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80)화 (80/456)

80. 우연이 아니야(1)

- 뷰어들아 안녕! 아까 애들 왔다 갔다고 한 영화관 알바생 솜뭉치야

애들 영화관 나갔는데 후기를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왔어!

ㄴ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다구!

ㄴ 222 후기 주세요ㅠㅠㅠㅠ 작은 환이는 무사해??

ㄴ 글쓴이 - ㅇㅇ!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작은 환이 웃으면서 나오뮤ㅠㅠ 맏형들이 양쪽에서 작은 환이 부축해서 나왔어.

환이 찬이 세빈이가 뒤에서 나오고 작은 환이 앉히고 자기들끼리 뭐라고 막 얘기하다가 웃더라ㅠㅠㅠ 진짜 나 심장 멎는 줄 알았어….

우리 애들 왤케 순하게 웃지? 이 험난한 연예계에서 너무 힐링계 아니냐구ㅠㅠㅠㅠ 영빈이가 힘찬이 옷도 정리해주고 준이랑 세빈이가 작은 환 옷매무새 다듬어주는데 꿀 떨어지는 줄….

사진 찍고 싶은데 참느라 힘들었어ㅠㅠㅠ 우리애들 순딩순딩해서 사진 찍히면 놀랄까 봐 꾹참음…ㅠ

근데 아까는 너무 놀라서 내가 제대로 못 봤는데 작은 환 다리에 깁스한 거 같더라ㅠㅠㅠㅠㅠ 쩔뚝거리던데? 무슨일이지ㅠㅠㅠ 혹시 아는 뷰어 있니?

ㄴ ??????? 깁스??? 왜??? 환이 왜 깁스했냐!!!

ㄴ 나 방금 공홈이랑 SNS 확인했는데 작은 환 다쳤다는 얘기 없는데?? 소속사 일 안 해??

ㄴ 아 미친 ON엔터 인생 오프되고 싶냐고 우리 애 왜 다쳤는데ㅠㅠㅠ

멤버들끼리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맛있는 저녁도 먹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시간, 언래블의 공식 홈페이지와 SNS 계정에는 난리가 났다.

처음에는 깁스한 게 맞는지 잠깐 접질린 게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면서 소속사에 항의를 해야 한다는 의견과 문의를 했으니 답을 기다리자는 쪽으로 SNS와 커뮤니티에서 의견이 갈려 대립하고 있었다.

- 뷰어들아! 작은 환 다친 거 맞나봐 이거 바바! 짹짹이에서 가져왔어!

ㄴ (택시 타기 전 형들에게 부축받고 있는 지환이 사진)

ㄴ 어떤 솜뭉치가 영화관에서 나오는 애들 봤는데 멀리서 찍었대!

근데 여기 보면 깁스하고 있음 ㅇㅇ

ㄴ 솜뭉치들아! 일어나라! 온 엔터로 가자! 우리 애가 다쳤어!!

누군가 찍은 멤버들의 뒷모습에 녹색 부목 같은 걸 다리에 하고 있는 지환이 모습이 잡혔고, 멤버들 사진 몰래 찍지 말라는 일부 솜뭉치들의 항의도 있었지만… 그 의견은 일부였다.

당장 우리 애가 다쳤는데 소속사의 입장이 없다는 것에 분노한 솜뭉치들은 공식 카페로 몰려가 항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집에서 모처럼의 주말을 만끽하던 정우진 매니저와 김소현 팀장은 급하게 회사로 달려갔고, 상황을 파악한 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들이 영화 보고 싶다고 해서 허락해 주긴 했는데 벌써 알아보는 팬이 있었네.”

“어차피 발표할 일이긴 했는데 이거 때문에 프로그램 날아가면 안 되는데….”

“두 분 다 쉬는데 미안해요.”

정윤 실장이 들어오며 둘에게 사과를 전했고 소현 팀장은 혹시라도 이 부상 때문에 멤버들의 일정에 불이익이 생길까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소현 팀장님, 무사이 쪽은 제가 연락할 테니까 미궁 탈출 쪽에만 얘기 잘 해줘요. 쓸데없이 기사 뜨면 안 되니까 입장문 정리해서 올려주시고요.”

“네. 홍보팀에서 초안 보내줘서 확인하고 있어요.”

정윤 실장은 박 PD, 제논 엔터의 실장과 셋이 합의한 내용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이번 사고는 현장의 장치가 오 작동한 것으로 무마하되, 제논 엔터 측에서는 지환과 ON 엔터에 치료비 전액과 상당한 금액의 손해 배상을 하기로 했다.

더불어 앞으로 제논 엔터와 연관된 어떤 사람이든 ON 엔터 소속의 연예인에게 폭언, 폭행, 협박 혹은 그에 준하는 압력을 가할 시 모든 법적 책임을 지기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한참 좋은 주가를 올리고 있는 데미갓이 일부러 후배 가수를 다치게 했다는 걸 기자들에게 찔러주기만 해도 다음 날 포털의 연예 1면 기사는 전부 데미갓이 차지하게 될 터.

적어도 카메라에 잡힌 두 명의 멤버는 두 번 다시 연예계 생활을 꿈도 꾸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최태성이 데미갓으로 활동하면서 대외적으로 맡은 이미지는 과묵하고 카리스마 있지만 속정이 깊어 멤버들을 잘 챙기는 멤버였다.

하지만 실상은 성격도 더러운데 인내심도 없고 말재주도 없었다.

그런 인간을 아이돌로 데뷔시키려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얼마나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가.

본모습을 포장하고자 최대한 입을 못 열게 관리했고, 멤버들끼리의 모습은 적당히 연기로 무마할 수 있었다.

약간의 신비주의를 표방한 덕분에 데미갓 팬덤 인지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까딱하다간 데미갓이라는 그룹이 공중분해 되게 생겼다.

게다가 이 일에 대해 기사가 뜨기라도 하면 지금 하고 있는 광고의 광고주들은 모조리 손해 배상을 청구할 것이다. 그보다는 최대한 ON 엔터의 말을 들어주고 이 일을 덮는 게 덜 손해 보는 일이었다.

사고 친 놈이 하필이면 대표 이사의 아들이니 덮어씌워서 쫓아낼 수도 없었던 탓에 총대 메고 찾아온 제논 엔터 측의 실장도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

증거가 명확한데다 박 PD 혼자 영상을 본 게 아니어서 입을 막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관련된 스태프들의 입을 막는 건 박 PD가 전담하기로 했고 이 역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논 엔터에서는 제공해야 했다.

더불어 이 상황에서 자유롭지 않은 박세날 PD는 언래블의 다음 앨범 발표 시 컴백 무대를 최우선적으로 확보해 주고 무대 연출에도 직접 신경 써주기로 했다.

거기에 일회성 게스트가 아니라 앞으로 두 번 더 출연할 수 있도록 해준다 했다.

무사이라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한 번의 출연에 적어도 2~3회분이 방영되기 때문에 언래블이 더 자주 공중파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지환과 포잉이 카메라 렌즈를 조금 당겨두었을 뿐인데 생각보다 더 다양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상황을 어느 정도 정리한 정윤 실장은 세부적인 일에 대한 지시를 내리고 소현 팀장과 우진 매니저를 불러 멤버들의 숙소에 다녀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괜찮아요. 차 가져왔거든요. 두 분은 아직 마무리할 일이 좀 남았잖아요? 휴…. 오늘 일은 꼭 제가 챙길게요. 두 분 다 정말 미안해요.”

정윤 실장은 언래블이 주말에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까지만 보고를 받은 상황이어서, 월요일에 제논 엔터에게 대가를 다 받아낸 후 발표하려 생각하고 있었다.

더불어 미궁 탈출 제작진과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해서 얘기가 끝난 후 팬들에게 적절히 정돈된 내용을 발표하려 했었다.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졌고, 멤버들의 건강에 예민한 팬들은 크게 분노했다.

방심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생겼다.

급격하게 푸석해진 정윤 실장의 얼굴을 확인한 소현 팀장이 정윤 실장의 등을 떠밀었다.

“여기는 제가 수습할게요. 애들 괜찮은지 좀 봐주세요.”

“네. 일 끝나면 바로 퇴근하세요.”

소현 팀장의 배려를 모를 리 없는 정윤 실장은 소현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멤버들이 적어도 숙소에서는 편안히 쉴 수 있도록 회사 사람들은 가능한 숙소를 방문하지 않도록 지시를 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자신이 직접 설명해 줘야 할 것들이 많아서, 뻣뻣해진 목덜미를 주무르며 지하에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 * *

나는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다른 멤버들과 거실 바닥을 점령하고 있었고, 오늘 설거지 당번이었던 힘찬은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여느 날들처럼 평화로운 저녁 시간이었지만, 하준 형의 핸드폰이 울리고 그 평화는 사라졌다.

“네, 실장님. 지금이요? 아… 네네. 알겠습니다.”

실장님이라는 단어에 귀를 쫑긋 세운 우리가 하준 형을 바라보자, 쏟아지는 시선에 잠시 당황하던 하준 형이 침착하게 전달 사항을 알려주었다.

“실장님 오신 댄다. 10분 정도 후에 도착하신대.”

“헐? 갑자기 왜요?”

“창문 열어! 빨리 치우자!”

“몰라, 할 얘기 있다고 오신대. 일단 치우자.”

설거지가 끝난 덕에 음식 냄새는 심하지 않았지만, 지나치게 고 칼로리 음식을 먹은 탓에 우리 모두 내심 찔려 하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어서 환기하고 양치질을 하는 등 부산스러운 1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 닫아.”

경환 형이 찬이한테 속삭이자 찬이가 재빨리 창문을 닫았고 세빈이는 타이밍 좋게 에어컨을 다시 틀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리는 얌전히 바른 자세로 거실에 앉아있었고, 대표로 하준 형이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이 정도면 거의 완전 범죄 아닌가?

“실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얘들아, 안녕. 늦은 시간에 미안해.”

미안한 얼굴로 들어온 실장님은 커다란 봉투를 하나 내밀었고 그 안에는 시원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었다.

“이건 내가 미안해서 사 온 거니까 이야기 들으면서 먹고.”

“와, 아이스크림!”

쪼르르 나가서 봉투를 받아든 세빈이가 환한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외쳤지만 하준 형은 단호했다.

“아이스크림은 냉동실 넣어두고 조금 있다가 먹자.”

“넹….”

시무룩하게 대답한 세빈이가 아이스크림을 정리하는 동안 영빈 형이 눈치껏 밥상을 다시 펴고 하준 형은 음료수를 인원수대로 잔에 담았다.

“휴, 원래 월요일에 얘기해 주려고 했던 건데 일이 조금 복잡해져서.”

“저랑 관련된 일 관련된 얘긴가요?”

조심스러운 내 물음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 실장님은 우리가 밥 먹고 노는 동안 생긴 일을 천천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우연히 내가 다친 모습을 솜뭉치가 보게 되었고, 팬들이 많이 화가 났다는 것.

바로 공지하지 못했던 이유들과, 제논 엔터와 방송국에서 우리가 어떤 이득을 볼 수 있게 되었는지 등….

내가 포잉을 통해 확인했던 내용과 모두 일치했다.

어느 정도 우리에게 감추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과 달리 모든 내용을 우리에게 공유하는 모습에, 솔직히 조금 감동했다.

“헛… 솜뭉치들이 많이 놀랐나 보네요.”

“아무래도 그렇지. 아, 너희가 잘못했다는 게 아냐. 쉬라고 했으니 그 시간 동안은 뭘 하든 자유지. 유연하게 처리하지 못한 회사 잘못이니까 그 부분은 신경 쓰지 마.”

우리가 괜히 외출했던 건가 하고, 멤버들은 허락을 받았음에도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당사자인 나는 괜히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실장님의 다독임 덕분에 찝찝했던 기분은 한결 나아졌고, 실장님은 되도록이면 오늘 밤은 인터넷을 하지 않을 것을 권했다.

평소에도 멘탈 관리를 위해 인터넷을 잘 사용하지 않았던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고, 힘찬이는 슬며시 핸드폰에서 손을 뗐다.

“회사 차원에서 공지는 곧 올라갈 거야. 대신에 내일 너희 다 모이면 짧게 방송 한 번만 하자. 괜찮은 모습 보여주고 팬분들 좀 다독이는 게 좋을 것 같아.”

상황도 이해됐고 솜뭉치들에게도 사유를 잘 알려준다고 하니 우리가 딱히 당장 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아, 이런 상황이구나 하고 앉아있는데 정윤 실장님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그 영상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너희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래야 서로 신뢰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아서 직접 왔어.”

제대로 된 보상이 없었다면 매우 억울했을 테지만, 포잉이 전해준 정보로 이미 모든 보상을 알고 있었던 나는 실장님의 발언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영상을 공개하면 당장은 사람들이 우리 편인 척 굴 거야. 너희가 피해자니까 옹호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겠지. 하지만 데미갓의 팬들이나 그쪽 엔터랑 연관된 사람들, 박세날 PD 측은 적대적인 관계가 될 거고… 그건 너희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아….”

그제야 나도, 멤버들도 실장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이해했다.

“저희는 괜찮아요. 회사에서 빠르게 대응해 주셨고, 저도 다행히 크게 안 다쳤으니까요. 거기다 치료비도 준다고 하고 방송도 더 늘어났으니까 이득이죠.”

“치료비가 문제가 아니야, 이 녀석아. 까딱 잘못했으면 너 크게 다칠뻔했어. 박 대표님이 굿이라도 한번 하자는 거 간신히 말렸어.”

“하, 하하….”

괜찮다고 어물쩍 넘기려던 내 발언에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실장님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내 얘기는 끝났으니까 이만 갈게. 너희도 푹 쉬어. 내일부터는 다시 바빠질 테니까.”

그렇게 정윤 실장님이 떠나고 다시 우리만 남게 되자 모두가 다시 각자 편한 자세로 바닥에 누워버렸다.

“이제 진짜 외출도 조심조심해서 해야겠네요.”

“알아본 솜뭉치가 있다는 게 제일 신기해….”

“아, 아까 영화관에서 그 팝콘 주셨던 분도 솜뭉치였죠?”

딱히 우리가 무언가 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저 평소처럼 지내면 될 일들이라 솔직히 나도, 멤버들도 조금 멍한 정도였다.

팬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게 미안하고 걱정되었지만, 회사의 지침이 정해진 이상 우리가 섣부르게 행동하는 건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저, 우리를 알아본 팬이 있었다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앞으로 데미갓을 마주치게 되더라도 그쪽에서 우리에게 으르렁거릴 수 없게 되어 기쁠 뿐.

“아, 주말이 끝나가서 슬프다….”

내가 힘찬이 배 위에 다리를 올려놓으며 중얼거리자, 다친 다리라는 걸 확인한 힘찬이는 차마 다리를 치우진 못하고 툴툴거렸다.

“내일 또 고기반찬 먹고 싶다….”

“나도. 닭갈비 먹은 지도 오래됐는데….”

“아, 아이스크림!”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몇 시간 남지 않은 소중한 주말과 아이스크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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