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1)화 (31/456)

31. 괜찮아(2)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한 장씩 공개되는 컨셉 사진이 팬들의 기대를 고조시키다, 그 후로 공개된 단체사진으로 정점을 찍었다.

“우리 팬들이 엄청 좋아한대. 들었어?”

“어, 아까 매니저 형이 싱글벙글하길래 물었는데 그렇다더라.”

“근데 왜 이렇게 실감이 안 나냐.”

외부와 차단되어 회사, 숙소만 오가는 우리는 대중의 반응을 알 턱이 없었다. 학교를 가도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반 친구들과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고 회사로 돌아오기 일쑤였으니까.

“오늘은 뭐 공개야? 리스트 차례야?”

“응, 그거랑 몇 곡 하이라이트 부분 업로드한다던데.”

오늘 일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들, 남은 공개 일정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다행히 한바탕 연습이 끝난 후라 이성적인 생각이 가능한 상태였다.

녹음도, 촬영도 모두 끝났지만 나도 멤버들도 할 일은 끝나지 않았다.

앨범 수록곡이 intro, outro를 제외해도 10곡이었다.

첫 앨범이니 꾹꾹 눌러 담고 싶다는 우리의 뜻을 회사에서 지지해준 덕에 꽉 채운 앨범이 된 것은 좋았지만, 욕심 덕에 작살나는 건 우리의 몸뚱이였으니….

“아, 나도 팬들 반응 보고 싶다….”

“아서라, 괜히 악플 보고 잠도 못 자지 말고.”

“그래서 참고 있는데 벽보고 하는 것 같아서 힘들긴 해요.”

오늘도 소현 팀장님이 와서 우리에게 절대 반응을 찾아보려고 하지도 말고 알려고 하지도 말라고 단단히 엄포를 놓고 갔다.

반응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악플은 달리기 마련이었고, 우리가 아직 품 안의 병아리 같던 팀장님은 멤버들의 멘탈을 걱정했다.

그런 팀장님의 선택은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당연한 일 같았다.

지금도 수시로 우리들끼리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고민하고 조잘거리는데 실제로 찾아보기라도 했으면 죄다 침울한 표정으로 바닥에 붙어 있었겠지.

악플이 달리면 달리는 대로 무섭고, 없으면 없는 대로 서럽고 힘든 게 신인이었다.

다만, 실제로 덕질을 했던 나 같은 경우에는 악플에 면역이 없는 멤버들보다는 조금 더 사정이 나았다.

덕질을 하다 보면 본진에 시비 거는 수많은 악플러들과 싸우는 건 과장을 조금 보태면 일상생활 같았다.

온갖 말도 안 되는 카더라와 루머를 들고 와서 소속사 본 계정에 직멘(소속사 계정을 태그 해서 욕설, 비방 등을 하는 행위)을 쏘고 해명할 게 없는데 해명하라고 떠드는 것들.

팬인 척 코스프레하고 타 아이돌과 비교해가면서 까 내리는 것들.

개인 팬이랍시고 자기 최애 외의 다른 멤버들은 죄다 까내리는 없느니만 못한 것들.

기타 등등 같잖은 놈들 때문에 내가 직접 PDF 따서 소속사 메일로 보낸 메일만 수백 통은 될 판인데.

처음에는 대책 없는 악플러 놈들 때문에 혼자 화내고 억울해하고 착하고 귀한 우리 애들이 마음에 상처 입을까 봐 전전긍긍했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코끝으로 비웃으며 습관적으로 PDF 파일부터 만드는 내가 있었다.

물론 악플러와 싸우다 보니 남팬인 나에게 성적 지향과 부모님 안부를 같이 묻는 놈들도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전투 민족이었기에 죽창으로 발랐다.

당사자가 되어버린 지금은 또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이 모든 일은 앞장서서 나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한 누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아이돌의 세계에서 활동했던 누나는 총사령관처럼 전쟁을 지휘하기도 했었다.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거기에 푸는 것 같기도 했는데, 무서워서 직접 물어보진 못했었다.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문득 누나가 보고 싶어졌다. 젠장.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안무나 다시 맞춰보자. 나 이 동작이 자꾸 꼬이는 거 같아.”

주절주절 궁상떨고 있던 힘찬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내 동작이나 봐달라는 핑계로 화제를 바꿔주었다.

사서 걱정하느라 겁먹고 주저앉는 것보다 차라리 몸이 바빠서 생각을 못 하는 상태가 되는 게 훨씬 나았다.

더불어 언제나 춤에 있어서는 온 마음을 다해 부딪히는 힘찬이기에 동작 교정에는 꽤 도움이 되었으니까.

이미 공개된 컨셉 사진은 뮤비 초반 장면의 밝고 생기 넘치는 표정의 소년들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메시지가 은연중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팬들이 그걸 눈치챘을까 하는 약간의 호기심이 꿈틀거리긴 했다.

자고로 세계관 파고 뮤비 해석하는 것만큼 팬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없으니까.

다만, 이번 앨범이 망하면 세계관이고 뭐고 그걸로 끝이라 걱정을 모두 접어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하루씩 시간이 흘러 드디어 하이라이트 메들리 공개가 끝나고 뮤비 티저 2가 공개되었다.

겁에 질린 얼굴로 풀숲을 헤매며 뛰어다니는 멤버들이 흔들리는 화면에 잡혀있었다.

바로 턱 밑에서 쫓아오듯 다가가는 카메라와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주저앉는 세빈의 얼굴, 그런 세빈을 어떻게든 일으켜보려는 영빈의 안쓰러운 모습.

도망가다 다치기라도 한 건지 쩔뚝거리는 힘찬과 그를 부축하고 있는 지환.

정신을 잃은 건지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있는 경환과 그런 경환을 지키려는 듯 등 뒤에 두고 결연한 얼굴로 사방을 경계하는 하준의 모습.

짧게 멤버들의 상황을 보여주더니 카메라는 다시 저 먼 하늘로 올라가 아이들을 지켜보는 듯한 앵글로 바뀌었다.

그 이후 새까맣게 변한 화면에는 6개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면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 가면들 아래에는 흐릿하게 Are you all right? 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가 금세 사라져버렸다.

* * *

우리가 연습에 매진하는 사이 드디어 데뷔 쇼케이스 날짜가 정해졌다.

“얘들아, 쇼케 날짜 6월 10일로 확정됐어.”

“…?!”

“뭐야, 왜 아무도 말이 없어?”

언제나처럼 제영 쌤의 버거운 애정을 받으며 타이틀곡 안무에 박차를 가하던 우리 앞에 갑자기 나타나서 폭탄을 던지니까 그렇죠?

그러고 보면 매니저 형과 한동안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것 같았다.

당장 내가 허덕이다 보니 졸면서 이동하는 날이 더 많아서 누가 있고 없고도 신경 쓸 정신도 없었고.

“어…. 그러니까 쇼케이스를 한다고요, 저희가?”

“다음 주에요?”

“일주일 만에 그게 되는 거예요…?”

허허롭게 웃으며 소현 팀장에게 질문을 하나둘 건네는 멤버들은 죄다 눈이 풀려있었다.

기쁜 건지 걱정되는 건지 무서운 건지 알 수 없는 기괴한 표정들.

거울을 본 건 아니지만, 내 표정도 이들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회사에서 다 준비하니까 너희는 무대랑 인터뷰 준비만 하면 돼. 여태 계속해오던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 무대 동선이랑, 어… 중간중간 멘트도 들어가야 할 텐데요?”

그나마 쇼케이스를 본 경험이 있는 내가 정신을 부여잡고 질문을 던지자 팀장님이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게 왜인지 얄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너희 지금까지 연습한 그 대형 그대로 유지하면 되고, 이미 제영 쌤이랑은 얘기 끝났어. 오늘부터는 오후에 인터뷰 준비랑 같이 팬들이랑 소통할 것들 준비하면 되니까 걱정 마.”

“그, 그게 막…, 하, 하하.”

아찔한 느낌이 들어 함께 대본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 거냐고, 일주일 가지고 연습 시간이 충분하겠냐고 팀장님에게 묻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건 바람 빠진 듯한 웃음소리뿐이었다.

데뷔를 무슨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막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그 뒤에서 머리를 부여잡던 매니저 형이 한발 앞으로 나서서 상황을 설명해 준 이후에야 우리는 조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팀장님은 가운데 토막만 말을 해서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

데뷔 일자는 얼마 전 우리가 아티스트로 재계약을 하던 날에 기재된 그 날짜라고 했고, 홍보는 이미 홍보팀에서 기사 물량 퍼부었다고.

심지어 우리가 모르는 팬카페도 이미 만들어져서 가입도 받았고, 예매도 받았다고 했다.

“아니 왜 우리한테는 일주일 전에 통보에요?”

“맞아! 우리가 당사자잖아요!”

“얘들아, 잘 생각해봐. 최근 2주간 너희의 몰골을.”

회사에서 너무 우리를 무시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에 발끈했던 우리는 다시 한번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기존에도 죽을 것 같았는데 더 늘어난 연습량, 기본적인 에디튜드, 외국어와 주의 사항들을 머릿속에 집어넣는데 정신을 쏙 빼고 살던 우리에게 종종 매니저 형이 이것저것 물어왔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대답을 하다 보니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었는데, 문득 지금 한 가지 떠오른 게 있었다.

“그 블루스퀘어랑 일지아트홀이랑 뭐 막 얘기하던 설마 그건 아니죠?”

“그거 맞아.”

어떻게 우리 중 누구도 그게 데뷔 쇼케이스일 거라고 생각을 못 했지?

멍한 눈으로 내가 하준을 바라봤지만, 우리 리더도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상태를 보아하니 사정이 나와 다르지 않은 듯했다.

심지어 내가 기억하는 언래블의 첫 무대는 M 본부의 음악방송 무대였다.

멤버가 바뀌고 앨범 자체의 변화가 생기다 보니 회사에서 작정하고 진행했던 것 같았다.

거기다 언래블의 공식 데뷔를 알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아이돌 창조 홈페이지를 통해 센터 투표까지 쭉 진행되어 이번 타이틀곡의 센터는 하준으로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그에 대형을 맞춰 안무를 연습하고 있었다.

이게 모두 회사의 큰 그림이었다고?

“근데 너희 지금 이럴 시간 있어? 연습해야지.”

“그래서 우리 어디서 데뷔하는데요?”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돌겠네. 허허.”

“무대 사이즈가 어떻게 돼요?”

“우리 진짜 가능한 거지?

우리는 그 후 일주일이 이토록 짧은 시간이라는 걸 뼈에 새길 만큼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다.

타이틀곡이나 서브곡의 안무는 솔직히 여태 해왔던 것처럼 죽어라 연습하고 각을 맞추는 것들이라 괜찮았다. 곡 나온 이후로 매일 숨 쉬는 것처럼 해왔던 일이 연습이었으니까.

하지만 예상 인터뷰 내용을 숙지하고 셋 리스트를 외우고 그 시간을 또 쪼개서 틈틈이 팬들에게 줄 선물에 붙일 메모를 적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처음 회사에서는 300명 정도를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었는데, 신청을 받기 시작하자 예상을 뛰어넘는 수가 몰려 천 명 정도는 거뜬히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장소를 선택했다고 했다.

앨범 구매도 없이 신청만 하면 볼 수 있는 쇼케이스이다 보니 팬이 아닌 사람들도 흥미 삼아 신청했을 거라고.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홍보라고 생각하고 질러버린 회사의 결단에 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이런 사정을 들은 멤버 모두가 부담감을 각자의 어깨에 짊어져야 했지만, 솔직히 싫지 않았다.

그만큼 언래블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으니까.

정신을 놓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쇼케이스 당일이 되고 말았다.

다리가 달달달 떨리는 걸 주체 못 하는 힘찬은 메이크업을 받는 도중에도 자꾸 울상을 지어서 한 소리 들었고, 세빈이는 막대 사탕을 3개째 없애는 중이었다.

영빈이는 소파에 기절한 듯 누워있었고, 경환은 끊임없이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아마도 가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 같았다.

“지환아, 넌 괜찮아?”

“네? 허허허. 이거 꿈이잖아요. 괜찮아요.”

“…얘도 정상이 아니구나.”

그리고 나는 눈앞에서 하준과 포잉이 쌍으로 나에게 무어라 말을 걸고 있었지만, 이미 내 혼은 저 멀리 날아가 본체에게 손을 흔드는 상황이었다.

우리 이 무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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