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프랑스 리앙제 호텔 스위트 룸.
알렉산더 빅터가 가볍게 인사하며 전화를 먼저 끊었다.
안가가 이렇게 쉽게 발각되다니. 역시 CIA는 믿을 수 있는 것이 못 된다.
경복이가 나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누군데 멘트가 ‘선전포고’야?”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가,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알렉산더 빅터.”
그러자 경복이는 눈을 크게 떴다.
“미친···. 방금 맞다이 뜨자고 한 놈이 빅터라고?”
“그래. 얼굴 보고 만나자고 하더라.”
“그 로스케 씨발놈이 우리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아. 여기는 ‘안가’라고 하지 않았냐? ”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CIA가 허술한 건지···. 빅터가 대단한 놈인지 모르겠다.”
“반즈는 말만 번드르르하지 똑바로 하는 것이 없어.”
“벌써 게임이 시작되었다.”
태경이가 다가와 얼굴을 디밀었다.
“미치지 않고서, 빅터를 만나러 간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
나는 눈에 힘을 주며 낮게 웃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언제부터 전화로 이야기하고 이메일로 떠들었냐? 얼굴 보고 푸는 거지. 그래도 안 풀리면···. 맞다이 뜨는 거고. 그것이 ‘괴산식’ 아니냐?”
“미친 새끼. 여기가 괴산이냐?”
나는 판사처럼 강하게 손뼉을 3번 쳤다.
“모스크바로 들어갈 거야. 확실히 결정했다.”
“빅터를 본다고? 미쳤구나. 그쪽 나와바리에서 무슨 일이 터질 줄 알고 전화 한 통에 맨몸으로 가냐? 둘이 이제 절친이냐? 혹시 빅터가 초특급 미녀야?”
“미친 새끼.”
“뭘 믿고 그냥 모스크바로 가냐고?”
“보자마자 주먹질하는 거 아니다. 빅터와 한 번에 쇼부를 볼 거야.”
경복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로 쇼당이 붙이는데? 확실히 붙기는 붙어?”
빅터는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나를 만나자고 하지 않았겠지.
“만나서 패를 맞춰 봐야지. 술 한잔하자고 했으니 속마음을 까볼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거야.”
“말로 안 통하면 어떻게 하지? 그쪽 나와바리인데 맞다이로 이길 수 있겠어?”
나는 눈웃음을 가볍게 흘리며 말했다.
“그럼 이 동네 방식으로 러시아 룰렛 어때? 러시아 게임이니까 피하지 않겠지?”
경복이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웃음이 나와? 네 대가리는 방탄이냐?”
나는 자신감 있는 얼굴로 웃었다. 내 손에 반탄 반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나 골든보이야. 행운의 상징이지. 절대 안 뒤져.”
“언제부터 이렇게 완전히 미쳐버렸지? 프랑스에도 용한 무당이 있나? 제대로 ‘굿’해야 할 분위기인데.”
태경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이 새끼는 무슨 일이 있어도 모스크바 간다. 한번 마음먹고, 안 하는 거 봤냐? 걸어서라도 러시아에 갈 놈이다.”
“그럼 다리 몽둥이를 부러트릴까?”
“그럼 기어서 가겠지. ‘꼴리는’ 것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미친놈이니까”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고등학교 때 3학년 일진들 까러 갈 때보다 덜 무섭다.”
“그때는 총 없었잖아. 안 뒤졌다고.”
“안 죽어. 나만 믿어.”
“겁대가리가 일본 쓰나미에 휩쓸려갔냐? 한국에 짱박고 왔냐?”
나는 달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색한 표정이 되었다.
“빅터와 끝을 내야 해. 남은 미션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경복이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러시아 가자 가. 모스크바에 있는 크렘린 궁전 구경이나 한번 하고 오자.”
태경이는 창밖을 보고, 문밖에 귀를 붙였다가 말했다.
“그런데 CIA가 빅터 만나는 것을 허락할까?”
“우리가 CIA 꼬붕이냐? 허락 맡고 다니게?”
“반즈가, 우리 러시아 가는 것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 미국의 전략무기를 위험에 노출시키지는 짓을 하지 않겠지.”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CIA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모스크바로 간다. 그리고 위험하니까 너희들은 오지 않아도 돼. 여기서 기다려라.”
태경이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베링해 참치잡이 배에서, 우리랑 헤어지니까. 유령선 만나고 젤리 귀신에게 공격당했다며? 온몸을 깨물었다고 하지 않았냐?”
“젤리 귀신? 내 이야기를 너무 띄엄띄엄 들은 거 아니냐? 얼마나 위험한 놈이었는데.”
“그러니까. 내가 있어야 이상한게 안 나타나. 내가 바로 인간 부적이다. 그것뿐이냐? 나 같은 브레인이 옆에 있어야 해. 너는 머리 함부로 쓰지 마. 그거 함부로 쓰고 그러는 거 아니야.”
나는 쓴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허허 브레인?”
경복이가 핸드폰으로 모스크바 미녀들의 사진을 보며 말했다.
“드디어 모스크바 스타일을 보게 되는구나. 이쪽 스타일은 그야말로 금발에 푸른 눈의 미녀라고 하더라. 정말 이런 여인만 있다면, 내 뼈를 모스크바에 묻을 거다.”
태경이는 혀를 차며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래! 저 새끼 묻으러 모스크바 가자.”
친구 둘이 간다고 하니 걱정되었지만 든든하다. 우리 셋이 모이면 천하무적.
출발까지 2시간. 바로 출발이 가능하다.
수행과 직원이 있으므로 CIA의 감시가 아주 약했다. 전화기에 붙어 있던 도청기도 떼어서 방금 빅터와 전화한 것도 반즈가 모르고 있다.
우리는 수행과 직원이 탈출용으로 호텔 지하 주차장에 세워 놓은 미니버스에 올라타 바로 드골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선대위의 연봉을 2억으로 올리고 팀원들의 연봉도 1억으로 조정했다. 그리고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고 알렸다.
그러자 수행과 선 과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연봉 2억이면,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표님.”
서 상무님에게 전화해서 모든 수행과 직원들에게 위험수당으로 1억씩 입금했다. 위험한 러시아에 가고 있는데, 수행과 직원들의 표정이 밝다.
드골 공항에서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으로 가는 길.
러시아 특유의 크고 무거운 비행기. 엄청난 엔진소리와 온몸으로 느껴지는 진동. 퍼스트 클래스인데도 조금 불편한 좌석.
지금쯤 반즈가 나를 찾고 있을 것이다. 쪽지를 하나 놓고 왔으니, 알아서 러시아로 오고 있겠지.
비행기가 날아오른 지, 4시간 가까이 시간이 흘렀을 때. 기장이 방송으로 러시아 영공에 들어섰다고 이야기했다.
곧 비행기에서 가장 미인 스튜어디스가 웃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경복이가 ‘아만다 사이프리드’ 닮았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던 그 여인.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 샴페인 하나를 보여주었다. 고급 샴페인인 돔 페리뇽.
“빅터 씨가 러시아 영공으로 들어오면 서비스하라는 선물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빅터?”
스튜어디스는 더욱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친절한 분이네요. 따라드릴까요?”
이때 경복이가 걸어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샴페인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뒤지는 수가 있어. 마시지 마.”
나는 웃으면서 경복이의 샴페인을 받았다.
“본인 이름으로 보냈다. 안 먹으면 쫄보가 되는 거야.”
나는 놀란 스튜어디스에게 다시 샴페인을 내밀었고, 그녀는 분위기를 살피고 겁먹은 얼굴로 샴페인을 따라 주었다. 수행과 사람들이 무섭게 노려보고 있어서 울 것 같은 얼굴.
나는 샴페인 한 모금 마시고 활짝 웃었다.
“오! 맛있는데?”
태경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청산가리 맛이냐?”
이때 스튜어디스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쪽지를 하나 넘겼다.
“선물과 함께 드리는 메시지입니다.”
나는 쪽지를 보고 웃었다.
‘웰컴투 모스크바.’
이때 다른 흑발의 스튜어디스가 비행기 기장이 쓰는 외부 교신 장치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묻지도 않고 장치를 받아 들었을 때, 바로 반즈의 큰소리가 들려왔다.
-에디! 뭐하는 거야? 미쳤어? 모스크바라니?
“워워 진정해. 이렇게 나올까 봐 몰래 나온 거야.”
-너는 미국의 전략무기라는 것을 얼마나 강조했어? 곧 국방부 장관이 되는 러셀 사령관이 이 사실을 알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당장 돌아와.
“비행기 하이잭킹 해서 돌릴까?”
-지금 농담이 나와?
나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가리를 만나서 단숨에 쇼부 보는 것이 내 스타일이야.”
-위험해.
“위험은 우리가 감수한다.”
-미국이 너를 소유하고 있어, 절대 잃을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낮게 웃음을 흘렸다.
“나는 내 것이다. 그리고 나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초특급 미인뿐이야.”
-지금 농담이 나와?
“반즈. 전화 받을 테니까 빨리 따라와.”
-모스크바 팀을 만들고 있으니까 기다려.
“우리도 팀이 있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공항에 있어. 아니면 러시아 뒷골목에서 시체로 버려져 바디백에 실려 한국에 갈 수 있다.
나는 샴페인을 가볍게 마셨다.
“한국 사람의 인내심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모스크바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러시아 특유의 우중충한 날씨.
모스크바 국제공항은 매우 오래되었으나 리모델링하여 깔끔했다. 하지만 구조나 마감에서 세련된 맛이 떨어졌다.
러시아말. 분명 알파벳인데.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영어로 되어 있는 부분과 한국인의 눈치로 겨우 공항 밖으로 나왔다.
이때 빅터에게서 문자가 하나 왔다
-내가 직접 환영하러 나가지.
나는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씨발놈. 러시아 미녀들이랑 공항에서 피켓을 흔들고 있어야지.”
시내로 나가려면 일단 ‘택시’ 밖에 없겠지?
공항 앞에 있는 택시 기사들이 호객행위를 하기 위해서 웃으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가, 마틴이 인상을 쓰자 뒤로 물러섰다.
태경이가 그들을 쭉 살피고 인상을 쓰며 말했다.
“택시 운전사 놈들 표정이 어제 새벽까지 술 퍼마시고 출근한 얼굴이다.”
경복이가 빡빡 깎은 다른 택시 기사를 바라보았다.
“운전사 놈들이, 러시아 마피아 아니면 KGB 같이 생겼는데?”
선 대위가 주변을 살피다가 말했다.
“뭉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모스크바 시내까지 지하철로 가지요.”
오 지하철!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도로에서 습격당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이 타는 지하철은 괜찮아 보였다.
“좋은 생각입니다. 러시아 지하철로 이동합시다.”
“보는 눈이 많으면 상대도 조심하겠지.”
우리는 몇 번 길을 틀렸지만 그래도 공항철도를 탈 수 있는 플랫폼에 도착했다.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연장이나 챙기자.”
화장실에 들어가자, 불량해 보이는 러시아 백인 사내 3명이 이쪽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우리가 우르르 들어가 인상을 쓰며 노려보니 그놈들은 구시렁거리면서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빅터가 곰 같은 인상으로 가까이서 노려보자 겁먹고 도망쳤다.
우리는 가방에서 무기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부엌칼 사이즈의 단검.
티타늄 3단봉.
박달나무로 만든 짧은 몽둥이.
총기를 소유하고 있는 놈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없는 것보다 나았다. 나는 품속에 날카로운 십자드라이버를 집어넣었다. 양아치 냄새가 좀 났지만, 어쩔 수 없지.
지하철은 러시아 특유의 소비에트 연방의 마크가 그려져 있는 조형물이 많이 남아 있었다. 망치와 삽을 들고 새벽별 보기 운동하러 나가는 모습의 동상. 썩 멋있지는 않았다.
띠리리리리- 기차 경고음이 울리고.
모스크바 시내로 가는 지하철이 들어왔다. 겉모습은 옛날 지하철 1호선을 보는 느낌.
안으로 들어갔더니 지하철이 아닌 기차 같은 구조. 좌우로 놓인 빨간색 좌석이 강렬했다.
우리는 우르르 지하철로 들어갔는데, 아주머니 한 명이 앉아서 졸고 있었다. 지하철이 출발했고, 우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공항철도는 지하가 아니라 바로 육상을 달리고 있었다. 광활한 대지에 콘크리트 건물을 보니 러시아에 왔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졸던 아주머니가 방송을 듣고 일어났고, 모스크바 외곽의 위성도시 역에서 천천히 내렸다.
!!!
그리고 한 남자가 탔다. 단번에 알아봤는데, 바로 알렉산더 빅터.
그는 한쪽 팔에 종이봉투를 끼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어서 오게. 에드워드.”
나는 놀란 표정을 감추고 강하게 손을 잡았다.
“빅터. 이렇게 얼굴을 보게 되는군.”
이때 지하철 양쪽 끝을, 검은 양복의 사내 8명이 짧은 기관단총을 몸속에 숨기고 단단하게 섰다. 이쪽으로 다른 손님들이 오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수행과 직원이 이쪽으로 다가오려고 하는 것을 손을 들어서 막는다. 태경이와 경복이에게도 괜찮다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공항철도에 총을 가지고 들어오다니. 여기서 피를 볼 건가?”
빅터가 나를 보며 웃었다.
“그렇게 지저분한 것은 미국식이지. 옆에 앉아도 되겠나?”
“자리가 넉넉하니 원한다면 앉아.”
빅터는 종이봉투에서 ‘보드카’와 ‘커피’가 섞인 보온병을 꺼내 컵에 따라 주었다. 물론 자신부터 조금은 마셨다.
나는 보드카 커피를 마시고 인상을 썼다.
“겁나 맛없다.”
“처음 러시아에 왔을 때, 정말 맛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보드카가 입맛에 맞더군.”
“보드카가 입맛에 맞을 정도로, 러시아 땅에 오래 있고 싶지 않다. 빅터.”
나는 보드카가 들어간 커피를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 품속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금화를 꺼내 빅터에게 넘겼다.
“커피값으로 이 정도면 되겠지?”
빅터는 금화를 관심 있게 바라보았다.
“역시 황금인은 멋지군.”
보통 ‘골든보이’라고 말하지 ‘황금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정색한 얼굴로 물었다.
“빅터. ‘황금인’은 무엇인가?”
빅터는 나의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특별한 사람이지. 아주.”
“얼마전까지 나와 같은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더 있더군.”
빅터는 웃으면서 말했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을 선택받은 사람(the chosen one) 보통 ‘the one’이라고 부른다.”
“‘the one’이라 멋지군.”
“역사적으로 많은 ‘선택받은 사람’이 있었다.”
‘기원전 구리를 보는 쿠퍼맨. 바빌로니아 황제 네부카드네.’
‘1545년 영국, 철을 보는 아이언맨. 프레드릭.’
‘1620년 멕시코, 은의 시대를 열었던 실버맨. 안토니오 총독.’
‘한국에는 아이언맨. 김수로 왕.’
‘가장 가까운 황금인 기록은 미국 서부 개척 시대 총잡이 로드맨.’
“로드맨은 총을 맞고 금방 죽었지. 그리고 골든보이 에드워드 자네가 나왔다.”
나는 아주 흥미 있는 얼굴이 되었다.
“황금인 말고 다른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말이군.”
“자네는 황금 말고 구리도 보지 않나? 쿠퍼맨의 능력도 있는 것이지. 2가지 능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것은 역사상 자네가 처음이다. 2가지 능력을 갖춘 사람은 본 적이 없어.”
나는 커피 보드카를 한잔 따라 마시며 빅터를 바라보았다.
“황금인이 왜 있는 것인가?”
“자네 존재 이유를 말인가?”
“‘the chosen one’. ‘선택받은’ 사람이 있다면, ‘선택 한’ 사람이 있다는 의미 아닌가?”
이것이 핵심적인 질문.
빅터는 나의 눈을 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골든보이는 멍청하다는 정보가 있었는데, 역시나 아니군.”
나는 빅터의 팔목을 꽉 쥐었다.
“왜 너는 내 앞길을 막지? 왜 황금인을 적대시하나?”
빅터는 혀를 차며 말했다.
“너는 능력이 있지만, 아무것도 몰라.”
“그러니까 알아듣게 설명해봐.”
빅터도 다른 손으로 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강하게 말했다.
“내 밑으로 들어와라. 함께 가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빅터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보스 기질이 있어서, 누구 밑에서 일할 스타일이 아니야. 주변에 힘센 친구도 많고, 물론 능력도 출중하고.”
“건방지군.”
“술도 한잔했으니, 일대일로 붙어서 누가 대가리인지 여기서 정할까? 준비되어 있다면, 러시아 룰렛도 좋다.”
빅터는 순간 입을 벌렸다가 웃었다.
“용기 인지, 무모한 건지 모르겠군. 뭐 이 정도 성격이니 황금인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겠지.”
나는 정색하고 말했다.
“내가 왜 당신 밑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빅터가 손에 힘을 주어 내 손을 잡았다.
“내 밑으로 들어오면 전체적인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주지. 방금 알려준 것만 해도 큰 ‘호의’를 보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너를 보호하겠다.”
나는 인상을 쓰며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좋은 술집을 알았다고 술값을 전부 내라고 하는 것은 사기 아닌가? 내가 그렇게 병신처럼 보이나?”
빅터는 여유 있게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
“빅터 네가 나의 앞길을 막았어.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도 있었겠지. 선택받은 사람들끼리 말이야.”
빅터가 손을 드니 기관단총을 들고 있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태블릿 가져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태블릿 PC를 빅터에게 주고 갔다.
빅터는 뭔가를 열심히 누르더니 나를 보았다.
“DW 조선 주식을 모두 넘겼다. 확인해라.”
나는 놀란 표정으로 빅터와 눈을 마주치고 서 상무님에게 전화하여 주식을 확인했다.
서 상무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진짜 DW 조선 주식이 대량 올라와 있습니다. 모두 매입할까요?
“네 전량 매입하세요.”
빅터가 던진 밑밥이라고 확신했지만, 본사에서 일단 주식을 모두 매입했다.
나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냄새가 나지만, 나로서는 안 먹을 수가 없네.”
빅터는 정색한 얼굴로 보드카 커피를 내밀었다.
“주식을 되찾았으니, 축하주가 빠질 수 없지.”
나는 인상을 쓰며 보드카 커피를 받았다. 다시 한번 입에 들어가니 처음보다 훨씬 잘 넘어갔다.
“나에게 뭘 원하지?”
빅터는 보드카 커피를 쭉 마시고 말했다.
“황금인 만이 찾을 수 있는 유적을 원한다.”
“황금인이 찾은 유적?”
“유적이라는 단어보다는, 유산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군. 스탈린 총서기장이 남겨 놓은 러시아의 유산이다.”
스탈린의 유산이라···. 피의 독재자가 남긴 보물에서는 쇳내가 날 것 같았다.
“그것을 넘기면 나머지 해운 주식을 주는 것인가?”
“한 팀이 될 수 없다면···. 거래라도 해야겠지.”
나는 힘있게 머리를 끄덕였다.
스탈린의 유산을 손에 쥐면 내가 판을 흔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스탈린이 남긴 유산은 황금일까?
나는 자신있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