 잘 대처하긴 했는데. 에휴….”
팀장님은 그 와중에 얼굴을 가리느라 바닥에 쓸려서 다 까진 내 손을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신세 한탄을 했다.
다행히 실장님이 내 편을 들면서 팀장님을 다독여주긴 했지만 아무래도 팀장님은 한껏 속상한 눈치였다.
“우진 형은 언제 온대요? 형 오면 형이랑 같이 갈래요.”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는 포잉도 걱정이었다.
이렇게 말없이 사라졌던 일은 거의 없었는데….
석환이 형은 방송국에 가 있는 상황이었고, 그나마 상황을 수습하고 오는 거라면 우진 형이 도착하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안돼. 빨리 소독해야 흉도 안 생겨. 나랑 가자.”
“팀장님이랑요? 그냥 저 혼자….”
“방금 일을 겪고도 그런 말이 나와?”
닦달하는 팀장님의 성화에 못 이긴 척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는 멤버들에게 괜찮다고 토닥여주며 금방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남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 일은 이걸로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빛보다 빠르게 회사에서 대처했고, 실제로 기사들도 순식간에 사라졌기에 우리는 이 일의 배후만 캐면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서 확인한 경찰도 어처구니없어했던 일이었고, 학생들에게 되레 고소당할 수 있으니 발언에 조심하라고 주의까지 준 상황이었다.
하지만 병원을 다녀온 나는 다시 회사로 찾아온 경찰들을 마주한 순간 생각보다 이 일이 더 시간을 잡아먹게 될 것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