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So What(1)
언래블의 멤버들이 자기들만의 광란의 파티를 하던 그 시간, 아이돌 창조 게시판은 쇼케이스 간증글로 넘쳐났다.
[진짜 쇼케 응모한 나를 칭찬한다!!!
뷰어들아, 이번에 쇼케 안 간 뷰어 있으면 진짜 울어도 인정.
우리 판이 한 줌인 줄 알았는데 중간 중간 홈마들도 있더라.
우리 애들이 벌써…ㅠㅠㅠ
휴, 이제부터 진지하게 쇼케 후기 찜.
컨셉 포토, 뮤비 티저부터 이미 우리 머리 풀고 달렸던 거 인정하지? 세계관 파는 나 뷰어는 진짜 아… 언래블 주식 잡은 나를 엄청 칭찬했단 말이야.
지금이면 뮤비랑 음원 다 공개됐을 테니까 시원하게 다 풀겠음.
지금이라도 뮤비 안 본 뷰어 있으면 당장 가서 두 번 보고 세 번 봐.
우리 정균찡이 작정하고 자본 때려 부음. 색감 미쳤고 애들 표정 연기 미쳤는데 반전미가 더 미침.
사실 처음엔 걱정 많이 했거든? 삼성카드 홀이면 꽤 넓어서 무료로 풀긴 했어도 많이 안 차면 애들 기죽을까 봐.
근뎈ㅋㅋㅋㅋㅋㅋ 내 믿음이 부족했다. 엄청 많았어!!!
물론 전부 우리 래블이들 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환호성도 엄청 컸으니까 팬들이 많았으리라고 봄.
처음에 뮤비 먼저 틀어주고 그다음이 애들 타이틀곡 무대였는데
뮤비는 직접 보는 게 좋으니까 넘어감.
본무대 시작하니까 인트로로 댄브 넣은 거 같았는데 가면 소름….
[가면 쓴 멤들 사진]
멤버마다 다른 가면 썼고 그 가면마다 정해진 뭔가 포지션이 있는 거 같음. 이건 좀 더 파봐야 할 듯.
가면들끼리 뭔가 다툼? 같은 게 있는 것 같고 막 자기들끼리 막고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이런 안무를 했는데 인트로 끝나니까 애들 다 쓰러짐ㅠㅠㅠㅠㅠㅠ 안문데도 너무 줄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져서 보는 내가 조마조마했음.
그리고 본무대 시작하니까 애들이 다른 의상 입고 약간 고개 숙인 포지션으로 서 있었는데, 우리가 소리 지르니까 애들 움찔움찔하는 거 졸귀ㅠㅠㅠㅠ 고개 안 들려고 막 애쓰는 게 눈에 보이뮤ㅠㅠㅠ
이게 바로 신인돌의 귀여움이라구!
[무대 움짤]
준이랑 큰환이 랩 하는데 딕션 쩔어서 귀에 팍팍 꽂히고 음향도 좋았음! 둘이 주고받는데 연습 엄청 한 티 나더라
우리 작은 멍뭉이 세비니ㅠㅠㅠㅠ 춤만 잘 추는 줄 알았는데 목소리 엄청 청아하드라!! 영빈이 고음이랑 세빈이, 작은 환 목소리 되게 잘 어울려!
우리 장꾸 힘찬잌ㅋㅋㅋ 진짜 되게 오늘 새삼 치였다. 그래 나 힘찬이 최앤데ㅠㅠㅠㅠ 오늘은 장꾸 아니고 오빠였음ㅠㅠㅠㅠ
근데 제일 신기한 게 애들이 카메라 되게 잘 찾고 표정 되게 생동감 넘쳤음. 나 뷰어는 돌판 쫌 있었던 편인데 신인치고 이렇게 카메라 잘 찾고 표정 관리 잘하는 애들 진짜 오랜만임!
인터뷰 누가 벌써 위캠에 직캠 올렸더라!
아래 주소 달아뒀으니까 여기 가서 영상 확인해!
+ 지난날 작은환을 싫어했던 나는 대가리 박았음….
인터뷰 꼭 다 봐줬으면 좋겠어! 특히 작은환 오해한 뷰어 있으면 꼭!
어… 마무리는 어떻게 하지? 난 애들 스밍 돌리러 갈게…♡]
이 글을 비롯한 다양한 후기들이 올라오면서 타 돌판의 사람들까지 아이돌 창조 게시판에 놀러 오는 효과를 불러왔다.
ON 엔터의 홍보팀은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데뷔 쇼케이스 영상을 재빨리 편집했고, 위캠에 만들어둔 공식 채널에 편집 영상을 업로드했다.
공식 SNS들에 이 영상의 링크가 일제히 올라간 건 당연한 순서였다.
첫 데뷔 무대치고는 강렬한 인상을 줬던 덕일까? 팬들은 꽤 단단한 밀집력을 보여줬고, 소속사가 기대한 것 이상의 힘을 자랑했다.
위캠에 올린 쇼케이스의 타이틀곡 무대와 인터뷰 영상의 조회 수는 빠르게 올라갔고, 잠시뿐이긴 했지만 타이틀인 ‘I'm OK’는 음원 차트 48위, intro ‘0’은 49위, outtro ‘Who cares’는 50위를 달성했다.
차트 끝이라도 좋으니 차트인 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던 홍보팀으로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만큼 고무적인 일이었다.
거기다 하준이 작곡한 ‘어쩌면’과 경환의 ‘점멸’도 차트 끝자락이지만 이름을 올리는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 주었다.
비록 새벽 시간대의 순위였지만 기대하지 못한 높은 성적에 박정균 대표와 정윤 실장은 자신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소식은 멤버들에게 뜻하지 않은 선물을 주게 되었다.
* * *
“와…. 제일 잘 먹은 건 세빈이 넌데 왜 넌 안 부었냐?”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오랜만에 마음껏 흡입한 힘찬의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아침부터 무슨 일이 있길래 눈이 부을 정도로 울었냐고 걱정할 정도였다.
“형은 잘 붓는 거 알면서 그러게 왜 그걸 먹어가지고. 에휴.”
전날 밤, 멤버들의 폭주를 지켜보던 영빈은 수저와 작은 얼음팩을 냉동실에 조용히 넣어두었다. 덕분에 퉁퉁 부은 얼굴의 멤버들은 아침부터 얼음을 하나씩 꺼내 올려놓을 수 있었다.
“근데, 형. 유독 잘 붓는 거 같은데 어디 안 좋은 건 아니죠?”
“아녀…. 그냥 체질이더라고. 춤추면서 좀 나아졌었는데 어제는 확실히 무리했지.”
그렇게 넋두리처럼 중얼거리는 힘찬에게 경환이 팩 포장된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이게 뭐야?”
“호박즙. 집에서 보내준 거야.”
“이걸 왜?”
“다이어트에 좋대. 부기 빼는 데 좋다더라고.”
피곤할 때 나오는 경환 특유의 무덤덤한 말투로 이어진 설명과 직접 빨대까지 꽂아 준 호박즙. 잠시 고민하던 힘찬은 결국 받아마셨다.
“어? 생각보다 맛있네?”
“우리 엄마가 직접 만든 거야. 너도 좀 먹긴 먹어야겠다.”
멤버들이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잘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모습에 하준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늘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던 지환이 보이지 않자 영빈에게 물었다.
“환이 어디 갔어?”
“어? 아까 일어나서 씻는다고 했는데.”
양쪽 방 모두에 없고 거실에도 없다면 화장실에 있어야 할 텐데,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얘 뭐해?”
화장실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이상함을 느낀 하준이 화장실 문에 귀를 가져다 대자, 희미한 숨소리가 들렸다.
“설마.”
하준과 영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화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한 손에 수건을 꼭 쥐고 벽에 기대 잠들어 있는 지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얘 지금 자는 거야? 저러고?”
“…하아.”
기가 막힌 하준이 지환을 가리키며 영빈에게 물었지만, 영빈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멤버들을 데리러 온 매니저 우진은 부루퉁한 지환과 웃음기를 감추지 못하는 동생 라인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 *
“그러니까 쟤가 화장실에서 졸고 있었다 이거지?”
아침부터 회의실에 모인 팀장님과 매니저 형이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아니, 긴장 풀려서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억울한 눈으로 멤버들을 바라봤지만, 역시나 오늘도 내 편은 없었다.
지난밤, 드디어 데뷔 무대라는 고비를 넘었다는 기쁨에 밤늦게까지 포잉을 붙들고 밀린 수다를 떠느라 다른 멤버들보다 더 늦게 잠든 게 문제였다.
그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데뷔 무대 한다고 잔뜩 긴장까지 했었다. 그 상태에서 남들보다 늦게 잤더니 간신히 눈을 떠 놓고도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했다. 벽에 잠깐 기댄다는 게 그대로 잠들어 버릴 줄이야.
씻고 매니저 형을 따라 나오는 내내 멤버들의 놀림을 당한 나는 지금까지도 내 침대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을 포잉이 얄미워졌다.
“자자, 그만들 하고. 앞으로 너희 스케줄에 대해서 얘기할 게 있어서 여기로 불렀어.”
아직까지 쇼케이스의 여운이 남아 들뜬 멤버들의 기분을 한 번 눌러준 팀장님이 멤버들에게 파일 하나를 내밀었다.
“아, 그리고 이건 대표님이랑 실장님이 너희에게 주는 작은 선물.”
하준이 대표로 받은 파일을 열어보려다 말고, 모두들 선물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소현 팀장님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매니저 형이 커다란 박스를 내밀었다.
“어?”
“핸드폰!”
대표로 박스를 받은 영빈이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신우전자의 최신 기종 핸드폰 6대와 멤버들의 이전 핸드폰이 함께 들어있었다.
“어디 가서 꿀리지 말라고 최신 기종으로 가져오셨대. 유심만 바꿔 끼면 될 거야.”
사실 멤버들의 핸드폰은 처음 연습생으로 들어올 때부터 소지하고 있던 것들이라 다들 최소 1년 이상씩은 된 기종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멤버들은 다들 새 핸드폰 박스를 품에 안고 감동한 눈으로 소현 팀장을 바라보았다.
더불어 새 핸드폰 박스를 살피던 나도 감상에 빠져들었다.
대표님이 선물로 나눠주신 이 핸드폰은, 이전 생에서 누나가 내게 처음으로 사준 핸드폰과 같은 기종이었다.
“너희가 핸드폰이 있다고 딴짓하는 애들이 아닌 걸 회사에서도 이해했고, 이제 가족들한테는 연락 잘해드리라고 대표님이 큰맘 먹고 선물해 주신 거야.”
“감사합니다!”
“쓸데없는 짓 안 하겠습니다!”
나와 멤버들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싱긋 웃는 소현 팀장님의 얼굴에는 기특한 마음과 흐뭇한 마음이 미소로 녹아들어 있었다.
핸드폰에 대해 단 한번도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은 멤버들이 죽어라 고생을 하는 동안 김우빈 한 명만 핸드폰을 숨기고 엉뚱한 짓을 했었다. 회사에서는 핸드폰이 있든 없든 사고 칠 놈만 친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내심 핸드폰이 없어서 허전했던 나는 익숙한 기종의 기기를 만나니 더 마음에 들었다.
“자, 잠깐 시간 줄 테니까 가족들한테 연락해.”
안 그래도 누나한테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회사의 배려에 고마운 마음과 언래블이 성공적인 데뷔 쇼케이스를 마쳤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이 함께 몰려왔다.
만약 쇼케이스 이후 별다른 반응이 없었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반응이 나왔다면 이런 것들이 주어질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 고생을 하며 데뷔곡을 바꿔둔 보람을 이렇게나마 간접적으로 느끼니 한층 더 마음이 놓였다.
데뷔 쇼케이스에 가족들은 초대하지 않고 진행하자는 회사의 의견에 처음엔 다들 의아해했었다. 하지만 올스탠딩으로 진행되는 공연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부모님들이 즐기기에는 다소 힘든 공연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가족들은 안전상의 사유로 공연장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고, 대신 회사에 모여서 함께 실시간 라이브로 관람한 후 귀가했다 들었다.
그동안 고생했을 회사 식구들과 멤버들끼리 회포를 풀어야 하지 않냐고 얘기하시면서.
아니, 그래도 누나는 나 좀 걱정하고 해도 되지 않나…?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한 것 같았다.
어색해했던 마음은 어디 가고, 누나가 내 얼굴도 보지 않고 돌아갔다는 말에 서운함을 느끼는 걸 보니.
팀장님이 미리 충전을 해주신 건지, 전원 버튼을 길게 누르자 이전 폰의 화면이 켜졌다.
잠시 고민을 하다 냥톡의 대화 내용을 백업해두었다.
내 것이 아닌 대화들을 확인하려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내가 가지고 갈 인연들이니까.
핸드폰을 이리저리 확인해서 백업할 데이터를 챙기고 새 기기로 유심칩을 옮겨 끼웠다.
[누나 뭐해?]
고민은 길지 않았고, 전화는 새삼스러워 냥톡을 보냈는데, 이 누님 성질 급하기가 원래 우리 누나 못지않은 게 확실했다.
아직 알림음을 설정하지 못한 새 핸드폰에서 기본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깜짝 놀라 급히 전화를 받았더니 시큰둥한 누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그만 집에 올 거니?”
“누나?”
…? 어제 데뷔 쇼케이스까지 잘 보고 가신 분이 왜 이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