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69)화 (69/456)

69. Wake up(4)

역시나 작가님이 칭찬을 퍼부어가며 우리 애들을 우쭈쭈해주자 다들 기분이 아주 우주까지 날아갈 기세였다.

회사의 트레이너 선생님들이나 다른 사람들은 작가님처럼 우리에게 칭찬을 해주지 않아서 언래블은 모두 칭찬에 목말라했다.

거기다 다행히 이번 촬영에는 실제 드라마에 나오는 여주인공 역의 배우님이 합류해 먼저 분위기를 리드해 주셨다.

애타는 가슴을 움켜쥐고 남몰래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라고 설명을 들었는데,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우리가 그 설명을 듣고 바로 연기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얘들아, 꼭 짝사랑하던 여자, 지난 연애를 떠올릴 필요 없어. 짝사랑 경험이나 연애 경험이 없을 수도 있잖아.”

“그러면요?”

“너희 치킨 먹은 지 오래됐지?”

“네…. 얘기하니까 치킨 먹고 싶다….”

“자, 저기에 치킨이 있는 거야. 그런데 매니저가 뒤에서 감시하고 있어서 못 뛰어가!”

“아…. 내 치킨….”

세상에.

저렇게 힘찬이 맞춤 설명을 할 수 있는 분이 또 있었네.

감화된 힘찬이의 시선은 세상 애틋해졌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표정을 만들어냈다.

“누님, 존경합니다….”

“하하, 너네 되게 재밌다.”

청춘 로맨스물이라고는 했지만, 눈앞의 이 배우님은 20대 후반의 나이를 가지고 있었다.

세빈이랑은 띠동갑이었다.

동안도 이런 동안이 없었다.

성격도 화통하고 배려심이 많아서 어설픈 우리가 NG를 내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주셨다.

“저, 효정 누님, 사인 좀….”

“사인? 이리 와봐.”

그리고 몰랐는데 우리 경환 형이 이효정 배우님의 찐팬이었다.

배우님이 등장하자마자 덜덜 떨더니 편하게 누나라고 부르라는 말에 울 것 같은 얼굴로 성덕이 됐다고 중얼거렸다.

* * *

그리고 지금은 저렇게 직접 해준 사인을 들고 함께 셀카를 찍고 있었다.

“내 폰으로도 찍자. 너희랑 찍었다고 나도 SNS에 올려야지~.”

“저희도 올릴게요!”

오늘은 조금 멀리서 이효정 배우 매니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진 형을 슬쩍 바라봤다.

평소에는 여자 아이돌들이 근처에 못 오게 밀착 마크하더니 오늘은 세상 편하게 풀어놓고 있어 웃음이 나왔다.

“너희는 연기 안 하니?”

“기회만 주시면 언제든 열심히 할 준비는 되어 있죠.”

“어쭈, 말은 잘해? ”

“하하, 우리 솜뭉치들이 저희 연기한다고 하면 뜯어말릴 것 같긴 해요….”

“아, 그 영상! 나 그거 봤어.”

“악! 누님! 말하지 마세요!”

언래블이라는 그룹을 몰랐던 효정은 검색 엔진과 위캠에 우리 이름을 검색해봤고, 그렇게 정보를 습득하다 문제의 그 연기 영상도 봤다고 했다.

세상에, 잊고 있었던 흑역사를 이렇게 꺼내시다니.

그 와중에 매일 교복을 입어왔던 4명을 제외한 큰형 두 명은 오랜만에 입은 교복에 자꾸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것 같았다.

아니 졸업한 지 일 년밖에 안 된 양반들이 왜 벌써 저래.

스튜디오에서 사진만 찍나 했더니 홍보에 쓸 영상도 짧게 찍는다고 해서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세트장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 촬영을 진행하는 내내 몇 명의 스태프분들이 쫓아다니면서 우리를 찍고 있었다.

이후 위캠에 공개될 우리 리얼리티를 위해서 영상을 모을 거라는 얘기를 전달받았고 사전에 협조 요청도 받았기에 문제는 없었다.

“저 예쁘게 나와요?”

“어휴, 그럼. 워낙 잘생겨서 그냥 찍어도 잘 나와요.”

“훗, 진짜 감독님만 믿을게요! 감독님이 최고예요!”

이렇게 중간중간 촬영팀과 친분을 위해 장난도 치고 즐겁게 촬영을 마무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언래블도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칭찬과 격려가 오가는 훈훈한 촬영장 분위기 덕분에 너무 오래 걸리지 않고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준이 형, 잘하고 와요!”

“빠잉~.”

“얌전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이 사고뭉치들아.”

무사히 다녀오라고 하준 형에게 손을 흔들어준 뒤 우리는 얌전히 숙소에 들어왔다.

늘 신기한 게, 이렇게 혈기 왕성한 나이의 남자애들이니 회사, 숙소 반복하는 생활이 답답하기도 할 텐데 언제나 다른 곳으로 새는 법 없이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고 있었다.

건너 건너 듣다 보면 회사 몰래 놀러 다니는 애들도 많다던데.

뭐, 대신 숙소 안에서는 얌전히 있지 않으니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영빈 형이 있어서 하준 형도 그럭저럭 마음을 놓고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나부터 씻을게.”

“어어.”

오늘은 하준 형의 라디오도 들어야 했고, 팬 사인회 때 팬들에게 주기 위한 메모도 적어야 했다.

빠르게 씻고 조금이라도 더 만들어둔 후에 편한 마음으로 라디오를 듣고 싶었다.

* * *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봉인이 불린 찬이와 세빈이가 투닥거려서, 모든 멤버가 샤워를 마치고 자리에 앉기까지는 한참 걸렸다.

준이 형 없다고 이렇게 바로 티가 나다니.

겨우 정리된 분위기에 다들 상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수북한 엽서를 꺼내두었다.

“우리 이번 주 주말은 스케줄 없이 쉬게 해준다고 하던데.”

“어, 진짜요?”

“응. 집에 다녀올 사람은 다녀오라고 하더라.”

영빈 형이 팀장님한테 전달받은 내용을 공유해 주자 멤버들은 오랜만에 가족들 얼굴 볼 생각에 설레하는 것 같았다.

밥 먹던 상에 둥글게 모여서 우리 사진이 프린트된 엽서에 사인과 한 줄 메모를 적었다.

팀장님의 전달 사항과 최근 우리의 일상, 공카에 남은 팬들의 이야기들을 떠들고 있는 우리 모습이 꼭 그거 같았다.

“근데 우리 약간 가내수공업 하는 것 같지 않아요?”

“엌, 야! 잘못 쓸뻔했잖아!”

“찬이 형은 맞춤법 좀 신경 써요! 이게 뭐야!”

“야, 그런 게 다 애교라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부업 하는 것 같아서 문득 떠오른 단어 하나를 말했을 뿐인데, 아가 둘은 그거 가지고 또 투닥거리기 바빴다.

“이상했어요?”

“가끔 나는 네 나이가 의심스러워, 환아.”

“저도 가끔 제 나이가 의심스러워요.”

그 단어가 그렇게 웃겼나 싶어 영빈 형을 바라보자 웃음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영빈 형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맞장구를 치자, 이번에는 경환 형이 펜을 놓고 웃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펜을 들고 장난치거나 웃다가 잉크라도 잘못 날아가면 그런 날벼락이 없기에 우리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이었다.

“아, 곧 라디오 시작하겠다.”

“오늘은 이상한 문자 보내지 마라.”

“그날 그렇게 당했는데 설마 또 하겠어요?”

“난 힘찬이한테 신뢰가 안 생겨….”

그렇게 그날 밤은 하준 형의 목소리를 배경음으로 우리 모두 열심히 사인하다 끝이 났다.

* * *

“선생님 안녕하세요!”

“언래블이었지요? 하하, 잘 지냈어요?”

“어휴, 선생님, 말씀 편히 해주세요.”

“그게 더 편하려나?”

‘무사이’ 첫 촬영과 미션 진행을 위해 일찍 촬영장에 도착한 우리는 열심히 다른 대선배님들 틈바구니에서 인사를 다니며 서글서글한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 있는 누구도 경력, 인지도 면에서 우리보다 뒤처지는 사람이 없었다.

막내답게 더 열심히 발로 뛰면서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 애썼다.

“어! 후배님들!”

“세진 선배님, 안녕하세요!”

“후배님들, 어제 효정 언니랑 촬영했다면서?”

“네. 어제 촬영에서 효정 누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언니가 언래블 착하다고 엄청 칭찬하더라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데미갓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인드였는지 부드러운 분위기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우리가 자기들을 위협할 만큼 인지도가 있는 그룹이 아니기에 경쟁 상대라 생각지 않아 더 편하게 여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 데미갓 외에 다들 오셨죠?”

“그 친구들은 오늘 촬영 안 해요?”

“이전 스케줄이 좀 딜레이 됐다네요. 각 팀별로 인터뷰 먼저 진행하겠습니다.”

조연출의 전달 사항에 다들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준비된 좌석에서 대기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김준현 선생님이 인터뷰를 위해 가장 먼저 자리를 비우자, 나머지 사람들이 다 같이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날 먼저 인사를 건네주었던 나민수 씨의 영향력 덕분이었다.

“아주 민수 씨는 그거 병이야, 병. 진행 병.”

“하하, 그래도 이왕이면 잘 지내는 게 좋잖아요.”

여러 프로그램에서 이미 MC로 자기 기량을 확실하게 선보인 사람이라, 유명 연예인 중에서도 그의 팬이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도 제가 나선 덕분에 이렇게 훤칠한 친구들이랑도 말 트고 그런 거 아닙니까.”

“그건 또 그렇네?”

“어린 친구들이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선배님들이 이렇게 잔뜩 모여 있으면.”

한 발자국 갈 때마다 90도 인사를 해야 할 만큼 전부 까마득한 사람들이라 우리는 우리끼리 모여서 소곤거리고 있었는데, 나민수가 다가와 다른 사람들과 인사도 시켜주고 대화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이끌어 갔다.

“그나저나 다들 기획은 잘 짰어요?”

“서로 공유하지 말랬잖아요. 말했다가 그 인간이 어떤 벌칙을 줄지 알고!”

“에이, 어차피 박 PD 없는데 뭐 어때요. 저는 어떤 친구 꿈을 이루게 도와주는 역할이었어요.”

나민수가 먼저 자기 미션을 오픈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자 잠시 제작진의 눈치를 보던 다른 배우들과 세진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얌전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리액션만 진행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기 전, 내가 멤버들을 붙잡고 단단히 주의를 준 게 절대 우리가 나서서 튀려고 하지 말고 일단은 얌전히 분위기 파악을 하자는 것이었다.

첫 미팅 때도 카메라를 숨겨 놓았던 제작진이라 어떻게 우리 뒤통수를 칠지 모르니 조심하자는 말을 해두었다.

멤버들이 긴장을 다 풀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이었다.

혹시 내가 조심해야 할 게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포잉을 보내놔서 지금 당장 촬영장을 살필 수는 없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우리 후배님도 어려웠어요? 어땠어?”

그리고 세진 선배님이 우리에게 끼어들 틈을 주려고 하는 그 순간, 갑자기 박세날 PD가 튀어나왔다.

“여러분, 제가 미션 공유하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요.”

“아니, 어차피 오늘 다 알게 될 거 아냐? 우리끼리 미리 정보도 좀 알고 해야 준비를 더 잘하지.”

“에헤이, 민수 씨 벌써부터 여론몰이하시는 거예요? 제작진이랑 싸우는 프로그램 아니라니까요.”

“내가 박 PD한테 한두 번 속아!”

“맞아! 박 PD님 저번에 저도 속였잖아요!”

그간 출연진을 자주 골탕 먹이고 제작진과 출연진의 대결 분위기를 몇 번 만들었던 박세날 PD인지라 출연진의 경계는 상당히 심했다.

“아니라니까 그러네요. 여하튼 미션 공유하신 분들은 다음 경연에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이 쫌생이가!”

“하하, 꼬우면 민수 씨가 PD 하세요!”

“우우, PD님 너무해.”

“민영 씨, 제가 다 기억해둘 겁니다.”

흥미진진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우리 애들은 마냥 눈만 동그랗게 뜨고 흘러가는 분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솜털 뽀송한 병아리 같은 우리 애들한테 PD님은 하늘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이렇게 투닥거리는 모습은 새롭다 못해 신기할 터.

나는 ’죽기 살기’ 스킬을 활성화해둔 덕에 멘탈이 튼튼해진 건지 신경줄이 굵어진 건지 다행히 떨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도 나누면서 잘 웃고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스킬의 도움을 받고 있어도 긴장이 다 사라지진 않아서 어지간하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자, 그럼 민수 씨랑 세진 씨, 민영 씨, 세영 씨는 페널티가 있습니다. 페널티는 인터뷰 끝나고 말씀드릴 거예요.”

“와, 이 치사한 인간. 내가 복수한다.”

“그 복수는 4년째 못하고 있는 거 아시죠? 민수 씨도 인터뷰나 하러 가요.”

분해하던 나민수가 투덜거리며 박 PD와 함께 촬영장을 벗어났고 멍한 눈으로 지켜보던 우리가 재밌었는지 김진수 선배님이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

“박 PD님이랑 처음 해봐요?”

“네. 저희는 여기가 첫 방송 프로그램이라 아무것도 몰라요….”

“진우야, 이 친구들이랑 너랑 나이대도 비슷할 것 같은데?”

“아, 언래블 얘기 겸이 형한테 들었어요.”

“어? 하겸이 형이 저희 얘기했어요?”

“너희도 하겸이 아는구나. 걔가 은근 마당발이라니까.”

“겸이 형 라디오가 저희 첫 출연이었어요.”

이렇게 전 국민의 친구급인 하겸 형 덕분에 가요계 선배인 김진수 선배님과 최근 20대 남배우 중 가장 핫하다는 여진우 씨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우리에게는 악의 축에 가까운 데미갓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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