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96)화 (96/456)

96. CHEER UP(4)

우리 준이 형 [안 다치고 잘하고 있어?]

우리 빈이 형 [찬이 사고 안 쳤지? 부수면 안 된다.]

우리 준이 형 [꼭 인사 잘하고]

나, 힘찬이, 세빈이 이렇게 우리 셋은 단톡방에 와있는 형들의 메시지를 확인하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모지리 [나 진호 형님이 고기 사준다고 했다!! 부럽지?]

[촬영 무사히 잘했고, 다들 되게 잘 대해주셨어요. 영진 형님이 고기 먹자고 하셔서 밥 먹고 지금 숙소 가는 길]

모지리 [영진 형님이 내 번호도 따갔음!]

내 동생 [형들 말대로 몸이랑 말이랑 다 조심히 하고 예의 바르게 굴었어요!]

한껏 칭찬받은 우리는 다들 어깨가 으쓱거려서 차 지붕을 뚫을 것처럼 올라가 있었다.

그런 우리가 어지간히 웃겼는지 룸미러로 우리를 확인하던 우진 형까지 피식거리며 웃고 있을 정도였다.

우진 형이 웃더라도 우리는 당당했다.

다들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으니까!

세트장 여기저기에 녹화용 카메라가 배치되어 있긴 했지만, 더 실감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함께 입장했던 분들도 있었다.

그분들이 우리가 너무 열심히 해서 보기 좋았다고 인사를 나눌 때 어깨도 두드려주고 가셨다.

잔뜩 신난 우리는 단톡방에 오늘 함께하지 못한 형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풀어놓으며 빨리 숙소에서 보자는 말을 남겼다.

각오했던 것보다 꽤 빠르게 미궁을 통과한 덕에 낮부터 시작한 촬영은 오후 10시가 조금 못 되는 시간에 끝낼 수 있었다.

배고픈 힘찬이와 내가 미친 듯이 퍼즐을 풀고 미로를 돌파하느라 시간을 조금 더 단축할 수 있었다.

식사를 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빨리 돌아갈 수 있었을 테지만, 기껏 호의를 베푸는 상대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던 우리는 기꺼이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 결과 두 형님과 일부 스태프분들, 매니저분들까지 모여 대 인원이 고깃집을 비우고 왔다.

두 분 모두 우리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이 버는 사람들인데, 괜히 오늘 영진 형님의 지갑이 조금은 홀쭉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하면서.

다행히 날이 바뀌기 전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던 우리를 형들이 기꺼이 반겨주었고, 따끈따끈한 물로 개운하게 씻고 나와 바닥에 널브러졌더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잘하고 왔어?”

“그럼요!”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굴었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는 말을 형들에게 다시 열심히 설명하는 찬이와 세빈이.

그리고 그런 둘의 모습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는 하준 형과 영빈 형의 눈빛에서는 대견함이 묻어났다.

“사고뭉치들만 가는 거라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사고뭉치라뇨, 사실 사고뭉치는 찬이랑 경환이 형이잖… 악! 이거 반칙이야!”

경환 형의 중얼거림에 정당한 반론을 펼쳤지만, 이어진 응징에 힘없는 나는 비명을 지르며 하준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경환아, 다리는 건드리지 말고.”

“옙.”

“아니, 다리 아니면 된다는 거예요?! 너무하네!”

바닥에 엎드린 내 위에 올라탄 경환 형은 안마를 빙자한 폭력을 행사했다.

“으갹, 형, 아파! 아프다니까!”

“어휴, 얼마나 근육을 안 풀어줬으면 어깨가 이렇게 뭉쳤어?”

“…와, 사람 망가지는 거 한순간이구나.”

결국 항복을 외치며 바닥을 기어가는 내 모습에 힘찬이가 중얼거리는 게 들렸지만, 평소처럼 힘찬이를 응징하기에는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이미 연습생 생활부터 꽤 많은 말다툼과 의견 충돌이 있었고, 이전에 하준 형과 영빈 형이 선을 잘 지켜주자는 말까지 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장난칠 때도 조심하는 편이었다.

다행히 다들 말투도 많이 거칠지 않았고, 손찌검을 함부로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가끔 경환 형에게 이렇게 안마를 당하는 게 가장 아픈 정도였으니까.

“아으으…. 진짜 안마 극혐.”

“다들 시원하다고 하던데.”

“아프기만 한데 뭐가 시원해요….”

사실 경환 형이 이렇게 주물러 주고 난 다음 날은 유독 몸이 더 가뿐하긴 했다. 다만 안마를 당하는 동안에는 너무 아파서 도망 다닐 뿐.

바닥에 축 늘어진 나는 하준 형이 세빈이 어깨를, 경환 형은 찬이 어깨를 주물러주는 기묘한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오늘 몸 쓰느라 고생했을 텐데 지금 풀어놔야 내일 덜 아프지.”

“끄응…. 파스라도 좀 붙이고 자면 덜할까요?”

한참 촬영하는 동안에는 생각할 겨를도 없어서 잘 못 느꼈지만, 배가 차고 따뜻하게 목욕까지 하고 나니 긴장이 풀려서 몸이 여기저기 쑤셔왔다.

좁은 통로를 기고, 벽난로 구멍을 통해서 또 기어가고, 내 키보다 높은 벽을 넘고, 달리고.

“아…. 우리 진짜 열심히 했는데. 분량 많았으면 좋겠다.”

세빈이는 몸이 배기는지 꼼지락거리다 이내 편한 자세를 찾아내고 히죽 웃었다.

“형들은 오늘 어땠어요?”

“여전히 어렵지. 처음 해보는 거니까.”

“그래도 생각보다 잘되고 있는 것 같아.”

뜻하지 않은 문제가 걸림돌이 되었지만, 프로그램이 아까웠는지 무사이는 그대로 진행되기로 했다.

그에 대비해서 내일부터는 나, 힘찬이, 세빈이도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래도 좋다. 우리 계속 뭔가 하고 있다는 게.”

“그치? 솔직히 스케줄 하나도 없으면 어떡하지 했는데.”

우리끼리 킬킬거리며 좁다란 거실 바닥을 쓸고 다녔다.

이곳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이상해요. 내일 이사하는 데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게.”

“세상 참 좋아졌다니까….”

“형, 되게 나이 든 것 같은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면….”

가끔 영빈 형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말투를 구사해서 동생 라인의 놀림을 사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말투조차 익숙해져서 자연스러워졌다.

“뭐, 거기도 지금 집처럼 금방 익숙해지겠지.”

“그래도 조금 아쉬워요. 여기서 별일이 다 있었는데.”

나도, 지환이도,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멤버들도 이 숙소가 집으로 느껴질 만큼의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영빈 형이 이렇게 허점 가득한 사람인지 몰랐지.”

“내가 뭐.”

“형도 입 안 열면 은근히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라 무서웠단 말이에요.”

“그래도 차가워 보이는 거로 치면 지환이가 제일이었지.”

힘찬이가 첫인상 이야기를 꺼내자 역시나 나에게도 화살이 돌아왔다.

“나야 뭐, 하준 형 덕에 철들어서 사람 됐지.”

그냥 그렇게 늘 넘어가고 있었다.

너희가 아는 지환이가 내가 아니라는 말은 할 수 없으니까.

가끔 이런 괴리를 느낄 때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몰아친다. 그리고 그런 나를 늘 잡아주는 건 지금 내 침대에서 잠들어 있을 포잉이었고.

“지환이도 그저 요령이 없었던 거지, 뭐. 천성이 착한 애라는 건 다들 알고 있었잖아.”

“그렇긴 하지. 너희 그거 알아? 가끔 청소하시는 분이 오는 날도 아닌데 집 정리되어 있고 했잖아.”

“어, 맞아. 그래서 우렁각시 사냐고 우리끼리 그랬잖아요.”

“그거 지환이가 한 거야.”

“어? 진짜요?”

하준 형과 영빈 형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걸 지켜보는 데 또 화살이 내 쪽으로 넘어왔다.

정확히는 이전의 ‘내’가 했던 일들이어서 조금 씁쓸해졌다.

가끔 지금 멤버들과 말싸움이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그때의 지환이는 남몰래 숙소를 정리했다.

말재간이 없는 자신을 탓하기도 하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한탄하기도 하면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멤버들에게 미안함을 내비쳤다.

집에서 누나에게 했던 것처럼.

멤버들 중 하준 형과 영빈 형은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던 일이었다.

“왜 말 안 했어. 진짜 고마웠는데.”

“에이, 말할 거면 대놓고 하지 그렇게 몰래 안 했지.”

“하긴, 그것도 그렇네. 그래서 요새는 대놓고 하는 거야?”

“어. 알면 좀 거들어.”

“하하…. 생각해볼게!”

하지만 이 평화로운 공간은 어디까지나 지금의 내가 만들어낸 공간이기에, 떠난 이에 대한 추모는 짧았다.

쾌활하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장난을 거는 힘찬이 얼굴도, 언제나처럼 벽에 기대서 우리가 하는 장난을 바라보는 두 맏형도, 은근슬쩍 끼어들어서 힘찬이가 껴안고 있는 쿠션을 빼앗는 경환 형도, 그런 형들을 이제는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세빈이도.

이 광경은 나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니까.

“그만하고 이제 자자, 이놈들아.”

“내일 이사 간다고 하니까 왠지 잠이 안 와요.”

“찬이 너는 그래놓고 침대에 누우면 일 분도 안 돼서 잠들 거잖아.”

“그래도 조금 더 뒹굴뒹굴하고 싶은데….”

“오늘만 날인 거 아니니까 빨리 가서 자라.”

괜히 자리에서 뭉그적거리는 힘찬이를 잡아 일으킨 하준 형이 해산을 외쳤다.

더 늦게 잠들면 내일 또 피곤해서 골골거릴 멤버들을 알기에 억지로라도 잠자리로 돌려보내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사실 나도 조금 아쉬웠다.

좁은 이층 침대에 몸을 구겨 넣어 잠들어야 했지만, 이제는 악몽을 덜 꿀만큼 이곳에 적응되기도 했고, 숙소 앞의 진실의 공원도 괜히 아쉬웠다.

그래도 하준 형의 말도 맞긴 했다.

그냥 이사 가는 것뿐이지 우리가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 * *

그렇게 길지 않은 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회사를 나서는 우리는 잔뜩 들떠서 우진 형을 닦달했다.

“형! 빨리 가요, 빨리!”

“얌전히 좀 있어, 이것들아!”

짐도 정리하고 집에 부족한 물품이 있는지도 살피기 위해 일찍 일정을 마친 우리는 우진 형 차에 올라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진 형과 소현 팀장님까지 다 함께 새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방이 진짜 3개야!”

“욕실도 2개나 있어!”

“거실이랑 주방이 따로 있어!”

어제 이사 가는 게 아쉽다고 청승 떨던 모습들은 어디 가고, 새로운 숙소에 잔뜩 신나서 집 안을 헤집고 다니는 모습이 기가 찼다.

“어제 이사 가는 거 아쉽다고 한 놈 누구야.”

“글쎄? 모르겠는데?”

“허….”

오죽하면 하준 형이 이렇게 한마디 했을까.

그런 우리 모습을 뿌듯하단 표정으로 바라보던 소현 팀장님이 말했다.

“우진이가 너희끼리 좁은 거실 바닥에 엉켜 있는 게 보기 안쓰럽다고 너희가 조금 더 넓은 집에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실장님한테 직접 말했어.”

“우와, 진짜요? 우진 형 덕분이네!”

“마침 그 집 계약도 끝나가고, 보안 문제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이사하기로 회사에서도 정한 거고.”

따로 챙겨야 하는 개인 짐은 사전에 받았던 박스에 잘 넣어둔 덕에 거실에 곱게 쌓여있었고, 우리가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우진 형이 새 숙소에 와서 대충 짐을 분류해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소현 팀장님은 씩 웃더니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이거 각자 방 앞에 걸어. 방은 어디 쓸지 나눴지?”

“네. 미리 정해놨어요.”

“오, 예쁘다.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하셨대요.”

“크, 역시 팀장님이네.”

팀장님에게 우리 이름이 적힌 방 문패를 건네받은 하준 형은 등짝에 매달려 자기 방부터 걸어 달라는 동생 놈들 때문에 순식간에 지친 것 같아 보였다.

원래 저런 건 경환 형이랑 힘찬이 몫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세빈이도 저 무리에 끼어 있었다.

심히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저 둘을 닮으면 곤란한데.

가위바위보로 창문이 있는 방을 차지한 경환 형의 어깨가 유독 하늘 높이 솟아 있었고, 형 덕분에 창문 있는 방을 차지하게 된 나는 모른척해 주기로 했다.

“자, 얘들아. 이사 날 하면 뭐지?”

“짜장면이요!”

“그렇지, 오늘은 내가 쏜다.”

방 문패를 모두 걸고 나자 소현 팀장님이 어깨를 쫙 펴고 카드를 꺼내 들었고, 우진 형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환호성을 질렀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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