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방백(4)
열심히 올라오는 메시지를 읽으려 노력했더니 솜뭉치들의 대답이 그제야 보였다,
“아, 내 얼굴. 너무 가까워서 놀랬구나?”
“우리 환이 잘생기긴 했죠?”
“얼굴이 너무 커 보여서 놀란 게 아닐까요?”
내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채팅방과 멤버들은 또 웃느라 바빴다. 나는 늘 진지했는데 진지하면 웃겨지는 게 쪼금 슬퍼지려고 했다.
내 이런 모습에 경환이나 찬이뿐만 아니라 영빈 형까지 평소에 잘 보이지 않던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형님, 왜죠…?
“우리 환이가 안 웃으면 조금 무섭긴 한데 그래도 나름 괜찮게 생겼죠?”
“나름 괜찮게 생긴 건 또 뭐예요….”
“솜뭉치들이 우리 환이 잘생겼다고 칭찬하네.”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것 같은 솜뭉치들과 하준 형이었지만 여기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무의미할 것 같아서, 애써 칭찬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여러분, 저희 걱정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많이 놀랐죠?”
“저희도 조금 놀라긴 했지만 푹 쉬어서 이제 괜찮아요.”
“사람이 살다 보면 참 별일이 다 있다니까요.”
자연스럽게 대화는 원래 이야기로 돌아갔고, 그때부터 멤버들은 솜뭉치들의 채팅을 하나씩 읽고 대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밥 뭐 먹었냐구요? 지환이랑 히스 형이 밥해줬어요!”
“메뉴 말해도 되나?”
“콩불이랑 소불고기요!”
“먹방이요? 저희 먹는 거 보면 그냥 전쟁 같을 텐데….”
“솜뭉치들한테는 멋진 것만 보여주고 싶으니까 참아줘요.”
“나중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 같이 밥 먹었으면 좋겠어요.”
질문은 다양했다.
정말 괜찮은지 묻는 사람들도 있었고, 뭘 먹었는지, 맛있었는지, 맛있었겠다고 많이 먹었는지 묻는 사람 등등.
그 와중에 알 수 없는 이모티콘을 도배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외국 솜뭉치들도 있었는지 영어와 일본어도 간간이 보였다.
그런데 중간중간, 해명하라는 말과 함께 날이 선 메시지들도 있었다.
딱 봐도 솜뭉치들이 아닌 것 같아서 웃으며 넘기고 있었는데, 세빈이가 그 메시지를 봤는지 눈꼬리가 처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만 그 사실을 눈치챈 게 아닌 듯 영빈 형이 세빈이 어깨 위에 손을 얹어줬다.
“자, 우리 서로 예쁜 말, 고운 말만 하기로 해요.”
“우리 솜뭉치들 착하다~.”
“아, 맞다. 미궁 탈출 봤어요? 저 어땠어요?”
살짝 세빈이 쪽을 보던 힘찬이가 이번엔 방영한 미궁 탈출 이야기를 꺼냈다. 실제 솜뭉치들 반응을 찾아보지 않은 탓에 어떻게 봤는지 궁금한 것도 있었지만, 대화 흐름을 바꾸려는 것 같았다.
우리 찬이가 이제 방송을 아네, 많이 컸다.
“아, 그 홍삼이요? 저희도 환이가 그거 챙긴 줄 몰랐어요, 그치, 세빈아?”
“으응. 맞아요. 저희도 모르고 있었는데 형이 갑자기 꺼내서 놀랐어요.”
잠깐 흐트러진 정신을 잘 부여잡았는지 더 환하게 웃으며 세빈이가 대답하자 뒤에서 경환 형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게 느껴졌다.
“그거 원래 저희 누나가 보내준 건데 그날 처음 뜯은 거예요! 제가 몸 쓰는 걸 잘 못해서….”
“환아, 솜뭉치들이 그냥 무서워서 그런 거 아니냐는데?”
“아니, 솜뭉치들이 오해가 심하네! 아닙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시계에 그 해골 보고 표정이….”
세상 친절한 우리 솜뭉치들은 어떻게 그걸 또 다 봤는지 미궁 탈출에서 내가 놀랐던 장면만 쏙쏙 골라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아니, 이 양반들이?
“자, 착한 솜뭉치는 그런 거 보는 거 아니에요. 우리 세빈이가 얼마나 똑 부러졌는지, 찬이가 얼마나 씩씩했는지만 봐주세요!”
“환이 수습하려고 애쓴다. 이미 그른 것 같은데?”
“아니, 준이 형! 형이 글케 말하면 안 되지!”
아직도 솜뭉치 메시지들 중간중간 어그로라도 끌어보려는 듯 과격한 단어들이 섞인 메시지가 있었지만, 다행히 흐린 눈 할 수 있을 정도로 줄었다.
“내용 스포요? 에이, 안 되죠. 확실한 건 저희 엄청 열심히 했어요!”
“맞아, 엄청 뛰어다녔거든요. 어허, 유도 신문 안 돼요!”
미궁 탈출은 한 화에 모든 내용이 나오진 않았다. 우리가 출연한 부분은 다음 주 방영되는 화까지 총 2화 분량의 내용이었다. 솜뭉치들은 다음 내용을 스포해달라며 조르고 있었다.
궁금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면서 우리 셋을 낚아보려는 솜뭉치들이 귀여웠지만, 약속은 약속인걸.
“얘네 진짜 독해요. 저희한테도 말 안 해준 거 있죠.”
“궁금해서 몇 번 물어봤는데 대답 안 해줘서 포기했어요. 이렇게 팀원들 간에 신뢰가 없고….”
“아니, 얘기가 왜 또 그렇게 돼요?”
영빈 형이 슬쩍 운을 떼고 준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채팅창은 하준 형을 따라 하는 솜뭉치들이 넘쳐났다.
“왜 솜뭉치들까지 한숨 쉬는 거야!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우리 찬이 그만 놀립시다~ 얘 이러다 울겠어요.”
반응이 빠른 찬이는 자꾸만 놀림의 대상이 되고는 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왜 자기만 놀리는지 모르겠다며 툴툴대는 게 킬링 포인트였다.
그 후로도 최근 일들과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소한 홍보, 곧 언래블 스토리도 볼 수 있을 거라는 약간의 스포를 건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솜뭉치들, 우리 또 봐요! 좋은 노래 만들어서 빨리 돌아올게요!”
“우리 모두 건강하게 잘 있으니까, 솜뭉치들도 아프지 말고 잘 지내기.”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담아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GIVE 앱 방송을 끝냈다.
하지만, 방송을 끝낸 멤버들의 표정은 조금 심란한 듯 보였다.
“잘 참았다, 얘들아. 악플러들 조만간 정리해서 법적으로 대응할 거야.”
데미갓의 극성팬으로 추정되는 일부 인원들이 방송에 찾아와 다짜고짜 데미갓 사태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고, 근거 없는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회사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팬 반응을 살피며 확인하는 대로 신고했지만 임시방편이라는 것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거기다 보통 이런 악질적인 행위를 하는 이들이 본인이 주로 쓰는 계정을 사용할 리 없었다.
망둥이가 난장판을 벌인 일로 ON 엔터와 제논 엔터가 적극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자, 일부 악성 팬들은 언래블을 공격하기 시작했던 것.
전후 관계가 너무 명확했기에 대부분의 데미갓 팬들은 문제 있는 멤버의 탈퇴 요청과 확실한 입장 표명을 요청했다.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잔존하는 데미갓 멤버들이라도 지키려고 했던 것.
직접적으로 인터넷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점점 네티즌이 되어가고 있는 포잉이 대략적인 흐름은 확인하고 얘기해 주곤 했다.
그 탓인지 점점 눈이 퀭해지는 것 같아서 그만 확인하고 조금 쉬라고 말까지 하고 나온 참이었다.
과거에도 지금도 언래블의 팬임을 자청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저 평범하고 보편적인 상식으로 덕질에 매진했던 팬들이 안타까웠다.
온 마음을 다해 응원했을 텐데.
삶의 희망을 보고, 마음의 안식처로 여기면서 소중히 했을 텐데.
행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물거품이 되는 그 느낌을 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전해 들은 이야기들은 꽤 많았다.
“우리는 우리 팬들을 지키는 게 먼저니까.”
“응. 우리를 지키고 우리 팬들을 지켜야지.”
나와 멤버들이 일부 악질적인 사람들로 인해 우리 소중한 솜뭉치들이 상처받게 될까 봐 그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회사에서 법적 조치를 취해준다고 하니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원래 견제 붙고 이런 악플 달리고 하면 잘 되는 반증이라더라.”
“그럼 우리 좀 잘되고 있는 건가?”
“좋게 생각하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흐렸던 얼굴에 다들 애써 미소를 머금고 한마디씩 보탰다.
그렇게 GIVE 앱 방송이 끝난 후 우리는 늦은 밤까지 각자 개인 연습과 작곡에 매달렸다.
그런 우리를 매니저 형들은 걱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봤고, 팀장님은 기특하다는 얼굴을 했다.
상담 일자를 정하자는 팀장님의 말에 모두가 다음 주로 날짜를 잡아달라고 전했다.
불이 붙었을 때 조금이라도 더 각자 연습에 몰두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리가 우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남들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 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혔다.
그리고 이 생각은 작곡에 매달린 나와 준이 형, 경환 형을 더 필사적으로 만들었다.
아이돌이 아무리 다양한 방송에서 인지도를 확보한다고 해도, 가장 근본이 되는 건 노래와 무대였다.
앨범을 사고 공연을 보러 와주는 그 수많은 팬들.
그런 팬들을 감동시키는 것도 결국은 우리가 만들어갈 서사와 그것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을 노래들이라는 게 우리들의 생각이었다.
좋은 곡,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곡을 만들어서 인정받고 싶었다.
언래블과 우리 팬들은 너희가 함부로 해도 될 사람들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길 바라는 마음.
그것 하나로 새벽 늦게까지 작업실과 연습실에 멤버들이 틀어박히는 날이 하루하루 쌓였다.
그리고 드디어 타이틀 곡을 정하는 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아, 죽겠다….”
“야, 찬아, 안돼. 씻고 누워.”
“으어어….”
“세빈이랑 찬이 각자 얼른 씻고 누워라.”
새벽 세 시.
모두가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었다.
그동안은 아직 한창 자랄 나이인 데다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멤버들이 있어서, 최대한 일찍 잘 수 있게끔 회사에서 배려해 준 부분들이 있었다.
데뷔 직전을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10시에는 숙소로 돌아갈 수 있게끔 일정을 짜주기도 했고, 연습도 쉬게 해주었다.
회사에서 그런 것들을 상당 부분 배려해 주고 있다는 걸 하준 형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는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주만큼은 각자 쌓인 울분을 연습을 통해서라도 풀 수 있도록 멤버들이 원하는 만큼 연습하다 숙소로 돌아갈 수 있게끔 이야기했다고 들었다.
그 결과 한시에서 세시 정도까지 마음껏 연습하고 숙소로 돌아온 멤버들은 모두 파김치가 되어 간단히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직 재학 중인 나와 경환 형, 찬이, 세빈이는 몇 시간 눈 붙인 후 학교를 다녀와야 했기에 더 피곤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정신은 또렷해서 가끔 우리끼리 시선이 마주칠 때면 서로 얼굴을 보며 좀비 같다고 낄낄대기도 했다.
아직 다른 형들에 비해 숙달되지 않은 나는 많은 곡을 만들 수 없었다.
그저 처음 앨범 준비를 하면서 지금까지 계속 만지던 한 곡을 회사에 전달했고, 속은 후련했다.
다시 들어보면 아쉬운 부분들이 또 생겨날 테지만 지금으로써는 그 정도가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이고, 그대로 돌아다니면 어떡하냐.”
회사에서는 잘 버티던 애들도 숙소 현관문만 들어오면 방전되는 탓에 어느 날은 씻지도 못하고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서 잠든 날도 있었다.
고작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그렇게라도 마음을 조금 털어낸 멤버들의 얼굴은 다행히 처음 망둥이 사건이 터졌을 때보다 좋아졌다.
정윤 실장님은 멤버들 얼굴을 보더니 이제야 제대로 독기를 품을 줄 알게 되었다며 되려 만족해하시는 것 같기도 했다.
그동안 너무 순하고 착하게만 보여 걱정이었다는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같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얘들아, 방에 들어가서 자라.”
“어차피 조금 있으면 일어나야 하니까 그냥 잘래요….”
흐물거리던 세빈이와 찬이는 결국 씻고 나온 후 거실 바닥에 찹쌀떡처럼 붙어서 눈을 감아버렸고, 준이 형과 영빈 형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이불을 꺼내왔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일주일이 우리에게는 앞으로 잊을 수 없을 기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짧은 새벽이 흐르고, 하루가 시작되고, 학교를 마친 우리 넷은 지친 걸음으로 회사로 향하는 길에 팀장님의 연락을 한 통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