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6)화 (16/456)

16. Dejavu(2)

다행히 바로 다음 날 꼬박 하루에 걸쳐 편곡과 안무 설정이 끝났고, 남은 시간 내내 연습에 매달린 우리는 드디어 내일 첫 경연을 앞두고 있었다.

그동안 포잉을 보내 B팀의 상태를 간간이 확인했지만 팀 분위기는 썩 좋아지지 않았고, 그 일로 하준과 영빈이 종종 새벽까지 얘기하는 듯했다.

일단 당장 속한 팀에만 신경을 쓰기로 마음먹은 나는 미리 멤버들이 마실 물을 챙겨놓고 틈나는 대로 아침밥도 해놓고 나왔다.

아침 일찍 멤버들보다 먼저 회사에 도착해서 안 대리님에게 큐베이스라는 DAW를 다루는 법을 더 상세하게 듣기도 하고, 착실하게 나만의 생존 치트키를 늘려가고 있었다.

마지막 연습 날인 오늘도 그렇게 익숙해진 새벽 공기를 등지고 회사에 도착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5번 작업실에서 최근에 연습 삼아 만지고 있었던 곡을 불러왔을 때 안 대리님이 들어왔다.

“지환아, 잘돼가?”

“아, 대리님 오셨어요?”

평소에는 잘 웃고 장난도 잘 치던 안 대리가 조금 딱딱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더니 작업실 문을 잘 닫았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자 내 옆에 붙어 앉아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게 뭐….”

“쉿, 조용히 빨리 보고 다시 나 줘.”

작업실 문을 가리듯 서서 나에게 핸드폰을 내밀어 준 그의 모습에 의아함을 가지기 전, 그가 내민 어떤 커뮤니티의 게시글을 본 나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돌 창조 팬들이 모여 만든 게시판에는 나에 대한 수많은 얘기와 최근 내가 찍었던 일상 로그들에 대한 댓글들이 많았다.

핸드폰을 다시 그에게 내밀며 떨리는 목소리를 몇 번 소리 내어 가다듬고는 최대한 침착한 척 다시 모니터 화면을 보면서 물었다.

“이게 뭐예요?”

“너 조금만 더 노력하면 경연 통과할 거 같으니까 힘내라고.”

“네…?”

“저번처럼 사고 치지 말라고 분위기 몰래 보여주는 거야.”

어느새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워진 탓일까.

지난번 방송사 직원과 회사 직원이 나를 퇴출 멤버로 낙인찍는 걸 듣는 바람에 그 사고가 났었던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의기소침할까 봐, 그렇게 기죽어서 경연 무대를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확인하다 본 게시글을 나에게도 보여준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늘 시큰둥한 척, 무심한 척 했던 이 사람이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게 괜히 심장 한쪽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었다.

“대리님, 고마워요.”

“너 인마, 잘하고 있으니까 좀만 더 애쓰라고.”

“네, 더 열심히 잘할게요.”

그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많이 물어보고, 건네받은 호의에 꼬박꼬박 감사하다고 말을 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연습생인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건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열심히 배우는 것, 그리고 감사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그런 것들뿐이었다.

그렇게 했을 뿐인데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꿨을 일이 생기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이구, 야. 이상하게 웃지 말고 작업에나 집중해. 이거이거, 아주 그사이 풀어진다?”

“에이,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하하!”

꼼지락거리며 만들던 곡을 잘 저장하고 안 대리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넸다. 이제는 멤버들이 오기 전에 연습실에 도착해야 했다.

“안 대리님, 그럼 저 연습실 가볼게요.”

“야, 지환아, 다치지 말고 연습해라. 막판에 무리하다 다쳐서 진짜 나가리 된 애들 많아.”

“넵! 안 다치게 조심조심할게요.”

A팀 연습실에 도착한 나는 천천히 몸을 풀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살짝 올라가서 조금 차가워 보이는 눈매보다 먼저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짙은 다크서클이었다.

“아…. 진짜 요새 제대로 잠을 못 자긴 했지.”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영빈과 하준을 위해 먼저 나서서 숙소를 정리하곤 했다. 멤버들이 먹을 것도 챙기고 하면서 자는 척 포잉과 가상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더니, 정작 잠은 하루에 두 시간 정도 밖에 못 자고 있었다.

“오늘은 꼭 일찍 자야지….”

“넌 맨날 밤새 뭐 하길래 얼굴이 점점 죽어가냐.”

“하, 하하…. 그냥 생각이 많네.”

“너 지금 엄청 잘하고 있잖아. 잘 될 거야.”

어색하게 웃는 나를 보던 힘찬은 어쩐지 안쓰럽다는 듯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아니, 그거 아니야, 찬아….

차마 상황을 말할 수 없기에 그저 둘 다 열심히 하자고, 그렇게 서로를 응원하는 게 다였다.

‘내적 친분’ 스킬의 영향인지 아니면 같은 팀이 되어 부대끼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경환도 힘찬도 전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오고 스스럼없이 장난을 걸곤 했다.

그 덕분인지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구성한 무대는 내가 보기엔 꽤 잘 나온 것 같았다.

원래도 신나는 댄스곡이었다. 거기에 더해 기존의 랩 파트를 하준과 경환이 각각 자신들의 분위기에 맞게 바꾸고, 멜로디 중간 단체 군무 씬 역시 박자를 쪼개 우리가 조금 더 많이 움직이는 안무로 바꿨다.

4명이서는 선배님들처럼 무대를 꽉 채우는 대형을 만들 수 없었기에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거울 모드처럼 서로 마주 보고 움직이거나 같은 동작을 반대 방향으로 하는 씬이 늘어났기 때문에 4명 중 하나라도 각이 살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안무가 무너져 보였다. 그러다 보니 연습 시간에는 다들 독이 바짝 올라 있었다.

곧이어 하준과 경환도 들어오고 각자 몸풀기가 끝나자 타이밍 좋게 김제영 선생님이 들어와 우리를 불러 모았다.

“얘들아, 잘 돼가니?”

“제영 쌤 덕에 잘 돼가죠!”

“어쭈, 말은 아주 그냥.”

“진짜 쌤 덕에 안무 걱정이 많이 줄었어요. 저희끼리 다 했으면 망했을걸요?”

“그래, 그러니까 경연 무대 더 멋있게 잘하자. 오늘 오전에는 너희 봐주기로 되어 있으니까 각오해.”

사람 좋게 웃는 제영 쌤의 저 미소가 무서웠지만 그만큼 확실하게 봐주는 사람이라 각오를 다졌다.

오전에는 우리를 봐준다고 했으니 오후에는 아무래도 B조를 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어차피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니까.

그리고 그 후로 4시간 동안 우리는 몸 안의 수분을 모두 땀으로 쏟아내며 연습에 매진했다.

연습 내내 들려온 제영 쌤의 외침은 우리가 절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해주었다.

“팔 제대로 안 들어? 부러졌어? 그 꼴로 무슨 데뷔를 해!”

“허리 돌리는 박자 잘 세라고 몇 번 말해, 니네가 무슨 로봇이니”

전체 안무를 그동안 쭉 연습해온 덕에 다행히 변경되는 안무만 집중적으로 연습할 수 있었고, 오늘에서야 겨우 만족할만한 모습으로 다듬어졌다.

“허억, 죽을… 거 같아.”

“하아, 하아. 그냥 말하지 마….”

바닥에 널브러진 우리 파김치들이 꿈틀대며 서로에게 물병을 건네주는 전우애를 발휘하는 동안, 제영 쌤은 우리 꼴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것들은 아직도 체력이 못 따라오네. 너네 기초체력 안 기르면 데뷔해도 스케줄 못 따라간다.”

“네에….”

시무룩해진 우리는 대답에도 화음을 넣었다.

“그래도 너네 이제 제법 아이돌 티가 나려고 한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보자.”

그 모습에 풋, 하고 웃음이 터진 제영 쌤은 모처럼 온기 가득한 눈으로 우릴 지켜보며 한마디 덧붙여주고 연습실을 나섰다.

바닥에 누워 숨을 고르던 하준이 피식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그래도 우리 보고 아이돌 티가 난대.”

“그러게요. 이제 진짜 아이돌 되면 되겠다.”

각자 마무리했던 자리에서 그대로 뻗었던 우리는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하준의 옆에 옹기종기 모였다.

“뭐야, 징그럽게 왜 갑자기 붙어.”

“와, 우리 리더 매정한 거 봐. 징그럽대.”

“준이 형 어쩜 우리한테 그럴 수 있어?”

“이제 막 응? 우리는 잡은 물고기라 이거예요?”

“아니, 너네 그거 좀 하지 마!”

이제는 내가 시작하지 않아도 알아서 리더 몰이를 시전하는 멤버들이 기특해서 내가 마무리 멘트까지 쳐주자, 식겁하던 하준이 벌떡 일어나 우리한테서 멀어졌다.

낄낄대던 우리가 슬슬 몸을 일으키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던 하준이 우리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불렀다.

ON 엔터는 초대형 회사는 아니었지만 내실이 단단한 알짜배기형이었다.

덕분에 직원의 처우가 꽤 좋은 편이었고 직원 식당의 밥도 맛있었다. 더군다나 배우든 발라드 가수든 연습생 못지않게 다이어트를 지속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다이어트 식단도 다양하게 잘 구성되어 있었다.

체중 감량 덕에 배부르게 양껏 먹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따로 돈 안 들이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싶었고, 우리는 간단하게 샤워만 하고 식당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밥을 들고 주변을 둘러보다 B팀 애들이 한쪽에 모여 앉아있는 것을 발견한 경환은 하준에게 눈짓했다. 그쪽에 가자는 것이었다.

잠시 멈칫하던 하준이 끄덕였고 B팀 앞에 나란히 앉아 모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지금이야 팀이 찢어져 있다고 해도 어차피 한 팀으로 지내던 사람들이니 경연으로 날을 세울 필요는 없었다.

“연습은 잘돼가? 다치지 말고 조심해서 해.”

“응, 너희도 덜 빡세게 해. 그래야 우리도 좀 덜 힘들게 하지.”

“어휴 그게 돼요? 제영 쌤이 아까 우리 잡아먹으려고 들었어요.”

“세빈아, 그거 먹고 되냐. 좀 더 먹어.”

우리 귀여운 막둥이가 요새 먹는 게 영 부실하다고 하던데 실제로도 그런 것 같아 내 식판에 있던 고구마를 세빈의 식판으로 밀어주었다.

세빈이가 고구마랑 우유를 먹는 걸 굉장히 좋아해서 다이어트할 때 거의 고구마로 연명했다는 얘기를 기억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유까지 챙겨다 주었다.

“고구마는 우유랑 먹어야지.”

“그쵸? 역시 지환이 형이 뭘 알아.”

깨작거리던 세빈은 금세 밝아진 표정으로 내가 밀어준 고구마랑 우유를 먹었고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너 세빈이 엄마 같아….”

“요새 지환이가 잔소리도 심해지고 좀 그래졌지?”

“아니, 이분들이 챙겨줘도 뭐라 하네. 아침에 밥해주는 게 쉬운 줄 알아요?”

“아니, 안 그러던 애가 막 가정적이 되니까 이상하잖아.”

“나 김치볶음밥 또 먹고 싶어.”

지금 이 분위기가 좋았다.

서로 투닥거리기도 하고 장난도 스스럼없이 치고.

처음과 다르게 딱 한 명만 빼고 모두 같이 데뷔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이제는 늘 그 생각을 하며 잠에 들곤 했다.

“자자, 그만 놀고 다시 연습 가자. 오늘이 마지막이잖아.”

“네에~.”

다행히 영빈도 세빈도 우리와 떠드는 동안 조금 기분이 좋아졌는지 웃으며 헤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첫 경연을 앞둔 마지막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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