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Wake up(1)
눈에 핏발이 선 소현은 화장실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거의 일주일.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사람이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집에 언제 들어갔더라? 사흘 전이었나?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중간에 짬이 날 때마다 잠깐잠깐 쪼개서 잠을 잤더니 시간의 흐름이 이상해졌다.
그래도 그 자신은 정윤 실장이나 박정균 대표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라는 걸 위안 삼아, 소현은 정신을 다잡았다.
이제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아이들 서포트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회사에 새로운 투자를 받는 과정에 접근한 사람이 알고 보니 김우빈을 꼬여내려고 했던 엔터사 쪽의 실소유주였고, 그들이 검은돈을 만지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면 회사를 말아먹을 뻔했다.
다행히 박 대표가 유지해온 건실한 인맥들의 도움으로 알음알음 회사에 뿌리박혀있던, 혹은 넘어간 인원들을 쳐내는 데 성공했고,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정신없는 한 달을 보냈다.
그전부터 솎아내기는 진행되고 있었지만 막판엔 그쪽 엔터랑 끈을 다 잘라내느라 박정균 대표와 실장님들, 팀장들은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
배우실 실장이 그쪽으로 넘어간 타격이 가장 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소속 연예인 대부분이 박정균 대표의 사업 수완을 신뢰했기에 큰 변동이 없었다는 거다.
언래블 멤버들은 정우진 매니저가 평소보다 더 밀착 마크하면서 떨거지가 붙지 않도록 챙겼지만, 몸이 하나라 시간이 늘 빠듯했다.
“진짜 우리 대표님 같은 사람도 없을 거야.”
“휴… 말도 마요. 그 와중에 사업을 확장 시키는 양반인데 말해 뭐해.”
박정균 대표는 자칫하면 휘청일 수 있었던 회사에 철저한 검증을 거친 새로운 이사를 모셔오고 네임드 작곡가인 에단까지 데려왔다.
“그래도 이제 진짜 정리돼서 다행이네. 애들한테는 말했어요?
“하준이한테만 대강. 애들이 알아서 좋을 게 없잖아요.”
하준이라면 애들이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잘 잡아줄 거라는 판단이 있었다.
그 긴 연습생 생활을 문제없이 잘 버텨낸데다, 지금 아이들이 팀장들보다 의지하는 게 하준이라는 걸 소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의 일을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어 눈두덩을 꾹꾹 누르며 마음을 추슬렀다.
NTV랑 합작으로 얘기가 거의 끝나가던 리얼리티가 엎어진 것도 그들의 뒷공작이라는 걸 알았을 때, 고혈압으로 쓰러지는 게 어떤 건지 느끼기도 했었다.
처음 ‘아이돌 창조’를 합작으로 만들었던 케이블 쪽은 방향성이 맞지 않아 새 파트너를 찾았던 건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애당초 김우빈도 그들한테 낚여서 미끼로 쓰고 버려진 셈이니 그 아이만 불쌍해진 셈이지만… 그뿐이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방송국을 끼지 않고 팬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위캠 방송으로 시선이 갔고, 다행히 괜찮은 프로덕션을 찾아 촬영 및 편집을 외주로 진행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방송국이랑 일했으면 갑질에 시달리고 애들도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테니까 이게 더 좋을 거라고, 그렇게 마음을 달랬다.
애들을 연습실과 작업실, 숙소, 스케줄로 정신없게 만들고 기존 스태프들 외에 다른 회사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였다.
그 과정 중에 관리하지 못한 회사 사람들이랑 접촉한 건 상정 외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지.
“어, 우진아. 그 박 PD님 프로그램 관련해서 누가 맡기로 했니? 민아? 어어, 알았어. 갈게.”
“바쁘네, 바빠.”
“별수 없죠. 그래도 애들 일로 바쁜 게 차라리 나아요.”
“그거야 그렇지. 수고해요.”
“네, 팀장님도 수고요.”
그래도 입사 동기라고 그 난리 통에 맘 편하게 속을 터놓을 사람이 주영 뿐이라는 게 또 아이러니였다.
이렇게 지환이도 멤버들도 모르는 사이 ON 엔터는 거대한 풍랑 하나를 잘 넘기고 있었다.
* * *
“이걸로 공유한다? 괜찮은 거지?”
“네. 저희는 이게 좋을 것 같아요.”
소현 팀장님과 정윤 실장님이 회의 때 얘기했던 것처럼 몇 분이 회사를 찾아왔고, 그동안 나눴던 얘기와 우리가 추측했던 내용 등 이것저것 대화를 나눈 끝에 ‘무사이’팀으로 넘길 기획안은 정리되었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박세날 PD가 OK 했다는 얘기를 우진 형을 통해 들었고, 하준 형과 경환, 힘찬이가 소현 팀장님과 함께 사연 신청자의 ‘오빠’ 되는 분들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남은 영빈 형과 나, 세빈이는 한 가지 난관에 부딪혀 다 같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어떡하죠?”
자신 없다는 표정으로 세빈이가 영빈 형을 향해 말을 걸어봤지만 영빈 형도, 나도 해결책을 갖고 있지는 않은 상태라 다 같이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우리가 열심히 머리를 싸매는 이유는 3명이서 GIVE 앱을 방송해야 하는 상황이 온 탓이었다.
평소에는 분위기를 잘 띄우는 찬이와 진행을 잘하는 하준 형이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 셋뿐이었다.
‘I'm OK’ 앨범의 공식적인 활동은 끝났지만 앞으로 촬영할 리얼리티의 홍보 겸 팬 사인회 반응도 체크해볼 겸 해서 소통 방송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고민 없이 알았다고 대답을 했다.
당장 얼마 전에 숙소 공개 때도 오프닝을 찬이와 내가 둘이서도 진행을 했으니까.
하지만 늘 있었던 익숙한 멤버들 없이 셋이 하려고 보니, 나는 늘 하준의 보조 역할이었고 영빈이나 세빈이도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냥 형들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할까요?”
“애들 오면 할까?”
“세빈아, 영빈 형, 그러면 안 된다니까요.”
생각보다 연예인 중에는 낯을 가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우리 영빈이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처음에 하준이 친해질 때도 애를 먹었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럼 우리 역할을 좀 분담해볼까요?”
“어떻게?”
“어차피 솜뭉치들도 우리가 다 같이 있을 때처럼 오디오 막 빵빵 터지고 그러지 못할 거 알 테니까….”
그래서 내가 영빈 형과 세빈이에게 제안한 건 첫 오프닝을 컨셉을 잡아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촬영과 진행을 맡고, 세빈이가 연습실에서 안무 연습하는 걸 내가 습격하는 걸로.
그 후에 세빈이랑 같이 방음 부스에서 노래 연습하는 영빈이를 끌어내서 자연스럽게 평소에 우리가 무얼 하는지 보여주면서 시작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일상에서 최대한 보여줄 수 없는 것을 쳐내고 다듬어 그나마 멀쩡한 모습들로 골라놓은 게 보통 말하는 리얼리티였다.
조금 티가 나더라도 이 정도 사전 모의는 솜뭉치들이 웃으면서 넘어가 주지 않을까? 하는 아이돌 덕질을 바탕으로 한 감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혼자서 방송용 핸드폰을 켰다.
물론 포잉은 당연히 내 옆에 있었다.
GIVE 앱을 촬영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며 내 머리 위에 자리까지 잘 잡은 상태였다.
‘난 정말 이럴 때 포잉이 요정인 걸 실감해.’
‘평소에도 실감 좀 해서 내 위대함을 알아보는 건 어떰?’
‘쉿….’
포잉이 내 머리 위에 올라와 있는 데도 가볍게 세팅한 머리카락은 멀쩡했고, 당연한 말이지만 거울에도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이게 요정인가 유령인가 같은 말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가 그런 급 낮은 것들과 비교한다고 포잉의 하악질에 한참을 시달려야 했지만.
“솜뭉치들 안녕하세요?”
세빈이와 영빈 형에게 타이밍에 맞춰 사인을 주는 건 우진 형이 해주기로 했다.
평소의 우리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작업실에서 방송을 켰고, 생각보다 빠르게 시청자 수가 늘어갔다.
“와, 이 시간에 생각보다 많이들 와주셨네요.”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채팅들과 시청자의 수는 볼 때마다 늘 새로웠다. 놀라는 것도 이제 슬슬 그만둬야 할 텐데 연약한 내 정신은 아무래도 적응에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오늘은 평소에 저희가 회사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조금 보여드릴까 해요.”
핸드폰을 돌려서 잠깐 작업실을 보여주고 모니터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 위치 괜찮아요? 아? 조명이요?”
작업실의 조명과 모니터 빛 때문에 내 얼굴이 잘 안 보인다는 메시지가 올라와서 어떻게 열심히 조작해봤지만, 아직 숙련도가 부족한 것 같았다.
“역시 제가 들고 있어야 하나 봐요. 어쩔 수 없죠. 아, 괜찮아요. 저 팔 튼튼해요!”
무겁지 않냐, 괜찮냐 하는 걱정해 주는 메시지에 또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내가 이렇게 감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나 싶다.
“일단 첫 번째 타자로 제가 평소에 작업하는 걸 살짝만 보여드리려고요. 하준 형이나 경환이 형처럼 열심히 작업하지는 못하는데, 조금씩 곡 작업을 배우고 있어요. 꽤 재밌어서 음…. 이런 거 만들어요.”
처음 여기에 적응하면서 만들었던 짧은 멜로디와 이번에 발매될 졸업식의 수정 전 버전을 아주 살짝만 틀었다.
미리 소현 팀장님과 우진 형에게도 상의하고 허락받은 일이었다.
“더 들려달라고요? 하하, 여러분 미안해요. 아직은 안 돼요. 언제 되냐고요? 글쎄요…. 조만간? 여러분, 신기하게 생긴 게 많죠? 저도 배우느라 처음에 엄청 애먹었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기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간간이 올라오는 곡에 관한 질문들에도 대답해주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자, 그럼 지금부터는 세빈이를 찾아갈 거예요. 아마 지금은 연습실에 있을 것 같은데… 우진 형, 맞아요? 네. 고마워요!”
미리 말을 맞춰둔 대로 우진 형에게 사인을 주고, 셀카봉을 들고 천천히 연습실로 걸어갔다.
“다른 멤버들은 뭐 하냐고요? 아… 저랑 노는 건 재미없어요?”
실시간 채팅으로 자리에 없는 우리 애 이름을 부르며 찾기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나만으로 부족했냐는 말을 던지니 우리 순진한 솜뭉치들이 나를 달래느라 화면 너머에서 손을 바쁘게 움직이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
우리 솜뭉치 귀여워….
나도 모르게 입가가 허물어져서 무방비한 웃음을 보이자 가뜩이나 빠른 채팅이 더 빠른 속도로 마구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러분, 너무 빨라요…. 잘 안 보여서 못 읽겠어요. 아, 여러분 여기가 저희 연습실인데요, 잠시만요, 쉿! ”
검지를 세워 입가에 대고 쉿 하는 모습을 취해준 뒤 살짝 출입문 쪽의 창으로 안쪽을 확인했더니, 그사이 연습에 심취한 우리 막내가 보였다.
낭창낭창한 몸짓이 버드나무 가지 같고, 몸짓에 따라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잎 같았다.
새로 구상 중인 안무인 걸까?
“우리 막둥이가 너무 심취해있는데요? 어떡하지. 여러분, 우리 막내 너무 잘하지 않아요?”
그런 내 모습에 우진 형이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 게 보였지만 모른 척했다.
그런데 왜 포잉까지 같이 고개를 젓는 건데?
잠시 고민하던 나는 연습실 문을 살짝 열고 살금살금 세빈이 근처로 다가갔다.
“세빈아? 막둥아?”
“엄마야! 아, 형! 놀랬잖아요!”
곧 찾아갈 거라고 우진 형에게 말을 해놨었는데,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어 차마 전달을 못 한 건지 크고 동글동글한 눈이 더 커지더니 털썩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러분, 봤어요? 우리 애가 이렇게 집중력이 좋아요. 세빈아, 솜뭉치들한테 인사해야지.”
“…여러분 방금 본 건 잊어주세요.”
울상이 된 세빈이가 화면에 대고 강아지같이 촉촉한 눈망울로 이야기했고, 솜뭉치들도 알았다고 대답하며 세빈이를 달랬지만, 나는 속지 않았다.
이것도 짤로 돌겠지….
세빈아, 형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