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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77)화 (77/456)

77. 그들만의 휴일

원래는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늦은 시간에 숙소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전날 자기 전 포잉에게 누나 집에 와있다는 말을 전했더니 자신은 숙소에서 쉬겠다는 말을 남겨왔다.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기운 없이 축 늘어져서 잠만 자던 포잉을 생각하니 걱정이 가시질 않았다.

포잉 걱정에 더해 누나 집에 머무는 게 익숙한 듯 낯설어서, 차라리 멤버들과 부대끼며 지내 온 숙소가 더 마음 편할 것 같았다.

귀찮다는 누나를 억지로 끌어다 앉혀놓고 아침밥을 먹이고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조금 가벼웠던 것도 같았다.

조용한 숙소는 오랜만이라 어딘가 어색했지만, 금방 생각을 떨쳐내고 아직도 내 침대 위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포잉을 찾아갔다.

‘포잉, 어디 아픈 거 아냐?’

내 생각이 포잉에게 전달된 건지 움찔하긴 했지만 잠에서 깨진 않았다.

영 기운을 못 차리는 게 걱정된 나는 옷을 갈아입고 슬며시 침대 위에 누워 포잉의 몸을 쓰다듬었다.

천천히 빗질하듯 털을 쓸어주자 잠결에도 고롱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웃고 말았다.

포잉이 없었으면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남았을까.

만약 미션 깨는 것처럼 포잉 없이 무언가 주어지기만 했다면, 나는 그것들을 포기하고 방구석 폐인으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포잉을 쓰다듬다 잠깐 잠이 들었고, 익숙한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고 나서야 깨어날 수 있었다.

“어? 지환아, 언제 와있었어?”

아직 눈도 다 뜨지 못한 나는 힘겹게 눈을 깜박이다 눈앞에 있는 힘찬이 얼굴에 정신이 확 들었다.

“공포영화도 아니고 얼굴이 왜 이렇게 가까워.”

“이렇게 하면 네가 기겁할 테니까?”

아, 역시 이놈 새끼는 성격이….

부스스할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침대에서 빠져나온 나는 품 안에 포잉이 없다는 걸 깨닫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요정님 [왜 이렇게 일찍 옴? 일단 나 밥 먹고 오게씀]

[밥 먹고 있어?]

요정님 [ㅇㅇ. 쉬고 있어. 좀 이따 갈게]

포잉에게 메시지를 보내두고 거실로 나온 나는 짐 쌓는 용도로 쓰는 아일랜드 식탁 위의 보자기 뭉치들을 보고 당황했다.

“이게 다 뭐야?”

“우리 김치 사 먹는다고 했더니 엄마가 챙겨줬어. 그리고 오늘 저녁에 너희랑 먹으라고 갈비찜도 싸줬어!”

“…너 진짜 어머님한테 잘해라.”

이 사고뭉치를 이렇게까지 사람같이 키워내신 어머님께 존경의 마음을 가지며, 보자기를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묵은지와 갓 담근 배추김치, 동치미에 총각김치까지. 이것만 있으면 우리 애들은 밥 굶을 일 없겠다 싶을 정도로 한가득 싸주셨다.

“아, 어머님한테 죄송해서 어떡하지.”

“왜?”

“야, 인마. 이거 다 하려면 얼마나 고생하셨을 거야.”

정말로 이해를 못 한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 철없는 중생 덕에 결국 나는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내놔.”

“뭐를?”

“어머님 연락처.”

“안돼!”

“빨리. 감사 인사드려야지. 그게 사람이야.”

한참을 안된다고 투덜거리던 찬이는 결국 어머니 번호를 나한테 내밀면서 절대 자기 흉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찬이랑 같이 일하는 지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작된 어머님과 내 오붓한 대화에 힘찬이 얼굴은 실시간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엄마는 누구 엄마야!!”

- 소리 지르마, 이 철딱서니 없는 것아! 지환이 반만큼만 점잖아 봐!

“어머님, 다음에 찬이랑 찾아뵐게요. 정말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나보고 내숭을 떤다며 억울하다고 자기 가슴을 쾅쾅 치는 힘찬이는 무시하고 기분 좋게 통화를 끝냈다. 냉장고에 차곡차곡 김치통을 채우고 나니 밥도 안 먹었는데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때, 다시 도어락 소리가 들리며 또 다른 사람이 숙소로 들어왔다.

“어, 왔어?”

“형은 또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세 번째로 나타난 멤버는 영빈이 형이었다.

어김없이 영빈 형의 손에도 커다란 쇼핑백이 쥐어져 있었고, 그 안에는 다양한 과일이 가득했다.

“우리 엄마가 지환이 너 가져다주래.”

“네? 갑자기 저를요?”

“응. 네가 우리 밥 챙겨주고 과일 갈아주고 한다니까 고맙다고 가져다주라고 하시더라.”

“어머님께 꼭 감사하다고 인사 좀….”

“아, 엄마가 네 번호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줬어. 엄마 번호 알려줄게.”

왜인지 모르겠는데 멤버들의 어머님 번호를 수집하고 있는 나였다.

부모님들께도 보모로 인정받은 건가? 하지만 왠지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잠시 내 처지를 떠올리며 슬퍼하던 나는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둘에게 할 일을 만들어줬다.

“둘 다 할 거 없으면 방바닥이나 좀 닦아요.”

“나 할 거 있어!”

“찬아, 걸레 빨아와.”

“넌 내 말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응, 알았으니까 걸레 빨아서 바닥 닦아. 영빈 형은 바닥에 청소기 좀 돌리고요.”

과일이 푸짐하게 많아진 건 너무 행복하지만 냉장고에 오래 두면 금방 맛이 없어지고 물러지기에, 방금 김치를 넣었던 냉장고를 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찬이는 시무룩해져 어깨를 늘어트리고 걸레를 빨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고 영빈 형도 청소기를 들었다.

“얼른 치우고 앉아서 과일 먹읍시다.”

“니예….”

“하, 숙소와도 잔소리가….”

어디선가 푸념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흘려들을 수 있는 수준이라 귀가 가렵지도 않았다.

한바탕 정리가 끝난 후 셋이 모여 앉자 평소보다 인원이 비워서 널널한 거실이 이상했다.

“둘 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니가 제일 일찍 왔잖아….”

“나야 가족이라고는 누나뿐인데, 내가 집에서 버티고 있으면 누나가 맘 편히 못 쉬잖아.”

내가 어깨를 으쓱하고 대답하자 멤버들이 입을 다물었다.

지환이가 멤버들에게 가족 관계에 대해 제대로 말한 적이 없다는 게 그제야 생각났다.

멤버들이 아는 내용은 한정적인 내용일 게 뻔했고, 나는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가족 관계를 설명하기보다 질문하는 쪽을 택했다.

“난 그래서 그렇다 치고 찬이랑 영빈이 형은 왜?”

내 물음에 서로를 잠시 바라보던 찬이와 영빈 형이 한숨을 쉬었다. 가족들의 잔소리와 관심이 버겁기도 했고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이제는 숙소가 더 편해. 미쳤나 봐.”

복숭아를 잘라놓은 나는 둘에게 손짓하고 나도 한 조각 입에 물었다.

“나도 누나랑 있던 집보다 숙소가 더 편하더라.”

“다른 애들은 언제 오려나.”

“톡 해봐요.”

모처럼의 휴일이건만 숙소 풍경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대충 거실 바닥에 늘어져서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으니.

[몇 시에 올 거야?]

우리 준이 형 [난 지금 가는 중]

우리 경환이 형 [나도 가는 중인데]

모지리 [다들ㅋㅋㅋㅋㅋ 왤케 빨라]

[이미 숙소에 있는 모지리가 할 말은 아닌데….]

우리 영빈이 형 [나랑 환이랑 찬이는 숙소야]

내 동생 [나도 거의 다 왔어요!]

“그… 아무리 우리가 사이좋은 그룹이어도, 이런 것까지 다 똑같을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하루 종일 니들이랑 붙어 있다 보니까 비슷해진 거 같아.”

얼떨떨한 기분으로 채팅창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영빈 형은 한숨을 내쉬며 작게 대답했다.

나는 빼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영빈 형을 위해 침묵하기로 했다.

“저 왔어요!”

“내 새끼, 잘 갔다 왔어?”

“환이 형!”

집에 다녀와서 기력을 충전한 건지 평소보다 에너지가 넘치는 우리 세빈이가 도도도 달려와서 나랑 찬이 위에 누워버렸다.

“악! 야! 무거워!”

“우리 세빈이가 뭐가 무거워. 아직 한참 먹고 커야 하는데.”

나보다 입구 쪽에 가까웠던 찬이가 더 큰 힘으로 뭉개진 건 알지만 내 새끼 기죽일 수 없으니 모른척했다.

“형들 보고 싶어서 일찍 왔는데 나보다 빨리 왔네.”

“이거 먹고.”

영빈 형은 세빈이 입에 복숭아 한 조각을 물려줬고 세빈이는 바닥에 자리 잡고 앉아서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빠가 형들이랑 저녁에 맛있는 거 먹으라고 용돈 줬어요.”

“찬이 어머님이 갈비찜 해서 보내주셨어. 그 돈은 나중에 세빈이 맛있는 거 사 먹고 오늘 저녁엔 갈비찜 먹자.”

확실히 집에 다녀온 멤버들은 어딘가 모르게 충전했다! 라는 느낌이 팍팍 들어서 보기 좋았다.

“아, 저희 저녁에 영화 보러 갈까요?”

“영화? 영화관 안 간지 좀 되긴 했네.”

“형들한테도 물어볼게요.”

평소보다 활기찬 세빈이 모습이 여러모로 흐뭇했고, 항상 뭔가 긴장 상태인 것 같았던 영빈 형도 느긋한 모습이었다.

찬이는 그냥 찬이었고.

“준이 형이랑 경환이 형도 조금 있으면 도착한대요.”

“애들 오면 점심시간이겠네. 뭐 먹지?”

“우리끼리니까 맛있는 거 먹자!”

“그리고 월요일에 찬이가 열심히 땀 흘리고?”

“오지 않은 미래는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쓸데없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하는 찬이 모습에 세 명 모두 월요일에 울며 러닝머신 뛰고 있을 모습을 떠올리며 웃었다.

과거의 자신에게 욕을 퍼부으며 왜 끝까지 말리지 않았냐고 칭얼거릴 게 뻔했다.

그때 받아주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는 사이 현관문 너머로 전자음이 들려왔다.

“어? 왔나 보다.”

“그래, 왔다.”

도어락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 찬이가 외치는 사이 문이 열렸고, 준이 형과 경환이 형이 나란히 들어왔다.

세빈이가 문 앞에 내버려 두고 온 짐을 잠시 바라본 하준 형은 그 짐과 자신의 짐을 함께 식탁 위에 올려놓았고, 경환 형은 지친 얼굴로 그대로 바닥에 눌어붙었다.

“내가 이래서 바닥 청소를 안 할 수가 없어….”

습관처럼 자꾸 바닥에 달라붙는 멤버들 때문에 주기적으로 청소해 주시는 분이 있음에도 바닥 청소는 매일 해야 했다.

가뜩이나 피부가 약한 세빈이나 경환 형이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곤란하기도 했고.

“네가 고생이 많다.”

“형만 하겠어요….”

밖은 한창 더울 시간이라 둘이 우리 옆으로 다가오자 온도가 훅 올라간 느낌이 들었다.

에어컨을 틀어놓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 점심 뭐 먹을까요?”

“평소에 못 먹는 거 먹자.”

“기름진 거!”

“기름진 거 하면 중국집이지. 탕수육 콜?”

기름진 음식으로 민심을 평정한 하준 형은 리더의 위엄을 보이며 점심을 자신이 사겠다고 선언했다.

거기에 영빈 형이 자신도 보탤 테니 먹고 싶은 거 다 시키라는 말에 찬이의 눈이 뒤집혔지만, 자근자근 체중을 실어 밟아주니 다시 얌전해졌다.

정말 한시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게 힘찬이의 재주라면 재주였다.

“난 간짜장 먹을래.”

“난 냉면!”

“중국집에서 냉면을 팔아?”

냉면을 외치는 힘찬이 모습에 영빈 형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기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난 잡채밥.”

인원이 많다 보니 주문 한번 하려면 메뉴 받는 것도 일이었다.

처음에는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해야 했지만, 이 짓도 계속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이제 와 경환 형이나 찬이에게 시키자니 두 사람의 기억력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 맞다. 세빈이가 다 같이 영화 보고 싶다던데.”

“요새 영화 뭐해?”

“글쎄요…?”

다 같이 숙소 회사를 반복한 사람들이니 여기에 물어봤자….

“찬이랑 세빈이가 영화 뭐 재밌는 거 있는지 검색해봐.”

“근데 우리 영화관 가도 돼요?”

“회사에서도 딱히 안 된다고 한 건 아니어서 괜찮아. 내가 우진 형한테 말할게.”

이렇게 마음대로 먹는 것도 걱정스러운데 영화관까지 가도 되나 싶었던 내가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하준 형에게 물어봤더니, 역시 우리 리더는 다 생각이 있었다.

직접 우진 형에게 허락을 받겠다고 하는 당당한 모습에 모두가 눈을 빛냈다.

역시 우리 리더!

하준 형이 우진 형에게 연락해서 허락을 받는 동안 주문한 음식들이 배달되었고, 영화를 고민하던 찬이랑 세빈이는 달려 나가서 음식을 받아왔다.

상에 다 안 올라갈 양이라 그냥 바닥에 놓고 먹는데 그놈의 부먹찍먹 논란 때문에 뜬금없이 경환 형과 영빈 형이 열띤 토론을 펼쳤고, 그 꼴을 보던 하준 형이 그릇을 가져와 소스를 덜어줬다.

“그냥 좀 취향껏 먹어라, 이런 걸로 싸우지 말고.”

“봤지, 세빈아? 저렇게 싸울 때 너는 그냥 하나 더 먹는 게 이득이다.”

“네!”

“너 세빈이만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냐?”

“탕수육이나 먹어요.”

부먹은 부먹대로, 찍먹은 찍먹대로 모두가 공평하게 평화로워진 점심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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