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78)화 (78/456)

78. 그들만의 휴일(2)

- 뷰어들아!! 우리 애들이 영화 보러 왔나 봐ㅠㅠㅠㅠㅠ

내가 알바하는 영화관에 우리 애들 왔어ㅠㅠㅠㅠ

애들이 편하게 영화 봤으면 해서 장소는 말 안 할게!

방금 찬이랑 세빈이 작은 환이가 팝콘이랑 콜라 사갔어ㅠㅠㅠㅠ

ㄴ허류ㅠㅠ 대박 애들 팝콘 뭐 샀어??

ㄴ오리지널이랑 캐러멜 반반 3개 사갔엌ㅋㅋㅋㅋ 2명이 하나 먹을 건가 봐! 콜라는 제로 콜라….

ㄴ제로 콜라라닠ㅋㅋㅋㅋ 마지막 타협인 거신가

ㄴ우리 래블이들 오늘 영ㅇ화 보는구나ㅠㅠㅠㅠ 좋다ㅠㅠㅠㅠ

덕질 비용 충당을 위해 알바를 하던 지현은 오늘 뜻하지 않은 계를 탔다.

자신이 알바하는 영화관에 본진인 언래블의 멤버들이 영화를 보러 온 데다가, 자신이 멤버들의 주문을 받았다.

마스크를 써서 눈만 내놓고 있었지만 그걸 못 알아보면 팬으로서 자격이 없다 말할 수 있겠다.

뒷모습만 봐도 우리 애인걸 알 수 있으니까!

애들을 응원하고 싶었던 지현은 팝콘을 건네줄 때 조그맣게 한마디 덧붙였다.

“언래블 팬이에요…! 늘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

지현의 속삭임을 용케 알아들은 지환이 잠시 놀란 눈을 하더니, 날카로워 보이던 눈매가 사르르 접히며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었다.

차가워 보이던 눈매가 휘어지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인상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우리 애들 최고야! 너무 잘생겼잖아!’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 이상이 가려졌지만 원래 얼굴을 떠올리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지환이 한눈을 파느라 지현의 말을 듣지 못한 찬이랑 세빈이를 톡톡 두드려서 작게 속삭이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 다정해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지환의 말을 들은 둘도 화사하게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애들 얼굴을 더 보고 있으면 심정지가 올 것 같았던 지현은 스태프실로 도망가듯 뛰어 들어갔고,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의아한 눈으로 그런 지현을 바라봤다.

지현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이 종종 가던 커뮤니티에 이 벅참을 나누고자 글을 올리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자신이 너무 티를 내면 멤버들이 마음 편히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무장했다.

솜뭉치로써 언래블의 사생활을 지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굳은 각오를 마친 지현은 열이 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다른 동료들에게 괜찮다고 대답하며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조막만 한 얼굴에 비율이 워낙 좋은 언래블이기에 아이돌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조차 힐끔힐끔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애들이 이렇게 잘났다고 자랑하고 영화관도 부수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그리고 동지들에게 오늘의 일을 공유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중간중간 언래블을 살짝 바라보았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웃다가,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찬이를 작은 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하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변에 다른 의자가 있는데 굳이 찬이 위에 앉아 싱글거리는 작은 환이가 기어코 세빈이까지 불러서 품에 안았다.

밑에 깔린 찬이가 무어라 항의하는 것 같았지만, 영화 상영 시간이 다 되었는지 다들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났다.

언래블이 무슨 영화를 보는지 궁금했던 지현은 상영관을 확인했고,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 헐 애들 공포영화 보나 봐….

ㄴ작은 환 공포영화 못 본다 하지 않았어?

ㄴㅇㅇ 새벽분들 피처링 인터뷰 때 말했는데

ㄴ어떡하지ㅋㅋㅋㅋㅋㅋㅋ 작은 환은 무슨 영화인지 모르나 봐….

ㄴ왜왜 무슨 영환데?

ㄴ그… 인형… 그거… ㅇㄴㅂ….

ㄴ아……… 찬이가 예매했나 보다….

ㄴ작은 환 어쩌지…ㅋㅋㅋㅋ

ㄴ울면서 나와도 모른척해 줘 글쓴이야 ㅠㅠㅠㅠ

ㄴ으응… 근데 다른 애들은 공포물 잘 보나?

지금 언래블이 보러 들어간 영화는 무서운 장면 안 나온다고 약을 팔았던 그 공포영화의 스핀오프 작품이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솜뭉치들은 지현이 올린 글에 지환에 대한 애도의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 * *

영화관 나들이를 허락받은 우리는 어떤 영화를 볼지 열띤 토론을 했지만 취향이 제각각이라 선택이 어려웠다.

더군다나 영화 관람을 즐기지 않았던 나는 이 시기 즈음에 상영했던 영화가 어떤 내용들이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아서 멤버들의 선택에 맡겨버렸다.

“내 조건은 하나야. 공포영화만 아니면 돼.”

“여름엔 공포영화지!”

“내일 무사히 출근하고 싶다면 내 말 듣는 게 좋을 거다.”

입을 댓 발은 내밀고 투덜대는 힘찬이를 무시하고 나머지 선택은 멤버들에게 맡긴 뒤 잠깐 누워있겠다고 방으로 들어갔다.

포잉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자기 자리를 찾듯이 침대 위에 누운 포잉 옆에 따라 눕자 꼬리를 까딱거리던 포잉이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춰왔다.

‘두 번 다시 쓰고 싶지 않은 능력이었음.’

‘어떤 능력이길래 네가 그렇게 시름시름 앓았어?’

죽은 듯이 잠만 자던 포잉의 모습에 그런 부탁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포잉을 천천히 쓰다듬어 줬다.

‘한 번에 두 공간에 일어난 일을 확인하려면 어쩔 수 없었음. 네가 그 사납게 생긴 남자가 어떤 얘기들을 하는지 알려달라고 했잖아.’

‘미안, 그렇게 무리해야 하는 능력인 줄 몰랐어. 네가 이렇게 앓을 줄 알았으면 말 안 했을 거야.’

포잉이 이렇게까지 끙끙대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면 정말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말에 무어라 조금 투덜거린 포잉은 앞으로는 되도록 안 쓸 거라며 자신의 앞발을 내 팔 위에 얹었다.

‘응?’

‘간단한 내용이면 대충 말해주려 했지만 양쪽 이야기를 다 너에게 설명하다가는 한참 시간이 걸릴 거임. 너 지금 멤버들이랑 외출해야 하잖아.’

‘아아, 그렇지. 천천히 들어도 되는데.’

어차피 월요일에는 다른 프로그램의 촬영으로 스케줄이 잡혀있다고 들었다.

가기 싫었던 그 미궁 탈출인가 하는 프로그램.

늘 원하는 것만 하고 살 순 없으니 가야 했다.

찬이랑 세빈이 둘만 보냈다가 무슨 사고를 칠 줄 알고….

‘내가 본 걸 너한테도 보여줄 건데… 일단 자라, 계약자야.’

‘자라고?’

대답은 듣지 않겠다는 듯 포잉이 나를 한번 툭 건드리자 어? 하는 사이에 풍경이 바뀌었다.

‘포잉, 이게 뭐야?’

‘현실에서는 못 쓰는 능력임. 대신 꿈속에서는 내가 본 것들을 너한테 전달해 줄 수 있음.’

‘아, 특이한 능력들이 많구나.’

‘자주는 못 쓰는 능력이니 얌전히 받아들여.’

포잉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앞에 정윤 실장님과 대화하는 박 PD님의 모습이 나타났다.

* * *

포잉이 전해준 기억들을 다 확인하고 나니 누군가 몸을 건드리는 느낌이 들어 움찔하고 눈을 떴다.

“그새 잠들었어?”

“아, 그러게요….”

“피곤하면 그냥 쉴래?”

걱정이 묻어나는 경환 형의 눈빛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쉬니까 몸이 노곤노곤해져서. 저 얼마나 잤어요?”

“두 시간쯤 잤네. ”

잠깐 잠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다.

뻐근해진 몸을 움직여 풀면서 거실로 나와 앉았다.

“그래서 영화는?”

“좀 어중간한 시간에 가는 게 사람이 덜할 것 같아서 지금 가려고.”

“예매했어? 뭔데?”

“애나벨이라고 인형 나오는 건데, 세빈이가 추천했어.”

“아, 그래?”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영화 제목이어서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멤버들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나에게 커다란 엿을 선물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데려다준다고 하는 우진 형의 말을 잘 거절하고 지하철을 탄 우리는 조금씩 설레하고 있었다.

혹시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작고 소박한 마음이 들어서.

하지만 가끔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사람들은 있어도 우리 이름을 말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어딘가에서 연습생인가? 연예인인가? 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언뜻 들려왔지만 우리 이름이 나오지 않아 동생 라인은 모두 시무룩해졌다.

“당연한 거야. 우리 팬들이야 우리를 좋아해 주시니까 얼굴을 알지만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는 그게 잘 안 돼요.”

시무룩해져서 모자를 더 눌러쓰는 세빈이의 머리를 툭툭 건드려주며, 영빈 형이 중얼거렸다.

“더 열심히 하면 되지. 그러면 더 많은 솜뭉치들이 우리를 봐줄 거야.”

“언젠가는 우리가 이렇게 다 같이 편하게 다니는 걸 그리워하는 날도 있을걸?”

내가 세빈이와 찬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하자 하준 형이 피식 웃었다.

“그러게.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네.”

“진짜야. 형 못 믿어?”

내가 봤던 인터뷰에서 세빈이는 멤버들과 함께 맛집 찾아다니고 영화 보러 다녔던 때가 가장 그립다는 말을 했었다.

지금이야 밖으로 나가 노는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만, 조금 더 익숙해지고 안정되면 나도 멤버들과 맛집 탐방을 하고 싶었다.

인기라는 건 생기면 생기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내줘야 하는 거라, 나중에는 이 시기를 멤버들과 그리워할 날이 올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와, 영화관 진짜 오랜만이다.”

“예전엔 꽤 자주 왔는데 연습생 하면서 다른데 신경을 못 쓴 거 같아.”

“나중에 같이 전시회 같은 것도 갔으면 좋겠다.”

회사 숙소만 반복하느라 회식한다고 고깃집 갔을 때도 시내라고 했던 우리 멤버들을 떠올리며, 나는 조금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훤칠하게 잘생긴 애들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왜 늘 부끄러움은 내 몫이지?

“표 발권하고 올게요~!”

“같이 가!”

신난 막내 둘이 뛰어가고 남은 우리는 멍하니 있다가 여기저기 준비된 의자 중 하나에 모여 앉았다.

“아, 팸플릿이라도 볼까?”

원래 대충 줄거리나 스포일러를 찾아보는 편인 나는 예매했다는 영화를 찾아볼까 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마침 한쪽 벽의 거대한 광고 화면에 우리가 볼 영화의 제목이 떠올랐고,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인형은 인형인데 내가 아는 인형과는 많이 다른 인형이 나왔다.

저런 걸 아이들이 가지고 놀진 않을 것 같은데?

“…준이 형, 아까 분명히…?”

“형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했어, 환아. 진짜야.”

늘 믿음만 주던 선량한 얼굴이 이렇게….

하준 형이 인자하게 웃으며 중얼거린 말이 비수처럼 내 가슴에 와서 꽂혔다.

“영빈이 형…?”

“촬영 전에 어느 정도 충격을 겪고 가면 현장에서는 조금 덜할 거래. 힘찬이가.”

그러면서 왜 내 눈을 피하는데요, 왜요….

“경환이 형….”

울상인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경환 형이 대답했다.

“가위바위보에 졌어. 어쩔 수 없었다.”

“이럴 순 없어….”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힘찬이도 아니고 세빈이가 나를 배신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평소보다 훨씬 우애 좋은 모습으로 발랄하게 뛰어오는 두 놈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었다.

뛰어오던 둘은 굳어진 내 표정 때문인지, 뒤에 있던 형들이 눈치를 줘서인지 가까이 다가올수록 눈치를 살폈다.

“내가, 공포영화는, 싫다고 했잖아.”

“이게 다 우리 솜뭉치들을 위해서예요!”

“맞아, 지환아. 생각해봐라. 방송에서 우리가 막 겁먹어서 덜덜 떨고 있으면, 응?”

“맞아요! 솜뭉치들이 언래블이 쫄보라고 생각하면 어떡해요!”

창피하게 여기서 소리 지를 수도 없어서 이 악물고 둘에게 속삭였지만, 사전에 얼마나 열심히 미리 머리를 굴렸는지 대답이 즉각 튀어나왔다.

아니, 저기요. 그래도 그렇지, 네?

“팀장님이 미궁 탈출은 팬층이 꽤 있다고 했어. 봐봐, 지환아. 거기서 우리가 딱! 캐리하고 응? 얼마나 멋있겠어!”

“솜뭉치들이 역시 우리 언래블은 다 잘하나 봐! 하면서!”

양쪽에서 두 어린 사기꾼이 입을 털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궤변이냐고 반박하던 나도 점점 그런가? 하는 혼란 상태가 되었다.

지나치게 겁먹어서 벌벌 떨고 있으면 같은 남자가 봐도 꼴불견일 때가 있는데 내가 그런 비호감 멤버가 되면 곤란하긴 했으니까.

가뜩이나 데뷔 전 인식이 안 좋은 나기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서, 결국엔 자포자기한 얼굴로 알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발권했으니 이대로 집에 가자고 할 수도 없고.

그나마 다행인 건 힘찬이나 세빈이를 제외하면 다들 공포영화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나는 크게 한숨을 쉬며 팝콘이나 사 오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팝콘이라도 있어야 무서운 장면 나오면 얼굴을 가리지….

양심상 둘이 하나는 먹어도 될 것 같아서 주문을 하고 기다렸는데 건네주던 직원분이 팬이라며 응원한다는 말을 건네주었다.

내 미래를 모르는 분일 텐데도 시기적절한 응원을 받은 나는 기분이 훨씬 좋아져서 웃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주변을 구경하느라 부산스러운 둘에게도 직원분이 우리 팬이라는 걸 알려주자 눈이 톡 떨어질 것처럼 커지더니 환하게 웃었다.

조심스럽게 건넨 솜뭉치의 응원으로 어떻게든 영화 끝날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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