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57)화 (57/456)

57. 어떻게 생각해?(3)

“오늘 고생 많았다!”

“아니에요, 선배님. 너무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연수의 콘서트는 무사히 끝났다.

생전 처음으로 올림픽 체조경기장의 관중석이 아닌 무대 뒤에서 팬들을 볼 수 있는 경험이었다.

물론 우리 솜뭉치들은 아니었지만, 연수 선배님의 팬들은 커다란 환호로 우리를 받아줬다.

평소에는 처연할 정도로 가슴 아픈 발라드를 부르는 하연수였지만, 콘서트 때는 여러 게스트를 초대해 댄스곡을 소화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번엔 소속사에 새로 생긴 후배들을 자신의 콘서트에 불러준 것.

혹시나 폐를 끼칠까 봐 우리 타이틀곡 연습할 때보다 더 미친 듯이 연습에 몰두하고 동선을 맞췄더니 다행히도 무대에서 큰 실수는 없었다.

인기 있었던 댄스곡과 연수 선배님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나서야 우리 타이틀곡을 부를 수 있었다.

그사이 쏟아지는 무수한 함성과 평소 겪을 수 없는 커다란 무대.

리허설 때 무대를 밟으며 대형을 맞추는 과정에서도 느꼈었지만, 실제로 무대 위를 뛰어다니며 환호성 받는 건 그것과 또 다른 일이었다.

“뒤풀이 가야지.”

“저희도 가도 돼요?”

“그럼, 당연하지! 같이 고생했는데.”

우리 시선은 당연히 우진 형에게로 향했다.

오랜 시간 식단 조절을 해왔기 때문에 생긴 버릇 같은 거였다. 다행히 우진 형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기에 마음 놓고 허리띠를 풀어도 되게 생겼다.

자잘한 짐 정리를 돕고 우리끼리 한숨 돌리게 되자 평소보다 들뜬 세빈이가 영빈 형에게 조잘거리고 있었다.

“저희도 언젠가는 이렇게 큰 무대에서 노래 부를 수 있겠죠?”

“그럼. 우리도 연수 선배처럼 이렇게 우리 무대를 가질 수 있을 거야.”

“우리 솜뭉치들이 이만큼 많아지려면 얼마나 걸릴까?”

무대를 뛰어다니느라 힘들었을 텐데 다들 지친 기색은 없었다.

되려 무대를 하고 나니 더 팔팔해진 게 천생 가수들이구나 싶어서 웃었다.

언래블의 첫 콘서트가 팬클럽 창단 1주년쯤에 맞춰서 올림픽홀에서 진행했던 게 기억났다.

콘서트를 하려면 티켓을 구매할 팬도 있어야 했지만, 무엇보다 콘서트를 진행할 만큼 곡이 있어야 했다.

보통 아이돌의 콘서트는 게스트를 거의 부르지 않는다.

아이돌 팬은 자기 가수를 보고 즐기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공연 시간 두 시간에 앵콜 시간 30분 정도를 모두 본인들 곡으로 채우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중간에 멤버들 개개인 무대를 진행하려 타 가수의 유명한 곡을 따서 쓰기는 해도, 그 시간과 VCR이 방송되는 내용을 다 합쳐봐야 30분 정도나 되려나?

그럼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멤버들만으로 가득 채워야 했기에 앨범 한두 개 정도로는 콘서트를 진행하는 건 곤란했다.

보통은 콘서트의 컨셉을 잡고 그 컨셉에 맞춰 무대를 각색하기 때문에 앨범의 모든 곡을 쓰는 것도 어렵다.

팬 생활을 하며 쌓은 지식을 떠올려보다가 이번에는 언제쯤 콘서트를 하게 될까 고민하고 있었더니 경환 형이 나를 툭툭 쳤다.

“응? 형 왜요?”

“너 핸드폰 아까부터 울리는데?”

“어라, 누구지.”

번호도 바뀌었고 가족들과 멤버들, 회사 사람들이 아니면 연락처를 모르기 때문에 의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더니 냥톡이 잔뜩 와있었다.

“응? 가영 형이 왜….”

“지환아!”

“네?”

메시지를 확인하기도 전 급하게 부르는 우진 형의 목소리에 핸드폰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다가가자, 핸드폰을 쥐며 다급한 목소리로 통화하던 우진 형이 하준 형과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가영 씨가 크게 한 건 했나 봐!”

“네?”

“너희한테는 연락 안 왔어?”

그제야 하준 형과 내가 핸드폰을 열자 새벽 형들과 우리가 함께 있는 단톡방에 읽지 않은 메시지가 수십 개 와있는 것을 확인했다.

가영이 형 [얘들아!!]

가영이 형 [얘들아 미안해!!]

가영이 형 [내가 마;ㅣㅏㄹ외;]

세비(세율) 형 [가영이가 제정신이 아니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세비(세율) 형 [근데 우리 리더가 너희 얘기를 좀 많이 했어]

키스(윤혁) 형 [음…. 잘된 거니까 괜찮을 거야.]

키스(윤혁) 형 [신경 쓰지 말고 메시지 보면 전화해]

가영이 형 [왜 나한테만 그러냐!!]

가영이 형 [그래도 확실하게 너희 이름 실트 오를 거야!]

잠깐 본 메시지가 너무 주어도 없고 정신이 없어서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가영 형이 메시지 쓰다 키스 형이나 세비 형에게 얻어맞았겠구나 하는 것 정도?

[그, 저희 연수 선배님 콘서트에 게스트여서 지금 끝났어요]

[톡 이제 봤는데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답을 보내고 대충 주머니에 핸드폰을 쑤셔 넣은 뒤 설명을 요구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건지 우진 형이 나랑 하준 형을 끌어안고 토닥였다.

“가영 씨가 이번에 유닛 앨범 내면서 인터뷰를 했는데 그게 대박이 났어.”

“네? 무슨 인터뷰를 했길래….”

가영 형이 위캠을 통해 실시간으로 곡을 공개하는 과감한 방송을 진행했다고 했다. 곡을 먼저 공개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는데, 그 과정에서 피처링을 한 우리 얘기가 많이 나왔다고 했다.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눈여겨보던 후배라고 극찬을 하며, 보자마자 곡을 꼭 주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고.

그러면서 여태까지 숨겨왔던, 자신의 작곡할 때 쓰던 이름을 공개했고 우리 앨범의 타이틀곡도 자신이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지 공개하면서 실검에 새벽과 언래블, 타이틀 ‘I'm OK’가 올랐다고 했다.

그 인터뷰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박정균 대표가 촉이 왔는지 하연수의 콘서트 기사와 함께 우리 관련 기사를 같이 풀었고, 거기다 박세날 PD에게 연락해서 곧 촬영이 시작될 무사이 관련 기사도 함께 뿌린 것이다.

갑자기 여러 소식이 한꺼번에 나오면서 언래블이라는 이름이 공통적으로 언급되자 도대체 이게 누군가 싶어 다들 검색해보기 시작했을 거라는 게 현 상황의 설명이었다.

“어… 저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잘….”

멍청한 표정으로 멤버들과 우진 형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자 우진 형이 씩 웃었다.

“활동 마무리로 이보다 좋을 수는 없지 뭐. 너희 지금 인터뷰 요청 오는 것만 열 군데가 넘는대. 팀장님이 아주 신나서 전화하셨어.”

“새벽이 잘나가긴 잘나가나 봐요….”

“손에 꼽을 정도니까.”

우리가 기를 쓰고 다닐 때는 방송 하나 따기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유닛 활동한다고 낸 앨범 공개 자리에서 우리 이름 여러 번 언급했다니 갑자기 실검도 뜨고 인터뷰도 들어왔다고 했다.

기뻐야 하는데, 지금 신난 우진 형이나 힘찬이처럼 기뻐야 하는 게 맞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무언가 속상한 마음이 치밀어 올라 꾸역꾸역 누르던 나는 하준 형이 내 어깨를 잡는 그 순간까지도 조금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괜찮아, 환아.”

“준이 형….”

그제야 하준 형과 영빈 형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그들의 얼굴도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중에 숙소에서 얘기하자. 지금은 그냥 기뻐해.”

“네….”

[가영이 형, 세율이 형, 키스 형 고마워요!]

[매니저 형한테 설명 들었어요. 앨범 대박 났으면 좋겠다 ㅠㅠㅠ]

형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동안에는 정말로 고마웠다.

그들의 도움 덕분에 내가 알던 언래블보다 더 좋은 시작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주변 사람들의 후광에 기대서 빛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솔직히 지금 나는 조금 분한 것 같았다.

그 뒤로 진행된 뒤풀이에서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고기도 실컷 먹고 탄산까지 마신 멤버들은 행복해했고, 내일 아침부터 인터뷰가 있으니 꼭 얼음 얼려놓고 자라 당부하는 우진 형의 얼굴도 행복해 보였다.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감정은 더 깊숙이 밀어 넣은 나는 연수 선배님과 다른 스태프분들과 함께 회식하던 고깃집을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더 열심히 웃었다.

늦은 시간에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평소처럼 씻고 거실에 하나둘 모였지만,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 나를 잡아먹고 있는 이 우울감을 멤버들에게 전염시키고 싶지 않았다.

“환아.”

“아, 형.”

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방문 사이로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리더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형이랑 얘기 좀 할까?”

“어… 네.”

모자를 내민 손을 잡고 마스크까지 쓴 우리는 어디 가냐는 멤버들의 말에 잠깐 할 얘기가 있다고 둘러대고 다시 그 진실의 공원으로 나왔다.

“속상해?”

“네?”

벤치에 나란히 앉자마자 멍하니 앞을 바라보던 나에게 하준 형이 물었다.

“속상하냐고.”

“하, 하하…. 네. 좀 그런 것 같아요.”

무릎 위에 얹은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 정말 열심히 했죠?”

“그럼. 우리 열심히 했어, 지환아.”

“진짜 배부른 투정이고 남들이 들으면 욕할 일인 거 아는데….”

“우리는 남이 아니니까 괜찮아.”

“좀 분하고 속상해요. 우리 멤버들은 더 빛날 수 있는 사람들인데.”

“….”

“홍보가 되게 중요한 거고 입소문도 무시할 수 없는 거고, 다 아는데. 우리가 잘해서 사람들이 찾는 게 아니라는 게 분해요.”

진짜 배부른 투정이고 아무것도 아니면서 꼴값한다는 말을 들어도 싸지만, 하준 형에게는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잘 못해서 그런 거 같아서 너무 속상해요.”

처음에는 조금 자신이 있었던 것도 같았다.

미래를 아니까.

인기 있을 프로그램에 우리 애들을 최대한 넣어달라고 조르고, 폭망할 프로는 피하고 위험한 것들을 피하면 원래 잘하던 애들이니까 더 금방 날 수 있을 거라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쉽게 생각했다.

데뷔 타이틀곡을 바꾸면서 급격하게 더 자신을 얻었던 것 같았다.

정말로 되잖아? 내가 우리 애들 미래를 바꿔줄 수 있어! 하고.

하지만 그건 회사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라디오나 음방을 하고 인터뷰를 할수록 내 자신감은 점점 깎여나갔고, 이제 와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그저 흔한 남자 아이돌, 그중에서도 유명하지 않은 신인 아이돌이었다.

나오자마자 1위 가수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더 많은 방송을 나가고 더 많은 팬들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괜찮아, 지환아. 형이 늘 말하지. 우리는 그룹이라고.”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보잘것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더 잘하지 못해서 언래블이 덜 빛나는 것 같아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저번에 형이 한 말 기억나?”

“어떤 거요?”

“넌 왜 너를 서포터처럼 여기냐고 했던 말.”

“네….”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솜뭉치 공지환은 언래블의 환이 되었다.

사소하게는 호칭부터 크게는 판단의 기준까지.

“네가 멤버들을 아끼고 더 잘하고 싶어 하고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네가 못해서 팀이 잘 안 됐다는 건 어디서 온 생각이야. 다른 멤버들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덤덤한 말에 내 어깨가 점점 더 내려갔다.

“열심히 하는 아이돌 그룹은 엄청 많을 거야. 그런데 우리는 운이 따라줘서 주변에서 더 많이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해. 물론 나도 영빈이도 좀 분하기도 해.”

슬쩍 고개를 돌려 바라본 하준 형도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우리 콘서트는 언제 할 수 있지? 우리 곡 발표일을 팬들이 기다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리고 내가 쓴 곡을 사람들이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매일매일 이런 것들을 생각해.”

입술이 말라가는지 주머니를 뒤적이던 하준 형이 아, 하는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하필이면 립밤도 안 들고나왔네.”

“형은 좀 어설픈 거 알아요?”

내 주머니에 있던 니베아 립밤을 건네자 무어라 구시렁거리던 하준 형이 입술에 툭툭 바르고 다시 나에게 내밀었다.

“딸기향이 뭐냐.”

“아니 갑자기 딸기향이 왜요! 이 형은 왜 진지한 얘기 하다가….”

한참 진지하게 얘기하다 저러는 것도 재주다 싶어서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봤더니 하준 형이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었다.

“그래도 내가 어설퍼서 네가 웃었잖아. 분하면 더 연습하고 곡 쓰고 해야지. 그래도 운 없이 그냥 망하는 것보다 운이 좋은 게 낫지 않겠냐?”

“…나는 진짜 형 속을 모르겠다.”

언래블의 하준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 사람은 알면 알수록 더 알게 생기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나도 영빈이도 분해. 속상하고. 근데 그게 뭐? 때려칠 거야? 아니면 회사 가서 다 필요 없고 우리끼리 할게요! 할 거야?”

“못하죠. 그럴 거면 집에 가야지.”

“그래. 그러니까 더 죽어라 하면 돼. 노래도, 춤도, 랩도, 곡 만드는 것도.”

기다란 다리를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켠 하준 형이 여전히 무덤덤한 말투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대신 다 같이 그렇게 해야지. 너 혼자 뭐 아등바등 구는 게 아니라. 나도, 영빈이도, 경환이도, 힘찬이도, 세빈이도. 너 혼자 잘해서 잘 될 거면 솔로 나가지 뭐 하러 팀 하냐. 다 혼자 잘 해내기 힘드니까 대충 팀으로 묶는 거야.”

“이 중에 하나쯤은 네 취향에 맞는 게 있겠지?”

“잘 아네.”

자리에서 일어난 하준 형이 옷을 툭툭 털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분하면 더 죽어라 연습해. 난 그랬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건 아냐.”

“넵….”

여전히 마음속엔 분한 것도 속상한 것도 남아있었지만, 가슴을 짓누르는 듯하던 답답함은 조금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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