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너나 잘해(1)
- 솜뭉치들 일어나라!! 스밍 돌려라!!
- ☆이 시간 기준 스밍 리스트☆
졸업식
I’m OK
그렇게 숨을 고르고 나면 - 새벽 이번 앨범
도시와 하늘의 경계선 - 새벽 이번 앨범
점멸
쉽지 않아
또 한 번
졸업식
I’m OK
그렇게 사랑이 가네요 - 하연수 님 앨범 타이틀
0
Who cares
내일은 어쩌면
알 것 같아
그렇게 숨을 고르고 나면 - 새벽 이번 앨범
도시와 하늘의 경계선 - 새벽 이번 앨범
ㄴ고마워!!
ㄴ앗 센스쟁이! 잘 가져갈게!
ㄴ혹시 이거 타 커뮤에 공유해도 되니?
ㄴ 글쓴이 : ㅇㅇ 널리 널리 퍼트려줘!
오늘 솜뭉치들은 하루가 행복했다.
하루에 할 일이 두 가지나 생기다니.
사전에 공식 사이트에서의 홍보와 기사들로 ’지금, 우리’라는 드라마의 새 OST가 공개된다는 게 열심히 퍼지고 있었고, 인기 있는 드라마 OST를 우리 애들이 부른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해졌다.
심지어 그냥 부르는 것도 아니고 작은 환이가 만든 곡이라니!
오후 6시에 OST가 공개되자마자 솜뭉치들은 스밍 리스트를 수정하고 이리저리 배포하기 바빴다.
숨 쉬듯 스밍하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팬들의 자세라고 대다수의 솜뭉치들은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리얼리티의 티저가 자정에 공개된다는 말에 모두가 각자 활동하는 SNS와 공식 카페, 커뮤니티에 모여 재잘거리고 있었다.
사전에 너무 정보를 꽁꽁 싸매서 리얼리티가 어떻게 언제 오픈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답답하던 타이밍에 티저가 공개된다는 공지가 올라오자 인공호흡기를 달아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티저가 공개되던 그 순간, 모두가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귀여워!!!
덕심으로 대동단결이 이런 걸까?
현실의 언래블과는 또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미니미들의 움직임에 가슴을 부여잡은 솜뭉치들은 당장 각자의 주 활동처로 모여들었다.
- 뷰어들아 혹시 이거 봤니? 나 짹짹이에서 보고 감격해서 가져오뮤ㅠㅠ
(이거 아이돌에서 만든 거라는데 맞아? 아니ㅏ 요새는 이렇게 귀엽게 홍보해? 이 흑발 얘 누구야?? 누가 알려줘!! 얘네 이름 뭐야??)
ㄴㅠㅠㅠㅠㅠㅠㅠ온엔터 진짜 한 번만 봐준다…. ㅅㅣㅂ!!!!!!!!!!! 굿즈 내놔라!!! 영상만 풀지 말고 굿즈를 내와!!!
ㄴ222 굿즈 내놔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미친 귀염뽀작이들 뭔데ㅠㅠㅠㅠㅠㅠ
- 뷰어들아 진정해봐 우리는 이게 리얼리티 티저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ㄴ미친ㅠㅠㅠ 어떡해ㅠㅠㅠㅠㅠㅠ 리얼리티 2개 버전으로 내줄까? 뽀작이들이랑 리얼이랑?
ㄴ ㄴㄴ 아직 그러기엔 온엔터가 좀….
ㄴ받고 저건 그냥 정말 티저 홍보 영상일 듯…. 아, 근데 아쉽다…. 진짜 귀여운데 ㅠㅠ
ㄴ그래도 리얼리티 나온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냐??
ㄴ그래서 어디랑 한대?
- 피셜 뜸! 공식 ㄱㄱㄱ 자체 제작 리얼리티 위캠에서 방송 예정이래!
ㄴ??????????? 자체 제작?
ㄴ 아 망했네
ㄴ ㅡㅡ 야 초 치지 마
ㄴ자체 제작은 너무 위험하지 않아?;;
ㄴ이건 좀 지켜봐야 할 듯? 티저 퀄이 괜찮잖아
ㄴ스밍 알리미 등장★ 12시 스밍 확인했니?
자체 제작이라는 말에 의견이 분분했지만 공개된 미니미들이 귀여운 건 사실이었고, 생각보다 애니메이션의 퀄리티도 좋았다.
그 이후에 이어질 상황에 대해서는 우려가 섞인 염려들이 있는 한편 벌써부터 소속사 때문에 망했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런 어그로는 다수의 솜뭉치들에게 잔뜩 욕을 먹고 사라졌다.
팬을 가장하고 초장부터 초를 치는 어그로꾼들에게는 누구보다 단호하게 반응하는 솜뭉치들의 모습에 모니터링을 하던 직원들의 입꼬리도 슬며시 올라가 있었다.
그렇게 지환이가 깊은 잠에 빠진 시간에도 시간은 바쁘게 흘러갔다.
* * *
“오늘 하루 더 쉬는 게 낫지 않겠니?”
“에이, 괜찮아요. 빨리할 거 해야죠.”
아직 얼굴색이 돌아오지 않은 탓에 팀장님의 얼굴은 근심 걱정이 가득했다.
“그래, 내일은 더 정신없을 테니까 오늘 몸만 풀고 쉬어. 알았지?”
“네, 너무 걱정 마세요!”
일부러 더 씩씩하게 외쳤지만 얼굴색이 안 돌아와서 별로 큰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일단 멤버들 얼굴부터 좀 피게 해주고 싶은데 다들 비 맞은 강아지처럼 날 쳐다보고 있어서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운 좀 차리라고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잠시 머뭇거리던 팀장님이 우리 앞으로 얇은 종이 뭉치를 쓱 밀어주셨다.
“이게 뭐예요?”
“어제 티저 공개 반응이랑 OST 공개 반응이야. 다행히 둘 다 반응이 꽤 괜찮아.”
티저가 첫 공개부터 높은 조회수를 챙긴데다가 지금도 조회수가 계속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OST는 회사에서 내보낸 기사가 아닌데도 긍정적인 기사까지 다수 올라왔다고.
“…다행이네요.”
“어휴, 이제야 웃네.”
“지환아, 너는 진짜 안 웃으면 무서워….”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는지 경환 형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리자 그에 질세라 힘찬이가 칭얼거렸다.
“어이구, 니가 누굴 무서워할 위인이고?”
“그건 맞지. 찬이는 내일이 없지, 오늘만 살잖아?”
“미니미들이 사랑받아서 다행이에요!”
“나중에 피규어 만들어줬음 좋겠다. 나도 사고 싶더라.”
활짝 웃으며 조잘대는 멤버들 모습에 그제야 팀장님도 한숨 돌린 건지 일일이 한 명씩 어깨를 두드려주며 조금만 더 힘내자며 우리를 연습실로 밀어 넣었다.
마지막이 이상한데…?
꾹 쥐고 있던 주먹을 풀자 간간이 떨리던 손이 진정되어 있었다.
수많은 부정적인 가정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혹시라도 이전 생보다 못한 결과를 얻게 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서.
이 한 곡에 얽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 때문에 모든 게 망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수시로 불쑥불쑥 올라왔었다.
안 좋던 속은 그나마 가라앉았는데 손이 간간이 떨려서 진짜 병원에 가봐야 하나 했었다. 하지만 팀장님이 알려준 밤사이 소식들과 멤버들의 웃는 얼굴 덕분에 이제 겨우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내가 다 괜찮을 거라 했잖아. 왜 내 말 안 믿음?’
‘에헤이, 제가 어떻게 포잉 님 말을 안 믿겠습니까?’
‘이놈! 그 건들건들한 자세 좀 어떻게 해봐!’
‘응? 내가 뭘?’
부들부들 떠는 걸 보니 더 이상 놀리면 안 되겠다 싶어 모른척하며 보컬 레슨에 집중하자 앞발로 자기 이마를 짚는 모습이 이제는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드라마 좀 그만 보라니까, 정말.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핸드폰도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사이 아는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왔다고 연신 알림 창이 떴다.
생각하지 말자, 인식하지 말자, 그렇게 스스로 되새기는 찰나에 시영 쌤이 나를 불렀다.
“지환아, 아직 아파서 그래? 영 집중을 못 하네.”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그래, 일단 조금 더 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말해.”
억지로 몸을 추스르고 레슨 시간이 끝나자 또 핸드폰이 울렸다.
가영이 형 [지환아, 왜 연락이 안 되냐? 뭔 일 있어??]
잠금 화면 위로 메시지가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핸드폰을 열까 말까 고민하다 다시 주머니에 넣고 작업실로 향하자 포잉이 뒤따라왔다.
‘답장 안 해?’
‘숙소 가서 하려고. 지금은 핸드폰 안 볼래.’
‘그래, 보고 괜히 아프지 말고 일해라, 계약자야.’
이름을 몇 번이나 알려줬건만 정든다고 계약자라고 부르는 포잉의 고집이 귀여워서 웃었다.
이미 정은 다 든 것 같았지만 굳이 아니라고 우기는 내 요정님의 고집을 못 이긴 척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냥 두고 있었다.
‘포잉, 요정들은 오래 살겠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안 죽는다고 보는 게 맞음.’
‘다행이다.’
‘?’
‘우리 포잉이 오래오래 귀여울 테니까?’
장난스럽게 웃어주자 포잉의 수염이 파들파들 떨리는 것 같았지만 다른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예민한 성격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생각보다 내 신경줄이 굵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간 흘러온 일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왜 이런 차이들이 생긴 건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태까지 쭉 해온 일들은 나라는 개인의 일이라기보다는 언래블이라는 그룹 안에서의 일, 혹은 그룹을 위한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거기다 간간이 스킬을 사용하면서 정신적인 충격을 완화해왔다는 것도 방금 기억났다.
이번에는 왜 스킬을 안 썼지….
내가 주체가 되어 새로운 일을 진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고, 내가 곡을 도둑질했다는 부담감이 심리적인 압박으로 쭉 남아있었다는 것도 꽤 컸다.
‘포잉, 앞으로도 계속 이러면 어떡하지?’
생각보다 내가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자 덜컥 겁이 났다.
혹시라도 계속 이렇게 몸으로 안 좋은 반응이 오면 아이돌로 살아가기 힘들지 않을까?
이제야 이 일이 좋아지고 잘하고 싶어졌는데.
‘정신 안 차림? 계약자야, 너는 내가 없으면 어떡하려고 그러냐.’
‘계속 이렇게 혼자 뭔가 할 때마다 이 지경이면 누가 나한테 일을 맡기겠어….’
‘누구나 처음은 힘들지. 나도 처음 계약자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니까.’
‘어땠는데?’
‘처음 계약은 다른 행성에 있는 나비였는데….’
스킬에 너무 의지하지 말자는 생각을 해왔지만 스킬, 아니 특성이 얼마나 내 정신을 보호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니 조금 허탈해졌다.
죽기 살기라는 특성 덕분에 멘탈이 단단해져서 여러 상황에서 더 잘 버티게 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 믿고 너무 오래 나를 방치한 탓에 역효과가 일어난 것 같다는 포잉의 설명도 일리가 있었다.
포잉이 거쳐온 여러 동식물과의 계약 이야기를 들으며 중간중간 내 상황을 체크하는 질문을 주고받다 보니 시간이 잘도 흘러갔다.
‘그래도 제법 기특해졌네. 자기 상태를 잘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이제는 혼자서도 그걸 생각해냈으니까.’
‘내가 너무 멍청하게 굴었잖아.’
절로 속이 쓰려오는 것 같았다.
어쩐지 민간인이었던 내가 너무 적응을 잘한다 했더니 내 정신력으로 온전히 버틴 게 아니라 특성이 나를 보호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런 것치고도 넌 꽤 잘했으니까 또 땅 파지 마셈.’
‘안 파.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매일매일 늘어가는 것 같아 어쩐지 예전 고3 때보다 더 많은 공부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성적도 너무 떨어지면 안 되니 학교에서 주어지는 공부도 해야 했다.
한번 했던 것들이라 다시 떠올리기 쉽겠지, 했지만 퍽이나.
잊어버린 수업 내용을 되새기며 끙끙거리는 것도 버거웠지만 안 할 수는 없었다.
‘손안에 쥔 것들은 잘 쓰는 게 현명한 거임. 가지고 있는 것도 제대로 활용 못 하면 그게 모자란 거지.’
‘네엡. 포잉 말을 잘 듣을 게요.’
‘으이구, 이 화상.’
포잉이 툴툴거렸지만 어느 정도 지금 내 상태에 대한 판단도 내려졌고, 해야 할 일도 명확해졌다.
다음에는 내 곡으로… 정말 내가 만든 곡으로….
결국 작업물에는 하나도 손대지 못한 상태로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지만, 아깝지는 않았다.
포잉 말대로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상태로 허겁지겁 앞으로만 달려가려다가 크게 사고 치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알게 된 게 다행이었다.
조금 편안해진 내 얼굴에 멤버들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행이라는 기색이 역력했고, 우진 형도 말없이 어깨를 두드려주고 갔다.
“지환아, 형님들이 너 걱정 많이 하더라.”
“아…. 아까는 생각할 게 좀 있어서 핸드폰을 안 보고 있었어요. 제가 답장 드릴게요.”
“가영 형이 걱정돼서 쫓아온다는 거 간신히 말렸어.”
“아하하….”
준이 형의 말에 어째서인지 가영 형의 목소리가 재생되는 것 같아서 어설프게 웃어버렸다.
그 형님은 행동력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이었지.
“아, 그 무사이 같이 찍는 선배님들 있잖아. 그분들이 자기 SNS에 OST도 홍보해 주셨더라. 다음에 뵐 때 감사 인사드려야겠어.”
“어, 진짜요? 다음에 진짜 간식이라도 사 가야겠네요.”
“여진우 배우님은 6시 땡 하자마자 스밍 인증글 올려주셨어.”
“새벽 형님들이랑 겸이 형도 올렸더라!”
우리가 크게 무언가 베풀지 않았는데도 마냥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진 형의 말대로 예의 바르게만 있었는데도 데미갓의 삽질 덕분에 되려 우리가 호감이 되어서 아주 조금이지만 데미갓의 삽질이 고마워지기도 했고.
내가 걱정돼서 일부러 이렇게 모여서 좋은 얘기만 늘어놓는 멤버들의 모습도 기특해 보였다.
“역시 내가 우리 언래블 참 잘 키운 것 같아요.”
“얘 이상한 소리 하는 거 보니까 다 나은 거 같은데요?”
모처럼 흐뭇하게 웃었더니 찬이가 옆에서 한마디 보탠다.
이 망나니 같은 놈, 오늘은 기분 좋아졌으니까 넘어가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