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한테 왜 이러세요?
여늬님 [우젤귀 님 티켓 구하심?]
[ㅋㅋㅋㅋ 제가 드디어ㅠㅠㅠㅠㅠ 갑니다ㅠㅠㅠ]
XMAS선물님 [오 ㅊㅊㅊㅊㅊ 간만에 같이 찍겠네요 ㅋㅋㅋ 올콘 가시나여?]
[ㅋㅋㅋ남자는 올콘 아닙니까??ㅋㅋㅋ]
여늬님 [ㅎㅅㅎ… 저번주에 피켓팅하고 울던 사람 어디 감?]
[앗… 여늬 님 쉿….]
XMAS선물님 [ㅋㅋㅋㅋㅋㅋㅋㅋ아 이번 영상 봤어요?? ㅠㅠㅠ울애기들 미쳤어요ㅠㅠㅠ]
“흐흐흐….”
“아오, 깜짝이야! 저리 안 꺼져??”
냥톡을 울리는 무수히 많은 메시지들.
까칠하다 못해 포악한 누나의 발길질에도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내 새끼들 콘서트 1차 추첨에서 떨어지고 2차 티켓팅까지 실패했었다. 식음을 전폐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실의에 빠져 방에 처박혀 울었던 게 불과 저번 주였다.
“누님~. 충성을 다하겠슴다!”
“이게 입만 열면 구라야. 굿즈 잘 챙겨와라. 니 껀 못 사도 내 껀 사 와.”
누나가 아무리 까칠하고 날카롭게 대해도 지금 나에겐 천사의 목소리 같았다.
그런 나에게 초대권을 ‘어쩔 수 없이’긴 하지만 양도해 줬으니 업고 다녀도 부족할 지경.
친한 홈마들과 눈물겨운 티켓 구하기를 소소하게 떠들며 전날부터 편집하던 영상을 만지기 시작했다.
* * *
나는 아이돌 그룹 Unravel의 남팬이다.
아이돌에는 딱히 관심도 흥미도 없었고 그냥 채널 돌리다 예쁜 여돌 나오면 우와 하는 딱 그 정도였던 내가 아이돌, 그것도 남자 아이돌에 입덕한 건 순전히 누나 덕이었다.
늦둥이로 태어난 탓에 유달리 부모님의 걱정을 달고 살던 나는, 무사히 잘 자라 대학교까지 입학한 후, 곧바로 군대로 도망가 버렸다.
첫사랑의 아픔 같은 건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게 지루하고 즐겁지 않았다. 친구들이 그렇게 떠들어대던 캠퍼스 라이프의 즐거움 같은 것들이 나만 비껴간 것 같았다.
정신적으로 몰리면 나도 사람이 좀 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으로 1학년 1학기 끝나자마자 입대를 했고, 무지한 그때의 나를 욕하며 그 긴 시간을 버텼다.
왜 형들이 군대를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고 했는지 몸소 체험했달까.
박 병장 그 새끼는 지금도 간혹 꿈에 나오는 통에 진저리치며 잠에서 깨곤 했다.
빌어먹을 놈. 뒤통수 조심해라, 진짜.
더 피폐해진 정신으로 현실에 내동댕이쳐지고 복학과 중간, 기말고사를 거쳐 휴학까지 이르고 나니 방구석 폐인이 따로 없었다.
그런 나를 짠하게 보던 누님이 한마디 던졌다.
“야, 이거나 봐봐.”
“아, 뭐야.”
“닥치고 봐.”
입덕 후에 누나랑 치킨 뜯다가 들은 얘기지만, 웃지도 않고 아무것도 안 하는 나를 부모님이 너무 걱정해서 뭐라도 해줘야 했는데, 누나는 너무 바빴다고.
직장 생활 덕에 덕질할 시간도 부족했던 누나는 나를 끼고 덕질 하기로 마음을 정했고, 그때 튼 영상이 아이돌 Unravel의 결성을 위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제목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촌스럽다.
세상에, 아이돌 창조라니. 내 손발 무엇….
개인적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 자체를 싫어했지만, 얌전히 하라는 대로 하면 용돈을 하사하겠다는 말에 거부할 수 없이 영상을 보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입덕할 줄은 몰랐지.
아무리 방송이라지만,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애들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땀 뻘뻘 흘려가면서 구르고 욕을 먹는 장면은 썩 보고 싶은 그림이 아니었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뭘 하려면 적어도 밥은 먹이면서 해야지.
동고동락하던 애들 중에서도 또 거르고 어쩌고, 그게 너무 짜증나서 누나한테 비아냥거렸다. 어차피 짜고 하는 거 아니냐고.
시끄럽다는 의미로 한 대 얻어맞았고, 그 후로는 얌전히 입 다물고 동영상에 시선을 고정했다.
애들은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버틴다고 구석에 숨어서 울고, 사람들 앞에서는 퉁퉁 부은 눈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그냥 좀 쟤들이 잘됐으면 좋겠다 싶었던 게.
그렇게 누나 때문에 영상을 몇 날 며칠을 보고, 궁금해져서 노래도 좀 찾아서 듣고 하다 보니까 어느새 누나랑 같이 티켓팅도 하고 있더라.
그리고 언제부턴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애들을 찍고 영상을 편집하고, 소위 말하는 홈마가 되어 있었다.
소소하게 틈날 때마다 찍었고, 친해진 사람들끼리만 공유했기에 네임드 홈마는 아니었지만, 내가 찍은 기록 안에 남아있는 무대 위 언래블의 모습이 좋았다.
내 새끼들 잘생긴 거, 엄청 노력하는 거, 노래 기깔나는 거 세상 모든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고 꽃길 걸었으면 좋겠고.
모든 팬의 마음 아닌가?
‘우리 애들이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
그렇게 내 활동명은 ‘우젤귀’가 되었다.
* * *
그렇게 결전의 날이 밝았다. 미리 순번을 정한 덕에 밤샘은 안 하고, 당일 새벽 첫차로 주 경기장에 도착했다.
사방에 일찍부터 미리 자리 잡고 있던 솜뭉치들이 보여서 나도 모르게 헤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솜뭉치가 뭐야, 귀엽게.”
우리 래블이들이 사다리 타기까지 해가며 정한 팬덤 명이 솜뭉치였다.
우리 애들은 어떻게 머릿속까지 이렇게 귀엽지?
“우젤귀 님, 여기요!”
“아, 세진 님!”
밤새우느라 고생했을 동지들에게 주섬주섬 싸 온 먹을 것들을 풀고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이 훌쩍 잘도 흘러갔다.
“아, 저 건전지 사 오는 거 깜박했어요…. 하아, 멍청이.”
“아, 그럼 제가 가서 사 올게요. 먹을 것도 부족하니까 겸사겸사.”
공연 시간은 2시간 30분이지만 늘 그 시간은 기본으로 넘기는 애들 덕분에 여분의 건전지는 필수였다.
다들 눈 밑이 퀭한 걸 보니 덕심을 불태우느라 며칠은 다들 잠을 못 잔 거 같아서, 이중에 제일 멀쩡한 내가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가까운 편의점은 이미 품절이라 거리가 좀 되는 곳까지 걸어갔다 오는 길이었다.
뒷모습만으로도 누군지 알 것 같은 그림자가 초조한 듯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 세빈이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듯 마스크와 모자로 가리고 그늘에 있었지만 내 눈은 속일 수 없었다.
홀린 듯 근처로 걸어가자 일행과 나누는 대화가 언뜻 들렸다.
“석환이 형, 진짜 없어? 형 알잖아….”
“알지, 아는데 사탕이 다 팔리고… 누구세요?”
인기척을 느낀 매니저가 세빈이를 가리듯 서며 내 앞을 막아섰고, 나는 나도 모르게 편의점 봉투에서 레몬 맛 막대 사탕을 꺼내 내밀었다.
“저기… 이거 찾으시는 거 같은데 가지세요.”
“엇, 혹시 솜뭉치…?”
“…네. 비밀로 할게요.”
“감사합니다…. 사인이라도…?”
세빈이는 공연 전에 느끼는 극도의 긴장감을 늘 레몬 맛 막대사탕을 먹으면서 푸는 귀여운 버릇이 있었고, 팬들은 그런 세빈이를 귀여워하며 사탕을 꼭 갖고 다녔다.
매니저 뒤에 있던 세빈이 빼꼼 얼굴을 내밀더니 수줍게 내민 막대 사탕을 받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들이 볼 땐 다 큰 남자애 둘이 사탕 내밀고 수줍게 말하는 장면이 웃길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매우 진지했다.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긴장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팬이 내 돌을 만났으니 떨리는 건 맞는데, 자기 팬한테도 내외하는 우리 세빈이. 역시 우리 애가 제일 귀엽다…!
그렇게 덕계못을 부수며 내 인생 가장 찬란한 날이 다가왔다.
“손 안 씻을 거예요. 하… 오늘 공연 파이팅…!”
“사탕 고마워요. 더 열심히 할게요…!”
사탕을 흔들며 먼저 공연장 쪽으로 사라지는 세빈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극구 사탕값을 주겠다고 해서 셀카 한 장을 조심스럽게 부탁했더니 같이 찍자고 해주었다.
사인해준 것만으로도 감격이었는데….
“역시 우리 래블이들은 모두 천사야….”
아이돌이 특정 팬과 가까이 지내면 다른 팬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마음이 상한다. 언제나 모든 팬을 공평하게 사랑해주는 언래블이었기에, 이 사진은 누나랑만 공유하기로 마음먹었다.
[누나 나 계탐. 역대급임. 진짜 우리 래블이드류ㅠㅠ]
그게 누나에게 보낸 내 생 마지막 메시지였다.
사진을 먼저 보내고 메시지를 써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공연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로지른 주차장에서 미친듯한 속도로 달려오는 차가 있었다. 난 그 차를 보지 못한 채 차에 치여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악수하고 사인받고 같이 사진까지 찍어서 정신이 혼미한 나는 주위를 살피는 걸 깜박했고, 그걸 둘째 치더라도 주차장에서 그 속도로 달려드는 정신 나간 놈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서도 해본 적 없었다.
봉투 안의 물건이 나와 같이 허공을 날고, 이성이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방이 고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
그리고 그 순간, 내 몸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방심하고 있다가 문지방에 새끼발가락만 부딪혀도 그렇게 아픈데,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온몸에 쇠꼬챙이 수백 개가 전신을 쑤시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꼬챙이가 몸에 꽂혀본 적은 없지만, 조금 굵은 주사에 찔리기만 해도 아프지 않나. 이건 그보다 수천, 수만 배는 아팠다.
생리적인 눈물이 절로 터져 나왔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꺽꺽대는 소리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 시X… 누나가 앞에 잘 보고 다니랬는데. 엄마, 아빠….’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곧이어 내 몸에서 흘러나왔을 피가 먹물처럼 시멘트 바닥을 잠식해갔다.
의식이 흐려지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지만, 가장 마지막에 남은 것은 ‘덕계못’ 이 단어라는 게 코미디였다.
덕후는 계를 타지 못한다는 뜻을 가진, 내 입버릇 같은 말이었는데, 계 타자마자 죽다니 이건 너무 억울하잖아.
이윽고 이명 같은 삐 하는 소리와 함께 통증도 의식도 사라졌다.
* * *
‘아… 눈부셔. …어?’
눈이 부실 수가 있던가? 내가 살아 있나?
뒤통수라도 맞은 듯한 느낌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 내 양 손바닥 위에 올라갈 듯한 크기의 고양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나 살아 있…?”
“아냐. 님 죽었어.”
“아, 이거 꿈이구나. 그러면 그렇지 내가 세빈이를 만날 리가….”
“아, 빨리 정신 안 차림?”
자리에 드러누우려던 내가 다시 벌떡 일어난 것은 뒤통수를 후려치는 강한 통증 때문이었다.
“아오, 뭐야!!”
“님, 나 바쁘니까 좀 앉아서 제대로 들어.”
이윽고 이어진 이 고양이, 아니 자칭 안내자인 포잉이라는 요정의 설명은 웃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날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고?”
“하, 님 바보임? 다시 태어나는 거랑 새 육체를 갖게 되는 건 엄연히 다른 일임.”
“어쨌든 살아나는 거잖아.”
“다르다고. 님은 책도 안 봄? 지구에 그런 소설 많댔는데.”
“내 새끼들 볼 시간도 부족한데 책 볼 시간이 어딨어.”
“이래서 초짜 데리고 일하는 건….”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알 길은 없지만…. 아니 사실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꿈속에서는 맞아도 안 아프다는데 방금 맞은 건 많이 아팠지만.
어쨌든 나는 죽었고, 내 간절한 마음이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을 불렀다고 했다.
예전에 어릴 때 본 램프의 지니 같은 그런 것.
그거랑 같은 거냐고 물어봤더니 굉장히 한심한 표정으로 날 보더라.
고양이 표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안됐다. 애당초 말을 하는 것도 말도 안 되긴 했지만.
“님 선택지는 3개야. 이 중에 하나만 고를 수 있고 한 번 고르면 무를 수 없음.”
“왜 하필 3개야? 더 많으면 안 되는 거야?”
“한국 사람들은 3이라는 숫자 좋아한다던데 님은 아님?”
“그럼 다른 나라 사람들은 더 많은 선택지 주냐?”
“아니. 그냥 골라.”
세상에 이렇게 칼 같은 사람, 아니 고양이는 처음 봤다.
자기 할 말만 다다다 하더니 귀찮다는 듯 앞발을 움직였고, 내 눈앞에는 반짝이는 불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 안정형
- 노력형
- 랜덤
게임 인터페이스처럼 생긴 익숙한 모습의 창에 대충 이해는 했지만,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저 불안한 선택지는 무엇?
“저기, 고양 님? 포잉? 이거 설명이 필요한데.”
“어차피 설명해도 님은 이해 못 할 거잖아.”
“노력이라도 해보고 판단하면 안 되겠니…?”
세상에 고양이가 한숨 쉬는 걸 본 적 있는 사람?
저요, 저. 그것도 되게 노골적으로 보란 듯이 한숨을 쉬었다. 저건 백 프로 일부로 그러는 게 틀림없었다.
이해하기 힘든 단어나 설명은 둘째치고 일단 요약을 해보자면, 안정형은 전체적인 밸런스가 잘 잡힌 거고 노력형은 말 그대로 노력 여하에 따라 능력의 상승 폭이 크게 달라지는 것.
그리고 랜덤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라고 했다.
다만, 이 길고 긴 설명을 다 듣고 나니, 왜 설명하기 귀찮아했는지 이해할 수는 있었다.
자칭 요정이라는 이 종족의 특성상 대상자가 요구할 경우에는 최대한 많은 설명을 해줘야 한다는 제한이 있다고 했다.
“결론은 뭘 선택해도 거기서 거기네?”
“그러니까 빨리 결정하고 빨리 갑시다.”
“너도 같이 가?”
어느 정도 같이 이야기를 하다 포잉과 조금 내적 친밀도를 쌓은 나는 슬쩍 옆에 앉아 포잉의 털을 쓰다듬어주었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나로서는 이게 꿈이든 무엇이든 이제는 상관없어졌다.
못마땅하다는 듯 앞발로 내 팔을 툭툭 건드리던 포잉은 이내 그것마저 귀찮았는지 나를 내버려 두었다.
“제대로 소원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같이 있어야 해. 대충 던져놓으면 여러 사건 사고가 터질 수 있으니까.”
“그래?”
“뭐야, 님 왜 그렇게 웃음?”
“랜덤.”
“????”
펄쩍 뛰다시피 한 포잉은 날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말한 것이 적용된 건지 앞에서 깜박이던 창이 스르륵 허공에 녹아들었다.
“님 미침? 뭐가 어떻게 될 줄 알고 랜덤이야!!”
“망하지 않게 안내자가 잘 알려주겠지.”
“아, 난 망했어. 망했다고!!”
하악질까지 해대며 화를 내던 포잉은 한참 후에야 진정되었고, 그사이 길길이 날뛰는 포잉을 말리던 내 몸은 파김치처럼 축 늘어져 버렸다.
“난 몰라. 님 알아서 해.”
“하하,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사실 이때까지 난 이게 꽤 구체적이고 재밌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램프의 지니라니, 딱 동화 속 이야기였으니까.
운이 좋으면 살아날 테고, 운이 나쁘면 혼수상태에서 이런 꿈을 계속 꾸고 있겠지, 딱 그 정도였다.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있잖아,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데.”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거야? 많이 슬퍼하셨을 텐데.”
“…님은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가는 게 아님.”
“응?”
“또 다른 님이 살던 세계에 님이라는 존재가 새로 생기는 거임. 자세한 건 겪어보면 알게 될 거임.”
“아….”
꿈속에서도 자비는 없는 모양이었다.
못난 아들 때문에 평생 걱정만 하신 부모님과 화가 많지만 늘 나를 챙기려 애쓴 누나는 그렇게 계속 ‘나’를 잃은 채로 살아야 하는구나.
입안이 많이 썼다.
내 꿈인데도 어째 결말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앞으로 겪게 될 상황이 어떤 건지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이 거만한 고양이는 겪어보면 알게 될 거라는 말만 하며 자신을 들어 올리라고 내 손을 툭툭 쳐댔다.
잠시 동안 눈을 마주한 채 나를 바라보던 포잉은 툭 한마디를 던지고 내 이마에 깜찍한 핑크 젤리를 얹었다.
“어쨌든 님이 택한 거니까 날 원망 마셈.”
그리고 눈을 뜬 나는 다시 한번 누나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누나가 계약서에 함부로 사인하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