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92)화 (92/456)

92. 너나 잘해(7)

- 야 노네 이거는 보고 지금 덕질중이냐고ㅠㅠㅠㅠ

캡처 떠왔어 ㅠㅠㅠㅠ 우리 애들 왤케 하찮고 귀엽지?

고맙고 사랑해요 솜뭉치♡ #이렇게하는게맞아?#지환아

(다 같이 손 하트 한 언래블 사진)

@Unravel_ltt 님에게 보내는 답글

형, 그거 아냐…. 해시태그 쓰는 거 알려줄게….

ㄴ대미치뉴ㅠㅠㅠㅠㅠㅠㅠ 왤케 귀여워ㅠㅠㅠㅠㅠ

ㄴ지금ㅋㅋㅋㅋㅋ 해시태그 쓰는 방법 몰라서 작은 환한테 혼나는 거 아니냨ㅋㅋㅋ 저거 경환이 같지?

ㄴ ㅇㅇ 경환이 아니면 히스일 거 같다 ㅠㅠㅠㅠ 귀여워 ㅠㅠ

자신들만의 작은 축제를 행복하게 끝낸 언래블은 팬들에게 굿즈로 판매했던 배지를 옷에 달고 사진을 찍어 공식 SNS에 올렸다.

개인 계정이 아닌 공식 계정 하나를 모든 멤버들이 사용하고 있던 터라 팬들 사이에서는 누가 글을 올렸는지 추측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평소에 하준이나 힘찬이가 올리곤 했지만 오늘은 경환이 직접 해보고 싶다고 해서 넘겨주었더니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

이 상황에서 슬퍼한 건 지환뿐이었다.

경환은 어쩔 수 없지, 라는 반응이었고, 다른 멤버들도 지환이 반응과 팬들의 반응에 재밌어했다.

지환이만 이 중에 정상은 자신밖에 없는 것 같다며 포잉을 붙잡고 슬퍼했지만, 늘 있는 일이라 포잉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함께 지낸 지 반년, 포잉도 이제는 지환이에 대해 제법 알게 되어서 어떻게 하면 이 나약한 계약자가 더 강하게 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요정이든 사람이든 육아하는 쪽은 언제나 힘들고 고되다는 것을 요정생 37년 만에 깨달은 초보 요정 포잉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온 건 그다음 올라온 하나의 기사였다.

- 작은 환 운다ㅠㅠㅠㅠ 맴찢…. 근데 기사로 박제됐어…. 작은 환 또 우는 거 아니냐ㅋㅋ

http://dailyreview.co.kr/read.php3?aid=17061012259020

팬들에게 진심인 신입 그룹 언래블, 감동 속 눈물

(눈물이 맺힌 눈으로 팬들을 바라보는 지환이 사진)

ㄴ아니, 선생님ㅋㅋㅋㅋ우리애갘ㅋㅋㅋㅋㅋ…. 작은 환 미안해…! 속상한데 좋은걸!!

ㄴ윗 뷰어야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이상해지자나…. 흙흙… 그치만 사실이라 ㅂㅂㅂㄱ

ㄴ울지 마!! ㅠㅠㅠㅠ 아냐 울어도 돼ㅠㅠㅠㅠ 내 속에 또 다른 내가 있나 봨ㅋㅋㅋㅋㅋ

팬 사인회에 참석했던 스태프 중 한 명이 운 좋게 그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고, 그걸 홍보팀에 넘긴 순간 이렇게 기사로 노출되어 지환이의 눈물이 박제되어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축제가 끝난 후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더 많은 솜뭉치들과 이 기쁨을 나누겠다는 착한 마음을 가진 팬들이 영상과 사진을 빠르게 편집해서 널리 널리 퍼트리고 있었다.

물론, 그 안에도 지환이의 눈물 샷은 포함되어 있었다.

* * *

학교에서 병원, 그리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을 때 나를 반긴 건 음흉하게 웃고 있는 찬이 얼굴이었다.

“뭐야, 너 얼굴 왜 이래.”

“내 얼굴이 왜?”

“거울 봐. 너 되게, 음…. 좀 그래.”

힘찬이 웃음이 왠지 모르게 꺼림칙했던 나는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세빈이가 해맑게 웃으며 달려오더니 나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형! 이거 봐요! 형 기사 떴어요!”

“응? 기사?”

언래블의 기사라면 모를까 내 기사라는 말에 의아한 얼굴을 하자, 세빈이가 폰을 쭉 내밀어 기사를 보여주었다. 나는 핸드폰을 던지지 않으려 손에 힘을 줘야 했다.

“팀장님!!”

손을 부들부들 떨던 내가 배신감에 치를 떨며 팀장님을 외쳤지만, 돌아온 것은 인당수에 우리를 팔러 갈 때 보았던 그 팀장님의 미소였다.

“지환아, 기사 봤어? 잘 나왔지?”

“왜 하필 그 사진을…!”

[신인 그룹 언래블, 팬들과 함께 하는 작은 축제!]

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멤버들의 단체 사진과 함께 찰나의 순간 내 눈에 고였던 눈물 몇 방울이 떨어지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 있었다.

도대체! 그 짧은 순간에! 누가!

기사에는 팬들을 위한 팬 송을 직접 만든 내가 팬들의 화답에 기뻐하며 울고 있다고 적혀있었다.

그 마음이 맞긴 한데…. 그래, 틀린 말은 아닌데…!

단순히 기사만 보면 내가 눈물 몇 방울을 떨군 게 아니라 펑펑 운 것처럼 보여서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저번에 미니 팬 미팅 때 운 걸로 한참을 놀림당했는데!

“아니, 진짜 왜 하필 이 사진이냐고요….”

“우리 화니, 부끄러워써요?”

“오구오구, 작은 화니 부끄러워요?”

“형, 괜찮아요. 너무 기쁘면 눈물 난대요!”

세빈아, 아냐. 하지 마….

팀장님과 찬이의 환장의 콜라보.

결국 부끄러움은 언제나와 같이 내 몫이었다. 이제는 막내한테까지 위로를 받는 내 처지가 씁쓸해졌다.

내가 그렇게 눈물 많은 사람이 아닌데.

애처로운 내 처지를 하소연할 곳도 없었서 시무룩해진 얼굴로 의자에 걸터앉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준 형이 고개를 저으며 다가왔다.

“이제 움직여도 괜찮대?”

“네…. 한동안 무리만 하지 말래요. ”

반깁스하고 있던 것도 풀었고, 병원에서도 괜찮다고 했지만, 이번 주까지는 댄스 트레이닝을 받지 말라는 팀장님 엄명이 있었다.

일주일 넘게 트레이닝에 빠졌더니 몸이 굳는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또 조급해졌다.

더 잘하고 싶고, 더 많이 연습해야 하는데 자꾸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작은 무대에서도 그렇게 멋있게 안무를 소화해 내는 멤버들을 보고 있자니, 나 스스로가 너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몰래 한숨을 내쉬곤 했다.

인트로 안무를 맞추는 것도 박박 우겨서 겨우 참여했었는데 이번 주는 춤은 넘기더라도 체력 단련실은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지환아, 곡은 잘 돼가?”

“아직 멀었어요….”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작업실로 가던 나를 잡은 건 종종 우리를 도와주던 석환 형이었다.

“잘 될 거야. 이번에 팬 송도 좋더만. 그런데 지금 어디 가?”

“감사합니다…. 그, 5작업실요. 저 주로 거기서 작업해서.”

“네 작업실 대표님이 만들어주셨잖아. 거기서 안 하고?”

“아직 안에 기기 덜 채웠다고 시간 조금 더 걸린다고 하셨어요.”

“아아…. 고생이 많네. 또 보자!”

활달하고 싹싹해서 분위기 띄우는 것도 잘하고 일도 잘한다고 소현 팀장이 칭찬했던 형이라 우리도 석환이 형을 좋아했다.

보통 소현 팀장님이 칭찬하는 사람들은 다 칭찬받을 만한 좋은 사람들이었다.

졸업식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마지막 이야기, 그러니까 팬 송을 언급하고 칭찬해 줘서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진 것도 있었다.

졸업식이 꽤 인기를 얻고 있다고 소현 팀장님이 이야기해주셨지만 아직 거북해서 그 관련 이야기에 대해서는 차마 입을 열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프로듀싱에 에단 이름을 올릴 수 있어서 아주 조금이지만 마음에 위안이 되었으니까.

언제나처럼 좁고 어두운 분위기의 작업실 안에 들어서면, 세상과 잠시 단절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들과 드럼 머신이 내뿜는 불빛이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는 그래도 초보 작곡가 정도는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마스터 키보드를 의미 없이 톡톡 두드리다 얼마 전 잠깐 쪼개두었던 멜로디를 불러와 재생시키며 내 삶에서 가장 분노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연습을 하던 도중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내가 곡을 쓸 수 있는 건 두 가지 경우인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경우와 경험을 표현하는 경우.

둘 중 이번 앨범의 주제를 생각했을 때 어느 쪽이 더 들을만한 곡이 나올지 알 수 없어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타이틀곡 욕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 곡 정도는 나도 앨범에 넣고 싶다는 마음이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직접 만들어낸 노래를 다른 사람이 따라 부르는 걸 주말에 경험하고 나니 그 마음이 부쩍 더 자라는 것 같았다.

“아, 안 되겠다.”

좀처럼 손이 움직이지 않았던 나는 결국 작업을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스스로 안되면 자극을 줄 만한 사람들을 만나야지!

시간을 죽이기보다 차라리 형들에게 배우면서 생각해보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나는 경환 형의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네.”

“형, 저요.”

조금 피곤해 보이는 경환 형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건네며 메인 컴퓨터 앞 보조 의자에 걸터앉았다.

잠시 둘러본 작업실 안엔 형의 취향인 것 같은 그림이 하나 걸려있었고, 한쪽에는 우리 1집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잘 안돼서 선배님에게 배우려고 왔어요.”

“선배는 무슨. 마침 잘 왔어. 이거 한번 들어볼래?”

피식 웃던 경환 형은 작업 중이던 곡을 들려주었고,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던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때?”

“느낀 대로 말하면 돼요?”

“응. 솔직하게.”

4분 가량의 곡이 흘러나오는 동안 나는 짧은 영상을 본 것 같았다.

좁고 반듯한 길을 걷는 사람이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높고 거칠어 보이는 벽에 사방이 막혀 앞에 놓인 길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뒤돌아 갈 수도 없어 그저 앞으로만 가야 하는 사람은 구해달라고, 도와달라고 주변에 외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서 점점 더 절망에 물들어 갔다.

다리에서 점점 힘이 빠지고 정신이 황폐해져 가는 걸 스스로 느끼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 자책하고 눈물 흘리며 자리에 주저앉아버린다.

그러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분노한다.

왜 자신이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벽이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여태까지는 다칠 것 같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던 벽에 다가가 힘껏 벽을 내려친다.

그리고서 깨닫는다. 생각보다 이 벽이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손에 멍이 들고 피부가 긁혀 피가 흘러나오지만, 그는 결국 벽 가운데에 몸을 뺄 수 있을 만큼의 구멍을 만들어 탈출한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고 알게 된다.

자신처럼 많은 사람들이 벽에 막혀서 끝도 알 수 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자신처럼 벽을 부수고 나왔고, 누군가는 아직도 걸어가고 있을 그 벽.

벽이 없는 곳은 새하얀 공간이었고, 자신이 걷는 대로 발자국이 남았다.

다른 사람이 남긴 발자국도 보였다.

내가 본듯한 이 상황을 경환 형에게 이야기하자, 형이 짧게 감탄하며 눈을 빛냈다.

“영상처럼 느껴졌다고? 와, 진짜 너 뭐냐.”

“네? 보통 노래 들을 때 많이들 상상하잖아요.”

“가사도 없는 노래를 듣고 내가 쓰려던 내용을 상상해낸 건데 대단하지.”

“어우, 또 별거 아닌 거로 칭찬한다!”

경환 형의 칭찬에 펄쩍 뛰며 뒤로 물러나자 피식거리던 형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한테 배우러 왔다더니 되려 나한테 도움을 줬는데? 가사가 막혀서 좀 고민하던 차였거든.”

“아, 진짜요?”

“어. 지환아, 너 이거 가사 좀 써볼래? 1벌스만.”

“네? 아, 그건 좀….”

내가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지만, 경환 형은 거듭 가사를 한번 써보라고 나에게 곡을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솔직히 멜로디를 듣는 순간 가사가 궁금해지긴 했지만 경환 형이 이렇게까지 좋게 봐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던 터라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만 써볼게요. 너무 기대는 하지 말아 주세요….”

“오냐, 네가 그리는 가사는 어떨지 궁금해서 그래.”

혼자 작업을 할 때나 노래를 부를 때는 내가 성장하고 있는지 느끼기 어려웠지만, 간혹 이렇게 칭찬을 들을 때마다 마음 안에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손톱만큼 자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기쁘기도 했다.

경환 형한테 인정받은 것 같아서.

이전에 에단 선생님에게 칭찬을 들었던 때와는 또 기분이 달랐다.

어쩌면 멤버들에게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 인정받을 날이 내 생각보다 조금 더 일찍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바보처럼 형 앞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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