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58)화 (58/456)

58. 어떻게 생각해?(4)

지환과 하준이 대화를 위해 숙소를 나간 그 순간 영빈의 옆으로 나머지 멤버들이 다가왔다.

“환이 표정 봤죠? 쟤 무슨 일 있어요?”

“아까 우진 형이 불렀을 때부터 그랬지?”

“그날처럼 또 뛰쳐나가는 거 아니죠?”

동생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걱정이 짙게 떠올라 있었고, 그 질문을 감당해야 하는 영빈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워졌다.

“지환이가 원체 욕심이 많잖아. 팀이 잘 됐으면 싶은데 쉽지 않아서 그럴 거야.”

“그래도 우리 꽤 괜찮게 되고 있지 않아요?”

“맞아. 라디오도 하고 이제 방송도 나갈 거고.”

“팬카페도 가입자 수도 많이 늘었는데….”

욕심이 적다고 해야 하나 배포가 작다고 해야 하나.

데뷔하고 싶어서 아등바등하고 홀로 울었을 아이들이지만, 이제는 더 큰 날개를 달아야 할 때였다.

다만, 영빈이나 하준, 지환과 달리 다른 아이들은 시작 기대치가 높지 않아서인지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건 정말로 다행이었다.

조급한 마음으로는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영빈의 마음에 생긴 조급증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으니까.

“사람은 자기가 목표하는 곳이 손에 닿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주변을 탓해. 지환이는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것뿐이야.”

“지환이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말이다.”

“지환이랑 준이 형이 들어오면 다 같이 얘기해보자.”

“맞아. 우리는 팀이잖아. 같이 상의해야지.”

영빈은 오랜만에 기특한 소리를 하는 힘찬의 머리를 헝클더니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다.

“왜 다들 내 머리를 못살게 구는 거야?”

“만지는 재미가 있거든.”

반곱슬인 머리는 그동안 탈색과 염색을 반복해서 조금 상해 있었지만, 그 덕분에 손에 감기는 맛이 색달랐다.

집에서 냥이들의 털을 쓰다듬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지던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애니멀 테라피는 아니고 힘찬 테라피쯤 되려나.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도어락을 건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응?”

숙소로 돌아와서 답답했던 마스크를 벗자마자 나에게 꽂힌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어…. 왜 그렇게 쳐다봐?”

“너 이리 와봐.”

“맞아, 환이 형. 여기 앉아봐요.”

“…?”

갑자기 분위기 청문회?

엉거주춤하게 들어와 세빈이가 팡팡 때리는 자리에 앉아서 멤버들을 바라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하준 형이 편의점 들렀다 온다고 했을 때 같이 갈걸.

“하준 형이랑 무슨 얘기 하고 왔어요?”

“아, 그냥 뭐… 이거저거?”

“야, 약 팔지 말고 제대로 말 안 해?”

“아니, 뭔 약을 팔아, 팔기는….”

“우리끼리는 비밀 없이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어요, 안 했어요.”

힘찬의 눈매가 날카로워지더니 타박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늘 순하게만 말하던 세빈이까지 각 잡고 나를 다그치기 시작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하준이 형만 같은 팀이야? 왜 우리한테는 말 안 하냐.”

“그냥 조언받을 게 좀 있어서, 다 말하기는 좀 쪽팔려서 그랬어. 아이고, 우리 찬이 서운했어요?”

“이게 또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네. 안 통해, 인마!”

멤버들이 단단히 마음이 상했는지 나를 둘러싸고 앉아서는 물러설 기미가 안 보였다.

그렇다고 이걸 전부 내 입으로 말하기는 참 부끄럽기도 하고 너무 나대는 것 같아 보여서 무어라 말을 하기 어색했다.

낯선 분위기에 뒤통수만 긁고 있었더니 영빈 형이 중재를 나섰다.

“지환아, 우리가 하루 이틀 부대끼고 산 거 아니잖아. 네가 표정을 감춘다고 감춰도 보인단 말이야. 네가 개인적인 일이라서 말하기 어려운 거면 우리가 미안해. 근데 그게 아니라 팀에 관련된 거면 같이 얘기하자.”

“아….”

기분이 이상해졌다.

뭔가 멤버들이 화가 났나? 했는데 다시 보니 지켜보는 시선에 걱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오죽하면 영빈 형이 이렇게 길게 말하나 싶어서 괜스레 웃음이 비죽 흘러나왔다.

“어쭈, 웃어?”

“진짜 별거는 아니고….”

“그래, 그 별거 아닌 게 뭔데.”

그래서 결국 나는 멤버들에게 붙들려서 하준 형과의 대화를 추려 이야기했고, 그게 뭐라고 말하는 동안 몇 번 울컥 치미는 감정을 누르느라 힘들었다.

“그게 다야. 그래서 준이 형한테 좀 상의한 거고.”

“형은 뭐래?”

“운이 없어서 망하는 것보다 운이 좋은 게 낫다고.”

“크, 명언이네. 망하는 것보다야 그게 낫지!”

“어우, 이 형은 또 분위기 파악 못 하네.”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듣던 멤버들이 한마디씩 던지더니 결국 다 같이 웃고 말았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내 새끼들이 이렇게 잘생긴 데다 착하기까지 해서 심란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풀어졌다.

우리는 멤버들 각자의 삶을 존중한다.

하지만 혼자보다는 여럿이 대화를 나눌 때 문제가 해결되거나 오해가 풀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게 우리 언래블이 여태까지 불화나 문제없이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문득 떠오른 이전 생의 인터뷰 기사가 떠올랐다.

다툼이 생겨서 당사자들끼리 해결이 안 되면 모든 멤버가 다 같이 그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데, 그러다 보면 치밀었던 분노도 사그라들었다던 얘기들이 참 애들답다고 생각했다.

정작 나는 다 안다고 생각해놓고도 이렇게 우리 애들을 몰랐네.

내가 풀어진 얼굴로 힘찬을 껴안고 바닥으로 구르자 이때다 싶었는지 세빈이가 그 위를 덮쳤다.

“악! 무거워! 내려가, 인마!”

“분하니까 더 죽어라 연습하래.”

한숨을 푹 내쉬며 우리가 하는 꼴을 바라보던 영빈 형이 고개를 내저었지만 경환 형은 웃으며 내 말을 받았다.

“하준 형답네.”

“뭔데?”

그리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하준 형이 돌아왔다.

양손에 주전부리를 가득 안고.

“우와! 포카칩!”

“형, 난 양파 맛이 더 좋은데….”

“아, 맞네. 형이 잠깐 잊었다. 다음엔 그걸로 사 올게.”

“이런 날에는 맥주 한잔 딱 해줘야 하는데.”

“맥주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게 누굴 보내버리려고.”

과자를 보며 아쉽다는 듯 맥주 타령하는 경환 형의 등짝을 하준 형이 후려쳤고, 그 모습을 보고 좋다고 낄낄대던 힘찬은 결국 경환 형이 깔고 앉아버렸다.

잽싸게 피한 나와 세빈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얌전히 바닥에 앉아 이미 과자 봉지를 뜯고 있었다.

그렇게 그날의 마지막은 결국 또 먹방이었다.

* * *

그렇게 밤을 보내고 정신을 차리니 인터뷰가 끝나있었다.

“요새 시간이 나를 두고 혼자 움직이는 것 같아.”

“무슨 개, 아니 멍멍이 소리야….”

혼이 쪽 빠진 얼굴로 중얼거리는 내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하려던 힘찬은, 세빈의 눈이 세모꼴로 변하는 걸 보고 급히 단어를 바꿨다.

아무래도 막내가 실권을 잡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중간중간 정신을 놓은 것 같은데 정신 차려보면 내가 다른 걸 하고 있어. 아까 분명히 인터뷰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고는 잘했어.”

지나가던 하준 형의 칭찬에 허허, 하고 힘 빠진 웃음을 짓던 나는 우진 형을 불렀다.

“형, 형.”

“응? 왜 불러.”

“날짜 발표 언제 해요?”

“아아. 팀장님이 오늘 실장님이랑 확정할 거라고는 하는데. 흠… 7월 말쯤 될 것 같아.”

“끄응…. 알겠어요.”

한동안 작곡에 손을 대지 못했던 나는 최근 겪었던 여러 일을 떠올려 보다가 손이 근질근질해지는 희한한 상황을 겪었다.

솜뭉치들에게 무언가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애정을 주는 쪽에서 받는 쪽이 되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왜? 뭐 고민 있어?”

“아, 경환이 형. 으… 곡 쓰는 게 쉽지 않네요.”

침울한 표정으로 손에 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생각나는 가사가 있어서 후다닥 써놓긴 했지만, 멜로디 라인도 못 잡은 상황이라 곡부터 만들고 가사를 다듬어야지 했는데 쉽지 않았다.

덕분에 오늘 아침 일찍 먼저 나와서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한 마디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그게 쉬우면 다 그거 하고 있겠지.”

피식 웃으며 몸을 푸는 경환 형을 보고 있자니 부러움이 무럭무럭 올라왔다.

경환 형은 180이 넘었고 찬이도 나보다 컸다.

이 중에 나보다 작은 건 세빈이 정도였지만 세빈이는 이제 한창 자랄 나이였다.

처음에는 이전 생의 내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으니 크겠거니 했지만, 반년쯤 된 이 시기까지 176센티에서 더 자라지 않는 내 키를 보고 있자니 불안해졌다.

이러다 내가 팀에서 제일 작아지는 거 아냐?

암울한 미래가 떠올라 슬퍼하고 있을 때, 우진 형이 다가왔다.

“지환아, 정윤 실장님이 부르는데?”

“네? 왜요?”

“곡 때문이라고 하시던데. 몰라, 일단 가봐.”

곡이라고 하니 이전에 표절 아닌 표절을 해버린 졸업식이 생각났다.

그 곡 덕분에 제일 신경 쓰였던 김우빈을 치워버릴 수 있었지만 내 작고 소중한 양심과 나비효과에 대한 불안감은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잔뜩 쫄리는 마음을 다잡고 실장님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자 들어오라는 가벼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장님, 부르셨다고….”

“아, 지환아. 어서 와.”

왜 다정하게 부르고 그러세요, 사람 무섭게.

팀장님도 실장님도 다정하게 부를 때가 제일 무서웠다.

무언가 무지막지한 일을 시키거나 중요한 손님이 있거나 할 때였으니까.

“이 친구가 그 지환이라는 친구예요?”

“네. 잘생겼죠?”

“어휴, 아주 예쁘게 생겼네. 노래도 잘한다면서요?”

“많이 늘었죠. 처음에는 진짜 햇병아리였는데.”

두 어른이 흐뭇하게 웃으며 내 얼굴에 금칠을 해주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나는 손끝이 점점 차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저러는지 감이 안 잡혀서 식은땀이 줄줄 흐를 것 같았다.

“내 정신 좀 봐. 지환아, 인사드려. 작곡가로 유명한 에단이라는 분이야. 처음 뵙지?”

“유명하기는요, 그냥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사는 정도죠 뭐.”

“안녕하세요! 언래블 공지환입니다.”

내가 표절한 그 곡의 작곡가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우리 실장님이랑 같이.

“AR 팀에 김건욱 실장님 알죠?”

“네. 그럼요….”

“그 친구랑 저랑 종종 만나는 사인데 저번에 곡을 하나 들려주더라고요.”

“아… 넵.”

“졸업식이라는 곡, 지환 군이 만들었다면서요? 처음 작곡해본 거라던데 정말 이게 첫 곡이에요?”

“네. 어쩌다 보니까….”

“어휴, 정윤 씨나 건욱이가 자랑할만하네. 하준이나 경환이는 곡 잘 쓰는 거는 진작 알았는데, 숨은 보석이 또 있었네.”

제발 저 입을 멈추고 싶었다.

그 곡 원래 님 거예요!! 라고 여기서 외칠 수도 없는데 나보고 잘했다고 칭찬을 하니 내 작고 귀여웠던 양심이 끝내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말인데, 에단이 그 곡을 팔면 어떻겠냐고 제의해왔어.”

“네?”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드라마 ‘지금, 우리’라는 작품 아니?”

“제가 인터넷도 안 하고 TV도 거의 못 봐서….”

무슨 작품인지 알지만 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내가 그걸 본 건 전생에서였으니까 잘못 입을 놀렸다가 또 무슨 일이 어떻게 꼬일지 알 수 없어서.

“풋풋한 청춘 로맨스가 주된 내용이야. 에단한테 거기 OST 의뢰가 들어왔는데, 에단이 보기엔 네가 만든 곡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거야.”

“네? 아니, 그건 좀….”

아무리 우리 회사 사람들이랑 친분이 있다고 해도 곡 제의 들어온 걸 다른 사람한테 넘긴다고?

“에단이 지금 새 곡을 만들 여력이 안되거든. 그래서 거절하려고 했는데 이게 딱 생각나더래.”

“내가 누구 거라고 말 안 하고 이 곡을 살짝 PD한테 들려줬는데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 진짜 좋은 기회라서 놓치면 아깝잖아요.”

“중간에 양념을 좀 칠 거긴 한데 그 정도는 감수해도 괜찮을 것 같고.”

어느새 대화는 내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상황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쨌든 결론은 이 곡을 내 이름으로 팔자는 거지?

“그런데 이 기회를 저한테 주시는 이유가….”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게 그거였다.

왜? 에단은 우리 회사 사람도 아닌데 왜 대신 영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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