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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6)화 (6/456)

6. I´ll be there(2)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고, 나는 공지환이 그토록 좌절하고 발버둥 쳤던 이유를 떠올렸다.

“제가 되게 잘난 줄 알았거든요? 근데 세상에 나와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요. 노래든 춤이든 저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번에는 하준이 내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 꺼내놓는 이 말들이 이전의 ‘내’가 팀에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삽질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좀 마음도 못 잡고 그랬는데 병원에 누워있을 때 그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내가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요.”

“어떤 면에서?”

“지금 이 사람들이 없다면 내가 온전히 혼자 힘으로 서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요. 전에는 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이전의 ‘나’는 지금 멤버 중 일부가 자기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을 했었던 거 같다. 질투도 좀 했던 것 같고. 진짜 택도 없는 생각을 하고 살았구나.

“저 형이 있는 팀에서 데뷔하고 싶어요. 다 같이.”

“너… 진짜 괜찮냐? 입원했다 오니까 왜 지환이 얼굴을 한 다른 애 같아.”

“하하하, 그냥 철들었나 보죠!”

“입원한다고 철드는 거면 애들 전부 다 하루씩 입원시키겠다.”

방송에서도 개별적으로도 아무도 민하준의 데뷔를 확정 지어 말하지 않았지만, 회사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준은 이번에 망하든 어떻게 되든 데뷔한다고.

회사에서는 영빈이나 하준의 데뷔를 거의 확실시했고, 이 프로그램은 사실상 둘과 함께할 멤버를 고르면서 그룹의 인지도를 쌓고, 실력을 다듬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더욱 ‘나’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냥 지금처럼 합도 잘 맞고 잘 따르는 애들만 잘 챙겨도 무난하게 무대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더 궁금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하고.

“준이 형, 저한테 왜 신경 써주세요?”

“왜냐니?”

“그… 저 탈락이 유력한 사람이잖아요. 형은 아니고요.”

“야, 공지환.”

“얘기 들어서 알고 있어요. 팀장님도 솔직히 말해주셨어요.”

답답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하준은 나를 잡아끌어 낡은 그네에 태웠다.

“그런 거 생각하고 살았으면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겠어?”

“네?”

“몰라, 그런 거. 그냥 지금은 내가 챙겨야 될 애니까. 회사 사정이나 뭐 그런 건 난 모르겠어.”

“에이, 우리 중에 형이 모르면 누가 알아요.”

자기도 옆에 있는 그네에 타더니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그게 왠지 귀여워서 웃어버렸다.

“왜 웃냐. 그네 무시해?”

“아뇨, 그냥 형이 좀 귀여워서요.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까분다. 그네나 타다 들어가자. 너 이제 진짜 밖에 혼자 못 나간다.”

“예이~.”

어느샌가 포잉이 돌아와 그네 맞은편에서 우리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지만, 모른 척 신나게 그네를 탔다.

내가 살면서 언제 민하준이랑 그네를 다시 타보겠나 싶어서.

그리고 또 몇 가지 소소한 얘기들, 같이 데뷔를 하게 된다면 이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 시시콜콜한 대화는 순간이지만 내일부터 다시 시작될 전쟁 같을 하루를 잊을 수 있게 해줬다.

그리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잡지 인터뷰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라, 갑자기 팔에 소름이 쫙 돋았다.

민하준이 공개했던 에피소드였다. ‘아이돌 창조’ 촬영 도중 갑자기 이탈할 뻔한 멤버가 있었다 했다. 그때도 하준이 따로 데리고 나가 숙소 가까운 공원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를 다독이며 좋게 끝냈다는 내용이었다.

이 인터뷰 내용을 지금 내 상황에 대입해보면, 어쨌든 데뷔 전 한 번은 하준이 누구라도 이렇게 불러 따로 속을 터놓고 얘기하는 일이 생겼으리라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나라는 새로운 변수가 생겨도 앞으로 내가 알고 있는 언래블의 활동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만, 그놈의 변수가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디서 어떻게 변경이 될지 알 수 없어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이런 내용 비슷한 영화를 봤던 것도 같은데 뭐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런 걸 타임 패러독스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니, 포잉은 내가 전에 살던 세계와 여기가 같지만 다른 세상이라 했는데, 그럼 이게 아닌가?

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수히 뻗어 나갔다. 한참을 굴려보다, 머리에 과부하가 올 것 같아 모두 때려치워 버렸다.

뭐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데 지금부터 고민해서 무엇 하나 싶기도 했고. 이래서 사람들이 나보고 긍정적이라고 하는 건가 싶어졌다.

갑자기 모든 게 다 귀찮아져서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준이 형, 달이 참 예쁘네요.”

“그러게, 예쁘네.”

아무래도 이 형도 멍 때리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멍한 상태로 조금 더 그네를 타다 숙소로 복귀했고, 각자의 침대에 누웠을 때 눈앞에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 업데이트 이력이 존재합니다. 상태창을 확인하세요.

한가롭게 옆에 누워서 그루밍 중이던 냥아치 요정님은 나를 힐끔 보더니 별다른 말 없이 다시 그루밍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저러는 걸로 봐서 큰 문제 없을 것 같아, 속으로 상태창을 외쳤다.

[상태창]

이름 : 공지환

직업 : 의욕을 불태우는 연습생

Lv : 5

특성 : (미정), 아낌없이 주는 나무(1)

스킬 : 너의 목소리가 들려(1), 독종(3), 내적 친분(1)

뭔가 이상한 게 생겼다!

포잉을 툭툭 치며 상태창을 보라고 가리켰지만 신경도 쓰지 않아 내 속만 타들어 갔다.

‘포잉, 이거 설명해 줘.’

‘포잉, 이거 설명해달라고. 이거 안 들리는 건가?’

‘포잉!! 이거 설명 좀 해줘!! 아까 스킬이 막 갑자기 써지고 그랬단 말이야!’

‘님, 그만하셈. 머리 울린다!’

처음 한 번은 혹시나 해서, 두 번째는 얘가 날 무시하나 하면서 말을 걸다가, 세 번째는 나름 절박한 마음으로 외쳤다.

‘냥아치…. 내 요정이잖아. 날 도와달란 말이야. 오늘 종일 나 버리고 놀러 갔다 왔잖아. 특성은 뭐고 스킬 이건 다 뭐야?’

‘좀 천천히 말하셈. 한 번에 하나씩 물어보면 누가 잡아먹음? 그리고 놀기는 누가 놀고 왔다는 거임?’

‘네가 대답을 안 해주니까 그렇지.’

‘스킬은 써봤으니까 알 거 아님? 걍 써보셈. 특성은 님 성향에 따라 결정되는 건데 패시브 스킬 같은 거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어딜 봐서 스킬이야. 이거 뭐야, 무섭잖아.’

‘스킬 이름 말하고 설명이라고 해보셈. 그럼 설명 보일 거임. 나 피곤하니까 부르지 말고 좀.’

종일 날 버리고 놀고 온 내 냥아치님은 획 소리가 날 것처럼 등 돌려 눕더니 정말 자려는 듯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렇게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또 불쌍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어디서 뭘 하다 왔길래 멀쩡했던 고양이가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건지 모르겠지만, 골골송을 부르는 걸 보니 이게 정답이었던 것 같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이 특성과 스킬들을 파악하는 거였다. 이게 대체 뭔지 잠들기 전까지 알아둬야 오늘처럼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설명.’

[특성 -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내 사람을 위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당신을 위한 특성.

2명을 지정하여 그 대상을 도와주세요.

일정 신뢰도가 넘을 경우 상대방과 자신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스킬 혹은 보너스를 얻을 수 있습니다.

※ 5레벨 단위로 지정할 수 있는 인원의 수가 증가합니다.

이게 뭐야? 신뢰도는 어떻게 알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게 뭔데?

아무리 읽고 읽어도 너무 모호했다. 좀 더 직관적으로 설명해 줄 수는 없는 거였을까.

이거 누가 만들었어? 와, 진짜. 특성 만들기 귀찮았으면 그냥 만들지를 말지….

“하….”

“지환아, 왜?”

“아, 아니에요.”

“딴생각 말고 오늘은 푹 자. 네 몸도 아직 쉬어줘야 할 거야.”

내 한숨 소리가 컸는지 자는 줄 알았던 영빈이 말을 걸어왔다.

내가 누워있는 방은 김영빈, 강세빈, 나 이렇게 3명이 쓰는 방이라 그나마 깔끔한 편이었다. 김영빈은 자기 영역은 확실히 치우는 편이었고, ‘나’도 누나의 주입식 교육이 빛을 발해 사람 사는 몰골로는 살고 있었다.

무슨 내용이 나와도 놀라지 않고 빠르게 스킬 내용만 확인한 후 잠을 청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특성 설명도 저 지경인데 설마 스킬 설명까지 이러진 않겠지. 진짜 설마.

[스킬 - 너의 목소리가 들려]

혹시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고 있지는 않나요?

내가 주변에 폐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짝사랑하는 상대가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한 당신.

지금 이 스킬을 사용해보세요. 상대방의 속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단, 한번 스킬을 사용하면 직접 종료하지 않는 이상 30분간 지속되며, 이미 스킬을 사용한 상대에게는 3시간의 쿨타임이 주어집니다.

※ 상대방을 응시하며 스킬 이름을 말하면 발동됩니다.

랭크업을 통해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상대방의 인원수가 증가합니다.

[스킬 - 독종]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당신.

누구보다 집요하고 끈기 있고 은원을 잊지 않는 당신을 위한 스킬.

당신의 성공을 위해 육체와 정신을 더 단단히 만들어 줍니다.

정확한 타이밍을 노려 사용하세요.

※ 무분별한 사용 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랭크업 시 유지 시간이 증가합니다.

[스킬 - 내적 친분]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게 힘드신가요?

이 스킬은 당신이 상대방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만큼 상대방도 당신을 친근하게 생각하도록 도와줍니다.

※ 지나친 사용은 잘못된 만남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랭크업 시 내적 친분을 다질 수 있는 상대방의 수가 증가합니다.

설명서를 읽었는데, 그 설명서에 대한 설명서가 필요한 느낌. 그게 지금 내 심정이었다.

요정들은 한글을 잘 모르나? 번역에 문제가 있는 건가? 지금 팔자 좋게 잠든 요정님, 이게 정말 나한테 도움이 되는 거 맞아요?

고롱고롱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포잉의 동그란 뒤통수가 이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설명을 해주라고 요정이 붙어 있는 거 아닌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내일 짬이 날 때 이 냥아치 요정을 짤짤짤 흔들어서라도 제대로 된 내용을 물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용만 보면 좋은 게 좋은 거라 적당히 조절해서 쓴다면 지금 내 입장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경고 문구가 매우 불성실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마치 알바를 구하기 위해 구인 광고를 클릭했는데 ‘급여 협의, 가족 같은 업무 분위기’라고 적힌 것을 본 것 같달까.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더니 다른 몸으로 살게 되니까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

혼나고, 혼나고, 눈치 보고 정신과 몸이 혹사당하고.

내가 이래가지고 언제쯤 우리 애들 발밑에 꽃잎을 깔아줄 수 있을지 몰라 속이 답답해져 갔다. 무엇보다 당장은 나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고 데뷔 멤버 결정에 영향을 주는 홈페이지 투표에서도 좋은 점수를 얻어야 했다.

1차 평가가 이제 일주일 후인데 나 과연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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