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인화 물산 회장실 안의 분위기는 따듯했다.
나는 어깨를 주무르며 할아버지에게 한마디 했다.
“일이 있어서, 제가 제갈 총괄 사장님을 모시고 나가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씁쓸하지만, 엄청나게 커버린 손자의 얼굴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알아서 잘해봐.”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제갈 집사를 바라보았다.
“이제 이 늙은이를 못 본 척하지 말고, 찾아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줘.”
“계속 찾아뵙겠습니다. 저는 영원한 제갈 집사니까요.”
나는 제갈 집사를 자동차에 태우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내일 일을 시작할 이유가 없습니다. 첫 번째 일정은 DW 해운부터 진행하지요.”
제갈 총괄 사장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
“벌써 일이 시작되는 것입니까?”
“아직 오전이니 바로 하시지요.”
나는 웃으면서 제갈 사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아무리 봐도 엄살.
“재계의 모든 기업을 모니터하고 경영진을 평가하지 않았습니까? 할아버지께 보고할 것이니 대충 하지는 않으셨겠지요.”
제갈 사장의 신음이 길다.
“처음 해야 하는 일치고는 무게가 상당하군요.”
“이제 시작입니다. 사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DW 해운에 도착한다고, 10분 전에 알렸다. 그러자 경영진들이 미친 듯이 뛰어 밖에 까지 나와 있었다.
절대적인 주식을 가지고 있는 나는 '주인' 그 자체. 말 한마디로 여기 있는 경영진의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능력자.
나는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경영진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바로 사장실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친절하게 할 수도 있지만, 최악의 상황까지 온 경영진을 질타하는 의미와 누가 이곳의 주인인지를 직원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비서실 전체가 나와서 인사했는데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만 들어오고 나머지는 모두 밖에 나가 계세요.”
제갈 총괄 사장이 해운의 사장을 노려보자 그는 숨도 쉬지 못하는 얼굴이 되었다.
나는 묻지도 않고 상석에 앉았다. 누가 이 기업의 지배자인지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일을 하는 것. 앉기 무섭게 사장을 몰아붙였다.
“제가 완도, 진도에서 석유를 치우고 있는 동안 어디 계셨습니까?”
해운 사장은 머리를 들지도 못했다.
“죄송합니다. 당연히 책임을 지고 물러날 줄 알고 칩거하고 있습니다.”
“물러나면 다입니까? 마지막까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어야지요. 그것이 사장의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 아닙니까?”
“다음 사장이 뭔가 수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아서, 그런 퍼포먼스는 하지 않았습니다. 회장님.”
어느덧 나의 호칭은 회장이 되어 있었다.
나의 시선이 제갈 총괄 사장을 향했다.
“어떻게 할까요? 총괄 사장님. 저는 해운 사장의 유임에 부정적입니다.”
그러자 제갈 사장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해운 정형식 사장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직원들을 잘 관리하면서, 최근 5년의 어두운 터널을 버텨낸 사람입니다. 지략과 덕이 없으면 다른 해운처럼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연봉을 깎고 해운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또한 최대한 정리해고를 적게 해서 해운 경기가 다시 살아나는 지금,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고 평하겠습니다.”
“너무 좋게 보시는군요.”
“미래를 내다보고 끝까지 배를 팔지 않은 것은, 정말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총괄 사장님이 그렇게 평가한다면 어쩔 수 없군요.”
제갈 총괄 사장이 머리를 숙였다.
“다시 기회를 주세요.”
“알겠습니다. 1년간 유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평가하도록 하세요.”
“제가 정 사장을 잘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미 자동차 안에서 해운 사장을 유임하기로 이야기했지만, 나는 누가 회사의 주인인지 알리고 제갈 총괄 사장이 경영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 시키기 위해서 연극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해운의 정 사장을 바라보았다.
“한양 은행에 이야기해 놓을 테니 2,000억 정도 받아 가세요. 급한 자금은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해운 정 사장은 흥분하여 벌게지면서 머리를 몇번이나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형받으리라 생각하고 재판정에 들어갔는데, 훈장을 받고 나온 느낌. 온몸에 털이 바짝 스는 흥분감을 느끼고 있었다.
2,000억이면 지금까지의 급한 채무는 모두 정리하고, 배를 돌리는 데 아주 요긴하게 쓰일 것이었다. 앞으로 몇 년이면 알짜 기업이라는 소리를 들을 자신이 있었다.
나는 그의 자신감 있는 표정을 보며 말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제갈 총괄 사장님께 말씀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해운 간략 보고서를 확인하며 말했다.
“연봉을 깎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돈이 들어오면 그것부터 한 번에 결산하여 직원들에게 돌려주세요. 사기가 살아나야 회사가 잘 돌아갑니다.”
정 사장은 이제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회사를 위해 분골쇄신하겠습니다.”
정말 뼈를 갈아 넣을 분위기에 벌게진 얼굴. 해운은 크게 걱정할 것이 없어 보였다.
“DW 해운은 엘도라도 그룹으로 합병될 겁니다. 그렇게 알고 계세요.”
모두가 예상했던 일이었다.
해운이 가지고 있는 헬기를 불러서 옥상에 대기시켰다. 우리는 정 사장이 90도로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을 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리가 가는 곳은 거제도 있는 DW 조선소.
제갈 총괄 사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해운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유임시키고 평가할 것이라고 했으니 최대한 발버둥을 칠 겁니다. 시장 상황도 좋으니 정 사장 정도면 잘해 나갈 겁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해운에 대해서 뭘 알겠는가? 제갈 총괄 사장의 눈을 믿는 것이다. 모든 것은 시간을 주고 결과로 판단하면 된다.
“삼성동 엘도라도 본사에 제갈 사장님의 방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들어오세요. 큰 회장님도 계십니다.”
제갈 사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지난번에 큰 회장님을 뵈었습니다. 건실하게 인화자원을 운영하고 계시더군요.”
“사장님이 그곳까지 관리하셔야 할 겁니다.”
“큰 회장님께 정중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영의 기본 틀은 경영과 자금을 나누는 것으로 했다.
“경영은 제갈 사장님이 하시고 자금은 서진식 상무님이 관리할 겁니다. 두 분이 최대한 손발을 맞춰보세요. 제가 최대한 돕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달리고.
아버지 회장님은 관리하고.
제갈 사장은 경영과 인사를.
서진식 상무는 자금을 살피고.
이준석 상무는 집행을 감사한다.
이것으로 엘도라도 그룹의 기본 인사는 끝났다고 볼 수 있었다.
“내가 주식을 가지고 있는 모든 기업을 엘도라도 그룹으로 묶는데 얼마나 많은 자금이 들어가겠습니까?”
제갈 사장의 대답은 바로 나왔다. 내 회사의 주식 관계에 대해서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회장님께 몇 번이나 보고 했던 내용이라 거칠 것이 없었다.
“회장님께서 계열사마다 많은 주식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룹을 만들기 위해서 줄 세우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좀 더 회장님의 그룹 지배력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상당히 있습니다. 자금도 많이 들어가고요.”
“얼마나 예상하십니까?”
“최대 5천억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간을 넉넉히 잡아 1년이면 가능할 겁니다.”
“자금은 서 상무님에게 말씀하시면 제가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갈 사장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자금이 그렇게까지 여유가 있지 않으니 몇 개의 메이저 은행에 대출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워낙 원자재 알짜 기업들이니 서로 돈을 빌려주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나도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제갈 사장에게 말하지 않은 자금은 많았다.
“그 이야기는 DW 조선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야기하시지요.”
“네 알겠습니다.”
“조선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제갈 사장의 얼굴이 이제서야 조금은 구겨졌다.
“조선이 가장 문제입니다. 호주에서 진행하던 해상 부유식 액화가스 플랜트가 3개를 다 완료했는데, 발주를 넣은 회사가 파산 직전입니다. 천연가스 파이프를 넣으려고 했던 곳에 산호초와 그레이트 리프가 있는 곳과 그렇게 멀지 않아 아무래도 개발이 힘들 것 같습니다. 자연환경가들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지요. 그래서 무려 25억 불(3조)이 거기에 묶여 있습니다.”
돈이 돌지 않는다는 것은 회사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액화가스 플랜트는 3개 모두 새로운 주인은 찾지 못한 것입니까?”
제갈 사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털도 뽑지 않고 거저먹으려고 하는 놈들만 손을 내밀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중국 사기꾼들이 설친다고 하더군요.”
“잘라 버리세요.”
“은행에서 빌린 돈이 너무 많아, 금융비용이 엄청나므로 사기꾼도 함부로 다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것만 해결하면 됩니까?”
제갈 사장이 쉽게 입을 열지 못했는데,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아니요 또 있습니다. 최근에 나이지리아에서 또 하나의 영수증이 날아왔습니다.”
해상 부유식 석유 플랜트 2개 20억 불(2조 5천억)의 ‘나이지리아 해상 석유 개발 사업’이 쿠데타로 엎어지면서 납품할 수 없어진 것이었다.
조선 기술의 꽃이라고 불리는 FPSO (Floating Production Storage & Offloading Unit)를 확보하면서 큰돈을 벌 것이라 그룹에서 큰 기대 했는데, 그것이 거꾸로 독이 된 것이었다.
이래서 무엇보다 경영이 중요한 것이었다.
지금의 사장은 순수한 기술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경영을 너무도 몰랐다.
호주의 가스 개발 사업이 무너지자,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나이지리아 석유 개발 사업을 물었고 그것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총합해서 물려 있는 자금은 무려 45억불(5조5,000억)이 물려 있었다. 그때 쓴 자금 때문에 조선은 금융비용으로 파산 일보 직전이라 할 수 있었다.
제갈 총괄 사장이 판사처럼 이야기했다.
“여기는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전 세계 기업 사냥꾼을 모아서 회사를 산산조각 낸 다음 살점을 하나씩 하나씩 파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제갈 사장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장실에서 만난 곽성태 사장은 대역죄인처럼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나이지리아에서 수주를 땄을 때 만세를 불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초라하게 회사 생활을 마무리할 줄 몰랐다.
“벌써 사표를 올렸어야 했는데, 허영재 회장님께서 본인이 이제 주인이 아니니 새로운 주인에게 목을 주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처분에 맡기겠습니다.”
제갈 사장은 곽성태 사장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엔지니어로 대한민국 조선업계의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린 명장이었다. 참으로 사람이 아까웠다. 기술 이사로 키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영은 기술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를 읽어야 했고, 하늘이 도와야 했다.
나는 아까부터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제갈 사장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나의 시선은 곽 사장님이 내놓은 문서에 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부유식 액화가스 플랜트 사진. 나는 빅터에게 받은 ‘가스를 보는 눈’을 확인하고 싶었다.
어제 집에서 도시가스 보일러를 3시간이나 노려보았더니 엄마가 안 터지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집에 들어오는 도시가스가 희미하게 눈에 보이는 듯했으나 명확하지 않았다.
나는 제갈 총괄 사장이 사형 판결을 하기 전에 한마디를 던졌다.
“해상 부유식 액화가스 플랜트는 건조 완료된 상태입니까?”
곽 사장은 죄송한 듯 머리를 숙였다. 다 만들었는데 왜 못 파냐고 질책으로 들은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혹시 시험 운전은 가능합니까?”
이제서야 곽 사장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사람이 왜 그러나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가능합니다. 이미 바다에 2척이나 떠 있습니다.”
나는 그 대답에 가볍게 이야기했다.
“날씨도 좋으니 가서 구경 좀 해볼까요?”
어차피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것인데 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매각 전 시험 운전 정도로 이야기하면 된다.
제갈 총괄 사장은 나의 눈치를 보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골든보이는 자신의 생각으로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왜 액화가스 플랜트를 구경하자고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제갈 총괄 사장은 환갑이 넘은 능구렁이.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머리만 끄덕이고 뒷짐을 지었다.
“회장님이 기다리시니, 어서 준비하세요.”
우리는 헬기를 타고 바로 플랜트로 떠났다. 거대한 빌딩 20채를 모아 놓은 거대한 구조물. 이것인 해상 부유식 액화가스 플랜트였다.
플랜트 중앙에 거대한 드릴이 달려 있어 ‘드릴십’이라고도 불린다. 심해에 이 드릴로 구멍을 내고 천연가스를 뽑아내 냉각시키고, 액화가 된 액체 가스를 가스 수송선에 넣어주는 역할을 하는 배였다.
배라고 하기보다, 바다에 떠 있는 공장이나 빌딩으로 보는 것이 더 적당해 보였다.
새로운 회장이 가스 플랜트 1호선에 타자, 플랜트를 운항하는 선원들이 급하게 모이며 난리가 났다. 일반 자동차처럼 시동 걸고 악셀을 밟으면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제갈 총괄 사장이 나에게 물었다.
“이 배를 몰고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청와대에서 국내 석유와 천연가스 정보를 받았다. 그것을 태블릿 PC에서 확인하며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스가 생산되는 곳이 있습니다. 울산 앞바다 가스전이지요. 가스 플랜트가 움직이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으니··· 일단 헬기를 타고 그곳을 보고 싶습니다.”
“울산 앞바다 가스전을요? 알겠습니다.”
제갈 총괄 사장은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그가 원하는 것을 준비할 뿐.
거제도에서 울산 가스전까지 찍고 돌아오는 것은 대략 2시간이면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울산에서 그렇게 먼 바다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바로 우리는 헬기를 타고 동쪽으로 날아올랐다.
띠리리리리-
이때 위성 전화가 도착했는데 경복이의 전화였다. 이놈은 러시아에 남아 빅터가 남긴 PMC를 장악하도록 했다.
선 대위와 수행과 직원들이 경복이와 함께 있었다.
-씨발. 내가 러시아에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나는 낮게 웃으면서 말했다.
“러시아 애들 군기는 잘 잡고 있냐? 자신 있다며?”
-내가 그런 말을 했냐? 미쳤지···. 무슨 덩치가 다들 190/100 이하가 없다. 몸으로 비벼볼 수 있는 놈들이 아니야.
군대를 장악하는 것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계급장 큰 것으로 바꾸고, 뭐라고 까불면 돈으로 때려버려. 아니면 술로 죽이던가. 내가 지금 1,000만 달러 넣어줄 테니까 약하게 보이지 마라.”
-팔자에 없는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있다. 머리가 터지려고 한다.
“네가 언제 특수부대 800명을 지휘할 수 있는 대대장이 되겠냐? 병력이 있는 진짜 장교가 되는 거다.”
-큰 생각 없이 미군 계급을 가지고 있던 것이 여기서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중사 계급장이었으면 매일 주먹으로 싸웠어야 했을 거야.”
미군에게 받은 영관급 계급장이 있으니, 일부 병력이 경복이를 따르고 있었다.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준 반탄 반지 차고 있지?”
-그래. ‘방탄’ 반지 차고 있어.
“방탄 아니고 반탄!”
-방탄이나. 반탄이나. 어쨌든 끼고 있어. 지금 그게 중요해?
나는 좋은 생각이 나서 큰소리로 웃었다.
“존나 말 안 듣는 놈 있으면 러시안 룰렛 하자고 그래.”
경복이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낮게 웃었다.
-이 새끼 천재인데? 그 생각을 못 했네.
“재수 없으면 돌대가리로 소문 날 뿐이다.”
-흐흐흐 반칙 아니냐?
“대장에게 까불면 총살이지. 당연한 결과다.”
-오늘 당장 해봐야겠다. 체첸 새끼 중에 말을 안 듣는 씨발놈이 있어서 말이야. 일단 돈으로 흔들어 보고, 안되면 술로 했다가, 마지막에는 러시안룰렛으로 간다.
“거기는 믿고 맡긴다.”
경복이와 전화를 끊고 태경이에게 바로 전화했다.
태경이는 빅터의 재산을 실사하고 있었다. 옆에는 이준석 교수님이 함께하고 있었다. 감사팀 중 절반은 엘도라도 광산으로 보냈고 절반은 빅터 재산의 실사를 도왔다.
승계작업이 끝났지만 그래도 재산을 꼼꼼히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KGB가 숨겨진 빅터의 재산을 찾아서 보내줬기 때문에 단 며칠 만에 재산 대부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퍼틴도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키르핀을 러시아 가스 그룹 회장으로 앉힐 생각이었다. 물론 주식 없는 회장이라 언제든 회장을 바꿀 수 있다.
나는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일단 믿고 맡기는 스타일. 급격한 조직의 변화는 반발이 일어나니, 최대한 소프트 랜딩을 해야 한다.
나는 고생하는 태경이에게 말했다.
“밤에 쓸데없이 돌아다니다가 스킨헤드에게 쥐어 터지지 말라고 호텔에 가만히 있어.”
-어딜 나가? 하루에 몇 군데를 도는 줄 알아? 호텔가면 그냥 뻗어 잔다.
“고생하고, 마무리하면 빨리 서울로 날아와.”
러시아 가스 사람들은 태경이가 골든보이인 줄 아는 사람도 있었다. 동양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때 울산 앞바다 가스전이 눈앞에 보였다.
나는 눈에 힘을 주었다.
‘노란색’
노란색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이것이 가스의 색인가?
나는 시원하게 웃기 시작했다. 제갈 사장님이 이유를 물었지만 확실해지기 전까지 말을 아꼈다.
나는 근처를 헬기로 돌면서 상업성 있는 가스전의 크기를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사이즈가 되어야 파이프를 넣을 것인가를 눈으로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마치 바닷속에 한강이 흐르는 것처럼 노란색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도 우리만의 한강을 찾읍시다.”
“네? 한강이요?”
제갈 사장은 나의 말을 조금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조선사 사장에게 말해서 우리가 갈 곳을 말해줬다.
“곽 사장님. 가스 플랜트를 7광구로 운항하세요.”
나의 명령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