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땅속 황금이 보여-146화 (146/188)

146화

강철 멘탈.

지금 그것이 필요했다. 비행기 추락 현장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곳 보다 처참했다. 영화에서 보았던 그것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강철 멘탈이 되었다고 자신했지만, 수많은 시체를 보며 몸이 떨리는 것은 마음을 굳게 먹는 것만으로 해결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선 대위는 너무도 침착했다.

군생활을 끝내고 소방관 생활을 2년이나 했는데, 서울시에서 소방 공무원을 하면 1주일에 한번씩은 시체 한구를 봐야 한다고 했다.

나도 손으로 양뺨을 강하게 치고 정신을 칼날같이 세웠다.

멀리 백인 남성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선 대위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중년의 백인 남자에게 거침없이 다가가 몸을 흔들었다.

“이봐요! 이봐요! 일어나 보세요.”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살아 있다면 반응이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미동도 없었다. 그래서 목의 동맥을 만졌는데, 전혀 맥이 없었다.

선대위는 노란색 스프레이 페인트를 받아서 가슴에 뿌렸다.

다음.

선 대위가 죽은 할머니를 보더니 말도 걸지 않고 맥을 만졌다. 누가 봐도 죽은 것으로 보이는 눈을 부릅뜬 얼굴.

역시나 할머니의 가슴에 노란색 페인트를 뿌렸다.

죽은 사람에게 페인트를 뿌려서 본인이 혹은 다른 사람이 또 확인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 소방관 시절 배운 것이라고 했다.

내가 머리를 끄덕이고 있을 때. 선 대위는 다음 사람에게 급하게 다가갔다. 놀랍게도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번째 젊은 백인 남자는 스스로 비행기 파편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하지만 입가에서 조금씩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선 대위가 배쪽을 만져 보더니 내출혈이 의심된다고 했으나, 의사가 아닌 그가 해줄 것이 없었다. 당장 개복을 하여 피가 새고 있는 것을 막아야 했지만 의사가 아닌 그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처방은 단 한가지.

“중상! 모르핀···.”

상대한 한국말을 못 알아들으니 다행이다.

옆에 서 있던 헬기 기장이 의료상자에서 러시아 어로 써 있는 물품 중에 모르핀을 찾아 선 대위에게 넘겼다.

부상자가 모르핀을 맞자, 고통스러운 얼굴이 조금 펴졌다.

나는 모포와 핫팩을 들고 있다가 그의 몸을 덮어줬다. 표정이 더 좋아졌다. 따뜻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뭔가를 러시아어로 이야기 했는데, 계속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머리를 떨어트렸다.

서 대위가 목의 맥을 만지더니 내가 감은 모포 위에 노란색 페인트를 칠했다.

“다음!”

편안하게 죽은 것을 위안 삼으며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더 놀라운 사람이 있었다.

나무에 몸을 기대고 있는 흑인 남자. 놀랍게도 왼팔이 떨어져 나갔는데 표정이 편안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먼저 영어로 말을 걸었다.

“러시아 땅에서 동양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아올 줄 몰랐습니다. 어디 사람입니까?”

나는 상대를 안심시키고 상대의 의식을 확인하기 위해 말을 이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당신은 어디 출신입니까?”

“미국 일리노이 시카고에서 왔습니다.”

선 대위가 기장을 바라보며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중상. 모르핀.”

흑인은 모르핀을 맞더니 표정이 편안해졌다.

“마약을 끊은 지 10년이 지났는데. 이렇게 다시 맞다니. 억울하군요. 정말 힘들게 끊었는데···.”

선 대위가 잘린 팔의 옷을 자르고 압박붕대로 강하게 압박하며 지혈을 하고 있었다.

나는 흑인이 꽤 아플 것 같은데 조금도 고통스러워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한편 뭔가 좋지 않은 증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내는 우리에게 물었다.

“전화 한통화 쓸 수 있겠습니까?”

나는 위성전화를 넘겨줬다. 하지만 한 팔이어서 우리가 대신 번호를 눌러주었다. 곧 신호가 가자 사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딸이 받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딸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내는 미안한 듯 이쪽을 보았다.

“어디 간 거야···. 잠깐만 있다가 할게요.”

그리고 좀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머리를 떨어트렸다.

선 대위는 맥을 집더니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가슴에 노란색 페인트를 뿌렸다. 그는 이를 꽉 깨물더니 강하게 말했다.

“다음.”

다음은 사람이 아닌 ‘시체’였다. 하반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노란색 페인트.

너무도 참혹했기에 모포로 덮고 돌을 올려 놓았다. 그리고 노란색 페인트를 다시 한번 뿌렸다.

기도할 시간도 없이 바로 옆으로 이동.

왜냐하면 한 중년의 신사가 멀쩡하게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입에 담배까지 물고 있었는데 라이터가 없는 듯 물고만 있었다.

선 대위가 이곳 저곳을 살피더니 조금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경상!”

경복이가 모포로 그의 몸을 감고 나는 그의 주머니 이곳 저곳에 핫팩을 넣었다. 헬기 안에 산더미처럼 있으니 아낌없이 주었다.

내가 직원에게 라이터를 받아 담배에 불을 붙어주었다.

“괜찮으세요?”

담배를 쭉 빠는 것으로 보아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여기는 어디오?”

“러시아 시베리아 어디쯤 입니다.”

“아시아 사람들이 와서 중국이 아닐까 생각했소.”

“비행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비행기 엔진에서 불이 나고 급격하게 하강했는데, 그 순간 기절했다가 눈을 떠보니 이런 꼴로 있었소.”

나도 모르게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멀쩡한 것은 ‘기적’입니다.”

그는 갑자기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트렸고 기절했다.

순간 소동이 일어났지만, 침착하게 들것에 눕혔고 모포를 2장이나 감은 후, 핫팩을 몇 개 더 넣었다.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들것이 가볍게 느껴졌다.

헬기 주변에 천막이 하나 만들어져 있었는데 불이 붙어진 고체 연료 몇 개가 따듯한 공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모포를 여러 겹 깔아 누울 곳을 만들었다. 헬기 안에 엘도라도 광산에서 쓰려고 했던 모포가 산처럼 쌓여 있으니 아낌없이 쓰고 있었다.

갑자기 멀쩡했던 신사가 몸을 떨면서 오한을 일으키고 있었다.

의무병이었던 수행과 직원이 의약품에서 링거를 찾아서 혈관에 꼽았다. 그리고 수액과 함께 진정제가 들어가자 신사의 몸이 늘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의사가 아니었다. 이 환자의 상태가 어떨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

나는 기장에게 물었다.

“지원부대는 언제 오는 겁니까? 의사는요?”

기장은 이미 사령부와 몇번이나 교신했다.

“출발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올 겁니다.”

한국처럼 5분만에 도착하는 기적은 없을 것이었다. 여기는 엄청나게 넓은 러시아 아닌가?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나는 주변을 살피고 명령했다.

환자를 눕힐 천막을 2개 더 만들라고 했고, 헬기 안에 있는 의약품과 물품을 정리할 천막을 만들게 했다.

영안실용 천막도 생각했지만, 그 정도로 여유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시체를 수습할 시간이 있으면, 살아 있는 사람을 한명이라도 찾는 것이 중요했다.

다시 선 대위와 움직이려고 했는데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대표님. 2팀으로 나눠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대로 두면 저체온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습니다.”

옳은 말이었다. 우리는 4명씩 3팀을 만들어 각자 의약품과 물품을 챙겨서 움직이기로 했다.

1팀과 나,

2팀은 선 대위,

나머지는 베이스 캠프를 확보하기로 했다.

나는 주변을 확인하고 선 대위에게 말했다.

“저는 비행기 머리 쪽으로 이동할 테니까, 선대위님은 몸통쪽으로 가세요.”

선대위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나는 선과장과 눈을 마주쳤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선 과장님.”

“살 수 있는 사람만 베이스 캠프로 데리고 오면 됩니다. 그런 선택을 하기 어렵겠지만···. 중상자는 그냥 버려야 합니다.”

살짝 거부감이 들었지만 너무도 옳은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냉정하게 판단하겠습니다.”

나는 긴 한숨과 함께 그와 눈을 맞춘 후, 비행기의 머리를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우리 모두 놀라고 있었다. 한 백인 사내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병실로 만들어진 모포에 스스로 누웠다.

의무병이었던 직원이 다급하게 달려가 혈압과 맥박을 확인한 후 머리를 끄덕였다.

의무병은 각종 질문을 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풀려 있었다. 눈 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눈동자 조리개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강한 충격을 받아서 정신병이 온 것으로 보였다. 빠르게 수액에 진정제를 넣어 혈관에 주입.

그리고 고체 연료 3개에 더 불을 붙여 바닥에 두었다. 조금이라도 온도를 올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가방에 있는 핫팩 5개를 주머니에 넣었다.

어느정도 마무리 되자, 선 대위가 먼저 일어나며 말했다.

“몸통으로 갑니다. 대표님!”

우리도 비행기의 조종실이 있는 머리 쪽으로 향했다. 여기서 대략 250m 떨어진 곳.

그곳으로 가고 있을 때 한 백인 할아버지가 죽어가고 있었다. 한쪽 발목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나를 보세요.”

할아버지의 눈는 초점이 맞지 않는다. 경복이가 발목 상처를 압박붕대로 감았지만 피가 멈추지 않았다.

나도 이럴 때 할 처방 정도는 알고 있다.

“중상! 모르핀!”

모르핀은 허벅지에 강하게 찌르기만 하면 약이 들어가는 형태.

약이 들어가자 할아버지의 몸이 늘어지더니 시선을 돌려 옆에 있는 할머니의 시체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한 마디 했다.

“같은 날에 죽기로 약속했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겠군.”

그리고 입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마지막 한마디를 했다.

“위스키 없나?”

이때 기장이 품 속에 숨겨 두었던 보드카를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할아버지에게 넘겨주었다.

“발렌타인 30년 산 입니다. 좋은 술이에요.”

할아버지는 보드카를 마시고 웃었다.

“젊은이 덕에 좋은 술을 마셔 보는군···.”

그 말을 끝내기 무섭게 초점이 흐려지더니 할머니 옆으로 쓰러졌다. 목 옆에 경동맥에 손을 가져가 봤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의 몸에 노란색 페인트를 뿌리고 모포를 덮었다.

우리는 비행기의 머리까지 가는 길에 완전히 얼음이 된 시체 15구를 발견했고 노란색 페인트를 칠했다.

이때 아주 희미한 여인의 힘겨운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요··· 아이가 있어요···.”

한 백인 여인이 아기를 안고 나무에 옆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괜찮으신가요?”

한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다가 나에게 넘겨 줬는데 그 작은 생명은 이미 꺼진 상태.

아···.

나는 아이를 받아 모포에 감싼 후, 아이 엄마를 보았는데 엄마도 기력을 다해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이는 저희가 잘 관리하겠습니다.

엄마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이고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모포로 몸을 감고 핫팩 20개를 퍼 부었지만 보람도 없이 그녀도 곧 숨을 멈췄다.

우리는 아기를 그녀의 품 안에 다시 넣어주고 노란색 페인트를 칠할 수 밖에 없었다. 슬픈 일이었지만, 다시 멘탈을 강하게 잡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강철멘탈이다.

나는 강철멘탈이다.

나는 강철멘탈이다.

드디어 부서진 비행기 머리까지 왔다. 다행히 뒤집어 지지 않고 살짝 기울어진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날개도 잘려 나갔는데 머리쪽은 크게 찌그러지지 않은 상태.

이 정도라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우리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잘려진 비행기 동체 쪽으로 들어갔다. 탄냄새가 강하게 났지만 다행히 화재는 있어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에 올라타 나는 강하게 소리쳤다.

“누가 있습니까? 있으면 대답하세요!”

아무리 강하게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의자가 대충 100개 정도 보였으나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은 대략 20 좌석 정도.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부터 확인하며 이동했다.

한 명씩 확인했는데, 대부분 꽁꽁 얼어 있는 시체. 필요한 것은 노란색 페인트 뿐.

어느정도 기대를 하고 있어 강한 실망감이 몰려왔다.

!!!

이때 분명 시체라고 생각했던 머리카락에 고드름까지 달린 젊은 사내가 갑자기 눈을 떴다.

20대의 동양인은 이쪽을 보고 일본말로 뭐라고 했다.

나는 다친 곳이 있는지 자세히 살폈으나, 특별한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가방 안에 있는 핫팩 8개를 그의 옷 각종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두꺼운 등산용 잠퍼를 입고 있어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안전벨트를 풀었는데 입에서 왈칵 피를 뿜어냈다. 내상이 있나? 들것에 조심스럽게 눕힌 후 안정제를 투입했다. 그리고 모포 두장으로 몸을 감았다.

진정제가 도는 듯 눈을 뜨고 뭐라고 입을 열었다가 몸이 조금씩 늘어진다. 그래도 바로 죽을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베이스 캠프로!”

덩치 좋은 수행과 직원 3명이 조심스럽게 들것을 들고 베이스 캠프쪽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그들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 다음 칸으로 넘어갔는데, 어떤 여인과 눈을 마주쳤다.

오! 지자스!!!

눈이 마주친 그녀는 말도 하지 못하고 이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끔찍했다. 날아온 금속 조각이 30대 백인 여인의 배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나는 급하게 모포로 그녀의 배를 덮어 상처를 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핫팩을 그녀의 옷 주머니와 손에 올려주었다.

경복이가 금속 조각과 상처를 살폈는데, 이쪽을 보고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말했다.

“중상. 모르핀···.”

그녀가 영어로 입을 열었다.

“많이 좋지 않나요?”

갑자기 말을 하자 놀랐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을 했다.

“괜찮습니다. 아무 걱정 마세요. 의사가 오면 살 수 있습니다.”

“의사가 오나요?”

“러시아 의사를 한 100명 정도 불렀습니다. 그 중에 가장 젊고 잘생긴 의사로 붙여 드리겠습니다.”

나의 농담에 그녀는 고맙게도 웃어줬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픈가요?”

“놀랍게도 아프지 않네요.”

“더 편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중상. 절대 살 수 없는 상처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벅지에 모르핀을 박아 넣었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좀더 편안해 졌다.

“내 주치의 보다 실력이 좋군요. 편해졌어요. 잠이 오네요.”

모포를 하나 더 감아주고 핫팩을 몇 개 더 넣어주었다. 그리고 주소와 가족들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그녀는 머리를 떨어트렸다.

태경이가 그녀의 코에 손을 가져가고 머리를 흔들었다.

나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쉬었다.

강철멘탈. 강철멘탈. 나는 몇번이나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기장실로 시선을 주었다. 기장실은 잠겨 있었지만, 문이 어느정도 깨져 있어 안을 볼 수 있었다.

태경이가 먼저 확인했는데 머리를 흔들었다.

“어림도 없다.”

나도 구멍을 통해서 바라보았는데, 비행기 앞창문이 깨져 안은 눈이 쌓여 있었고 두명의 조종사 손은 파랗게 변해 있었다. 그들의 발 아래에 머리가 깨진 스튜어디스가 죽어 있었다.

우리는 조종실로 들어가는 문에 크게 숫자로 3이라고 노란색 페인트를 칠했다. 멍청하지 않으면 무슨 뜻인지 알아 듣겠지.

비행기 머리 쪽을 다 확인하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황금을 보는 눈을 집중했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아주 작은 금 몇 개가 보였다.

금반지? 금목걸이? 나는 팀원들을 이끌고 빛이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의자가 30개가 통째로 떨어졌는데 그곳에 앉아 있는 10여명은 모두 죽어 있었다. 하나는 목이 떨어져 나가 있어서 보자마자 토할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마음 속으로 강철멘탈을 외치고 눈을 부릅떴다.

이때 귀걸이가 있는 나의 귀가 움직이고 작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나는 더욱 집중해서 귀를 열었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 있는 여인의 품 속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죽은 여인의 몸을 확인하였는데, 그 안에 아이가 울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기다!”

우리는 모포로 아기를 몇번이나 둘둘 말고 핫팩을 10개나 넣었다. 그러자 태경이가 너무 뜨거울 수 있다며 절반은 뺐다.

나는 아이를 안고 죽은 어머니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아기는 살았습니다. 편하게 가세요.”

우리는 10명에게 모두 노란색 페인트를 칠했다.

베이스 캠프로 오자 아이가 울기 시작했는데, 의무병 출신 수행과 팀원은 따듯한 차를 거즈에 적셔 조금씩 아이의 입에 넣어주었다.

겨우 물을 몇 번 먹다가 잠이 들었다.

다른 팀에서도 생존자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고 천막을 계속해서 추가로 만들었다.

이때 헬기 소리가 들린 것 같아 하늘 위를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못 봤나? 아니면 잘못 들었나?

헬기에 있는 연막탄을 바닥에 뿌렸다. 그러자 빨간색 연기가 하늘 위로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하늘을 바라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은 안개가 진해지고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때 선 대위가 이쪽으로 다가와 물었다.

“꼬리 날개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늘에서 보았던 비행기는 3토막. 머리와 동체는 확인했는데, 꼬리 부분은 확인하지 못했다.

다시 헬기를 타고 올라가야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안개가 있어서 못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렵게 착륙했는데, 다시 시도하다가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나는 황금을 보는 눈으로 더욱 집중하여 사방을 살폈다.

완전 집중하고 사방을 살폈더니 남쪽 3~400m 떨어진 곳에 금속들이 보였다. 구리선과 구리가 들어간 금속판 등이 보였다.

이정도 크기의 금속이라면 꼬리 동체 밖에 없을 것이었다.

“남쪽에 있습니다. 대략 500m 안쪽.”

“대단하시군요. 대표님.”

“제가 가겠습니다. 선 과장님은 이곳에 도착한 병자를 살펴주세요.”

가는 길에 동사한 시체 다섯구에 노란 페인트를 칠했다.

계속 이동했고 결국 동체 꼬리를 발견했다. 작은 동체라 좌석이 20개나 될까?

안으로 들어 갔더니 꼬마 여자 아이가 어른 점퍼를 입고 덜덜 떨고 있었다. 옆을 보았더니 엄마로 보이는 어른은 이미 죽어 있었다. 다리에서 흐르던 피가 얼어 있었다.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딸아이에게 자신의 옷을 벗어준 것이었다.

우리는 소녀의 몸에 모포를 감고 핫팩을 10개나 넣었다.

소녀는 들것에 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마. 마마.”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따로 모시고 갈게.”

그리고 모포 안쪽으로 핫팩을 몇 개 더 넣었다.

이때 사내의 힘겨운 목소리가 들렸다.

“도와주시오.”

이때 강한 황금빛이 보였는데 금장식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흑인 사내가 보였다. 아직 살아 있었고 숨을 고통스럽게 쉬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고 있었다.

“물···.”

그래서 물을 주려고 할 때 가장 끝 칸에 있는 한 나이든 노인이 말했다.

“폐가 충격으로 찌그러진 기흉인 것 같아. 물을 주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군···.”

나는 그 말을 한 백인 노인에게 다가가 모포와 핫팩을 주며 말했다.

“의사이십니까?”

“은퇴한지 며칠 안 되었으니, 아직 의사라고 해두지.”

나는 반갑게 말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의사였다.

“몸은 어떻습니까?”

“기적이야.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살아 있다니···. 술 한잔 주면 좋겠는데.”

나는 헬기에서 챙겨온 보드카를 주었다. 그는 맛있게 벌컥벌컥 마시고 말했다.

“크. 보드카군. 싫어했는데. 지금은 아주 좋아.”

“다행이군요.”

나이든 의사가 힘겨운 표정으로 물었다.

“신은 믿나?”

“믿지 않습니다.”

“꼭 믿게. 신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믿게 되었어.”

이때 흑인 남성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당신이 어떻게 응급 치료를 할 수 없겠습니까?”

“머리칸에 가방이 하나 있어. 그것을 열어봐.”

좌석 머리칸을 열어 그 안에 하나 있는 가방을 꺼냈다. 그러자 의사가 날카로운 금속 빨대를 꺼내 들었다.

“칼로 날카롭게 단면을 자르게.”

경복이가 텀블러에 끼어 있는 금속 빨대의 끝을 날카롭게 잘랐다. 그러자 흉기가 되었다.

의사가 나를 보고 말했다.

“왼쪽 폐에 찔러.”

“제가요?”

“내가 했으면 좋겠지만 힘이 없어.”

나는 잠깐 눈을 맞추고 빨대를 잡았다. 그리고 심장을 피해 왼쪽 폐가 있는 곳에 빨대를 놓았다.

“여기 맞습니까?”

“좀 더 아래.”

“좋아. 단번에 넣어야해.”

태경이도 경복이도 나의 손을 잡았다. 맨손으로 사람의 살을 뚫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었다.

“하나 둘 셋!!”

푹!

빨대가 순간 깊숙이 들어가며 거대한 흑인 사내는 숨을 편하게 쉬기 시작했다

이 순간 비행기 소리가 나며 하늘에서 낙하산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오는 군.”

그리고 내 가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황금 나침반에 불이 들어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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