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82)화 (82/456)

82. 우연이 아니야(3)

GIVE 앱의 첫 시작은 내가 하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내가 먼저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 후 멤버들도 참여해서 최근 우리 일상에 대한 이야기 같은 걸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솜뭉치들 안녕하세요?”

걱정했을 팬들에게 무사하다는 걸 최대한 잘 보여주고 싶어서 곱게 단장까지 한 나는 회의실에서 GIVE 앱을 켜고 솜뭉치들을 기다렸다.

“다들 잘 지냈죠? 아, 조금 더 많이 들어오시면 이야기 시작할게요.”

일부러 조금 늦은 시간에 방송을 시작했다.

최대한 많은 솜뭉치들이 시간에 쫓기지 않고 볼 수 있었으면 해서.

“요새 많이 바빴어요. 할 게 너무너무 많은데 막 머리 쓰고 그래야 해서…. 어휴, 머리 쓰는 일은 저랑 안 맞는 거 같아요.”

한숨을 푹 내쉬며 솔직한 내 심정을 말했건만 솜뭉치들은 나를 우쭈쭈하기 바빴다.

언래블의 지능캐라는 둥, 내가 머리 쓰는 일을 못하는 거면 자기는 머리가 없다는 둥 온갖 종류의 메시지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아니, 이 사람들이?’

솜뭉치들이 우쭈쭈 해주는 건 유독 쑥스러웠다.

나도 내 돌이 힘들어할 때는 열심히 우쭈쭈 해주고 응원해줬던 사람이지만 반대 입장이 되니 이게 왜 이렇게 쑥스러운지.

하지만 그 모습들에서 한 시간 덜 자고 한 번 더 안무를 고민할 힘을 얻는다.

돈도 중요하지만, 돈만 버는 일이었다면 이렇게 나를 쥐어 짜가며 전념할 수 없었을 것 같았다.

“자, 많이 모였으니까 우리 이제 인사하고 얘기를 해볼까요? 안녕하세요, 언래블의 유일한 정상인 환입니다!”

유일한 정상인이라는 말에 채팅창이 솜뭉치들의 웃음으로 도배되었다.

중간중간 계속 아픈 거 맞냐, 어떻게 된 일이냐 이런 메시지들도 보였지만 그냥 웃으며 내 할 말을 이어가기로 했다.

“먼저,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여러분들이 많이 놀라셨다고 들었어요. 금방 나을 거라서 말하지 않았는데 제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봐요.”

천천히 채팅창의 반응을 확인하며 살짝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처음에 팀장님이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대본을 대충 만들어 주셨을 때, 나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팬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고.

다친 당사자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 혹시나 팬들이 회사가 가수를 앞세워 피해 가려 한다고 화를 내진 않을까 해서.

내 가수가 다치는 것도 속상하지만, 거기에 대고 죄송하다고 하면 더 속상해하는 게 팬들이었으니까.

그러자 옆에 있던 우진 형이 회사가 욕먹는 건 당연하고 괜찮다고, 그래서 생기는 일은 자신들이 감당할 테니 일단 팬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라고 했다.

회사가 팬들이 원망할 공공의 적이 되고 팬들이 뭉치는 계기가 된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면서.

역시 회사 돌아가는 일은 잘 모르겠다.

“아니, 증상이 가볍지 않다는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기!”

나는 내 한국어 실력에 통탄하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인대가 조금 놀란 거라 치료 조금만 받으면 금방 낫는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알면 너무 걱정할 것 같아서 말을 안 한 건데… 들켜버렸네요? 하하….”

눈으로 읽기 힘들 만큼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에서 몇 가지 질문을 확인하고 외웠다.

어디서 다쳤는지, 왜 다쳤는지, 치료는 잘 받고 있는 건지 등등 걱정하는 질문들에 성심성의껏 답을 하며 솜뭉치들을 달랬다.

많이 걱정했을 모습에 미안하면서도, 우려하는 메시지에 괜히 뭉클하기도 했다.

슬슬 내 순서가 끝나가자, 회의실 밖에서 문을 통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대답 없이 문이 활짝 열리면서 꽃단장한 멤버들이 우르르 들어오자 솜뭉치들이 신났는지 채팅창이 다시 한번 빠르게 올라갔다.

“와, 여러분… 저랑 있을 때는 이러지 않았잖아요. 분위기 너무 다른데?”

방금까지 애잔하게 전전긍긍하던 우리 솜뭉치들이 누구보다 활기차게 멤버들을 반겼고, 그 모습이 왠지 귀여워서 웃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솜뭉치들 안녕! 잘 자고 맛있는 거 잘 먹고 있었어요?”

“얘들아, 이리 와. 인사부터 해야지.”

어떻게 된 게 우리 애들은 팬들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려….

참새들이 모여서 재잘대는 것처럼 짹짹거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하준 형이 모이라는 말에는 또 재깍 모이는 게 재밌긴 했다.

“둘, 셋! 함께 풀어나갈 미래 언래블입니다!”

하준 형 선창에 맞춰 한목소리로 외치는 호칭이 이제는 낯설지 않았다.

“여러분, 지환이랑 얘기 잘했어요? 많이 놀랐겠다, 우리 솜뭉치들.”

와, 하준이 형, 얼굴을 무기로 쓰네?

세상 안쓰럽다는 얼굴로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모습에 영빈 형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익숙하다는 얼굴이었고, 세빈이랑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와, 이 형 봐. 그 다정함의 1%만 우리한테 보여도 우리가 리더를 참 잘 따를 텐데!”

“솜뭉치들 오해한다. 내가 너희한테 얼마나 다정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이…!”

힘찬이의 멘트는 이어지지 못했다.

하준 형이 눈빛으로 찬이를 협박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더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어우, 무서워.

“리더로서 엄할 때는 엄하지만 전 나름대로 우리 애들한테 다정하게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살짝 처진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지면서 더없이 순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솜뭉치들은 하준 형이 골든레트리버 같다고 마냥 좋아하는데, 그런 솜뭉치들에게 골든레트리버가 원래 사냥견이고 심지어 굉장히 똑똑하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말했잖아, 사냥견이라고….

난 사냥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찬이가 평소에 좀 혼날 만한 행동을 하기도 했고.

“곧 있으면 팬 사인회에서 여러분들을 뵙겠네요. 저희 준비 많이 했는데 여러분들 기대하고 있나요?”

“전 무리 안 하고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어요!”

경환 형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꺼낸 말에 채팅창은 또 난리가 났다. 당장 다음 주가 팬 사인회인데 내가 이 다리로 어떡하냐고.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 걱정 마세요! 우리는 해답을 찾을 거예요. 늘 그랬듯이.”

힘찬이가 솜뭉치들을 다독이고 세빈이도 옆에서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급격하게 변해가는 솜뭉치들이 귀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감정이 조금 무딘 편이었던 과거의 나는 이렇게까지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았지만, 그 당시 우리 누나는 언래블 때문에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며 여러모로 힘들어했었다.

“여러분이 걱정하시는 건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최대한 조심할 거고 회사 분들도 최대한 저한테 무리 안 가는 방법으로 수정하셨어요.”

“더 말하면 스포가 되니까 나머지는 당일에 보는 걸로.”

적절한 타이밍에 하준 형이 끊어줬고, 그 후로 조금 더 이런저런 소소한 서로의 일상이나 다음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쉬워하며 솜뭉치들과 인사를 끝마친 우리는 다시 한번 GIVE 앱이 잘 종료된 걸 확인하고 전부 회의실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다음 앨범에 대해서 많이들 궁금해하네.”

“다행이지. 텀이 짧아서 조금 걱정했는데….”

“신인 때는 3개월 텀으로 앨범 내는 곳도 많더라. 우리도 그쯤이니까 괜찮을 거 같아.”

평소보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한 것도 아닌데 유난히 축축 처져서, 잠깐 엎드려 GIVE 앱 방송 이야기와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숨을 돌렸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팬 사인회 때 타이틀곡 무대를 보여줄 예정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빠지게 되었다.

옆에 의자를 두고 노래만 부르고, 미니 게임 때도 진행을 내가 맡는 것으로 이야기되었다.

다리를 고정시킨 후 걷는 정도의 움직임은 괜찮지만 격렬한 안무는 권하지 않는다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을 받아들인 것.

삼일 정도 되니 통증은 많이 줄었지만 이 상태를 잘 유지해야 일주일 정도 후에는 반깁스도 풀고 움직임에도 지장이 없을 거라고 했다.

“휴…. 그럼 각자 연습 한 2시간 정도만 하고 숙소로 복귀하자. 우진 형한테는 내가 말할게.”

바쁘다는 건 행복한 일이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다들 힘든 것 같았다.

오늘은 숙소 가면 다 기절하겠네.

우진 형의 부축을 받아 다시 5 작업실로 돌아온 나는 모니터 불빛을 바라보며 회의 때 주고받았던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내 생각에도 분노를 다음 앨범의 주제로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뮤비 준비하고 앨범 작업하고 나면… 빠르면 8월 말이나 9월 중이 되지 않을까?

톡톡 키보드 위를 두드리던 내 옆으로 어느샌가 포잉이 다가왔길래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올려주었다.

‘뭐 함?’

‘다음 앨범에 곡 하나는 넣고 싶은데 떠오르는 게 없어서.’

‘나는 그 작곡이라는 걸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무작정 앉아 있는다고 떠오르는 건 아니라며.’

‘그렇지?’

‘이번 주제는 뭐임?’

‘분노.’

‘그 분노의 주체가 되는 대상이 뭔데?’

‘음,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럼 그걸 먼저 정하고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보는 게 도움 되지 않겠음?’

포잉의 이런 면들이 고마웠다.

뭔가 답답하고 머리가 굳어서 잘 안 돌아갈 때, 늘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 되짚어 주었고, 생각해보지 못한 방향에서 자신의 의견을 전해주었다.

‘이전 앨범에서 내가 담당했던 두려움에 대한 분노면, 이야기가 더 괜찮아질 것 같아.’

‘그렇겠지. 일단 대상을 이해해야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 테니까. 자, 공부해라, 계약자 놈아!’

물론 결론이 늘 이렇게 나는 게 문제긴 했지만.

공부하라며 허벅지를 팡팡 두드리는 포잉의 앞발이 신나 보인 건 기분 탓이겠지?

‘고마워, 포잉.’

‘별걸 다.’

고맙다는 말에 새침하게 꼬리를 늘어트리고 퉁명스레 대답하는 걸 보고 있자니, 사람이었다면 귀라도 빨개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먼저 우리 앨범을 틀었다.

intro였던 ‘0’는 시작을 의미하는 뜻에서 정했었고, 그 뒤로 이어지는 타이틀 ’I'm OK’는 반어법이었다.

괜찮지 않지만 늘 괜찮아, 라고 대답해야 했던 상황들.

outro, 이 앨범의 마지막으로 ‘Who cares’은 절벽 끝으로 몰리던 사람들의 자포자기를.

가사를 다시 한번 곱씹고 수록곡들을 하나하나 들으면서 가영 형이 이야기해주었던 곡을 만들었을 때의 느낌을 떠올리고 내가 왜 이 주제를 하고 싶어 했는지도 기억했다.

분명히 노래의 마지막은 어떻게든 우리가 해볼게,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는 이야기로 끝냈다.

그래서 뮤비의 마지막 장면도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모습으로 끝났던 거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팬들이 추측한 것처럼 모든 걸 벗어던지고 여행을 떠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 순간은 잠깐이었고, 이후 또 다른 무언가에게 쫓겨 흩어지게 되었다.

첫 앨범은 도망치는 게 해결 방법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한계까지 몰아가는 것들에 대해 분노한다.

“아, 조금은 알겠다.”

지난 앨범을 반추하면서 얽혀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더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잠을 줄여가면서 했던 공부들이 헛짓이 아니라는 게 다행이어서.

그때, 핸드폰이 울리고 소현 팀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네, 팀장님. 저요? 저 5 작업실이요.”

왠지 모르게 즐거워 보이는 팀장님 목소리에 의아했지만, 금방 온다고 기다리라는 말에 포잉을 쓰다듬으며 시퀀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PC에 저장되어 있던 짧은 사운드들을 불러와서 이리저리 효과를 넣어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지환아, 돈 들어왔다!”

“네?”

얼굴 가득 기쁨을 표현하는 소현 팀장님의 발언에 멍청한 얼굴로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돈? 무슨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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