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땅속 황금이 보여-136화 (136/188)

136화

우리의 최종 목적지 러시아. 빅터가 있는 곳이다.

1960~70년대.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이 정점인 시절.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끝도 없는 경쟁을 했고. 경제적, 사회적, 군사적 모든 부분에서 첨예하게 부딪쳤다.

하지만 끝은 있는 법. 승자는 ‘미국의 자본주의’. 끝도 없는 탐욕이 최고의 효율을 찾아냈고. 사회주의와 생산성 대결에서 엄청난 격차로 상대를 압도했다.

넘치는 달러가 전 세계의 패권을 잡자, 러시아 경제가 먼저 무너졌고, 공허해진 사회주의 경제에 자본주의가 밀려 들어왔다.

경제가 무너지자, 정치도 무너져 끝내 소련연방도 해체되었고, 군사 시스템까지 급속도로 무너져 핵폭탄이 행방불명 되는 일까지 생겼다.

개방을 추진한 새로운 러시아 지도자 몇 명이 나타났지만 어설픈 정책을 펼치다가 스스로 몰락하여 물러났다.

러시아에 ‘대혼란’의 시기.

러시아 국민은 이 혼란을 종식할 지도자를 찾았다. 그리고 전 세계를 호령했던 소비에트 연방의 옛 영광을 다시 찾고 싶어 했다.

누군가가 마음 편하게 모든 것을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초인’을 원했다. 그 소망들이 하나로 뭉쳐 독재자를 만들었는데, 그 이름은 ‘퍼틴’ 러시아 대통령.

퍼틴은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비효율적인 산업을 통폐합했다. 그 결과 거대 기업이 만들어졌고 효율성이 크게 상승하였다.

5년 만에 경제 성장률이 7%대를 유지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긴 경제적 불황 속에서 조금은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위대한 러시아의 향수를 일으키는 일도 거침없이 진행했다.

체첸을 공격하여 굴복시켰고.

조지아를 침공하여 위성국으로 만들었으며,

미국, 터키, 시리아 반군, IS 등이 뒤섞인 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여 승리. 시리아에 러시아 해군, 공군기지를 만들었다.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을 물리치고 러시아가 승리한 것이었다.

얼마 후, 리비아 내전에 참여하여, 리비아 혁명군을 지원하였고 수도를 장악하게 만든 후 보상으로 유전을 확보했다.

‘전쟁에 참여하되 정치를 간섭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군사적 지원을 하지만 미국처럼 민주주의 하라, 정치 개혁을 하라는 주문 따위는 없다. 그저 경제적 꿀물만 빨아 먹을 뿐이었다.

이 전략은 아프리카의 독재자들에게 강하게 먹혔다. 러시아는 아프리카 내전에 참여하여 미국과 유럽을 밀어내고, 아프리카 대륙에 러시아의 물결을 만들었다.

러시아는 소련연방일 때 보다 전 세계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국민은 퍼틴에 열광했고 그는 더욱 강력한 독재자가 되었다. 이제 종신 대통령을 노리고 있었다.

그의 한마디면 모든 것이 이뤄졌다. 이런 힘은 돈에서 나왔고, 러시아 신흥 대기업이 퍼틴의 금고를 채워주고 있었다.

그 신흥 대기업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알렉산더 빅터.’

러시아 천연가스 그룹 회장.

빅터는 다른 신흥 대기업과 다르게 퍼틴의 발바닥을 빨아 성장한 인물이 아니다.

불굴의 의지로 북극해와 시베리아 가스전을 개발해 낸 사내였다. 모두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북해의 얼음바다를 통해서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파이프도 만들었다.

용기, 끈기, 결단력, 추진력 등에서 높게 평가받는 인물.

정치적인 안목이 있어서, 초기에 KGB 출신의 정치인 퍼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 결과 대박이 터졌고. 빅터는 러시아의 수많은 가스전 회사를 모두 병합하고 러시아 천연가스 그룹(RNG)를 만들었다.

빅터는 유럽에서 ‘겨울의 지배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러시아 가스로 유럽사람의 절반이 난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유럽의 탈원전 정책으로 더 큰 비중으로 러시아 가스가 사용되었다.

러시아 가스와 빅터의 명성은 유럽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빅터는 다른 사업까지 욕심을 냈다.

러시아라는 숲에 너무 많은 맹수가 살아서 이제 서로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신흥 재벌은 총 9개 분야.

석유, 가스, 우라늄, 철광, 중공업, 알루미늄, 전자통신, 금융, 농업.

모두 크고 작은 동종 기업들을 먹어 삼키고 거대해진 기업들이었다. 그래도 서로의 ‘나와바리’는 건들지 않는다는 룰은 있었다.

서로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을 때는 가능한 일. 결국 힘의 불균형이 일어났다. 철광, 천연가스, 그리고 석유. 이 3개의 산업이 다른 사업을 압도할 정도로 강력해지면서, 룰을 깨고 다른 산업을 병합하기 시작했다.

철광은 중공업을 노렸으며.

우라늄은 알루미늄을 노렸고.

석유는 가스를 노렸다.

가장 큰 싸움은 석유와 가스.

빅터가 경영하는 러시아 천연가스 그룹이 만만한 사이즈는 아니었으나 러시아 석유가 거침없이 공격해 왔다.

석유는 러시아 경제의 1/4을 차지할 정도의 공룡.

경제적, 정치적, 외교적으로 역사가 깊었다.

빅터는 살아남기 위해서 퍼틴에게 모든 재산을 주며 큰 신임을 얻었다. 이것으로 러시아 석유의 공격을 막아냈다.

퍼틴의 사냥개가 된 빅터는 우라늄 회장을 제거하고 사업을 병합했다.

우라늄 회장은 반 퍼틴 파의 수장에게 자금을 지원했다는 혐의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퍼틴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우라늄 회사를 털었더니 엄청난 비자금이 드러났고 그것을 모두 퍼틴에게 넘겼다. 빅터는 퍼틴에게 더 큰 신임을 얻는 것이 당연.

빅터는 더 큰 호랑이가 되었고 복수할 때가 다가왔다.

그의 다음 목표는 러시아 석유 개발 그룹.

러시아 석유가 먼저 송곳니를 드러냈으니, 기회가 왔을 때 싸움의 끝을 봐야 했다.

하지만 러시아 석유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세계 최대의 석유 수출국을 사우디로 알고 있는데. 사실 러시아다.

러시아의 원유 수출량을 100으로 보면

2위 미국 98

3위 사우디 94

세 나라의 원유 수출량은 비슷하지만 어쨌든 1위는 러시아.

이란, 이라크보다 3배 정도 많이 수출할 정도다.

러시아 석유 산업은 역사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뿌리가 깊어, 퍼틴도 쉽게 건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사내가 알렉산더 빅터. 슬슬 러시아 석유 미하일로비치 회장을 건드리고 있다.

퍼틴도 러시아의 최고 산업이라 할 수 있는 석유가 탐이 났고 주변을 조금씩 압박하고 있다. 이제 퍼틴의 의지대로 정치권에서 ‘석유의 국유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러시아 석유 미하일로비치 회장은 5대째 내려오는 가문의 모든 것을 한 번에 잃을 위기.

미하일로비치 회장은 ‘미국’이라면 치를 떠는 공산주의자였으나, 국유화 이야기가 나오자 미국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파리. 미하일로비치 회장은 유럽 에너지 위기관리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호텔방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으나 스테이크를 2조각쯤 먹고 그대로 내려놓았다. 밥맛이 있으면 이상하지.

룸서비스로 포도주를 주문했는데, 독이 있는지 확인을 하고 먹어야 했다. 그래서 비서를 부르려고 했는데, 비서가 먼저 들어왔고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손님은 나와 반즈.

반즈 혼자 오려고 했으나, 나는 상대가 믿을만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 함께 왔다.

회장은 반즈와는 이미 안면이 있는 듯, 가볍게 인사했다

“어서 오게. 반즈.”

“오랜만입니다. 미하일로비치 회장님.”

회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군.”

“회장님보다 훨씬 젊은데, 제가 먼저 죽으면 안 되지요.”

“최전선에서 총알받이 노릇을 한다고 들었어.”

반즈는 회장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고급 소파 상석 자리에 앉았다.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를 봐서는 회장님이 더 위험해 보이더군요. 프랑스에 망명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칠 거라고...”

나도 자리에 앉아서 포도주병을 확인했다 저번에 아부다비 왕궁에서 먹었던 그 비싼 것과 같은 것이다. 거침없이 포도주병을 따 잔에 따랐다. 그리고 가볍게 마시며 미소를 지었다.

미하일로비치 회장은 인상을 썼다. 하지만 대신 독 검사를 해준 것.

“누군가? 부하인가?”

“미국의 전략무기입니다.”

“농담할 분위기가 아닐 텐데.”

회장은 내가 넘기는 포도주병을 받았다. 그리고 잔에 가득 따라 절반쯤 마셨다.

“5대째 내려오는 사업을 관두고 망명할 생각 따위는 없다. 지금까지 수많은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우리 가문은 끝까지 버텨냈지. 이번에도 그럴 것이야.”

반즈는 표정이 무거웠다. 그렇게 녹록한 상황이 아니었다.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돈보다 주먹이 가깝지요. 석유 국유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상·하원 모두 퍼틴의 개들로 가득 차서 그동안 뿌린 돈이 별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미하일로비치 회장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돈’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강하게 들어왔다. 돈을 줘도 피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

하지만 절대권력자인 퍼틴에게 덤빌 생각은 못 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알렉산더 빅터야. 그놈이 사라져야 해. 그놈이 러시아 경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어.”

반즈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 정도 거물 암살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마세요.”

미하일로비치 회장은 눈빛을 번쩍이며 말했다.

“알렉산더 빅터를 제거해줘. 보상은 제대로 하지.”

“퍼틴이 버튼 하나를 누르면 수천 발의 핵미사일이 발사되지요.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북극에 아직 개발되지 않은 유정 정보를 주겠네. 미국회사가 개발할 수 있을 곳이야.”

반즈는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우리가 아는 것 빼고 빅터와 퍼틴의 정보를 주세요. 미국은 석유도, 달러도 많습니다.”

“CIA라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군. 정보보다는 석유가 ‘진실’이다.”

“회장님도 우리를 믿지 않고. 우리도 회장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진실’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지요.”

미하일로비치 회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포도주를 마셨다.

“미국의 의지를 믿을 수 있을까? 이익에 따라서 배신을 밥 먹듯 하니 말이야.”

반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회장님이 믿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자식도 안 믿는데. 배신은 그저 ‘변수’이지 않습니까?”

미하일로비치 회장은 침대 옆에 있던 검은 가방을 반즈에게 넘겼다.

“맞는 말이야. 평생 그렇게 살아왔지···. 가방 안에 USB가 있다. 처음 보는 것이 많을 거야. 내 의지를 보인 것일세.”

반즈는 가방을 받았지만 기대하는 얼굴은 아니다.

“물건을 보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미하일로비치 회장은 다시 한번 포도주를 쭉 마셨다.

“빅터가 충동질하고 있어, 전 세계가 점점 위험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CIA도 관심 있게 보고 있습니다.”

“미국 놈들은 현재가 얼마나 심각한지 몰라···.”

물건을 받았으니 같이 있을 이유가 없었다.

미하일로비치 회장이 머무는 펜트하우스에서 나왔다. 그리고 5층 아래, 333호실, CIA 임시 안가로 이동했다. 탁자 위에는 생수병 2개만 놓여 있다.

나는 강하게 말했다.

“미하일로비치 회장의 눈동자가 썩었다. 믿을 만한 놈이 아니야.”

반즈는 부정하지 않았다.

“어떻게 아나?”

“퍼틴에 대한 공포가 눈에 가득해. 빅터를 죽이면 그 자리를 들어가 퍼틴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 놈이다.”

반즈가 끝내 활짝 웃었다.

“심리분석관으로 취업하겠나? 우리가 내린 결론과 비슷하군.”

“이쪽을 조금도 믿지 않는 눈치였어. 역시나 시간 낭비였다.”

반즈는 가방 안에 있던 USB의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정보로 값어치가 없었다.

“넘겨준 정보도 별것 없군. 역시나 정말 시간 낭비였던 것 같다.”

나는 낮게 웃었다.

“CIA 작전이 늘 실패하고, 주인공이 고생해서 작전을 성공시키는 드라마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군. 철저한 고증이 들어간 시나리오였어.”

반즈는 쓴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수백 장의 종이를 넘겼다.

“러시아에서 금이 나올 만한 곳이다.”

나는 관심을 가지고 종이를 받았다.

“러시아 금이라···. 귀가 살짝 움직였다.”

“너는 러시아에서 금을 캐고 퍼틴의 측근이 된다.”

“퍼틴도 내 뒤에 미국이 있는지 다 알아. 그것이 가능할까?”

“그것을 알아도 곁에 둘 만큼 금을 뽑아내야지. 금만큼 사람을 흔드는 것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자네도 돈을 벌고 말이야.”

“러시아 금으로 나에게 생색 내는 것인가? 러시아 놈들 코도 걸고. 역시 CIA 발상이군.”

“어쨌든 금이 상당할 거다. 엄청난 돈을 볼거야.”

나는 생수를 쭉 마셨다.

“나는 금 무성애자야. 전혀 흥분이 안돼. 금 이야기 말고. 내가 이해 할 수 있게 큰 그림을 이야기해 봐. 아니면 빠지겠어.”

“언제부터 큰 그림을 봤다고 그래?”

“골든보이라는 전략무기를 러시아에 넣는 일이야. 절대 작은 일이 아니지. 어서 큰 그림을 이야기해 봐.”

반즈가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아무말도 안 한 거다.”

“생색내지 말고, 어서 이야기해.”

“퍼틴이 이상해진 것은 3년 전부터였다. 대외적인 활동이 점점 줄어들다가 최근에는 1년에 한 번 정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지난번에 핵잠수함에서 건강이 이상하다는 정보를 확인했으니, 몸이 좋지 않은 것인가?”

“최근에는 2년 동안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어. 녹화 방송으로 보는 것이 전부야. 대역이라는 이야기도 있지.”

“죽어가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반즈는 머리를 흔들었다.

“골든보이를 보내 달라는 연락을 먼저 했어. 직접 보고 싶다고 했지.”

“퍼틴이 나를 원한다고?”

“최근에 러시아 경기가 어려워지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골든보이가 러시아에 금을 쭉쭉 캐 올릴 수 있다고 미끼를 먼저 던졌구만.”

“지구를 100번쯤 멸망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가진 사람이 행방불명 되었는데. 신경 안 써도 되나? 일단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그와 자주 만날 수 있는 ‘미국의 눈’을 붙이기로 한거야.”

반즈는 돈을 세는 손 모양을 만들었다.

“미국 정부로부터, 일 년 1억 달러의 돈을 받지 않나? 돈값은 해야지.”

“내년에 연봉 협상을 다시 해야겠어.”

“부럽군. 아무리 뛰고 엉덩이를 흔들어도 연봉 1만 달러 올리기도 힘든데···.”

나는 품속에서 USB를 꺼내서 반즈에게 내밀었다.

“비투코인 200만 달러를 넣어 놓았다.”

반즈는 놀라며 되물었다.

“이게 뭐야?”

“CIA에 파이프를 하나 꼽아 놓는 것이지. 매년 같은 돈을 주겠다.”

반즈는 USB를 받고 낮게 웃었다.

“골든보이가 죽으면 절대 안 되겠군.”

“그렇지. 바로 그거지. 회사 일과 ‘나의 안부’가 부딪칠 때, 이 USB를 생각하라고. 돈줄이 사라지면 곤란하니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었다.”

나는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다시 한번 묻지. 전체적인 큰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말해봐. 자본주의답게 돈값을 하자고.”

반즈는 남은 생수 절반을 단숨에 마시고 말했다.

“러시아의 행보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 병력이 조금씩 유럽 서부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어. 기존의 순환 배치와 달라. 확실히 전쟁을 준비하고 있어. 벨라루스, 발트해 3국, 우크라이나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퍼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해.”

“나토가 국경선으로 다가오니, 서쪽 병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언제 전쟁이 일어난다고 했지?”

제2의 한국전쟁이 터지는 것은, 김정은의 권좌가 극히 위험해지거나, 자신이 죽을 위험에 빠져있을 때라고 했다.

퍼틴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잠수함에서 확인했다.

“퍼틴이 아프다고 전쟁이 일어날까?”

“그래서 골든보이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다. 최소 우리의 강력한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겠지.”

“워싱턴에서 심각하게 보는군.”

“20위권의 전략무기를 집어넣는 일이야. 정말 심각하게 보고 있다.”

“좋아. 나는 항상 돈값 하는 스타일이지. 얼굴마담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야.”

“파리에서 1주일 정도 머물며 러시아로 넘어갈 준비를 하자, 공부할 것이 많아.”

CIA가 잡아 놓은 안가安家. 5성급 호텔인 리앙제 15층 스위트룸.

나는 이제는 제법 돈을 쓸 줄 알아서 양주와 포도주 그리고 스테이크를 주문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완도에 있을 때 받은 미션을 보고 있었다.

<<1달 안에 해운과 조선의 대표이사 자리에 앉으세요.>>

<<실패 시. 황금인의 능력이 사라집니다.>>

빅터가 해운과 조선의 주식을 쥐고 있고, 그 주식을 받지 못하면 대표이사에 오를 수 없었다.

아니 주식이 없이 대표이사가 되는 것은 진정한 황금 의자에 앉는 것이 아니다. 빅터가 허락한 대표이사가 되어도, 미션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었다.

미션 종료까지 15일도 남지 않아 시간은 없는데···. 길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내 능력이 없어지면, 사람이 점점 떨어져 나갈 것이었다.

이때 스테이크를 열심히 썰고 있는 두 놈이 보였다. 저 병신들만 남겠지.

나는 두 놈에게 물었다.

“야! 독재자가 1년 뒤에 죽을 것을 알면 뭐를 할까?”

태경이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

“거리낌 없이 행동하겠지. 이제 무서운 것이 없으니까.”

“그래서 뭘 하겠어?”

“하렘을 만들어야지.”

질문한 내가 병신이지. 시간이 아깝다.

경복이도 한마디 했다.

“천국 가려고, 존나 착해져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하거나, 알렉산더 대왕같이 죽어서도 위대한 인물이 되겠다며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본인의 목숨이 가벼워지면 상대의 목숨도 가벼워지면서 전쟁을 일으키는 데 부담이 없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죽기 전에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조급함. 전쟁은 그렇게도 일어난다.

태경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닥쳐 하렘이야. 내 말이 맞아. 프랑스까지 왔으면 깃발을 꽂아야 하지 않겠냐?”

나는 태경이의 어깨를 잡고 호텔 밖을 내려다보았다.

“저기 경찰 보이냐? 밤에 범죄자가 더글더글 하다.”

“프랑스는 선진국이야.”

“저기 다리 밑에 애들 모여 있는 것 보여? 이슬람 애들이야. 바로 총이나 칼 꺼내 든다.”

“낭만적인 파리의 밤이 나온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우리나라 드라마 보면, 다 잘생기고 이쁜 여자들만 있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이때 호텔 전화가 울렸다. 반즈가 전화했을까?

프랑스어를 하는 전화를 몇 번 받았더니 둘 다 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Hello?”

-오랜만이군. 골든보이.

나는 이 목소리를 단번에 기억해 냈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알렉산더 빅터. 통화하고 싶었다.”

-좋아. 내가 누구인지는 알았군.

“CIA랑 친하거든.”

-남자답게 만날까?

한말 물러서면 지는 것이다.

“좋지. 술도 한 병 준비해.”

-시간이 없으니 독주로 준비하겠어. 위스키 어때?

내가 시간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나면 대화로 할 건가?”

-나는 황금인을 아끼는 사람이야. 신변은 걱정하지 마라.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맞다이’로 해결할까?”

-맞다이가 뭔가?

“남자답게 주먹싸움이지.”

-하하하. 싸움이든 대화든 만나서 하지. 오랜만에 가슴이 뛴다.

“대화할 때 친구가 낄 것 같은데···.”

-CIA가 끼면 될 일도 안 돼. 그놈들은 빼고 와.

“질문 하나 해도 되겠나?”

-들어주지.

“황금인이 무엇인가?”

-정말 핵심적인 질문이군. 위험을 감수한다면 그것에 대한 해답을 주겠다.

“방금 나는 네가 던진 낚싯바늘의 미끼를 달려가 물었어. 냄새가 나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말이야.”

수화기로 빅터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낚시는 취미가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오게.

괴산식 해결 방법은 항상 옳다.

당사자 끼리 해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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