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99)화 (99/456)

99. 이게 무슨 일이야(1)

팀장님의 설명을 들은 우리는 조금 망연자실한 얼굴로 새벽 형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 쓰는 건 미궁 탈출로 끝난 줄 알았는데, 그거보다 더한 걸 들고 올 줄은 몰랐지.

새벽 멤버들 중 가영 형과 친분이 조금 있었던 방송국 사람에게 재밌을 것 같은 제의를 들은 게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10명의 인원이 2팀으로 나누어 1시간 버스킹으로 돈을 모은 후, 그 돈으로 휴가를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휴가를 무인도로 떠나야 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아주 기본이 되는 장비는 제공되지만, 그 외의 것들은 제작진이 제공하는 약간의 비용과 버스킹으로 마련해야 했다.

심지어 버스킹은 게릴라로 진행되어야 했고, 한 시간의 제한 시간마저 존재했다.

아니… 거기에 왜 우리를 끌어들이는 거야.

팀장님도 새벽의 회사에서 제의 온 이 프로그램을 두고 꽤 고민했다고 했다.

최근에 이미 두 개의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고, 이미 미궁 탈출을 촬영했으니 방송 후 멤버들에게 도움은 될 텐데, 또 몸을 써야 할 프로그램에 굳이 애들을 보내야 하나라는 조금 회의적인 반응.

회사 사람들과의 회의 결과도 반반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출연 여부를 물어보려 했으나, 세비 형이 자신들과 함께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니까 직접 물어보고 싶다 했다고.

같이 하는 건 뭐든지 다 좋다고 말한 주제에 이제 와서 고생할 것 같으니 안 가겠다고 할 수도 없고.

아마 싫다고 해도 형들은 그냥 웃고 말 테지만, 방금 우리 입으로 뱉은 말이 있으니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하, 하하… 세비 형이 저희를…. 네….”

약간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겠지.

영빈 형은 나라를 잃은 표정으로 새벽 형들을 바라봤지만 키스 형이 작게 혀를 찰 뿐 변하는 건 없었다.

나중에 키스 형에게 들은 거지만, 사실 세비 형이랑 키스 형도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했다. 가영 형이 먼저 지른 탓에 독박 쓴 거라고.

“그럼 저희랑 형들까지 하면 9명인데 한 명은 누구예요?”

“진우.”

“아, 진우 형이….”

“너희랑 비슷하게 낚였어.”

함께 해서 너무 좋다고, 형이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 굉장히 재밌게 봤다고 이전 방문 때 앨범에 코멘트를 적어서 건네 드렸던 진우 형.

나중에 우리 코멘트를 확인하고 활짝 웃는 얼굴로 좋은 동생들을 만났다며 SNS에 얘기까지 써준 착한 형이었는데, 어쩌다 이 형들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마침 잠깐 쉬는 중이라 너희랑 같이하는 그거 말고는 스케줄 없다고 하더라고.”

앞으로 세비 형의 말은 한 번쯤 의심하고 넘어가야겠다는 삶의 교훈을 얻었다.

“아, 이거 선물.”

“선배님, 감사합니다.”

“거리감 느껴지게 선배님은. 다른 애들한테 하듯이 그냥 형이라고 해.”

다진 선배, 아니 다진 형이 다육이 화분을 6개 가지고 와서 멤버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셨다.

락 스피릿이 함께 한다고 해도 믿을 만큼 자유분방한 영혼에 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한다고.

“어차피 나도 곧 제대하니까 곡 얘기는 그때 가서 다시 하자.”

“겸직 금지죠.”

“그렇지. 일단 들어나 봐.”

익숙해지기 어려울 것 같은 형님이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인 것 같아서 조금은 안도했다.

저러다 땅이 꺼지지 않을까 싶을 만큼 한숨이 늘어난 우리 하준 형이 오늘따라 더 안쓰러워 보였다.

그 후에 새벽 형님들이 갖고 있는 곡과 우리가 쓰고 있는 곡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들 끝에 어느 정도 서로 만족할만한 상황이 되었고, 이번에는 가영 형이 아닌 세비 형과 키스 형의 곡을 한 곡씩 받아오기로 했다.

세비 형과 키스 형도 타이틀로는 약간 아쉽다는 입장이어서 조금 더 지켜보자는 게 A&R 팀의 의견이었고, 우리는 그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조만간 또 보자.”

“그… 래요.”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너덜너덜해진 멤버들을 하나둘 추스르고,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무사이 무대를 위해 막바지 준비를 마친 우리들은 넋이 나간 채로 우진 형에게 이끌려 드라마 주인공들과의 인터뷰 자리로 끌려갔다.

“안녕하세요! 최다겸입니다. 이제야 처음 뵙네요.”

“안녕하세요, 김지현입니다.”

활달해 보이는 표정과 움푹 들어간 보조개가 인상적인 남배우 한 명과, 차분하면서도 이지적인 느낌의 여배우 한 명.

이 두 사람이 ‘지금, 우리’라는 청춘 로맨스물의 드라마 주인공들이었다.

이동하는 동안 우진 형이 해준 설명에 따르면 본격적인 인터뷰는 이 두 사람이 진행하게 될 거고 우리는 곡에 대해서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면 된다고 해주었다.

이미 회사로 보낸 질문지가 있기에 어떤 방향으로 답변이 진행돼야 하는지도 숙지하고 온 상황이었다.

팀장님이 말했던 음방에 출연하지 않을 작정이었다면 이번 인터뷰도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답변하고 끝낼 예정이었다고 했다.

여러모로 회사가 많이 배려해 주고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낀 나는 마음이 한결 차분하게 가라앉는 걸 느꼈다.

우리 멤버들의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인사를 나눈 뒤 이제는 익숙해진 카메라 앞에 다소곳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겪을 때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우리 애들이 이렇게 카메라 앞에 설 때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찬이조차 평소의 산만하고 지나치게 장난기 넘치던 모습을 버린 채 활기차고 밝은 느낌을 주는 미소를 머금고 있어 늘 새로웠다.

다른 멤버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리.

“드라마 때문에 만들게 된 곡은 아니라고 들었어요. 어떤 사연 속에서 이 곡이 나왔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자님의 질문에 몇 번이나 회사 사람들에게 내밀었던 거짓말을 다시 한번 꺼내 들었다.

“이 곡이 나오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어요. 작곡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면서 에단 선생님의 곡들을 많이 들었던 터라 선생님의 기존 곡들 분위기를 저도 모르게 떠올렸던 것 같아요.”

“작곡가 에단 씨와는 친분이 깊은 사이인가요?”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 곡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가사 수정이나 편곡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에단이 만든 곡이라고 밝힐 수 없었던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최대한 에단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에단이 아니면 나올 수 없었던 곡이라고.

그렇게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라고 생각했으니까.

“제가 얼마 전에 에단 씨랑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환 군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셨어요.”

“아, 정말요? 되게 부끄러운데…. 아직 배우는 중이라 제가 선생님께 많이 여쭤보고 귀찮게 해드리고 있거든요.”

“언래블은 자체 제작돌이라는 수식어도 갖고 있는데, 하준 씨가 멤버들 자랑을 좀 해줄 수 있을까요?”

다행히 사전에 협의가 잘 된 모양이었는지 예상 질문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질문을 주로 던졌고, 멤버들 한 명, 한 명에게 답변할 기회를 주셔서 바짝 긴장하고 있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다.

기자들에 그간 좋은 경험이 없었던 탓에 아무래도 기자라고 하면 색안경을 먼저 끼게 되는 면이 없지 않았으니까.

“저랑 C.I는 래퍼로 언더에서 활동하면서 먼저 작사, 작곡을 접했던 사람들이라 팬분들이 감사하게도 좋게 봐주시는 면이 더 커요. 아직 저희도 작곡에 대해서 많이 배우는 중이거든요. 감성적인 가사는 히스가 더 잘 쓰는 편이에요. 평소에도 책을 가까이하는 친구라 표현이 정말 예뻐요.”

“히스 씨는 알면 알수록 더 매력이 넘치는 타입이네요.”

적당히 덕담을 섞어가며 멤버들을 칭찬해 주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오랜만에 아빠 미소가 나왔는지 힘찬이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카메라 앞에서 제발 팔불출 같은 얼굴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우진 형이 이야기했지만, 그게 내 맘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찬이랑 세빈이는 저번 타이틀 안무 때도 참여할 만큼 춤에 굉장히 의욕 넘치는 친구들이에요. 이건 기자님께 제일 먼저 말씀드리는 건데, 다음 타이틀 때도 참여할 것 같습니다.”

저 넉살 좋은 저 사람이 우리 리더 민하준 씨가 맞는지 조금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아까 단체 연습할 때 경환 형이 틀렸다고 쫓아다니면서 잔소리했던 사람 어디 갔지…?

“제가 들은 바로는 다겸 씨와 지현 씨까지 같이 해서 ‘지금, 우리’ 팬분들께 선물을 준비 중이라고….”

“네. 맞아요. 너무 많이 사랑해 주셔서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다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 인터뷰가 나간 시점에는 아마 정보가 많이 풀렸을 것 같은데요. 애청자로서 저도 많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 후로도 몇 가지 질문을 더 주고받았고, 기자님이 언래블에 대해 물어보면서 눈을 반짝이는 거로 봐서는 아무래도 회사에서 무언가 소스를 준 게 아닐까 싶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새 숙소로 돌아왔을 때 우리들은 정신도, 몸도 지쳐서 그대로 한참을 거실 바닥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설거지 순번은 그대로 갈 거죠?”

“그래야지. 쓰레기 언제 내놔야 하는지 우진 형한테 물어보고.”

이전 숙소와 달리 1층 정해진 장소에 재활용 용품과 쓰레기를 내놓으면 청소하시는 분들이 알아서 가져간다고 했지만, 날짜는 체크해 두라고 영빈 형이 경환 형을 닦달했다.

숙소를 옮기기 전 팀장님이 우리에게 어떤 침대를 쓸지 물어봤었다.

2층 침대를 쓰면 방을 넓게 쓸 수 있지만 잠자리는 개인 침대를 갖는 것보다는 불편할 터.

그래도 조금 더 편한 침대에서 자고 싶었던 우리는 개인 침대를 요청했고 덕분에 푹신한 새 침대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아니, 방이 생기면 뭐하냐고.”

물론 방이 생긴 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씻고 나오면 죄다 거실 바닥에 퍼져있는 게 우리 애들은 침대가 아니라 온돌 체질인가 싶기도 했지만.

라디오 출연 때문에 하준 형이 없는 것만 빼면, 이사 전 숙소와 비슷한 모양으로 씻고 나온 뽀송뽀송한 멤버들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넓으니까 막 굴러다녀도 되고 좋은데?”

“너희가 사이좋게 지내니까… 그래, 그거면 됐지 뭐.”

“왜 형까지 점점 우리를 포기하려고 해!”

“맞아! 우리 포기하지 마!”

하준 형이 없는 사이 우리를 책임져야 하는 영빈 형의 얼굴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미소가 떠오르더니, 하준 형을 닮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난 그냥 아무것도 못 본 걸로 해야겠다….

“근데 확실히 배우는 아우라가 다른 것 같아.”

“맞아요. 막, 그 포스가 있어!”

오늘 인터뷰를 떠올린 건지 경환 형이 세빈이에게 말을 걸자 세빈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팬이 선물해 준 몽글몽글한 토끼 인형을 끌어안았다.

어째서인지 점점 동물 인형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하겸 형과 하준 형이 나오는 라디오를 배경음 삼아 틀어두었다. 이제는 제법 라디오에 익숙해진 하준 형의 멘트에 모두들 웃으며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형, 진짜 많이 늘었다.”

“우리가 모니터 안 해줘도 되겠는데?”

“근데 안 들으면 서운해할걸?”

처음에는 듣는 우리가 더 긴장해서 안절부절못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하준 형이 숙소로 올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결국 다른 멤버들 보다 먼저 침대에 먼저 누워버렸다.

다른 날보다 정신적으로 더 지치는 기분이 드는 건 인터뷰 때문일까?

최근에는 잠들기 전, 과거의 언래블과 현재 언래블을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솔직히 최근 언래블의 행보는 기존에 내가 알던 것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버렸고, 덕분에 이런 것들이 악영향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숙소 주변을 둘러보고 온 포잉이 새 침대가 마음에 드는지 품에 쏙 들어와 누웠다.

‘포잉, 최대한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걸 알면 내가 너랑 여기서 이러고 있겠음?’

‘그것도 그렇네. 휴, 어렵다.’

‘계약자야 너는 지나치게 어렵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

이미 여러 번 지적받았던 부분. 그날도 머리를 가득 채운 고민을 끊어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정말로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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