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4)화 (14/456)

14. 말 좀 해줘(4)

- 뷰어들아 아창 봤니?ㅠㅠㅠㅠㅠㅠ 작은 환이 사고났었대ㅠㅠㅠ

ㄴ 헐 리얼임? 진짜 난 거야? 짠 거 아니고?

ㄴ 주작 ㄴㄴ 아직 안 본 애들 빨리 보고 와

ㄴ 아 공지환 걔는 진짜 눈치 없게ㅡㅡ 다른 멤들 기 빨리게 왜 병크야

ㄴ 22 걔 어차피 곧 짤릴 멤 아냐?

ㄴ 윗댓 니네 너무한다… 사람이 다쳤대자나

ㄴ 인성쩌넼ㅋㅋㅋㅋㅋㅋ

비록 한 줌 팬이었지만 아이돌 창조도 나름의 시청자들이 있었고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있었다.

그리고 지환이 우려했던 그 방송분이 풀린 날, 그 한 줌 팬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놀랐고 어느 때보다 게시판이 불타올랐다.

멤버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하루 동안 의식이 없었다는 것과 그 멤버가 사고 직후 바로 연습에 덤벼드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그동안 약간의 비호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얼마나 힘들면 그 시간에 숙소 탈출해서 혼자 거리를 헤맬까, 무슨 생각을 했길래 차 오는 것도 못 봐서 다쳤을까, 이런 짠한 마음으로 방송을 보던 그들은 평소랑 다르게 서글서글한 모습으로 멤버를 대하는 지환의 모습에 갸웃했다.

- 작은 환 성격 좋은데? 안 좋다던 뷰어 ㄴㄱㅇ

- 하준이 화낸다 ㅠㅠㅠ우리 참리더ㅠㅠㅠㅠㅠ

- 하준이 무서워 ㄷㄷㄷㄷ 엄청 화났나 봐

- 다른 멤들이 착한 거지 젤 중요한 시긴데 사고 쳐서 스톱됐자나

ㄴ 아 눈새 좀 가라ㅡㅡ

그리고 이어진 연습 장면들과 광고처럼 끝부분에 붙은 일상 로그 장면은 게시판을 달리던 뷰어들의 눈을 물음표로 만들기 부족함이 없었다.

- 작은 환 맨날 혼나던 거 이제 안 혼나… 쟤 이상해

- 병원에 있다 온 게 아니라 무슨 개조 받고 온 거야??

ㄴㅋㅋㅋㅋㅋㅋ윗댓 넠ㅋㅋㅋㅋ

-ㅋㅋㅋㅋ아 근데 우리 찬이 힘든가 봐 ㅠㅠㅠㅠ 표정봤어?

- 김우빈 다정쓰 ㅠㅠㅠㅠ 작은 환한테 말한 거 봤어?

-뷰어들아 니네 이럴 때가 아냐!! 공홈 ㄱㄱ 지환이 로그 꼭 보셈

ㄴ 응 다음 작은환맘

ㄴ 아닠ㅋㅋㅋㅋ좀 보고 판단하라고!!

지환의 분위기가 평소와 많이 다르다는 평가가 줄줄이 이어졌다. 춤이나 보컬 트레이닝 때도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춤 선과 보컬 색을 보인다며, 여러 말들이 오갔다.

자신이 원하는 연습생의 데뷔를 응원하고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기에, 한 줌 팬 안에서도 치열한 전쟁이 매일 매일 벌어졌다.

그리고 일상로그를 확인하라는 일부 팬들의 댓글과 함께 방송 말미에 나온 영상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몇 명들은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지환의 영상을 클릭했고, 다시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작은 환 개조 언급했던 뷰어 나와 너 예지력 있니…? 나 공무원 시험 붙을지 좀 봐줄래…?

ㄴ 윗댓 미쳤냐곸ㅋㅋㅋㅋㅋ왜 그래

ㄴ 글쓴이 : 작은 환 영상 보니까 애가 바뀐 게 틀림없어 …

ㄴ ㅇㅇ… 애가 다른 ㅏㅅ람이 됐어!! 근데 더 잘생겨졌어ㅠㅠㅠㅠㅠ

ㄴ 뭐야 니네 왜 그래 다 작은환맘이야?

ㄴ ㄴㄴㄴㄴ 내가 오늘자 작은 환 관전 포인트 쪄옴 ㄱㄷ

그리고 얼마 후 관전 포인트를 정리해오겠다던 한 팬이 올린 글에 많은 팬은 단체로 공지환 개조 썰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너희가 오해할 거 같아서 내 최애를 먼저 밝힘.

난 참 리더, 진실의 주둥이 민하준이 최애임.

하준이가 언더에서 D.P로 활동할 때부터 팬이었음.

난 원래 작은 환이 하준이 말 좀 안 듣고 엇나가는 그런 느낌이라 별로 안 좋아함 ㅇㅇ

근데 오늘 로그 보고 그게 애가 낯가리던 게 아니었나 추측함.

1. 방송에서 하준이가 엄청 화낼 때 되게 깍듯하게 다른 멤들한테 사과하고 숙소 청소까지 함.

이전부터 쭉 달리던 뷰어들이면 알 테지만 작은 환은 좀 니꺼내꺼 나누는 그런 성격임. 어떻게 보면 똑 부러지는데 팀에서 보자면 정 없어 보임. 그런 애가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서 좀 놀랍지?

난 한국인이라 정 없는 사람은 나도 정이 안 가서 작은 환 별로 안 좋아했어 ㅋㅋ

2. 개인로그 쭉 보면 작은 환은 말하는 것도 어색해하고 카메라를 똑바로 보는 걸 되게 낯설어했었음. 방송용 말이랑 아닌 거랑 좀 구분해서 말하는 것도 잘 못 하고? 민간인 티가 유독 많이 나는 그런 멤이었음.

근데 일상로그 오늘 자 보고 차애로 등극☆빠밤★

회사에서 지적받아서 억지로 꾸민 거였으면 첫 멘트에서 티나야 하는데, 우리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카메라로 위아래 비춰주고 세상 스윗하게 웃더라고. 그 냉미남 삘이던 애가 그렇게 꽃 같더라….

그리고 멤버들 얘기 많이 하고 되게 자연스럽게 진짜 편하게 ㅇㅇ 그렇게 이야기 연결하는 거 보고 얘가 데뷔 안 한 연습생인 게 신기했을 지경. 아직도 로그 안 보고 온 뷰어들을 위해 내가 지환이 웃는 짤 쪄옴.

난 앞으로 차애는 작은 환임. 하준이랑 케미 쩔어….]

넘치는 팬심으로 공지환의 바뀐 모습에 대해 길고 긴 글을 올렸던 한 글쓴이 덕에 아이돌 창조의 팬들은 신세계를 경험했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공지환의 수줍은 미소와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가득한 웃음. 평소 냉미남계로 분류됐던 공지환이 햇살계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한방이었다.

그리고 한 팬의 영업용 글에 있던 움짤(움직이는 사진)덕에 로그를 찾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 일은 홈페이지에서 진행되는 멤버 선택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아이돌 창조는 주 단위로 마음에 드는 멤버들을 투표할 수 있었고, 결과는 늘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했다.

팬들 사이에서 일상로그가 돌면서, 덕분인지 늘 하위권에만 머물던 지환의 순위가 조금씩 올라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아직 멤버들도 회사도 공지환도 모르는, 팬들 사이에서 서서히 벌어지고 있는 지각 변동의 시작이었다.

* * *

팬들 사이의 소동을 알 길이 전혀 없는 나는 포잉의 새로운 능력을 경험하고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포잉…! 너 진짜 요정이구나!’

‘님 여태 나를 뭐로 알고 있었던 거임?’

‘아니, 뭐…. 하하,’

‘이 계약자 놈이?’

어색한 웃음으로 포잉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하며 어물쩍거리던 나는 손안에 쥔 물건을 만지작댔다.

모든 음을 일일이 그리며 다양한 악기 색을 확인하는 방식의 전문적인 작곡은 무리였다. 그나마 몇 번 들어보기라도 한 미디 작곡이라는 걸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연습생 주제에 핸드폰을 갖고 있을 리 없었다.

요새는 핸드폰에 멜로디를 찍어보는 무료 프로그램도 많다던데 지금 내 상황에서는 어림도 없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포잉에게 조언을 구했었다.

그랬더니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던 포잉은 어깨에 힘을 바짝 주면서 핸드폰 같은 작은 기기를 던져주었다.

이게 뭔가 싶어서 포잉을 쳐다봤더니, 네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기기의 사용 방법을 알려주었다.

저 기기를 쥐고 눈을 감으면 VR처럼 머릿속에 하나의 방이 떠오르고, 거기에 내가 필요한 모든 것들이 생길 거라고 했다.

요정 족의 기술은 대체 어떤 형태로 발전한 건가 하는 순수한 호기심이 생겨났지만,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자신이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넘어가기로 했다.

단, 내가 기기 조작에 대해 지식이 없는 관계로 초기 설정은 포잉이 해두었다고 했다.

포잉이 내 생각보다 조금 더 능력 있는 요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눈감고 공부하셈.’

‘아… 나에게 잠은 허락되지 않는 거구나….’

‘응. 잠은 죽어서 자고 지금은 일해.’

‘너무해….’

칼 같은 포잉의 대꾸에 시무룩해졌지만, 하루빨리 정윤 실장에게 졸업식의 파일을 전달해야 하는 나는 내 신세야를 외치며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 이러다 잠들면 어떡해?’

‘잠든 거 같으면 내가 두드려 패서라도 깨워줄 거니까 걱정 마셈.’

‘너어무 고마워서 눈물 날 거 같아, 포잉.’

이를 꽉 깨문 나는 거의 현실에 가까운 기분이 드는 공간을 바라보며 요정 족의 기술에 대해 감탄하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실제로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을 테지만, 기분상으로는 컴퓨터를 굉장히 오랜만에 만지는 것 같았다.

“와, 이거 인터넷도 되는 거야?”

“됨. 근데 쓸데없는 데 쓸 시간이 없을 텐데?”

“알아…. 그냥 상상만 해봤어….”

냉정한 포잉의 한마디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이렇게 또 한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밤새도록 포잉의 구박을 들으며 작곡에 관해 공부하던 나는 두 시간도 못 자고 아침을 맞이해야만 했다.

기기를 사용하는 동안에는 현실의 시간보다 기기 안에서의 시간이 더 느리게 흘러가기 때문에, 확실히 효과적인 공부 수단이기는 했다.

다만, 그만큼의 피로도가 사라지지 않고 나에게 남아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잠도 그 안에서 잘 테니 나중에 깨워주면 안되냐고 물었지만, 양쪽의 시간을 맞춰 깨워주는 게 아직은 어렵다고 포잉이 실토했다.

애초에 포잉도 이번에 나를 담당하면서 이 기기를 알게 된 것이라 직접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디테일한 조작은 어렵다고.

혹시라도 몸에 더 무리가 가거나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모르니 잠은 현실에서 자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내가 생각해도 포잉 말이 맞는 것 같아서 더 조르지 않았다.

언젠가 포잉이 능숙해지면 그때는 잘 쓸 수 있겠지.

“아씨, 깜짝이야! 야 너 얼굴이 왜 이래?”

“잠을 좀 못 잤어요….”

기기의 단점이라면, 그 안에서의 결과물을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기억이 모두 휘발되어 사라지기 전, 조금이라도 빨리 회사에 가서 곡의 일부라도 저장해놔야 했다.

이래서 사람은 죄를 짓고 살면 안 된다고, 왜 하필이면 아직 안 나온 곡을 불러서, 왜 거기서 그런 거짓말을 해서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드러누웠는지 얼마 전의 내가 몹시도 원망스러웠다.

쏟아지는 졸음 때문에 제대로 뜨지도 못한 눈으로 옷을 챙겨 입던 나는 하준과 마주쳤고, 하준은 내 얼굴을 보더니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좀 더 자. 왜 벌써 나가.”

“약속한 게 있어서요….”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너무 무리하지 마라. 몸 상해.“

“뒤처진 만큼 더 노력해야죠.”

“뒤처지긴. 다른데 들리지 말고 바로 회사로 가야 돼. 알지?”

하준과 진솔한 대화를 나눈 뒤 착실히 생활한 것들이 나에 대한 신뢰로 돌아온 건지, 숙소에서 무단이탈했던 나를 생각보다 별다른 말 없이 보내주었다.

사실 차라리 잡아서 재워주길 바라는 아주 작은 욕망도 있었지만 모두 부질없는 것.

내가 나서서 무언가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하준에게는 꽤 신선한 모습이었는지,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준아, 네 팬 죽는다….

‘님, 빨리 안 나감?’

‘가요, 갑니다. 간다구요….’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내 요정님은 밍기적거리는 내 등짝을 솜방망이로 사정없이 두드리며 재촉하고 있었다.

회사까지의 길이 평소보다 배는 더 까마득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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