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13)화 (113/456)

113. 밤 편지(1)

하준은 가끔 지환이가 괜찮을까, 혹시 그날 이후로 저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준은 팀 내의 모든 멤버들이 소중했다.

데뷔 직전에 팀을 망칠뻔한 일이 있었음에도 누구 하나 흔들리지 않고 잘 이겨내 주어서 기특하기도 했다.

성격도, 취향도 제각각인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모난 구석이 없어서, 서로 티격태격하는 날들은 있어도 금방 화해하고 서로에게 미안해했다.

그리고는 금방 투닥거린 일도 잊고 다 같이 거실 바닥을 굴러다니면서 시시덕거리다 잠들기 일쑤였다.

다만, 그중에서도 지환이는 조금 독특했다.

큰일을 겪고 난 뒤, 마치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온 것처럼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다행히도 좋은 쪽으로의 변화였다.

하지만 종종 하준의 눈에 이해할 수 없는 위화감이 보였다.

예를 들면 하나뿐인 누나를 대하는 모습이라든가, 그전까지는 꽤 잘 지냈던 것으로 알고 있는 외가 쪽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모습.

게다가 묘하게 침착해져서, 간혹 18살이 아니라 우진 형 정도의 나이대로 보이기도 했다.

하준은 모든 멤버들을 틈나는 대로 관찰하고 더 챙겨야 할 부분들이 없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동안은 영빈이가 많은 부분을 도와주었지만, 영빈이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어서 회사나 아이들과 감정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일은 부탁하고 싶지 않았다.

멤버들 중 가장 차가운 인상을 가진 사람을 꼽으라면 영빈이와 지환이었다.

하지만 둘 모두 실제 성격이 그렇게 차갑지 못했고, 인상 덕분에 오해를 더 사는 편이었다.

영빈이의 실제 성격은 말랑말랑한 찹쌀떡 같았다.

반면 지환이는 좋고 싫고가 비교적 겉으로 잘 드러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생활이 익숙한 직장인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환이는 소수의 자기 사람들이나 몇 가지 외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일을 할 때는 언제나 싱글거리며 예의 바른 태도를 잘 유지하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 외에 제대로 웃는 건 자기 사람들을 바라볼 때뿐이었다.

지환이는 멤버들과 장난을 치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 솜뭉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그리고 새벽 선배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얼굴이 빛이 나는 것처럼 밝아진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멤버들과 잘 지내고 서로 아끼고 그러는 건 좋은데, 지환이는 지나치게 몸을 내던지는 행동들을 보였다.

보통 사람들은 다치는 것이 두려워 적당히 몸을 사리며 사는데, 지환이에게는 이런 부분들이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병원 단골이 되게 생겼다.

오죽하면 대표님은 굿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고, 실장님은 벌써부터 팀 닥터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소리를 했으니.

동생들이나 영빈이는 잘 모르겠지만, 하준은 생각보다 회사 사람들과 꽤 자주 회의를 하고 멤버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했었다.

멤버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에게 전해서 회사에 최대한 멤버들의 좋은 점이 전해질 수 있도록.

혹은 어려워하는 것들, 필요한 것들을 회사와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하지만, 처음에 비해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개개인의 의사를 직접 물었고, 멤버들의 의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여줬다.

물론 아직까지는 회사에서 하준을 통해 의사를 묻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제는 앨범 회의에 멤버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점점 더 많은 부분에서 멤버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뜻을 반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 또한 데뷔 앨범 관련 회의에서 지환이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준 덕분이라고, 그래서 멤버들의 발언에 조금 더 힘이 실리게 되었다고 하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긍정적인 변화도 분명 넘칠 만큼 많았지만, 그럼에도 하준은 지환이가 걱정돼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계도 과열되면 터질 수 있기에 쉬어줘야 하는데, 하물며 지환이는 너무 다방면으로 신경을 쓰는 게 보여서 번 아웃이라도 오면 어쩌나 싶었다.

이사하기 전, 영빈이 다른 동생들 몰래 지환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지환이가 잠을 잘 못 자는 것 같다고.

정확히는 악몽을 꾸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자면서 앓는 소리를 내는 날도 많았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한다고.

이사 후 방 배정을 랜덤으로 뽑는 게 아니었다면, 하준은 지환과 같은 방을 사용하고 싶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상태를 살피고 싶었던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혹여라도 지환이가 눈치챈다면 감추려 할까 봐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이제는 데미갓 일까지 얽혔다. 저 작은 머리통으로 또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부디, 제발 얌전히 다른 애들이랑 같이 움직이고, 혼자 튀어 나가지 않기를.

“준이 형!”

“오냐, 사고뭉치.”

타는 속도 모르고 마냥 해맑게 웃으며 다가오는 지환의 모습에 하준은 괜스레 조금 심술이 나서 사고뭉치라고 불렀다.

그러자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하준을 바라보는 지환의 얼굴에는 그늘 한 점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경환이를 통해 넌지시 확인해본 결과 지환은 아직도 악몽을 자주 꾸는 모양이었다.

다만, 경환이는 보통 지환이보다 먼저 잠들다 보니 지환이의 상태를 자주 확인할 수는 없었을 터.

“내가 언제 사고 쳤다고!”

“진짜로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지?”

“하, 하하…. 저 이거 가사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돼요? 경환이 형이 한번 써보라고 해서 써보긴 했는데 자신이 없어서요.”

하준을 바라보는 지환의 눈에는 늘 동경과 신뢰가 깃들어 있었다. 그런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하준은 팀을 지키기 위해 동생들 몰래 고생했던 일들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처음 하준과 영빈이 ON 엔터에 왔을 때는 14명의 연습생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 연습생들이 나가고 들어오고, 퇴출당하고를 반복하며 결국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시작은 8명이 되었다.

그러다 8명 중 절반 정도를 팀을 구성하려고 한다는 대표님의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을 때, 마음은 또 어떠했던가.

심지어 촬영 직전 한 명이 또 그만둔다고 갑자기 통보해와서 난리가 났었다. 물론 이것도 하준과 영빈만 아는 속사정이었고, 다른 동생들은 다들 그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떠난 줄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초반부터 방송국과 삐거덕거리며 시작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 후로도 지환이의 교통사고, 김우빈의 배신 등 참 탈도 많고 말도 많았다.

하루하루가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차마 동생들 앞에서 울 수도 없어서 숨이 막히는 날들이었다.

그래도 하준이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가수라는 꿈에 대한 열망. 그리고 자신을 한결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멤버들 때문이었다.

집에서 사랑받는 막내로 형과 누나의 보호 아래 자라왔던 하준이기에 동생이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언래블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적어도 동생들한테 부끄러운 형은 되지 말자.’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결국 하준은 가볍게 머리를 흔들어 비워내고 지환이 적어온 가사를 꼼꼼히 확인했다.

가사를 살펴본 하준은 경환이 들려줬던 노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경환이랑 다시 얘기해보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한데, 형이 보기에는 여기 가사가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표현된 것 같아.”

“어, 여기요?”

“가사든 멜로디든 시작부터 끝까지 강강강이면 듣는 사람이 다 진이 빠지고 지치니까 네가 쓴 파트가 강하면 다른 파트는 좀 풀어지는 면도 있어야 하거든.”

썼다 지웠다를 거듭한 자국이 작은 노트에 한가득 남아있었다.

연필과 지우개라니, 지환이 특유 감성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조금 귀엽기도 했고.

“그리고 워딩이 너무 세면 심의 걸릴 수도 있어. 일단 우리가 넘기면 회사 분들이 체크하긴 할 건데 처음 쓸 때 어느 정도 염두에 두면 거르기 편하잖아.”

“아, 그것도 그렇네요. 일일이 다 체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요….”

“그래도 조금씩만 표현 바꾸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음, 이렇게요?”

몇 가지만 가르쳐줘도 싹 흡수해서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여, 가끔 놀라울 정도였다.

이렇게 재능 넘치는 애가 그동안 왜 그렇게 맹목적으로 굴었는지도 모르겠고.

잘 정돈되어 있던 머리를 대충 헝클어주고 칭찬해 주자 사고뭉치라고 한 건 아예 잊어버렸는지 아주 싱글벙글이었다.

“경환이 형한테 보여주고 올게요!”

“오긴 뭘 와. 이제 좀 자라, 인마.”

지환이를 보내고 방 안에 홀로 남은 하준은 지환이에 대해 팀장님과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룸메이트를 잡으러 갔다.

아직까지 거실에서 다른 동생들이랑 놀고 있을 힘찬이를 재울 시간이었다.

“그만 놀고 잠 좀 자라. 아침에 또 일어나기 힘들어서 죽을라고 하면서.”

“내일은 평소대로 일어나야 돼요?”

“그래야지. 얼른 자라, 병아리들아.”

“우우! 리더의 횡포다! 자유롭게 해줘라!”

“아침에 안 깨워준다?”

“전 아무 말 안 했어요! 자러 갈게요!”

힘찬이는 한결같이 투덜거렸지만, 결국 처량한 얼굴을 하고 하준의 손에 체포되어 방으로 끌려갔다.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세빈이도 바닥을 굴러다니던 인형을 다시 챙겨 안고는 방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거실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 * *

하준 형에게 피드백 받았던 가사를 경환 형에게 넘기고, 드디어 침대 위에 널브러졌다.

짙은 남색의 이불에 좋아하는 섬유 유연제 냄새가 한가득 담겨있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형,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피드백 해줘요. 피곤하잖아.”

“그래야지. 오늘은 스케줄 간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피곤하냐….”

가영 형에게 한참 시달려서라고 말하려다가, 없는 자리에서 욕하는 기분이라 웃어넘겼다.

나이상으로는 우리가 훨씬 파릇파릇해야 맞는데 이상하게 가영 형과 놀다 보면 늘 우리가 먼저 지쳐서 녹다운이 되고 말았다.

이게 제영 쌤이 항상 말하던 기초 체력의 차이인 건가.

간식도 저녁도 형들과 함께 보낸 우리는 오늘이 깜박 잊고 있었던 미궁 탈출의 방송 날이라는 걸 우진 형의 메시지 덕에 알게 되었다.

너무 폭풍 같은 일을 겪다보니 방송 날짜를 잊었네.

결국 새벽 형들도 멤버들과 함께 오늘 방송분까지 모두 보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 와중에 세비 형한테 방송 꼭 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그들의 모습에 치밀함이 느껴져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사실은 멤버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추측이 돼서 함께 보지 않고 도망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만 세상 빠른 힘찬이한테 잡히는 바람에 꼼짝없이 다 같이 감상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뇌물을 바치면서 살려달라고 하는 내 모습이 크게 잡히자 다들 웃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그 와중에 하준 형이 ‘도대체 홍삼은 언제 챙겨간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서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포잉마저 외면한 그 장면에는 ‘신인 아이돌의 생존 방법’이라는 글자가 크고 굵게 박혀있어서 다시 한번 방으로 탈주를 시도했지만, 역시나 실패였다.

“난 안 보고 싶다니까!”

“자기 방송 모니터링하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인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올라간 입꼬리나 내리고 말해요!”

힘찬이나 세빈이는 자기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이 TV에서 나오자 마냥 신나 했고, 형님들은 하나같이 인자한 척 웃고 있었지만 그런 얼굴에 속을 내가 아니었다.

“우리 애들이 참 곱네.”

“언래블이 언제부터 형네 애들이었어.”

“얘네 데뷔 타이틀 만들어주던 날부터?”

“애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거 같은데.”

그 와중에도 키스 형은 끊임없이 가영 형과 투닥거렸고, 중간중간 출연했던 멤버들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새까만 어둠에 잠겼을 때는 정말 하나도 안 보였는지, 제작진이 힌트 하나도 안 준 상태로 시작되는 게 맞는지 등등.

겁먹을 때마다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우리 모습에 영빈 형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 당시 우리로서는 저게 최선이었다.

“왜요, 뭐! 형이라고 다를 것 같아요?”

“말을 말아야지….”

되려 더 당당하게 툴툴대는 힘찬이 모습은 세빈이가 보기에도 부끄러웠나 보다. 우리 막둥이 귀가 새빨개졌다.

“오, 우리 환이랑 세빈이가 역시 똘똘해.”

“자꾸 애들한테 소유격 붙이지 말라니까. 어, 저기서 뭐 나오는 거야?”

중간중간 스포를 요구하는 가영 형과 키스 형의 발언도 잘 흘리면서 심력을 왕창 소모한 모니터링도 끝냈고, 형들도 보내고 나니 정말로 한밤중이 되었다.

씻고 하준 형과 경환 형에게 가사도 보여줬고 이제는 자는 것만 남았다.

‘포잉, 오늘도 고생 많았어.’

‘너도 고생했다, 계약자야. 푹 자라.’

역시 하루의 마무리는 포잉 테라피가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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