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21)화 (121/456)

121. 방백(3)

멤버들은 평소처럼 매우 잘 먹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진 형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아직 우리 애들 식성을 잘 모르는 석환이 형은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저 많은 양이 저 몸뚱이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냐는 딱 그런 표정이었다.

감독님과 스태프들도 두 번째 즉석밥으로 손을 뻗는 경환 형의 모습에 웃고 있었다.

볼 가득 고기를 물고 우물거리는 경환 형과 세빈이 얼굴은 내가 봐도 좀.

아마 이게 최후의 만찬일 것 같은데.

이번 주 내로 곡 선별을 끝낸다고 했으니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다음 앨범 준비를 해야 했고, 그러자면 다시 다이어트에 들어가야 했다.

요 며칠 정말 열심히 먹었던 탓에 감량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건 미래의 내가 고생하면 될 일이니, 지금의 나는 잘 먹기라도 해야지.

그렇게 많았던 콩불은 모조리 끝났고, 어떻게 처리할지 막막했던 불고기도 건더기는 모두 건져먹고 없었다.

스태프분들에게 콩불을 나눠드리긴 했지만 꽤 많은 양을 만들었던 나로서는 우리 애들 먹는 양은 신기할 정도였다.

“아, 배부르다. 좋다.”

“내일의 찬이가 힘들겠지.”

“그건 내일 찬이가 알아서 할 거야.”

“오늘 C.I 형은 설거지를 해야겠지.”

“아….”

맛있는 점심으로 잠시 현실을 도피했던 세 사람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게임은 게임.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지.

“자, 히스 팀! 뒷정리 부탁드립니다!”

잠시 앉아서 소화시킬 시간을 얻었던 멤버들은 무거워진 몸을 일으키며 흐느적대는 걸음으로 조리대로 다가갔다.

“어우, 난장판이네 진짜.”

“정리하면서 했는데도 저 모양이네.”

“밥 먹는 시간보다 정리하는 시간이 더 길 것 같아요.”

시간에 쫓기면서 하다 보니 평소만큼 정리하지 못하고 대충 꺼내 쓴 게 화근이었던 것 같았다.

중간중간 멤버들이 하나둘 씻기도 하고 정리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6명이 사용했던 조리대 근처는 혼란 그 자체였다.

“힘내요! 금방 할 거야!”

“남의 일이라고, 저게!”

찬이가 응원이랍시고 깐죽거린 탓에 경환 형은 잔뜩 골이 났다.

저러다 나중에 어떻게 또 수습하려고, 으휴.

아무리 게임의 승패라고는 하지만 셋이 열심히 움직이는데 구경만 하려니 자꾸 손이 움찔 움찔거렸다.

“환아, 승자의 권리를 누려. 다음에 우리가 게임에서 지면 쟤네는 절대 안 봐줄걸?”

“아, 이게 또 그렇게 되나요?”

“맞아.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고 맨날 C.I 형이 그랬는걸.

다른 멤버들의 말에 수긍하게 되는 걸로 봐서는 나도 멤버들에게 물들어버린 건가 싶었다.

같이 산지 아직 반년도 안됐는데 벌써….

커피라도 한 잔 마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주변을 기웃거리자 우진 형이 슬며시 다가왔다.

“형, 믹스 커피는 없겠죠?”

“응, 없지. 커피는 좀 참아.”

“네에….”

왠지 믹스 커피 한 잔을 마시면 딱 좋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아쉬워졌다.

“세빈아, 거기 거품이 아직 있잖아. 마저 헹궈야지.”

“C.I, 음식물 쓰레기는 따로 모아야 해!”

그 와중에 잔소리까지 하고 있는 준이 형이랑 찬이가 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꽤 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멤버들은 깨끗하게 조리대 정리를 끝낼 수 있었다.

다만 애들이 칼을 만지는 게 너무 조마조마했던 나는, 결국 중간쯤부터 달려가서 설거지를 도왔다.

“얼른 끝내고 가야 솜뭉치들이랑 만나죠.”

“그도 그렇긴 하네. 조금 도와볼까?”

회사로 돌아가서 GIVE 앱 진행을 준비해야 한다는 명목을 꺼내 들었더니, 준이 형과 찬이도 금방 수긍하고 정리를 함께 도왔다.

감독님은 벌칙이 벌칙답지 않아졌다고 웃었지만, 이미 20분가량 자기들끼리 끙끙거리던 멤버들을 봐온 탓에 다른 말을 하진 않으셨다.

“고생하셨습니다!”

“언래블도 고생했어요. 환이는 요리 방송해도 되겠네.”

“어휴, 멤버들 먹는 거 챙기는 것만 해도 벅차요.”

“애들이 잘 먹긴 하더라.”

“복스럽게 잘 먹으면 좋죠, 뭐.”

우리가 조리대 정리를 끝내자 스태프들도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멤버들과 나는 고생하신 스태프분들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앞으로 자주 뵐 분들이니 우리가 더 잘하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좋을 거라고, 어느새 나는 계산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인간관계에 있어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는 관계 맺는 것 자체를 거부했었다. 번거롭고 피곤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득과 손해를 따져보는 계산적인 관계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쪽이 더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다들 이렇게 살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를 위해 변명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과거와 지금의 괴리 사이에서 누적되는 음울한 감정들.

소리 내어 말하고 털어내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떠오른 순간의 생각 하나가 다시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환아, 가자.”

“네.”

멍해진 나를 다시 현실로 끌어당겨준 영빈 형.

그리고 멤버들을 바라보며 다시 웃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 * *

무사히 회사로 다시 돌아온 멤버들은 결국 팀장님에게 한소리 들어야 했다.

평소에 몸 관리를 해둬야 감량이 버겁지 않을 텐데 최근 며칠 너무 과식했던 탓에 체중도 늘어났고 몸도 처진 게 눈에 보여서였다.

짠 음식을 먹은 탓에 얼굴이 살짝 부은 찬이는 GIVE 앱 촬영 전까지 땀을 빼고 오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가뜩이나 잘 붓는 애가! 너는 음식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

“괜찮을 줄 알았는데….”

시무룩한 얼굴이 된 찬이는 결국 트레이너 쌤과 함께 러닝머신을 달려야 했고, 슬쩍 피하려던 경환 형과 세빈이도 함께 끌려갔다.

우리 중에 제일 기초 체력이 부족하다고 트레이너 쌤이 항상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이렇게 한 세트로 마주치다니!

기쁘게 웃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운동 싫어, 안 해, 하기 싫어.

“2시간 후에 방송 시작이니까 그전까지는 개인 연습하고 있어.”

“넵!”

내 작업실에 들어온 순간 이유는 모르겠지만 긴장이 탁 풀린 것처럼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버릇처럼 컴퓨터를 켜고 파일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내가 여태까지 공들였던 작업물들을 확인했다.

멤버들을 생각하며 만들었던 멜로디, 팬송의 초기 버전, 다음 앨범에 넣고 싶다는 생각으로 손대던 파일, 그 외에 그때그때 생각났던 느낌을 담았던 짧은 곡들까지.

“이야, 이렇게 보니까 나 그래도 좀 작곡가 같다.”

포잉조차 없는 작업실에서 일부러 소리 내어 말을 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태껏 너무 많은 말들을 고르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서 밖으로 꺼내지 않고 속으로 꾹꾹 눌러놨던 것들이 미약하게나마 풀어진 듯한 그런 기분.

“언래블이 일단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이 새벽 형님들, 솜뭉치, 우진 형, 소현 팀장님….”

나 혼자 듣는 말이었지만, 누군가에게 닿지 않아도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좋아지는 것이 있다는 게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불합리, 억압, 강요, 협박에 억눌렸던 걸 빵! 하고 터트리면 그걸로도 나아지지 않을까.”

발악을 노래로 만들어 보고 싶다던, 처음 회의 후 느꼈던 생각을 떠올리며 조금씩 손댔던 파일을 불러왔다.

베이스와 드럼이 밑부분에서 받쳐주고 바이올린 소리를 넣으면 애절함이 살 것 같았다.

“악기 공부를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속성으로 공부한 탓에 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생생한 악기의 소리 대신 기기와 프로그램의 힘을 빌려 소리를 맞춰야 했고, 그게 문득 아쉬워졌다.

워낙 세상이 좋아져서 프로그램으로만 작업하는 분들도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작곡가들은 직접 악기를 만지면서 소리를 찾는다고 했다.

내가 악기를 더 잘 다룰 수 있었다면 곡을 만드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되었을 텐데.

이렇게 점점 욕심이 나는 게,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게 기꺼워서 마스터 키보드를 톡톡 두드리며 조금 웃었다.

헤드폰 너머 여러 악기의 합이 즐겁게 느껴지는 날이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올 줄은 몰랐다.

한참 집중하던 중, 미리 맞춰두었던 알림이 울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맞다. GIVE 앱.”

그사이 뻑뻑해진 눈을 꾹꾹 눌러주고 작업물을 저장시킨 나는 연습실로 향했다.

시간 전에 그쪽으로 모이라는 팀장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라, 제가 제일 빨리 온 거예요?”

“응. 먼저 정리 좀 하자. 머리 다 눌렸네.”

가희 누나가 엉망이 된 머리를 다시 손질해 주는 사이 희주 누나가 다가와 밥 먹다 지워진 메이크업을 다시 손봐주었다.

“누님들 아니었으면 우리 멤버들이 아주 꼬질꼬질했을 거예요.”

“말이나 못 하면. 너 자꾸 미간 찡그리지 마. 주름 생긴다니까?”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땀 뺀다고 끌려갔던 멤버들도 하나, 둘 복귀했다.

샤워하고 온 건지 머리고 얼굴이고 자연 그 자체여서 두 누님들이 깊이 한숨 쉬는 소리가 생생했다.

“머리 말릴 때 막 수건에 비비지 말라니까. 결 다 상한단 말이야.”

“그럼 어떻게 말려요?”

“두피부터 꾹꾹 누르면서 말려야지!”

가뜩이나 탈색과 염색으로 약해진 찬이 머리카락이 바스러질까 걱정스러웠는지, 가희 누나는 찬이에게 잔소리하며 팀장님에게 말할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먼저 준비가 끝난 나는 느긋한 모습으로 다시 준비하고 있는 멤버들을 구경했고, 같이 연습하다 온 건지 두 맏형이 가장 늦게 도착했다.

누님들의 잔소리와 함께 세팅이 모두 끝나자 찬이는 혼이 나간듯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게 평소에 신경 좀 쓰라니까.”

“지환이도 화장품 잘 안 바르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

“네가 피부 트러블이 제일 심하니까? 준이 형도 뭐 잘 안 바르는데 깨끗하잖아.”

“타고난 걸 어떡해.”

“그래서 어머님, 아버님 탓이다?”

“아니, 여기서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냐!”

“불효자식?”

“하, 어머님한테 일러야겠다. 안 그래도 연락드린 지 조금 됐는데.”

멤버들 가족 연락처는 이미 서로의 핸드폰에 다 저장되어 있는지 오래라 핸드폰을 흔들며 찬이를 놀리는 경환 형의 얼굴이 참 화사했다.

그러게 아까 뒷정리할 때 적당히 놀렸어야지.

우진 형이 장비를 건네며 시간이 됐음을 알려주었다.

“자, 시간 다 됐으니까 그만하고. 오늘은 특히 말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알지. 솜뭉치들 질문 잘 골라서 대답해야 한다.”

“네~. 조심할게요.”

하준 형과 영빈 형은 우리 넷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신신당부하고 방송 시작 버튼을 눌렀다.

“와, 빠르다!”

“솜뭉치들 기다렸나 봐.”

미리 공지를 했던 탓인지 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사람의 수가 빠르게 늘어갔다.

“솜뭉치들 안녕~.”

“다 같이 인사해야지, 세빈아.”

솜뭉치들 만날 때마다 들뜬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세빈이는 채팅창에 올라오는 솜뭉치들의 인사를 보고 기뻐했다.

어느 정도 인원이 접속한 걸 확인한 하준 형은 옹기종기 모인 멤버들이 모두 보이도록 각도를 조절하더니 우리가 인사할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했다.

“인사하자, 래블이들.”

“네엡!”

“함께 풀어나갈 미래, 언래블입니다! 솜뭉치들 안녕!”

“언래블입니다! 반가워요!”

다행히 이번에는 고개를 숙여서 카메라 밖으로 벗어나는 멤버가 없었다.

처음 인사할 때 세빈이가 고개를 숙여서 카메라 밖으로 사라졌던 걸 생각하면 그동안 참 많은 발전을 했구나 싶어서 싱긋 웃었다.

“우리 솜뭉치들이 많이 걱정했을 것 같아서 직접 무사한 거 보여주려고 방송 켰어요.”

“저희 완전 무사해요! 오늘 점심에도 밥 두 공기나 먹음!”

“네, 멤버들 모두 건강하니까 우리 솜뭉치들도 이제 걱정 그만하기.”

환한 얼굴로 조잘거리며 솜뭉치들에게 무사함을 알리는 우리 애들은 이제 제법 방송 켜본 티가 나서 다행이었다.

안심하고 솜뭉치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채팅을 읽고자 얼굴을 조금 가까이 들이밀었더니, 그 순간 채팅창이 더 빠르게 올라가서 읽기 힘들어졌다.

“어, 너무 빨라서 잘 못 읽겠어요.”

“네가 가까이 가니까 그렇잖아.”

“그게 왜?”

영빈 형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채팅창에는 ‘ㅋㅋㅋㅋ’이 무수히 많이 올라왔다.

도대체 왜 웃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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