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41)화 (41/456)

41. 그리고 그 후(2)

- 충격! 얼음왕자 히스, 실제로 얼음 깨물어먹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윗뷰어 무엇ㅋㅋㅋㅋ

- 동족상잔이야 뭐야 ㅋㅋㅋㅋㅋ

- 얼음때문에 싸웠대ㅠㅠㅠㅋㅋㅋㅋ아 짠한데 귀여워..

- 힘찬, 2층 침대에서 떨어져도 자다 떨어지면 멀쩡!

- 뷰어들 오늘 완전 신났구나?ㅋㅋㅋㅋ

- 언래블의 흑역사 생성기 누구? 환: 나야 나!

- 역시 잠은 화장실에서 자야 꿀맛 - 지환

- 야잌ㅋㅋㅋㅋ이 장꾸들ㅋㅋㅋㅋ

- 진실의 공원, 그 충격 실체! 모두가 경건해지는 그곳!

- 웃다 숨지겠네 진짴ㅋㅋㅋㅋ아 언래블 ㄱㅇㅇ ㅠㅠㅠㅠ

새로 생긴 언래블의 게시판은 아이돌 창조 때부터 이들을 응원해온 팬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GIVE 앱의 방영 이후 들떠있던 이들은 오늘 보이는 라디오 생방송을 보며 멤버들의 실시간 영상에 감탄했다.

라이브로 진행되는 첫 곡이 잔잔하고 따뜻하게 이들의 마음을 간질였다. 신생 아이돌치고는 목소리가 괜찮다는 실시간 채팅의 발언들에 흡족한 미소를 띠며 은근슬쩍 영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언래블의 흑역사 이야기에 신났던 언래블 게시판의 팬들은 이어지는 지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미 어제 쇼케이스 영상을 통해 알고 있었던 팬들이 대다수였지만 다시 한번 들으면서도 괜히 긴장됐다.

- 전에 주작이라고 했던 주작무새들 다 대가리 깨라 아오….

- 방금 말하는 데 얼굴 창백해지더라 무서웠나 봐 ㅠㅠ….

- 하겸이 인성 진짜 좋은가 봐 우리 작은환 걱정해준다ㅠㅠㅠ

게시판과 SNS 등 상황을 주시하던 홍보팀도 팬들의 반응이 좋은 걸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기사까지 뜰 정도로 언래블의 인지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기본이 되는 팬층이 코어팬이 되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

괜히 박정균 대표가 악플러들과는 타협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하는 게 아니었다.

내 배우가, 내 가수가, 내 아이돌이 욕먹으면 그걸 지켜보는 팬들의 심장은 미어진다.

잘못한 걸로 욕을 먹어도 마음이 아픈데, 잘못하지도 않은 걸로 욕을 먹었다? 팬이라면 그 순간 전투 민족으로서의 본능이 눈 뜨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더군다나 팬들의 응집력이 좋을수록 그 연예인의 인지도가 굳건해지는 법이다. 그걸 간과하는 일부 엔터계 사람들은 머리 수준을 의심해야 할 지경.

“애들이 다행히 안 떨고 잘하네.”

“안 그래도 아까 GIVE 앱 방송 끝나자마자 지들끼리 막 챙기더라. 하준이랑 지환이가 멤버들 챙기면서 멘트 고민하고 그러던데?”

“하준이야 원체 성실하고 믿음직한 애였는데 지환이는 진짜 많이 변했어. 그렇지 않아?”

“맞아. 아주 사람 됐어. 다행이지 뭐.”

고작 하루 됐지만, 왠지 느낌이 좋다고 해야 할까?

홍보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사이. 방음 부스에서 신청곡과 광고가 흘러나오는 동안 명준은 멤버들을 칭찬하고 있었다.

“첫 생방인데 다들 안 떨고 잘하네.”

“선배님이 잘 케어해주셔서 그렇죠.”

“어이구, 벌써부터 사회 생활하진 말고.”

방금까지 흑역사 때문에 괴로워했지만 그렇게라도 팬이 늘릴 수 있다면 이 한 몸 희생해야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다진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스킬을 켜기로 했다.

첫 시작이 좋아야 앞으로 시작도 좋은 법.

[얘네 부른 게 차라리 다행인 것 같은데? 다음에 또 부를까….]

[리던가 쟤 마스크도 괜찮고 목소리도 괜찮네.]

[아, 빨리 퇴근하고 싶다….]

[배고프네. 오늘 야식으로 치맥이나 땡길까?]

[제론지 지론지 나발인지들 치운 게 차라리 다행이었네]

은근슬쩍 ‘너의 목소리가 들려’ 스킬을 사용해 사방을 둘러보며 소개 받았던 이름을 떠올렸다. 스태프들의 속마음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스킬을 끌 수 있었다.

악의적인 말이나 복잡한 생각보다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더 많아서 속이 메스껍거나 피곤하지 않았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자 살짝 고민이 생겼다.

초반에 멤버들과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잠깐 ‘내적 친분’ 스킬을 사용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거둬들였다.

스킬의 힘을 빌려서 내가 좋아하고 동경하던 이들의 마음을 산다는 게 덕질하던 입장에서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비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 멤버들이 아닌 사람들은 상관없지 않을까?

우리 애들만 잘된다면야 다른 사람들이야 알 게 뭐야?

머릿속에서 수많은 자아들이 싸우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스킬을 쓰기로 했다.

PD나 작가들에게 스킬을 써서 우리를 좀 예쁘게 보게 만들면 여러모로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결국 모든 것을 이겼다.

어차피 난 양심 없이 30년을 살았다. 이제 와서 무슨.

양심은 됐고 덕심만 지키면 된다!

굳게 마음을 먹고 나자 차라리 한결 편해졌다.

사실 아직도 스킬들의 쓰임새를 잘 몰라서 거의 손 놓고 있다시피 했다.

어차피 데뷔 막판이라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근데 너희는 폰 있어?”

“아, 네. 저희 오늘 대표님한테 선물 받았어요!”

수줍은 미소와 함께 새 폰을 꺼낸 세빈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다.

손에 쥐고 있을 시간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사람이 기분이란 게 있을 테니까.

“ON 엔터 대표님이 자유로운 분이라고 하더니 진짠가 보네.”

“헤헷, 화낼 땐 완전 무서우세요.”

“그럼 이참에 우리 번호 교환이나 하자.”

“어! 진짜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선배 아이돌한테 번호 교환을 언급 받다니!

명준은 이 바닥에서 오래 잘 살아남을 만큼 처세술이 뛰어나고 인맥도 좋았다.

더군다나 팬들 사이에서도 매너가 좋기로 소문이 자자해서 친해지면 무조건 이득이었다.

“내 번호 불러줄게. 저장해. 광고 끝나가니까 방송 끝나고 너희 번호는 메시지로 보내주고.”

빠르게 번호를 저장한 멤버들의 얼굴에서 기쁨이 흘러넘쳤다.

안 그래도 새벽 멤버들에게 번호를 받아서 다들 신나했었다. 그들에 이어 명준에게까지 긍정적인 평가를 듣자, 우리 애들은 하나같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명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2부부터는 너희한테 반말할게. 내가 더 친근하게 굴어야 너희한테도 좋지.”

“감사합니다….”

하준에게 윙크하는 명준을 보자 왠지 가영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이내 지워버렸다.

가영은… 너무 무서웠다.

녹음하는 내내 가영에게 생기를 빨리는 것 같았다.

시키는 대로 녹음하다 정신을 차라니 자신은 소파에 널브러져서 파드득대고 있었다.

이렇게 착한 선배님의 모습에서 가영을 떠올리다니, 내가 잘못했네.

“10초 전!”

광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스탭의 외침에 다들 정신을 다시 가다듬었다.

다시 쭌디로 돌아온 명준은 능숙하게 곡 소개와 몇 가지 멘트로 줄곧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었고, 작가진이 홈페이지를 통해 방송 내내 신청받았던 팬들의 질문을 건넸다.

“우리 언래블이 어제 데뷔한 친구들 치고는 방송을 좀 알아요. 이 친구들은 타고났나 봐요. 나 때랑은 또 다르다니까.”

“에이, 자꾸 칭찬해 주시면 진짠 줄 알아요.”

“진짠데? 하준이랑 환이는 특히 더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가운데, 갑자기 방음 부스 너머 PD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뭐지? 하는 사이 급히 막내 작가가 뛰어 들어와 명준에게 쪽지를 건넸다.

살짝 쪽지를 확인한 명준의 얼굴이 아주 잠깐 굳었다가 금방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온화해졌다.

“그나저나 팬들이 어떤 질문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팬분들 성향은 보통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을 닮더라고요. 우리 언래블 팬들은 어떤지 볼까요?”

“저희는 저희 팬분들을 믿어요!”

“저희를 좋아해 주시는 것 자체가 매우 착하다는 증거예요.”

경환의 한마디에 명준은 싱글거리며 질문을 이어갔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저희처럼 어설프고 좀 넋 놓고 다니는 애들도 품어주시는 데 안 착할 리 없죠.”

“푸하, 경환, 아니 C.I라고 불러야지? C.I가 조용한데 한방이 있네.”

경환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방금 제 말이 진심임을 드러냈다. 덕분에 밖에서 지켜보던 매니저 형이 또 전전긍긍하고 있을 게 훤했다.

지금이야 화목한 분위기의 방송이라 괜찮을 테지만, 방금 경환의 멘트는 악의적으로 사용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었다.

물론 무슨 말을 하든 악마의 편집을 거치면 다 인성 쓰레기가 될 수 있지만…. 그간 기레기들이 싸지른 똥을 보아온 나는 멤버들의 멘트에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자, 그럼 착한 팬분들이 보내온 질문지 공개합니다! 오, 역시 앨범 관련 질문이 가장 많네요. 가면의 의미를 알려달라는 질문입니다. 누가 대답할래요?”

“음, 가면의 정체는 스포가 되기 때문에 정확히 말씀드리긴 어려워요.”

곤란한 표정의 하준이 한껏 미안해하는 목소리로 답하자, 명준이 개의치 않고 받아주었다.

“스포가 안되는 선에서 대략적으로 말해보자면?”

“앨범 설명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가 노래하려는 건 저희가 살면서 느꼈던 두려움들이에요. 그걸 형상화한 게 가면인데, 앞으로 그 주제에 맞춰서 이야기를 더 풀어갈 예정입니다.”

“스토리텔링으로 앨범이나 뮤비를 풀어갈 거라는 얘기지?”

“네, 맞아요. 진짜 열심히 준비했어요.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떨림보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진 하준의 얼굴에 또 주책맞은 심장이 뭉클했다.

언래블이 뜨지 못했을 때도, 떴을 때도 하준이 멤버들에게 가지는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다른 멤버들도 더욱 악착같이 달려들어서 하준의 믿음에 부응하려고 발버둥 쳤다.

“다음 질문은 환이한테 온 질문이네요. 아이돌 창조 때부터 지켜본 팬인데요, 가끔 지환이가 부처님 미소를 짓는데 실제로도 불교인가요? 부처님 미소? 이게 뭘까요.”

“어…. 일단 전 무교입니다.”

명준이 질문을 들고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도 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부처님 미소가 뭐지?

“아! 저 그게 무슨 미소인지 알 것 같아요. 왜 그, 가끔 환이가 우리 보고 되게 흐뭇하게 웃잖아. 방금처럼. 그거 같은데요?”

어? 그거?

멤버들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자, 명준이 설명이 필요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 게요, 음. 제가 우리 멤버들을 좋아해서 그래요.”

“응? 멤버들이 좋아서?”

“네. 인물도 훤하고 착실하고 노래도 잘하고… 숙소를 잘 안 치우는 게 흠이긴 한데….”

“쉿! 팬들에게 우리 이미지를 지켜줘!”

“이미 늦었어, 찬아.”

골똘히 생각하던 내가 아직도 쓸데없는 희망을 가진 힘찬에게 단호하게 대답하자, 그런 우리를 지켜보던 명준이 손바닥을 탁하고 쳤다.

“아, 나 이거 뭔지 알 것 같아. 이거 우리 멤버들이 헛소리할 때 타임들이 짓던 표정이랑 똑같아.”

명준이 말한 타임은 골든아워의 팬덤명이었다.

팬들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하겠다는 뜻으로 소속사에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우리 환이가 좀 엉뚱한 면이 없진 않죠.”

“환이는 저희 동생 라인인데, 가끔 형 라인 같기도 해요.”

“뭔가 의미가 좀 다른 것 같기도 한데 확실히 멤버들이 좋아서 웃는 건 맞아요.”

각자 다른 의미로 납득한 듯한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내 돌 덕질하겠다는데. 왜,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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