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68)화 (68/456)

68. Wake up(3)

영빈, 지환, 세빈이가 GIVE 앱 촬영을 한다고 뽀짝거리는 동안 첫 미션을 성공리에 끝낸 멤버들은 조금 뿌듯한 마음으로 소현 팀장님이 사준 딸기주스를 들고 있었다.

모처럼 외출이니까, 라며 사준 딸기주스 한 잔에 모두가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이야.”

“앗, 진짜요? 가서 자랑하려고 했는데.”

음료를 모두 마신 힘찬은 아쉽다는 듯 빨대 끝을 질겅거리며 중얼거렸다.

“찬아, 그거 하지 마.”

“아, 또 이러네.”

“한동안 안 하더니.”

하준의 제지에 정신을 차린 힘찬이 이미 너덜너덜해진 빨대를 바라보다 입맛을 다시자 경환이 힘찬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하준과 지환이 안 좋은 버릇이라고 몇 번이나 제지해 조금 고쳐지나 싶었더니, 조금만 방심해도 원래대로 돌아가곤 했다.

습관에 휘둘리는 스스로가 힘찬은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얘들아.”

“엇, 네.”

“팀장님, 왜요?”

운전대를 잡고 있던 소현 팀장이 룸 미러를 통해 멤버들을 살피다 몸을 아예 멤버들 쪽으로 돌렸다.

“예능 나가볼 생각 있니?”

“예능이요?”

“기회가 있으면 저희야 좋죠.”

회사에서는 첫 앨범 컨셉도 컨셉이거니와 멤버들의 이미지 소모 때문에 예능 출연을 막고 있었다.

제의가 들어왔던 예능 대부분이 출연자 멘탈을 부수는 것이 목적인 듯한 프로그램뿐이라 두 번 듣지 않고 단호하게 다 잘라냈다.

하지만 이번에 들어온 건은 나쁘지 않은 듯해 정윤 실장에게 물었더니, 이쯤이면 하나 정도는 나가주는 게 좋을 거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런데 다 같이 나가는 건 아냐.”

“엇….”

“방송국에서는 누구를 원해요?”

“세빈이랑 찬이. 거기에 플러스 한 명.”

“아….”

둘의 티키타카는 GIVE 앱이나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서 알음알음 알려지는 중이었다. 게다가 찬이는 리액션이 좋은 편이라 예능 프로에서도 선호하는 것 같았다.

“의외네요. 전 지환이 요구할 줄 알았는데.”

“지환이가 막 활발하거나 리액션이 크지는 않으니까.”

“우리 지환이 가만있으면 무섭긴 해요.”

보조개 없이 아랫입술이 살짝 도톰한 지환이는 웃으면 그렇게 보드라운 애가 없어 보이지만, 눈이 길고 커다란 편인데다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어서 표정이 없으면 유난히 차가워 보였다.

예전만 해도 잘 웃지 않는 데다 말도 많지 않아서 모두들 연습생 생활 내내 좀처럼 거리감을 좁히지 못했었다.

사고 이후부터는 애가 완전히 바뀌어서 더 잘 웃고 더 서글서글해져서 다행이지만.

“그럼 둘이 사고 안 치게 잘 중재해줄 사람을 같이 보내야겠네요.”

“그렇지. 방송까지 나가서 사고 치면 안 되니까.”

소현은 라디오 첫 출연에서 지환이가 다쳤던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얼굴을 다쳤다고 들었을 때 어찌나 놀라고 화가 났던지 들고 있던 커피를 손에서 놓쳤었다.

“그런데 어떤 예능인데요?”

“공포체험.”

“…네?”

“뭐요?”

“농담이야. 뭐, 공포체험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만. 미궁탈출이라는 프로그램이야.”

웃고 있는 소현 팀장의 얼굴과는 달리 하준과 경환, 힘찬의 얼굴은 잔뜩 겁먹어 굳어가고 있었다.

“여름이잖아. 뭐 거의 짜고 치는 급이긴 할 텐데.”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하는 소현의 얼굴 위로 어째서인지 도깨비 가면이 보이는 것 같았다.

“다 같이 출연하는 게 아니라 일부 멤버들만 나가는 게 조금 아쉬운데, 프로그램 자체는 나쁘지 않아.”

소현이 찾아본 바로는 꽤 호평을 받는 프로그램이었다.

실제 폐가는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세트장을 만들어서 사용했기 때문에 출연진이 더 안전하다는 관계자들의 얘기도 있었다.

고정 멤버 3명과 게스트 3명을 불러서 매번 다양한 스토리를 풀어가는 내용이었다.

얌전한 이미지이던 여 아이돌 멤버가 3명의 고정을 이끌고 감금된 장소를 탈출하며 개선장군 같이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 국민 호감돌이 된 경우도 있었다.

덕분에 인기리에 시즌 1을 끝내고 이번에 시즌 2를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탐나지?”

“네. 남은 한 명으론 누구 생각하고 계세요?”

“후훗. 그건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소현이 상큼하게 웃으며 말했고, 멤버들은 어째서인지 손에 들고 있던 과일 주스가 최후의 만찬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 애들 방송 잘했나 보네.”

“아, 지환이랑 영빈이 세빈이 셋이 해야 돼서 좀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세빈이가 한 건 했네.”

흐뭇하게 웃으며 우진에게 온 메시지를 체크한 소현은 멤버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음을 확인하고 몸을 돌려 운전대를 잡았다.

“일단 회사로 돌아가서 애들이랑 마저 얘기하자.”

* * *

“오늘은 여러모로 좋은 날인 가보다, 얘들아.”

연습과 작곡에 몰두하고 있던 우리를 외근(?) 갔다 온 멤버들과 팀장님이 불러 모았다.

유난히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소현 팀장님의 얼굴에서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게 내 미래와 연관된 일이라고는 생각 하지 못했다.

“예능 한번 나가자, 얘들아.”

“우와! 어디요?”

무명 아이돌이 예능에 나가 운 좋게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고 팀을 끌어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좋은 기회라면 잡아야 했다.

“일단 컨택 들어온 건 찬이랑 세빈이고, 한 명 더 같이 나갈 거야.”

“오… 드디어 우리도 예능을!”

신난 힘찬이는 존경의 눈빛을 팀장님에게 보냈고, 팀장님도 만족한 듯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디에서 컨택이 들어온 건지 말을 해주지 않으니 다들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 들어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자, 하준이랑 경환이한테 의견을 물어봤는데, 아무래도 애기들만 나가면 걱정된다고 보호자를 한 명 붙이자던데.”

졸지에 애기가 된 힘찬과 세빈이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팀장님한테 대들 수는 없었는지 얌전히 있었다.

“보호자면 역시 하준 형이 가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요?”

어째서인지 이 건은 내가 맡으면 안 될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하준 형에게 슬쩍 토스를 하자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던 하준 형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내 생각에는 환이가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저 둘을 컨트롤하는 건 나보다 지환이가 더 잘하니까.”

“내 생각에도 지환이가 좋을 것 같은데?”

하준 형과 영빈 형이 동조하자 경환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짠 듯한 대답에 혹시 돌아오는 차에서 뭔가 작당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포잉, 왠지 이거 나 모는 거 같지 않아? 스킬 써볼까?’

‘…굳이 그런 일에?’

떨떠름한 얼굴로 느긋하게 꼬리를 흔드는 포잉의 모습에 의심스러운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팀장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지환이, 힘찬이, 세빈이로 명단 넘길게.”

“그런데 어떤 프로그램이에요?”

“미궁 탈출”

내가 물었을 때는 대답을 회피하던 팀장이 선뜻 프로그램명을 말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등을 돌려 나갔다.

아…. 이렇게 촉이 왔는데도 당하다니.

미궁 탈출이라는 저 프로그램은 고정 멤버와 게스트 멤버들이 1회에서 3회에 걸쳐 하나의 스토리를 진행하는 미션 해결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토리가 무섭다는 소문에 한 번도 직접 보지 않았던 프로그램이었다.

공포, 스릴러 등 여러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서 꽤 호평을 받았다지만, 굳이 찾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가장 나를 슬프게 했던 건, 내가 가영 형 작업실에서 얼마나 놀랐었는지 알면서도 하준 형이 나를 추천했다는 점이었다.

최애가 나를 버리다니, 그 슬픔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멤버들이 이렇게 나를 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충격이 더 컸다.

‘포잉, 정말 내가 믿을 건 포잉 밖에 없나 봐….’

‘뒤늦게라도 알아서 참으로 다행이구나, 계약자 놈아.’

내 절망과 상관없이 떨떠름한 포잉의 반응이 나를 더 서글프게 만들었다.

이 자리에 내 편은 없었다.

“왜 하필 나야….”

서글픈 내 신세를 한탄하고 있자니 경환 형이 어깨를 두드려줬지만 크게 힘은 나지 않았다.

“너 아니면 누가 힘찬이랑 세빈이를 컨트롤하겠어.”

“컨트롤이라니.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사고뭉치 같잖아.”

힘찬이의 항변에 모든 멤버들의 시선이 꽂혔다.

“…아니 가끔 사람이 그럴 수도 있죠….”

“가끔?”

“…얌전히 있을게요.”

“나는 무슨 죄야….”

울적한 내 표정이 도통 풀리지 않자 세빈이가 슬그머니 옆으로 오더니 오른쪽 팔에 매달렸다.

“형, 나는 형이랑 같이 갈 수 있어서 좋아요.”

“그랬어요? 진짜 우리 막내밖에 없네.”

16세 막내의 애교는 강력했기에 그나마 우울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예능 한번 나가주고 리액션 빵빵하게 해줘야 우리 팬이 늘 거 아니냐. 머리 쓰면서 리액션도 잘하는 건 우리 지환이지.”

“맞아. 너 아니면 우리 중 누가 저 둘을 데리고 분량을 뽑겠어.”

맏형 둘이 붙어서 다독이는 게 날 미궁탈출로 보내기 위함임을 알면서도, 형아들이 우쭈쭈해주는 기분이라 나도 모르게 시무룩했던 입술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가장 무난하게 둘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하준 형 아니면 나였다.

카메라에 놀라는 모습이 담겼을 때 더 재밌을 것 같은 건 아무래도 준이 형보다는 나였고.

“우리 중에 제일 활동 열심히 하는 게 지환이네. 단체 활동은 물론이고 피처링도 해, 곡도 써, 이제 예능도 나가네.”

“자꾸 비행기 태우지 마요. 진짜 나 이거 안 까먹고 다 기억해둘 거야.”

“그래, 다 기억해놔. 괜찮아,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요!”

‘계약자 놈아, 넌 아마 안될 것 같음.’

‘…묵비권을 행사할게.’

괜히 툴툴거려봤지만 내가 들어도 이미 목소리는 투정으로밖에 안 들리는 수준이라 내 꼴을 바라보던 포잉이 짧게 혀를 차고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얘들아, 이동하자.”

“네? 어디로 가요?”

“오늘 커버 사진 찍기로 했잖아.”

“스튜디오 가서 찍어요?”

회사에서 촬영하고 CG 처리하는 줄 알았는데 아예 스튜디오를 빌려서 진행하는 걸 보면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홍보를 해줄 생각인 것 같았다.

“우리 그러면 전에 그 박연우 작가님이랑 이번에도 함께 하는 거예요?”

“응. 운 좋게 시간이 맞아서 해주신다고 하시더라고.”

“우와! 저번에 그 저희 프로필 사진 찍어주신 분 맞죠?”

“어어, 그분. 되게 유명한 분이라고.”

열정적인 칭찬으로 멤버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던 작가님을 떠올리고 다들 만족해하는 얼굴로 웃었다.

언제나 칭찬이 고픈 우리 애들 맞춤형 작가님이어서 유난히 좋아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이번엔 어떤 컨셉으로 찍어요?”

“학창 시절 만났을 법한 짝사랑 상대?”

“그게 뭐예요.”

“그럼 또 교복 입어요?”

“그게 풋풋해 보이지 않을까?”

“그것도 고정관념이라니까요!”

미성년자 멤버들을 제외한 제일 큰 형들은 우진 형의 뒤를 따라가면서 교복이라는 말에 슬쩍 입꼬리가 올라간 것도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