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63)화 (63/456)

63. Happiness(4)

“헉!”

“왜 그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니 새벽 형들과 하준 형이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꿈꿨어?”

“어… 네. 이 나이에 떨어지는 꿈을 꾸네요.”

“18살이면 아직 한창 클 나이지 뭐.”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아도 그런다더라.”

아, 내 나이가 아직 18살인 걸 잊어버렸다.

그만큼 꿈이 너무 어이없어서 하준 형이 건네주는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꿈을 꿨다.

아주 개꿈이었다.

언래블 멤버들이랑 스타디움 콘서트 투어를 하는 중이었다. 첫 스타디움에 모두가 설레하고 있었고, 꿈에서여서 그런지 유독 내 새끼들이 잘생겨 보였다.

스타디움이라니.

우리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날이 온 것 자체가 커다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던 그때, 갑자기 공연장에 좀비가 출몰했다.

꿈속이라서 그런지 의문을 가지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때려잡을 생각을 했고, 우리 래블이들은 순식간에 숙련된 전사처럼 굴었다.

그리고 그 후 솜뭉치들과 모두 힘을 합쳐 대 난투극을 벌이다 외랑둥이 솜뭉치를 구하고 내가 구조물에서 떨어지는 꿈이었다.

응원봉이 왜 갑자기 레이저 검이 되고, 어?

아오…. 너무 혼자 생각이 많았나 보다.

머리를 몇 번 흔들어서 정신을 차리고 나니 리허설 시간이 돌아왔고, 가영 형이 몇 번이나 동선과 순서를 머릿속에 박아 넣어 준 덕에 실수 없이 마칠 수 있었다.

“휴….”

“왜 이렇게 죽상이야.”

“그게….”

잠시 주변을 살핀 나는 새벽 형들과 하준 형, 나 이렇게만 있다는 걸 확인하고 허락을 구하듯 하준 형을 바라보았다.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준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새 프로그램에 첫 화 게스트로 들어가게 됐는데 영 거시기해서요.”

“응? 뭔데 그래.”

“비밀 지켜주실 거죠? 아직 미팅만 한 프로라….”

“걱정 마. 내가 입은 무겁기로 유명해.”

우진 형을 통해 들었던 내용과 첫 미팅에서 들었던 내용을 들려주고 멤버들과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고민했다는 것까지 간략하게 털어놓았다.

“아, 박 PD님 거는 좀 극단적이지. 아예 오락 위주거나 메시지 전달이거나.”

이야기를 들은 가영 형이 미묘한 표정을 짓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형, 머리 망가지니까 건드리지 마요.”

“아, 맞네. ”

키스 형이 머리를 만지는 가영 형을 타박하더니 무덤덤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그런데 지환아, 너 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네?”

이해하지 못한 내가 의아한 얼굴을 하자 세비 형이 설명을 보탰다.

“프로그램 제목을 따라서 그 의도를 파악한 건 좋은데, 그 후에는?”

“네?”

“똘똘하던 애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얼 타냐. 너 직업이 뭐야.”

“아이돌이요.”

“아이돌은 뭐 하는 사람인데.”

“노래….”

가영의 물음에 답을 하던 내가 박 터지는 소리를 내며 멍청하게 앉아있었고,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준 형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곧 올라갈 음방 무대도, 뮤지컬도 결국은 노래야. 하다못해 무당들 굿하는 거에도 가락이 붙어. 물론 각각의 장르에 따라 창법도 발성도 천지 차이지만. 그리고, 너희는 노래하는 게 업인 사람들이지.”

“지환이 네 얘기를 들어보니까 박 PD님은 무대를 꾸며달라고만 했지 어떤 선을 그어주진 않았던데, 맞아?”

“네. 무대를 어떻게 꾸밀 건지 얘기해달라고 했어요.”

“그럼 제자리에 서서 노래만 부르든, 연극을 만들든 상관없다는 거 아냐.”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꺼내는 세비 형과 키스 형의 모습에 나도 하준 형도 조금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출연진 9팀 중에 배우나 연기 경험 있는 분들도 있을 거 아냐.”

“네…. 있죠.”

“그런 사람들이랑 붙어서 너희가 연기하면 이길 수 있겠냐? 촉박한 시간에 스토리까지 붙여서?”

“안되죠. 저희 애들 연기는 좀….”

멤버들이랑 함께 찾아봤던, 흑역사로 박제되어 있을 그 영상이 떠올랐다.

같은 영상을 떠올렸는지 하준 형도 ‘안돼’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럼 너희는 노래를 불러야겠네. 그렇지? 그러면 노래에서 중요한 게 뭐냐.”

“감정과 가사를 전달하는 거요.”

“그러려면 뭐가 제일 중요해.”

“이야기…?”

“너 지금 곡 쓰는 프로 나간 거 아니잖아. 곡 만들 시간은 되냐? 신청자 사연 맞춰서 곡 쓸 거 아니면 선곡을 해야지. 그다음이 무대 구성이고.”

가영 형이 툭툭 던지는 말에 대답을 하다 보니 어째서인지 온갖 생각들로 들끓던 머리가 가라앉고 있었다.

“일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건 좋은데, 지나치다는 거야. 너희는 공연하고 노래하는 사람이야.”

가영 형의 마무리에 피식 웃던 세비 형이 하준 형의 어깨를 두드려 주더니 길쭉한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곡도 쓰지만 지금은 아니고.”

“허… 그렇네요. 이게 바로 연륜…?”

“야! 연륜이라고 하면 우리가 늙은 것 같잖아!”

그 모습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던 하준 형이 한마디 보태자 가영 형이 꿀밤을 먹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너희는 너희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이제 노래 부르러 나가자.”

그리고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에 새벽의 매니저 형이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씩 웃으며 우리를 돌아보는 가영 형의 모습이 어째서인지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물론 키스 형와 세비 형의 표정은 썩어들어갔지만 나와 준이 형이 보기에는 분명 멋있는 선배님의 모습이었다.

여태까지 함께한 시간과 오늘 무대.

겪으면 겪을수록 더욱, 새벽은 참 멋있는 그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오늘 함께 올랐던 무대의 완성도, 공연에 임하는 모습, 그리고 그 아래서 새벽의 응원봉을 흔드는 팬들의 모습.

능숙하게 무대를 장악하고 호응을 이끌어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연습실이나 대기실에서 나랑 같이 장난치고 놀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나와 하준 형의 이름을 적어서 들고 있는 솜뭉치들이 너무 애틋해서 일일이 눈을 마주치기 위해 노력했다.

일정을 마치자마자 회사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 역할을 분담하기로 했다.

먼저 우진 형과 소현 팀장님을 통해 회사에 우리의 생각을 전달하는 건 하준 형이, 새벽 멤버들과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고 선곡에 관해 얘기하는 건 내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영빈 형이 한마디 했다.

“이거 A&R 팀에 물어보자.”

“역시 그분들이 제일 잘 알고 계실 듯?”

“나랑 경환이가 다녀올 테니까 지환이 너는 잠깐 쉬어.”

“저 괜찮아요.”

힐끔 내 얼굴을 한번 확인한 경환 형은 내 어깨를 눌러서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혔다.

“애가 왜 이렇게 다 죽어가. 그냥 좀 쉬고 있어. 힘찬아, 세빈아, 지환이 못 일어나게 해.”

“응! 다녀와!”

우리 힘찬이는 이럴 때만 말을 잘 듣나 보다….

잠은 어느 정도 잔 것 같은데 두통이 심해서 그런지 얼굴이 별로 안 좋았던 모양이었다.

눈이 유독 뻑뻑해진 터라 잠깐 눈을 감고 있을까 했는데, 무언가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였다.

“어, 지환이 깼네.”

“저 얼마나 잤어요?”

“20분?”

다행히 오래 잔 건 아니었다. 자리에 바로 앉자 영빈 형이 휘적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얘들아, 회의실로 가자.”

이놈의 회의실. 이제 회의실이 싫다….

“얘들아, 왜 오랜만인 것 같지?”

우진 형만큼 눈 밑이 퀭한 소현 팀장님과, 그 와중에도 단정한 느낌을 주는 정윤 실장님, 소현 팀장님만큼 다크서클이 늘어진 A&R 팀의 주영 팀장님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님들, 무슨 일 있어요?”

“하하….”

“내가 설명해 줄게. 일단 앉아.”

정윤 실장님이 분위기를 정리하더니 두툼한 종이 뭉치를 멤버들에게 내밀었다.

“준비하던 리얼리티에 문제가 좀 있었어. 그래서 자체 제작으로 가기로 했다.”

“네? 괜찮은 거예요?”

“그래서 정규 방송으로 내보내는 게 아니라 위캠에 올릴 거야. 자세한 건 거기 적혀있으니까 보고.”

리얼리티 얘기에 소현 팀장님이 얼굴을 와락 구기면서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아무래도 방송국 갑질에 심하게 시달린 모양이었다.

“박 PD님 새 프로에 너희 들어간다고 들었어. 그거 같은 실 식구들이 제대로 안 챙겨줬다며?”

늘 보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을 때 어떤 대답을 들었었는지… 다시 머리에 떠올랐다.

함정이니, 얼굴도장으로 만족하라느니.

나쁜 마음으로 그런 말들을 했던 게 아니라고는 생각하지만 다들 내심 서운했는지 멤버들의 어깨가 축 내려갔다.

“그건 내가 한번 잡을 테니까 너무 마음 상해하지 말고. 조금 있다가 너희 도와줄 분들 보낼 거니까 그분들이랑 얘기해.”

그동안 꽤 여러 이야기가 진행된 건지 실장님의 설명은 한동안 이어졌다.

다음 앨범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나오면서 동석했던 주영 팀장님도 계속 한마디씩 덧붙였다.

“이번엔 진짜 제대로 한번 터트려보자.”

“저번에는 제대로 안 했단 소리예요?”

“아이참, 실장님도. 말이 그렇다는 거죠.”

주영 팀장님이 씩씩하게 외치다 말고 정윤 실장님의 한마디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너희 OST 하게 됐어.”

“저번에 지환이가 말한 그거요?”

“응. 정식으로 계약하기로 했으니까 그것도 준비해야 해.”

일에 관한 얘기는 여기까지였는지 서류를 덮은 정윤 실장님이 서류 위에 손을 올려놓고 우리를 바라봤다.

“얘들아, 너희는 우리 기대보다 더 잘해줬어. 그래서 소현 팀장님이랑 우진 매니저가 욕심이 좀 났던 모양이야.”

일 얘기까진 알겠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저러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모두 눈만 깜빡였다. 그 모습에 소현 팀장님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우리 애들 강아지 같지 않아요?”

“어, 자기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기는 하네.”

실장님이랑 팀장님이 한마디씩 하더니 이번엔 소현 팀장님이 입을 열었다.

“우진이가 너희 숙소 바꿔주면 안 되냐고 계속 회사에 푸시했거든. 좁은 거실에 다 같이 뭉쳐있는 게 안쓰럽다면서.”

“아…. 저희 괜찮아요. 지금도 좋은데.”

“어차피 그 건물은 보안도 별로라 옮기긴 해야 해. 그래서 나랑 우진이가 직접 방 골랐어. 후보지 사진은 조금 있다가 보내줄 테니까 그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봐.”

원래 이렇게 빨리 숙소를 바꿔주지 않을 텐데?

숙소가 엄청 좁은 편도 아니라 지금도 살만하다고 생각했던 나와 멤버들은 의외의 선물에 어안이 벙벙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데미갓이랑 트러블 있었다는 얘기 들었어. 걔네 소문이 안 좋으니까 절대 따로 말 붙이지 말고 예의 바르게만 해.”

데미갓의 이름을 언급하는 소현 팀장의 얼굴은 못마땅함이 가득했다.

팀장님도 나름대로 여기저기 인맥이 있을 테니 그놈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터.

“아 참, 오늘 팬 사인회 홍보 영상 찍어야 하니까 나가면 바로 준비해.”

“너희가 요청한 곡 목록은 조금만 기다려줘. 퇴근 전까지 챙겨줄게.”

이쯤 되니 머리에 약간 과부하가 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계속 무언가 새로운 걸 턱턱 꺼내주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손에 쥐어준 종이 뭉치를 안고 하준 형을 따라 쪼르르 연습실에 모여앉았다.

“얘들아, 이리 와봐.”

“왜요?”

옆에 다닥다닥 붙은 우리들을 바라보던 하준 형의 시선에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 감정은 말이 되어 튀어나왔다.

“우리가 이거저거 하는 동안 회사 내부에서 일이 좀 있었나 봐.”

“에? 혹시 우리 잘려요?”

“아니, 지금은 다 정리됐대. 대표님 바뀔뻔했다고 들었어.”

“어우….”

질겁하는 우리를 영빈 형과 하준 형이 다독여주었다.

하지만 ON 엔터가 튼튼하고 안정적인 회사라고 생각했던 나는 꽤 큰 충격을 받았다.

더불어 내가 아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잘 정리돼서 우리한테 말해주는 거라고, 팀장님이 이제 다 괜찮을 거라고 하더라.”

진짜 우리가 너무 작은 우물 안에 있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연습실이랑 숙소가 다였는데, 무언가 방이 하나하나 늘어나듯 세계가 그렇게 늘어나서 점점 커다란 모습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냥 노래와 춤만 몸이 부서지라 하고 맡겨진 프로그램을 죽기 살기로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주위에 있었다.

“어렵네요, 진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입 밖에 내버릴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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